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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국의 흑역사

동아시아포럼,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국의 흑역사
– 박근혜 정부, 자국 내 학살과 학대에는 무관심
– 형제복지원, 보도연맹 학살, 제주도 학살 등…정부가 전면조사 거부해온 사례들로 상세히 적어
– 공직자 자신이 가해자이거나 책임 있는 자들을 비호했던 과거 사건들에 대해 정부 양면적 입장 취해

동아시아포럼은 10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국의 흑역사’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박근혜 정부가 일본이 과거에 한국에 저지른 역사적인 잘못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외면하지 않았지만 자국 내의 학살과 학대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기고문은 최근 AP 통신이 공개한 형제복지원과 여수 순천 보도연맹 학살, 제주도 양민 학살 등을 차례로 언급하며 공직자들 자신이 가해자이거나 책임이 있는 자들을 보호했던 과거 사건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양면적인 입장을 취해왔으며 이는 한국전쟁 기간과 그 이전에 한국 정부군과 민병대원들이 저지른 잔학행위들에 대해 정부가 전면조사를 거부해온 많은 사례들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4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제주 학살이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일 뿐이었다고 주장한 것을 언급하고 이런 주장이 거의 모든 학살에 대한 공식적인 표현인 것 같다고 말하며 모든 학살은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으로만 묘사되었다고 지적했다.

동아시아포럼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집단 살해 같은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립했지만 위원회는 사법적 권한이 없었고 이명박 보수정부는 활동 기간 연장을 거부했으며 정부나 언론에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계속해서 위원회의 업무를 약화시켰다고 말했다.

기고문은 북한 옆에 있는 남한이 인권의 천국으로 보이고 따라서 남한에서 일어난 학대와 학살의 암울한 역사가 국내외적으로 비교적 조명을 덜 받은 듯하지만 광주민중항쟁과 같이 정기적으로 기념되는 사건들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동아시아포럼 기고문 전문이다.

번역 감수 : Eliz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27cACty

South Korea’s dark history still unresolved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국의 흑역사

10 May 2016
Author: Benjamin Katzeff Silberstein, University of Pennsylvania

www_eastasiaforum_org_20160512_234624(1)

www_eastasiaforum_org_20160512_234702(2)

Next to North Korea, most countries look like havens of human rights. Perhaps this is why South Korea’s dark history of abuses and massacres attracts relatively little interest, both internationally and within the country itself. To be fair, some events, such as the Kwangju Massacre, are commemorated regularly. But the official memory is selective.

북한 옆에 있으면 대부분의 나라들이 인권의 천국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래서 남한에서 일어난 학대와 학살의 암울한 역사가 국제적으로나 국내에서나 비교적 조명을 덜 받은 듯하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광주민중항쟁과 같은 일부 사건들은 정기적으로 기념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A story recently broke by the Associated Press (AP) showed a remarkable example. It revealed horrific cases of killings, rapes and abuse of thousands of people at the ‘Brothers Home’ detention centre in Busan, in south-eastern South Korea, between 1975 and 1988. This was one of 36 facilities where the government placed those deemed as ‘vagrants’ — petty thieves, political criminals, homeless, street children and the disabled — in an effort rid its cities from undesirable elements. Some were taken away as South Korea was preparing for the 1988 Seoul Olympic games.

AP 통신이 최근 공개한 이야기는 놀라운 사례를 보여줬다. 기사는 1975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 남동부 부산에서 운영된 강제수용소 ‘형제복지원’에서 수천 명이 살해, 강간, 학대당한 끔찍한 사건을 공개했다. 이곳은 정부가 도시에서 불안요소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좀도둑, 정치범, 노숙인, 고아, 장애인 등 이른바 ‘부랑자’로 간주되는 이들을 수용한 36개의 시설 중 하나였다. 일부는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용됐다.

By 1986, AP says, a total of 16,000 people were held at 36 facilities around the country. About 4000 of them were at the Brothers Home facility. There, prisoners were regularly raped, starved, beaten and killed by staff members.

AP에 따르면 1986년 당시 전국에 있는 36개 시설에 총 1만6000명이 수용돼 있었다. 이 중 약 4000명이 형제복지원 소속이었다. 이곳에서 수감자들은 직원들에 의해 수시로 강간당하고 굶주리고 폭행당하고 살해됐다.

At least 513 people died there between 1975 and 1986, a number that was probably much higher in reality. The facility was finally closed in 1988 after a new prosecutor stumbled upon it by accident. One of AP’s most damning revelations is that the mayor of Busan at the time, Kim Joo-ho, pleaded with the prosecutor for the facility owner’s release, while Park Hee-tae, Busan’s chief prosecutor, ‘pushed to reduce the scope of the investigation’.

1975년에서 1986년 사이 적어도 513명이 사망했으며 실제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설은 한 신입검사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한 후 1988년 폐쇄됐다. AP의 보도 중 가장 기막힌 사실은 김주호 당시 부산시장이 형제복지원 원장의 석방을 검사에게 청탁하는가 하면, 박희태 당시 부산지검 검사장은 ‘수사의 범위 축소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Park Hee-tae later became the justice minister of South Korea and is currently an advisor to the ruling Saenuri Party. In the end, owner Park In-keun was only sentenced to two and a half years of prison time for embezzlement and charges of violating grassland management and foreign currency laws. Only a few years before his sentence, Park In-keun had received two state medals for achievements in social welfare.

훗날 한국의 법무부 장관이 된 박희태는 지금은 집권 새누리당의 상임고문이다. 소유자 박인근은 횡령과 초지관리법 및 외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2년 반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박인근은 선고 겨우 몇 년 전에,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으로 2개의 국가 훈장을 받았다.

The case of Brothers Home is part of a broader pattern.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long been ambivalent towards past crimes where government officials were either perpetrators or protected those responsible. A number of examples can be found in the atrocities before and during the Korean War, committed by South Korean government troops and militias, that the government has refused to examine in full.

형제복지원 사건은 더 폭넓은 패턴의 일부이다. 한국 정부는 공직자들 자신이 가해자이거나 책임이 있는 자들을 보호했던 과거 사건들에 대해 양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이는 한국 전쟁 기간과 그 이전에 한국 정부군과 민병대원들이 저지른 잔학행위들에 대해 정부가 전면조사를 거부해온 많은 사례들로도 알 수 있다.

In several instances during the war, in cities like Yeosu and Sunchon, large numbers of civilians were killed when the government suspected that they were hiding and aiding communist insurgents. The largest instance of such killings was the Bodo League Massacre. Before the war broke ou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collected lists of suspected communists. Many had nothing to do with the communist movement, but local officials were given quotas for how many names they needed to collect.

전쟁 기간 동안의 몇 가지 예로, 여수 및 순천과 같은 도시에서는, 정부가 공산 반군을 숨겨주고 도와줬다는 의심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그런 살해 행위의 가장 큰 사례는 보도연맹 학살이었다. 전쟁 발발 이전에, 한국 정부는 공산주의 용의자 명단을 수집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운동과 관련이 없었지만 지방 공무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름을 수집해야 하는지 할당량이 주어졌다.

When North Korea launched its invasion in June 1950, tens of thousands of people (some estimates say 100,000) were rounded up and executed, suspected of being a fifth column in waiting. A similar dynamic underpinned the Jeju Island Massacre of 1948. In its struggle to put down a leftist rebellion on the island, South Korean government troops and guerilla groups killed at least 30,000 people, approximately 10 per cent of the island’s population, many of which were civilians.

1950년 6월 북한의 침공이 시작되자 수만 명의 사람들이(일부는 10만으로 추정) 대기 중인 공산주의자들이라는 혐의로 검거되고 처형되었다. 비슷한 관계 역학이 1948년의 제주도 학살에도 적용됐다. 제주도에서 좌익 반란 진압을 위해 고전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군과 게릴라 단체(서북청년단)는 적어도 3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약 10 %이며 대다수가 민간인들이었다.

The government has established a memorial museum, but the memory of the massacre remains controversial in South Korean society. As recently as 2014, President Park Geun-hye’s nominee for prime minister, Moon Chang-keuk, claimed that the Jeju Massacre was nothing more than a communist uprising. This seems to be the official narrative for most of the massacres. As of 2014 — the last time I personally visited — the Korean War Memorial Museum in Seoul did not contain a single word about the massacres, either in English or Korean. All were described only as communist rebellions.

정부는 기념관을 건립했지만, 학살의 기억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최근 2014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총리 후보였던 문창극 씨가 제주 학살이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일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거의 모든 학살에 대한 공식적인 표현인 것 같다. 내가 한국을 개인적으로 마지막 방문했던 2014년까지, 서울의 전쟁기념관은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학살에 대한 어떤 단어도 포함하지 않았다. 모든 학살은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으로만 묘사되었다.

For decades after the war, survivors and relatives of the victims risked imprisonment if they spoke out about the killings. In 2005, the liberal Roh Moo-hyun government established a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o examine issues like the mass killings. But the commission lacked a judicial mandate, and when the conservative Lee Myung-bak government took over power in 2008, it refused to extend the mandate when it expired in 2010.

전쟁 후 수십 년 동안, 생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은 학살에 대해 발언하면 감옥행을 각오해야 했다. 2005년에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는 집단 살해 같은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사법적 권한이 없었고, 2008년 집권한 이명박 보수정부는 2010년 위원회 활동이 만료되자 활동 기간 연장을 거부했다.

Scholars and writers I have spoken to, who either worked with the commission or followed its work closely, told me that conservatives both in government and in the media continuously undermined the commission’s work. This is presumably the same commission that an official from Seoul’s Ministry of Interior referred to when he told AP that the victims should have come forth earlier, in justifying why the current government won’t revisit the Brothers Home case.

위원회에서 일했거나 그 활동을 주시했던 학자와 기자들이 말한 바로는, 정부나 언론에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계속해서 위원회의 업무를 약화시켰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 행자부의 한 관료가 현 정부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조사하지 않는지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좀 더 일찍 나섰어야 했다고 AP통신에 얘기할 때 언급했던 그 위원회와 같은 듯하다.

The Park government has not been a stranger to discussing historical wounds in the case of Japanese atrocities against Korea, but domestic massacres and abuses remain too controversial and divisive to touch.

박근혜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참상과 같은 역사적인 상처를 논의하는 것은 외면하지 않았지만, 논란과 분열의 여지가 많은 자국 내의 학살과 학대는 건드리지 않았다.

Benjamin Katzeff Silberstein is a PhD Student in Korean History at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and co-editor of North Korean Economy Watch.

벤자민 카제프 실버스테인 씨는 펜실베니아 대학교 한국사학과에 박사과정 학생이자 North Korean Economy Watch의 공동편집인이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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