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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적 양극화 보도

타임지,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적 양극화 보도
– 유족들, 침몰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수사 요구
– 유족들 단식 투쟁 앞에서 피자와 치킨 먹은 보수파
– 세월호 사고와 그 부작용으로 인해 서북청년단 부활

미국의 타임지가 24일 세월호 참사의 경위와 후유증을 이야기하며 세월호 참사의 충격으로 한 마음으로 뭉쳤던 시민들의 마음이 이제는 그 분리가 지나치게 양극화되어 대립되고 있는 현상을 보도하고 있다. 타임지는 광화문에 설치된 두 개의 상반되는 캠프에 대해 얘기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고 몰상식한 극우 단체들의 양상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시신만이라도 찾고 싶어하며 6개월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죽은 아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려 투쟁하는 엄마를 소개한 반면, 이제는 시위를 끝낼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의 앞에서 피지와 프라이드 치킨으로 잔치를 했던 두 얼굴을 가진 극우파의 모습에 대해서도 보도했다.

타임지는 또한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동안 교착상태였지만, 특별법안은 국회가 국정감사를 끝내는 10월말 통과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타임지는 차가워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보고 있다며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한 어머니와 세월호 참사로 경제가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세월호 가족들이 캠프를 철수하는 그날 하루 뒤 자신들도 캠프를 철 수 하겠다는 한 극우 운동가의 말을 인용하며 두 대립적인 모습을 전하며 끝을 맺고 있다.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을 보도하여 기소된 산케이 기자를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한 것을 비롯하여, 세월호 사건에 대한 외신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타임지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ti.me/1tUpznM

 

The South Korean Ferry Tragedy Has Exposed a Bitter Political Divide

한국 세월호 참사가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를 들추어내다

Steven Borowiec / Seoul, 6:22 AM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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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n holds a candle as protesters continue their fight at the Sewol ferry protest camp September 16, 2014 in Seoul, South Korea.
Paula Bronstein—Getty Images
2014년 9월 16일, 한국 서울의 세월호 시위 천막에서 시위자들이 투쟁을 계속하는 동안 한 사람이 촛불을 들고 있다.

Incredibly, right-wing groups in South Korea have a problem with families of Sewol victims continuing to mourn their loved ones

믿기 어렵지만 한국의 우익단체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애도하는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을 못마땅해 한다.

When the Sewol ferry sank in April, South Korea was united in trauma over the tragedy of a routine ferry ride that somehow resulted in the deaths of around 300 people, many of them high school kids.

지난 4월 세월호가 침몰했을 당시, 정기 여객선 운항 중 다수가 고등학생들이었던 약 300명이 어떤 이유에서건 사망하게 되었던 참사를 계기로 한국은 트라우마 속에서 하나가 됐다.

More than six months later, that grief has mutated into bitterness along political lines, and given rise to a slow-burn faceoff between antagonistic civic groups in the heart of the South Korean capital.

6개월 이상이 지난 후, 그 비통함은 정치노선을 따른 적대감으로 변질됐고 한국 수도의 도심에서 적대적인 시민 그룹 사이에 점차적인 분노의 맞대결을 불러왔다.

In Gwanghwamun Square, Seoul’s symbolic center, amid groups of tourists taking selfies, relatives of some of those who died on the Sewol and their supporters have, for more than three months, been camped out in a makeshift tent city. And on a sidewalk across the square, civic groups with a very different take on the issue of the sinking have set up their own camp.

서울의 상징적 중심인 광화문 광장에 셀카를 찍는 관광객 무리들 가운데 세월호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가족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3개월이 넘도록 임시천막촌에서 노숙하고 있다. 그리고 광장을 건너서 인도에는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매우 다른 입장을 취하는 시민단체들이 자신들만의 캠프를 따로 설치했다.

The relatives are calling on the government to mandate a thorough investigation into the cause of the sinking. “All we want is the truth,” said Kim Sung-shil, the 50-year-old mother of a high school boy who died in the sinking. More than six months after her son’s death, Kim still introduces herself as “Dong-hyuk’s mom.”

가족들은 정부가 침몰의 원인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고 침몰로 사망한 고등학교 남학생의 어머니인 50세의 김성실씨가 말했다. 아들이 사망한지 6개월 이상이 지났지만, 김 씨는 여전히 자신을 “동혁엄마”로 소개한다.

The families and their supporters argue that corruption and corner-cutting were behind the sinking, and need to be rooted out. The company that operated the Sewol is believed to have violated safety regulations by overloading the ship and failing to train the crew in how to carry out an emergency evacuation. The government’s emergency response has also been criticized for being late and ineffective.

가족들과 이들의 지지자들은 부패와 부실작업이 침몰의 원인으로서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월호를 운항했던 회사는 선박에 화물을 과적했고 선박직 승무원들에게 비상 대피를 수행하는 방법을 훈련시키지 않은 점에서 안전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비상대응 또한 지연되었고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비난 받았다.

When it went down on Apr. 16, the Sewol was carrying 476 people, only 172 of whom were rescued, many by private vessels who went to the scene to help out. Ten bodies have still not been recovered.

4월 16일 침몰됐을 당시 세월호는 476명의 승객을 싣고 있었으며 그중 단지 172명이 대부분 사고현장으로 도움을 주기위해 나왔던 개인 선박들에 의해서 구조됐다. 10명의 시신은 아직도 수습되지 못했다.

“If we never find the real truth behind the tragedy, our society will just become a darker place where people fear for their safety,” Kim said.

“우리가 이 참사 뒤에 있는 진정한 진실을 전혀 찾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안전할지 두려워하는 더 어두운 곳이 되고 말 것이다”고 김 씨는 말했다.

In part because most of them came from a working class suburb, victims of the sinking have become identified with the political left, leading to a forceful backlash from right wing groups that have their roots in red-bashing. Across the road from where Kim is camped out, right-wingers argue that the grieving families have been at it long enough and it’s time to get back to business as usual.

부분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노동자 계층이 주로 사는 서울교외에 살기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들은 정치적인 좌파로 인식됐고 종불몰이를 하는 보수집단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됐다. 김 씨가 야영하는 곳에서 길 건너에는 보수주의자들이 애도하는 가족들은 여지껏 충분히 했고 이제는 일상 생활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It’s time for someone to stand up and say enough is enough,” said Bae Sung-gwan, a conservative activist and retired career soldier. He added, “At the time of the sinking, everyone felt sympathy for them, but a long time has passed and that sympathy has run out.”

“누군가 일어나 이제 충분하다고 말해야 할 때이다”고 보수활동가이자 퇴역군인인 배성관씨는 말했다. 그는 “배가 가라앉을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지만, 긴 시간이 흘렀고 그 연민도 고갈됐다”고 덧붙였다.

In late September, while Sewol families and supporters were holding a hunger strike, rightwing activists held a protest of their own where they feasted on pizza and fried chicken directly in front of them.

지난 9월말, 세월호 가족들과 그 지지자들이 단식투쟁을 하는 동안에 보수활동가들은 그들 바로 앞에서 피자와 프라이드 치킨을 먹어대는 그들 자신만의 시위를 벌였다.

Kim Sung-shil said of her conservative adversaries, “I have no idea why they’re here. It’s like they don’t have families.”

보수측 상대편들에 대해서 김성실씨는 “나는 왜 그들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마치 가족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The Sewol incident and its fallout even led Bae Sung-gwan to revive the Northwest Youth Association, a conservative youth group with a history of anti-communist purges.

세월호 사고와 그 부작용으로 인해, 배성관씨는 심지어 공산주의자 숙청의 역사를 가진 보수적인 젊은 청년들의 모임이었던 서북청년단을 부활시키기에 이르렀다.

After the 1951-53 Korean War, South Korea was, for decades, led by military dictatorships who argued that harsh controls were necessary to protect the country’s fragile peace from North Korean communist infiltration.

1951년에서 53년에 있었던 한국전쟁 이후, 남한사회는 수십년동안 북한의 공산주의 사상의 침투에 맞서 조국의 평화를 보호하기 위해 강압적 통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군사독재 정부에 의해 통치됐다.

Some far-right activists also still believe that South Korea could at any time be overrun by communists from North Korea. “The leftists are using this [the Sewol sinking] as a chance to seize power. If they come to control the government, our country will be vulnerable to communists,” said Kang In-ho, a rightwing activist manning his side’s main table, gathering signatures for a petition seeking for any special Sewol investigation to be cancelled.

일부 극우 운동가들은 아직도 한국이 북한 공사주의자들에 의해 언제라도 침략당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좌파들은 권력을 잡기 위한 기회로써 이[세월호 침몰]를 이용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정부를 장악하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공산주의자들에 침략당하기 쉽게 될 것이다”고 자기 옆에 놓인 테이블에서 세월호에 대한 특별조사를 취소하자는 청원서에 서명을 모으고 있는 우파운동가 강인호씨가 말했다.

Parliament was deadlocked for weeks due to disagreement over the composure of the investigative body and the limits of its authority. The ruling and opposition parties reached a compromise on the law in early October, but the families are refusing to accept it on the grounds that they weren’t given a say in choosing who will carry out the investigation. The bill mandating the investigation will be passed at the end of October, once parliament finishes regular audits of government ministries.

국회는 조사 위원회의 구성과 그 권한의 한계를 두고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몇주 동안 교착상태였다. 10월초 여당과 야당은 법에 대해 합의점에 도달했으나 가족들은 누가 조사를 수행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에 전혀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합의안을 거부하고 있다. 조사에 대한 규정 법안은 국회가 국정감사를 끝내는 10월말 통과될 것이다.

The outdoor struggle is therefore likely to continue, even as Seoul’s crisp autumn weather segues into the bitter cold of winter. Kim says she’s in for the long haul. “I know Dong-hyuk is watching,” she said. “I can’t give up now.”

그러므로 서울의 서늘한 가을 날씨가 겨울의 모진 추위로 바뀔지라도 야외투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혁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그녀가 말했다. “지금 포기할 수 없다.”

Kang In-ho says it’s time to move on from the Sewol tragedy. “The economy is suffering because they’re trying to keep everyone sad.”

강인호씨는 이제 세월호 참사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 때라고 말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계속 슬퍼하도록 하려 하기 때문에 경제가 고통을 받고 있다.”

But, Kang says, he’s not ready to move on from his own activist camp just yet. When asked how long his group planned to keep their post, Kang points over his shoulder at the Sewol families and says, “One day longer than them.”

하지만 강 씨는 그 자신은 활동가 캠프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아직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얼마나 오래 그의 그룹이 그 자리를 유지할 것이냐고 질문을 받자 강 씨는 자신의 어깨 너머로 세월호 가족들을 가리키면서 “저들보다 하루 더”라고 말한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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