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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걸출한 한국 정치 집안의 쇠퇴

이코노미스트, 걸출한 한국 정치 집안의 쇠퇴
-오랜 보수지역 대구, 전국 지지율 4%보다 낮은 3%
-대구 시민들 “박근혜에 투표한 손 자르고 싶어”
-급진 좌파적 성향으로 동양의 모스크바로 알려졌던 대구,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중
-박정희에 대한 평가와 숭배 격하되고 있어.
-젊은 세대, 박근혜 시대 그리워하지 않을 것

이코노미스트는 24일 ‘걸출한 한국 정치 집안의 쇠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정희 일가가 쌓은 정치적 명성과 쇠퇴를 심도있게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새누리당이 널빤지 한 장을 선거 후보로 내놓는다 하더라도 박근혜의 고향인 대구 유권자는 기꺼이 지지 투표할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는 말로 기사의 포문을 열었다.

이런 대구에서 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최순실 일가가 박 대통령 집안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루머가 소용돌이치고 박 대통령이 최순실로 하여금 대통령 업무에 부적절하게 개입하게 두었다는 폭로가 있은 후, 지지율이 전국 지지율 4%보다도 낮은 3%로 떨어졌으며, 많은 대구 시민들이 “박근혜에게 투표한 손을 자르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대구는 급진주의적 좌파 성향으로 인해 한때 동양의 모스크바로 불린 바 있으며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후 이 지역에서 진보 세력들의 뿌리를 뽑았으며 박정희를 숭배한 세대의 투표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정희 때의 경제성장을 기대했던 이들은 대구와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에서 경제 생산량 저조와 높은 실업률을 보이자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유승민 의원을 뽑는 등 높은 실망감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파문으로 인해 박정희는 격하되고 있으며 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대구 사람들은 “박 패러다임”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을 버리고 싶어 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이 성장한 박근혜 시대에 대해 향수적 시각보다는 더 비판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을 가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는 박근혜가 사람들의 박정희에 대한 오랜 숭배가 없었더라면 결코 권력을 잡지 못했을 것이며 이제 아버지 박정희 묘소에 참배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이코노미스트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Terry

기사 바로가기 ☞ http://econ.st/2mku1ep

All Park and no bite
The fading of South Korea’s pre-eminent political dynasty

한국의 특별히 뛰어났던 정치 집안의 쇠퇴

The troubles of one president weigh on the reputation of another

딸 대통령이 일으킨 문제가 아버지 대통령의 명성을 짓누르다

Asia
Feb 24th 2017 | DAEGU
아시아 2017년 2월 24일 대구

SOUTH KOREANS used to joke that if the conservative Saenuri party put up a plank of wood as a candidate for election, voters in the city of Daegu would support it with gusto. Four-fifths of voters in the surrounding province of North Gyeongsang plumped for Park Geun-hye, the conservative candidate, in the presidential election that brought her to power in 2012. Until last year conservatives had swept every ballot since 1985 in Daegu, her home town. Yet when Ms Park’s approval rating sank to a record low of 4% in November amid a sensational influence-peddling scandal, it fell further still, to 3%, in Daegu.

한국에선 보수 새누리당이 널빤지 한 장을 선거 후보로 내놓아도 대구 유권자는 기꺼이 지지 투표할 것이라는 농담이 있었다. 보수당 후보 박근혜는 경상북도 유권자 5분의 4가 표를 몰아주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했다. 박근혜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1985년 이후 작년까지 보수당이 모든 투표를 휩쓸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권력남용 스캔들 와중에 박 대통령 지지율이 4%로 내려갔을 때, 대구에서는 3%로 더 떨어졌다.

Since revelations surfaced that Ms Park let a long-standing confidante, Choi Soon-sil, meddle inappropriately in presidential affairs, the city has held weekly demonstrations demanding that she should step down. Rumours of the influence of the Choi family over the Parks have swirled since the rule of Park Chung-hee, Ms Park’s late father and a former military dictator, who was born in the nearby city of Gumi. At the height of the rallies in Daegu, more than 100 civic organisations marshalled 50,000 protesters. That makes them the biggest demonstrations in the area in 30 years.

박 대통령이 오랜 측근 최순실이 대통령 업무에 부적절하게 개입하게 두었다는 폭로가 드러난 이후, 대구에서는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매주 열렸다. 박 대통령의 선친이자 전 군사 독재자, 대구 근처 구미 출신의 박정희 통치 이래로 최순실 일가가 박 대통령 집안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루머가 소용돌이쳤다. 대구에서 집회가 절정일 때 100개가 넘는 시민 단체가 5만 명의 시위대를 집결시켰다. 이것은 30년간 대구에서 가장 큰 시위였다.

The National Assembly voted to impeach Ms Park in December. The constitutional court is now reviewing the charges against her before deciding whether to remove her from office or allow her to finish her term. A few, particularly elderly, locals remain unwavering in their support: a large photograph of Ms Park visiting Daegu’s main market hangs outside one of the shops in it. Its 60-something owner says people come from all over the country to buy the same model of shoe that Ms Park bought. On a recent Friday morning, business was brisk.

지난 12월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안에 동의했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박 대통령에 대한 혐의를 검토하고 있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할지 임기를 마치게 할지 결정할 것이다. 소수의 대구 지역민, 특히 노인들은 박 대통령 지지에 흔들림이 없다. 대구에서 가장 큰 서문시장 내 한 상점 외벽에 박 대통령이 방문한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다. 60세쯤의 한 주인은 전국 각지 사람들이 박 대통령이 샀던 같은 모델의 신발을 사러 온다고 말한다. 최근 한 금요일 아침, 장사는 호황이었다.

Most shopkeepers in Daegu, however, have removed portraits of Ms Park from their walls. When the scandal took hold, many in the city said that they “wanted to cut off the hand that had voted for her”, says Kim Hyung-ki of Kyungpook University in Daegu. Shortly before the impeachment, Mr Kim organised a public apology of over 1,300 academics, businessmen, politicians, doctors and church leaders who in 2012 had given Ms Park their “unquestioning votes” as the daughter of the dead president.

그러나 대구 상점 주인들 대부분은 상점 벽에서 박근혜의 사진을 떼 냈다. 대구 경북대학교의 김형기 교수는 스캔들이 한창 쟁점이 되고 있을 때, 많은 대구 시민들이 “박근혜에게 투표한 손을 자르고 싶다”고 했다고 말한다. 대통령 탄핵소추 직전 김 교수는 1,300여 명의 학자, 사업가, 정치인, 의사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2012년에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에게 “무조건 투표”한 것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In a sense, Daegu is returning to its roots. Before Ms Park’s father came to power, it was known as the Moscow of the East because of its leftist radicalism. The first march against Ms Park started at a park that commemorates the students who led the nation’s first pro-democracy uprising, in 1960, against Rhee Syngman, South Korea’s first president.

어떤 의미에서, 대구는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박근혜의 아버지가 집권하기 전, 대구는 좌파 급진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동양의 모스크바로 알려졌었다. 박근혜에 반대하는 첫 번째 행진은,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반대해 1960년에 일어난 한국 최초의 민주항쟁을 주도한 학생들을 기리는 공원에서 시작됐다.

After Park Chung-hee seized power in a coup in 1961, he stamped out those more progressive tendencies, says Kang Geum-soo of Daegu People’s Solidarity for Participatory Democracy (PSPD), a citizens’ group. Yet many still see him as a deliverer rather than a dictator. Under his rule, state-led economic development helped millions of South Koreans lift themselves out of poverty. That generation mostly reveres him, and its votes buoyed Ms Park to the presidency. Supporters held portraits of her father as they celebrated in the streets.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강금수 씨는, 박정희가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 진보적인 세력들을 뿌리 뽑았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박정희를 독재자가 아니라 구원자라고 여긴다. 박정희의 통치하에 국가주도 경제발전은 수백만 명의 한국인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 세대 대부분이 박정희를 숭배하고 그 세대의 투표로 인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박근혜 당선을 축하하는 거리행진에서 지지자들은 박정희의 초상화를 들었다.

Yet Ms Park has been a huge disappointment for those who expected her to live up to her father’s “miracle on the Han river”. Under him, the economy grew at double-digit rates each year. He poured money into the industrial heartland of Gyeongsang, including his own home town of Gumi. But for 20 years now Daegu has had the country’s lowest economic output per person; Gumi has its highest unemployment. In legislative elections last year Daegu voted in Yoo Seung-min, an independent who has been a fierce critic of Ms Park, even when he was a Saenuri MP. Following that election, four of Daegu’s 12 MPs are now from other parties.

그러나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에 부응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박정희 재임 시 경제는 매년 두 자릿 수로 성장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고향 구미를 포함해서 경상도의 산업 중심지에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제 지난 20년간 대구 일 인당 경제 생산량은 한국에서 가장 낮고 구미 실업률은 최고로 높다.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는 무소속 유승민 의원을 선출했다. 그는 새누리 국회의원이었을 때도 박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했었다. 2016년 선거 이후, 이제 대구 국회의원 12명 중 4명이 다른 정당 소속이다.

Ms Park launched her political career as an MP for Daegu in the late 1990s—as positive perceptions of her father’s legacy peaked. In a poll conducted in 1997, over three-quarters of respondents thought Park had been the most competent president in Korean history; only 4% opted for Kim Young-sam, South Korea’s first civilian president, who was struggling at the time with the Asian financial crisis. Carter Eckert of Harvard University notes that a visit to Park’s grave in Seoul became routine for any aspiring politician.

박 대통령은 박정희의 업적에 긍정적인 인식이 최고점을 보였던 1990년대 후반 대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7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 이상이 박정희를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유능한 대통령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단지 4%만이 한국의 최초 문민 대통령 김영삼을 꼽았는데, 여론 조사 당시 김영삼은 아시아 경제위기로 고전하고 있었다. 하버드대의 카터 에케르트는 정치인을 열망하는 누구나 서울에 있는 박정희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고 말한다.

Large-scale projects to commemorate Park have been expanded during his daughter’s presidency. Among them is a presidential library and a separate museum in a former house of his, which recently opened in Seoul. Last month her government launched new history textbooks, which have provoked a furore for their rosy view of her father’s rule.

박정희 추모 대규모 프로젝트가 딸 박 대통령 임기 동안 확장되었다. 그 사업 중에는 박정희 도서관과 최근 서울에서 개관한 박정희 사가 내의 별도 박물관이 있다. 지난달 박근혜 정부는 아버지 박정희 통치를 미화하여 격분을 불러일으켰던 새 역사 교과서를 출시했다.

Tales of the late Park’s asceticism are widely circulated: he is said to have shunned air-conditioning, opening windows instead and always keeping a fly swat to hand. (All subsequent presidencies, military and civilian alike, have been marred by corruption scandals.) His birth is commemorated every November in Gumi. Schoolchildren join a procession of citizens down Park Chung-hee street, his old route to school. Bottles of makgeolli, a traditional rice wine that he drank with farmers, are tipped out under a tree where he is said to have sat reading as a child. Two years ago 98 bottles were emptied, in honour of his 98th birthday.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금욕주의에 대한 일화가 널리 돈다. 박정희는 에어컨 사용 대신 창문을 열어 두었고 파리가 날아와 손 위에 앉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후임 대통령들의 위상은 군부 출신이든 아니든 부정부패 파문으로 손상되었다.) 매년 11월 구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한다. 학생들은 박정희의 등굣길이었던 박정희로를 따라 시민행진에 참석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농부들과 자주 마셨던, 쌀로 만든 전통 술인 막걸리 여러 병을 그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것으로 알려진 나무 아래에 뿌린다. 2년 전에는 그의 98번째 생일을 기리는 의미에서 막걸리 98병을 뿌렸다.

But only 500 fans, fewer than half the usual number, attended the celebrations in Gumi last year, when protests against Ms Park were reaching their peak. The scandal has prompted locals to question the billions of won being spent to honour Park’s legacy: in a poll conducted in June by the Gumi chapter of the YMCA, a charity, over three-quarters said too much was being spent on commemorative events. A committee set up to prepare celebrations for the 100th anniversary of his birth had planned to spend almost 3bn won on a musical about his life, but the project was scrapped after strong local opposition. A directive for local restaurants to offer menus featuring the dishes that Park ate as president was dropped after eateries complained that they were not selling.

그러나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하야 시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탄신 기념행사에 평소보다 반도 안 되는 단지 500명의 박정희 지지자들이 참석했다. 박근혜의 부정부패 파문 때문에 구미 시민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을 기리는데 지출되는 수십억 원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시민단체인 YMCA 구미 지부에서 지난 6월에 실시했던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 중 4분의 3 이상이 기념식에 지출하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답변했다. 박정희 탄신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설립된 한 위원회에서는 박정희의 생애에 대한 뮤지컬에 30억 원 가까이 지출할 계획이었으나 구미 시민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구미지역 식당가에 박정희가 대통령 시절에 먹었던 식사가 나오는 차림표를 제공하라는 지시도 거부당했다. 식당들이 판매하지 않겠다고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Hwang Dae-chul of Gumi’s PSPD says some are worried about Ms Park’s scandals tarnishing the legacy of Park Chung-hee. That, he says, is because many others are already re-evaluating it. The late Park’s birthplace was burnt down in an arson attack in December; in a separate incident, his 5-metre bronze statue nearby (pictured) was defaced with the word “dictator” in red paint.

박근혜 대통령 파문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이 박정희의 유산을 재평가하고 있어서 그 유산이 퇴색될까 봐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구미시 참여연대 소속 황대철 씨는 말한다. 고 박정희 생가는 12월에 방화 공격으로 타버렸다. 이와 별도의 사건으로, 생가 근처에 세워진 5미터짜리 박정희 동상이 “독재자”라는 빨간 페인트 글씨로 훼손되었다.

At the statue’s unveiling in 2011, Nam Yu-jin, who has been mayor of the city for a decade, said Park was “half-god, half-man”. But Park has since been downgraded: when referring to the commemoration of his birth last year, the city used the ordinary term for the event, rather than the one reserved for kings, saints and gods, as it previously had.

2011년 동상 제막식에서 10년 동안 구미시장을 지낸 남유진 시장은 박정희는 “반신반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박정희는 격하되고 있다. 지난해 그의 탄생 기념식을 언급하자면, 시 당국은 예전에는 왕, 성인 및 신에게 바치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지난 기념식에서는 평범한 말을 사용했다.

That saintly image is one many older supporters had hoped to rediscover in Ms Park. Some say they voted for her out of gratitude to him; others “read his political talent” into his daughter, says Mr Eckert. But now Daegu’s remorseful Park voters want to shed their over-reliance on the “Park paradigm”. For his staunchest followers and detractors—the generation that lived under him, and the generation that fought against dictatorship on the streets—his reputation is unlikely to change. For a younger generation, says Mr Eckert, the nostalgic view of the Park era they grew up with will shift to one that is both more critical and less emotional.

그런 신성함은 많은 노년 지지자들이 박근혜에게서 되찾고 싶었던 이미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에 대한 보은으로 박근혜에게 투표했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박정희의 정치적 재능을 딸 박근혜에게서 읽었다”고 한다고 에케르트는 말한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에게 투표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대구사람들은 “박 패러다임”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을 버리고 싶어 한다. 박정희를 가장 견고하게 추종하는 사람들과 가장 비방하는 사람들-박정희 체제에서 살았던 세대와 거리에서 독재에 대항하여 싸웠던 세대-에게 있어 박정희 평가는 바뀌기 쉽지 않다. 에케르트는 한국 젊은 세대들은 그들이 성장한 박근혜 시대에 대하여 향수적 시각을 갖기보다 더 비판적이고 더 이성적인 시각을 가질 것으로 본다.

Ms Park would never has risen to power were it not for the enduring reverence for her father. She has left her official residence only once since her impeachment, to pay her respects at her father’s grave. That is something few politicians would do now.

박근혜는 박정희에 대한 오랜 숭배가 없었더라면 결코 권력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박근혜는 탄핵 이후 딱 한 번 관저를 나와 아버지 묘소를 참배했다. 이제 그러려는 정치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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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속, 이제 우병우, 안봉근, 이재만, 정윤회, 이영선, 윤전추, 정동춘, 그리고 정유라를 구속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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