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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국가마저 외면하는 평택 기지촌 여성 조명

워싱턴포스트, 국가마저 외면하는 평택 기지촌 여성 조명
-안정리 매춘 여성들, 미군기지 확장으로 삶의 터 빼앗겨
-한국 정부, 외화벌이와 미군 유희 상대로 실질적 관리

워싱턴포스트가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의 확장으로 삶의 터를 잃은 기지촌 여성을 조명하는 기사를 실어 주목을 끌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6일 AP 기사를 인용하여 ‘At US base, S. Korean ex-prostitutes face eviction-미군기지촌 한국 전직 매춘부들 퇴거당할 처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갈 곳조차 없이 버림받고 있는 여성들의 참담한 실정을 보도했다.

평택 안정리에 위치한 캠프 험프리스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으로 확장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주변지역 도시개발이 추진되면서 안정리의 기지촌에서 평생을 살아온 여성들이 갈 곳조차 없는 상태에서 쫒겨 날 위기에 몰려있다. 용산기지 이전은 2011년 ‘용산기지 및 미 제2사단기지 등 주요 주한 미군 기지를 2016년까지 평택으로 이전 완료’에 합의하는 것으로 이전이 결정된 바 있다.

이곳의 기지촌 여성들은 1960~70년부터 기지촌에서 일해오던 여성들로 많은 수는 아직도 안정리에 그대로 거주하고 있는 노년층에 해당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이 도시개발로 갈 곳조차 없이 삶의 공간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있고 국가조차 이들을 돌보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들 여성들이 캠프 험프리스 근처의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부로 과거에 일했고 달리 갈 곳이 없어 이곳에 머물러왔다며 이 여성들은 곧 확장될 미군기지 근처에 최상의 부지를 개발하려는 업자와 집주인에 의해 안정리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는 이들 여성들이 질병과 가난과 사회적인 낙인으로 시달려 왔으며 특별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일본군강제동원성노예 여성들과 비교한 뒤 그러나 이들은 대중 혹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950년 한국 전쟁의 폐허 후 ‘한국정부가 남한에 주둔한 수천 명의 미군들을 위해 여성들이 필요하다고 보았다’는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한 뒤 1962년 정부는 기지촌을 합법적인 매춘과 함께 “특별관광구역”으로 공식화했고 정부가 기지촌 장려 및 실질적인 관리를 했다는 사실을 지적해 기지촌 여성문제가 정부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이제 나이 들고 병들었을 뿐 아니라 삶의 터전조차 빼앗긴, 그리고 갈 곳조차 없는 이 여성들을 한국의 정부조차 외면하고 있음을 상세하게 조명한 이 기사는 장씨 성을 가진 여성의 현실을 따라가며 “아마 내가 미군들과 너무 오래 살아서 한국인들과 어울릴 수 없나 보다”, “왜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라는 장씨의 한탄을 전한 뒤 미국 또한 이 여성들에 대한 책임에서 무관할 수 없음을 암시하며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현재 평택 미군기지 확장으로 렌트 하우스, 산업단지, 문화시설 등이 도시개발 계획이 세워지자 주변 땅값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평택지역 주민들도 미군기지 확장으로 평택이 도시부흥의 기회를 맞이했다는 기대를 숨기고 있지 않은 가운데 이들 기지촌 여성에 대한 어떤 대책이나 돌봄, 또는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 외화벌이에 내몰려 지역 경제를 이끌었던 이들 여성들, 이제는 그 기지촌 확장으로 인해 평생을 지내온 터전에서 내쫒김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wapo.st/1lOqthT

 

At US base, S. Korean ex-prostitutes face eviction

미군기지촌 한국 전직 매춘부들 퇴거 당할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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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July 31, 2014 photo, Jang Young-mi, 67, who worked in a military camptown for nearly two decades, poses for a photo in her small one-room home where she lives with her three dogs, her only family, at Anjeong-ri in Pyeongtaek, South Korea. More than 70 aging women live in a squalid neighborhood between the rear gate of the U.S. Army garrison here and half a dozen seedy nightclubs. Near the front gate, glossy illustrations posted in real-estate offices show the dream homes that may one day replace their one-room shacks. They once worked as prostitutes for American soldiers in this “camptown” near Camp Humphreys, and they’ve stayed because they have nowhere else to go. Now, the women are being forced out of the Anjeong-ri neighborhood by developers and landlords eager to build on prime real estate around the soon-to-be-expanded garrison. (Joyce Lee/Associated Press)

2014년 7월 31일 찍은 이 사진에서, 거의 20년을 기지촌에서 일해 온 67세의 장영미씨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세 마리의 개와 함께 살고 있는 한국 평택시 안정리의 자그만 단칸방 집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70명 이상의 노년층의 여성들이 이곳 미군기지 뒷문과 대여섯 개의 허름한 나이트클럽 사이에 놓인 지저분한 동네에 살고 있다. 정문 근처 부동산 가게들에 전시된 반질반질한 도면들은 이들이 살고 있는 단칸 판자집을 대신해 그곳에 언젠가 들어서게 될 아름다운 주택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캠프 험프리스 근처의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부로 과거에 일했고 달리 갈 곳이 없어 이곳에 머물러왔다. 이 여성들은 곧 확장될 미군기지 근처에 최상의 부지를 개발하고 싶어하는 업자와 집주인에 의해 안정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By Associated Press September 6

PYEONGTAEK, South Korea — More than 70 aging women live in a squalid neighborhood between the rear gate of the U.S. Army garrison here and half a dozen seedy nightclubs. Near the front gate, glossy illustrations posted in real-estate offices show the dream homes that may one day replace their one-room shacks.

한국 평택 – 70명 이상의 노년층의 여성들이 이곳 미군기지 뒷문과 대여섯 개의 허름한 나이트클럽 사이에 놓인 지저분한 동네에 살고 있다. 정문 근처 부동산 가게들에 전시된 반질반질한 도면들은 이들이 살고 있는 단칸 판자집을 대신해 그곳에 언젠가 들어서게 될 아름다운 주택들을 보여준다.

They once worked as prostitutes for American soldiers in this “camptown” near Camp Humphreys, and they’ve stayed because they have nowhere else to go. Now, the women are being forced out of the Anjeong-ri neighborhood by developers and landlords eager to build on prime real estate around the soon-to-be-expanded garrison.

이들은 캠프 험프리스 근처의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부로 과거에 일했고 달리 갈 곳이 없어 이곳에 머물러왔다. 이 여성들은 곧 확장될 미군기지 근처에 최상의 부지를 개발하고 싶어하는 업자와 집주인에 의해 안정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My landlord wants me to leave, but my legs hurt, I can’t walk, and South Korean real estate is too expensive,” says Cho Myung-ja, 75, a former prostitute who receives monthly court eviction notices at her home, which she has rarely left over the last five years because of leg pain.

“집 주인은 내가 나가길 원하지만 난 다리가 아파 걸을 수가 없고, 한국의 부동산은 너무 비싸다”고 전직 매춘부이며, 다리가 아파 지난 5년이 넘도록 거의 떠난 적이 없는 자기 집을 비우라는 법원의 통보를 매달 받고 있는 75세의 조명자씨가 말한다.

“I feel like I’m suffocating,” she says.

질식해버릴 것 같다”고 그녀가 말한다.

Plagued by disease, poverty and stigma, the women have little to no support from the public or the government.

질병과 가난과 사회적인 낙인으로 시달려온 이 여성들은 대중 혹은 국가로부터 거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Their fate contrasts greatly with a group of Korean women forced into sexual slavery by Japanese troops during World War II. Those so-called “comfort women” receive government assistance under a special law, and large crowds demanding that Japan compensate and apologize to the women attend weekly rallies outside the Japanese Embassy.

이들의 운명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성노예가 되었던 한국 여성들의 운명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위안부’라고 불리는 이 여성들은 특별법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일본이 이들에게 보상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 대사관 밖에서 매주 시위에 참석한다.

While the camptown women get social welfare, there’s no similar law for special funds to help them, according to two Pyeongtaek city officials who refused to be named because of office rules. Many people in South Korea don’t even know about the camptown women.

시청 규율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를 거절한 2명의 평택시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지촌의 여성들이 사회생활보조금을 받고는 있지만 이들을 돕기 위한 특별자금을 마련해줄 유사한 법률은 없다고 한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서 알지도 못한다.

In the decades following the devastation of the 1950-53 Korean War, South Korea was a poor dictatorship deeply dependent on the U.S. military. Analysts sa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aw the women as necessary for the thousands of U.S. soldiers stationed in the South. Some of the women went to the camps voluntarily; others were brought by pimps.

1950년-1953년의 폐허 뒤 수십 년 동안 한국은 미군에 깊이 의존하는 가난한 독재정권이었다. 한국정부가 남한에 주둔한 수천 명의 미군들을 위해 여성들이 필요하다고 보았다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그 여성들 중의 일부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기지촌으로 갔고, 일부 다른 여성들은 포주들이 데려갔다.

In 1962, the government formalized the camptowns as “special tourism districts” with legalized prostitution. That year, some 20,000 registered prostitutes worked in nearly 100 camptowns, and many more were unregistered.

1962년 정부는 기지촌을 합법적인 매춘과 함께 “특별관광구역”으로 공식화했다. 그 해에 약 2만 명의 등록된 매춘부들이 거의100개의 기지촌에서 일했으며 훨씬 많은 매춘부들이 등록되지 않았다.

The women who became prostitutes saw few other options, but the work made them social pariahs, unable to live or work anywhere else, says Park Kyung-soo, secretary general of the National Campaign for the Eradication of Crimes against Korean Civilians, a group that tries to uncover and monitor alleged U.S. military crimes against South Koreans.

매춘부가 된 여성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그 일이 그들을 사회적 천민으로 만들어 다른 어떤 곳에서도 거주하거나 일할 수 없게 됐다고 미군의 한국인에 대한 범죄혐의에 대해 이를 폭로하고 감시하는 단체인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의 박경수 사무총장은 말한다.

Pockets of former camptown women exist throughout South Korea. Now in their 60s, 70s and 80s, the women of Anjeong-ri mostly live alone in tiny homes, struggling to pay for food and rent on a monthly government stipend of 300,000 to 400,000 won ($300 to $400).

전 기지촌 여성들이 모여사는 곳들이 한국 전역에 존재한다. 이제 60대, 70대 그리고 80대의 나이인 안정리의 여성들은 3십만윈에서 4십만원 (300달러에서 400달러)의 정부의 월보조금으로 식대와 집세를 내는 것에 허덕이며 대부분 아주 작은 집에서 혼자 산다.

Activists say most of the women are in danger of losing their homes.

활동가들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집을 잃을 위험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I’m so worried that I can’t sleep,” says a camptown woman who will only give her surname, Kim, because she’s ashamed of her past. The 75-year-old’s landlords have told her she has a month to leave, and she looks nearly every day for a new home.

“너무 걱정이 되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자신의 과거가 수치스러워서 김이라는 성만 밝힌 한 기지촌 여성이 말한다. 75세인 이 여성의 집주인은 집을 한 달 안에 비워줄 것을 통보했고, 그녀는 거의 매일 새로운 집을 찾고 있다.

The camptown women’s predicament began when Washington and Seoul agreed in 2004 to relocate the sprawling Yongsan U.S. base, which takes up 620 acres of prime real estate in the center of wealthy Seoul, to the base in Pyeongtaek, 70 kilometers (45 miles) from the capital. The deadline, originally set for 2012, is now tentatively 2016.

2004년 미국과 한국이, 부유한 서울의 도심에 최상급 부동산 620에이커(역주: 약 2백51만 평방미터)를 차지하고 있는 용산미군기지를 수도에서 70킬로미터(45 마일) 떨어진 평택기지로 이전하기로 합의하면서 기지촌 여성들의 곤경이 시작됐다. 본래 이전 기한은 2012년이었으나 지금은 잠정적으로 2016년으로 되어 있다.

At the end of the move, Camp Humphreys will have tripled in size and house more than 36,000 people, including troops, their family members and civilian staff. Investors are eyeing the Pyeongtaek land in anticipation of homes for U.S. military families and sites for businesses that will cater to the new flood of people and wealth.

이전이 끝나면, 캠프 험프리스의 규모는 3배로 커질 것이며 군인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민간인 직원을 포함한 3만 6천명 이상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미군 부대 가족들을 위한 주택과 밀려들어올 인구와 부유함에 걸맞는 사업지를 기대하며 평택 부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Piles of rubble from demolished homes sit next to new villas. A few blocks from some of the remaining shacks, a partially built apartment building rises to the beating of hammers and whirring of drills.

철거한 집들에서 나온 건설 폐기물이 새 주택들 옆에 쌓여 있다. 몇몇 남아있는 판자집들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이미 형태를 갖춘 아파트들이 망치와 드릴 소리와 함께 올라가고 있다.

Landlords eager to capitalize on rising land prices are trying to force the women out with pressure and eviction orders, and have more than quadrupled the monthly rent, from 50,000 won ($50) to 200,000 won ($200), said Woo Soon-duk, director of the Sunlit Sisters’ Center, a local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dedicated to the women.

기지촌 여성을 위한 지역 시민단체인 햇살사회복지회의 책임자인 우순덕씨는 오르는 땅값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땅 주인들이 압력을 가하고 퇴거명령서를 이용해 이 여성들을 내쫓을려고 노력하고 있고, 월세를 5만원(50달러)에서 20만원(200달러)으로 4배 이상 올렸다고 말했다.

Many of the women want the government to take greater responsibility for their well-being and financial stability. They believe they played an important role for South Korea.

이 여성들 다수가 자신들의 복지와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 한국정부가 보다 책임있는 행동을 취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In June, 122 former camptown prostitutes sued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ey’re each seeking 10 million won (about $9,870) in compensation. A court date has not been set. Activists and lawyers for the women say police prevented prostitutes from leaving; that the government forced the women to undergo tests for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 then locked them up if they were sick; and that officials from the U.S. military and South Korean government regularly inspected the prostitution operations.

지난 6월에는 122명의 전직 기지촌 매춘부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각 개인에게 천 만원씩(9,870달러)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정 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여성들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법률가들은 경찰들이 이 매춘여성들을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하게 막았다고 한다. 정부가 이 여성들에게 성병 (STD) 검사를 강요했고 병에 걸리면 감금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또한 미군과 한국정부 관리자들이 매춘 활동을 정기적으로 점검했다고도 한다.

The government saw the camptowns as a way to regulate prostitution, bring in much needed money and keep the U.S. soldiers happy. It was also worried about a rising number of sex crimes committed against South Korean women by U.S. soldiers in the 1950s and ‘60s, Park says.

한국 정부는 기지촌을, 매춘을 규제하고, 절실히 필요했던 외화를 벌어들이며 아울러 미군을 즐겁게 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정부는 또한 1950년대와 60년대에 미군이 한국 여성을 상대로 저지르는 성범죄 사건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우려했다고 박 사무총장은 말한다.

A spokeswoman for the government’s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declined to comment until after a court reaches a decision. She wouldn’t give her name, saying office rules prohibited her from being named publicly. The U.S. military wouldn’t answer specific questions about the women, saying in a statement that it was aware of their case and has “zero tolerance” for prostitution.

여성가족부의 여성 대변인은 법원의 결정이 이뤄질 때까지 논평을 거부했다. 그녀는 부서의 규정 때문에 이름이 공개될 수 없다며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미군은 성명서에서 미군이 그 여성들의 법정소송에 대해 알고 있고 매춘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 여성들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Many of the women feel trapped.

이 여성들 다수가 자신들이 궁지에 몰렸다고 느낀다.

As 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 ”Rebels” plays on an old radio, Kim Soon-hee, 65, a former camptown prostitute, eats a piece of melon. Clotheslines crisscross her room, which barely fits a bed and a dresser. The air smells strongly of the mold that covers the walls.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노래 “반역자들”이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안 전 기지촌 매춘부인 65세의 김순희씨는 수박을 한 조각 먹고 있다. 침대와 서랍장이 간신히 들어가는 그녀의 방에는 빨래줄이 여기저기 교차하며 걸려있다. 벽을 덮고 있는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난다.

She wants to move to a better place in the same neighborhood, but she’s too poor. “In the winter, the water doesn’t flow because the pipes are frozen,” she says. She shares a courtyard with two other one-bedroom homes that are empty.

같은 동네의 보다 나은 장소로 이사하고 싶지만 그녀는 너무 가난하다. “겨울엔 파이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녀가 말한다. 그녀는 비어있는 단칸방 집 둘과 마당을 함께 쓴다.

Jang Young-mi, 67, who was orphaned as a girl and worked in a military camptown for nearly two decades, lives with three mangy dogs. A bite from one of them left the long white scar on her hand, but she refuses to abandon the offending animal.

어릴 때 고아가 되어 거의 20년 동안 기지촌에서 일해온 67세의 장영미씨는 지저분한 개 세 마리와 살고 있다. 그 중 한 마리에게 물려 손에 길고 흰 흉터가 남아 있지만, 그녀는 자신을 문 짐승을 버리길 거부한다.

“Maybe because I lived for so long with American soldiers, I can’t fit in with Koreans,” Jang says. “Why did my life have to turn out this way?”

“아마 내가 미군들과 너무 오래 살아서 한국인들과 어울릴 수 없나 보다”고 장 씨가 말한다. “왜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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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1. 서울의 소리, 09/10/2014
    워싱턴포스트, 국가마저 외면하는 평택 기지촌 여성 조명
    http://bit.ly/1srdtj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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