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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녹색신호등만 있는 도로는 위험하다

(3) 녹색신호등만 있는 도로는 위험하다

박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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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양측을 통해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토론이다. (이미지 출처 : Today US)

“ 생각한다는 것은 의견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100% 동의할 때, 적어도 한 사람은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최후 변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변호사 클라렌스 대로우의 말이다. 단 두 사람 간에도 서로 다른 의견이 있어야 한다는 이 말에 우리는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토론이 없다, 토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토론은 왜 필요할까? 먼저 토론의 정의를 잠깐 살펴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다면, 토론보다 토의가 유용하다. 예를 들면, “우리 부서의 핵심역량을 키우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서의 핵심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 라는 안건에는 지지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견해 차이를 통해 “예산증액” 이라는 이슈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찬반 양쪽의 대립상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토론이라고 한다. 토의와 토론은 차이가 있다. 토의는 협동적이지만 토론은 논쟁적이다. 그래서, 토론은 debate라 하고 토의는 discussion이라 한다.

토의는 결론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고, 토론은 전제의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 부서의 핵심 역량을 키우기 위한 방안은 예산 증액이냐, 부서원 간의 대화냐, 워크숍을 갖는 것이냐 등 다양한 의견을 거쳐 다수결의 합의로 결론을 공유할 수 있다. 반면에 토론은 그 범위가 훨씬 좁혀져 있다. 예산 증액이 우리 부서의 핵심역량을 키워주는 동력이 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양측의 논리적인 입증과 치열한 논쟁은 토론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간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산 증액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양측은 모두 “우리 부서의 핵심역량 키우기” 를 위한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 없는 토론은 의미가 없다. 정책 토론에서 양당이 아무리 날 선 토론을 펼치더라도, 국민의 이익이든 국가의 이익이든 공동의 목표를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토론에서 찬성과 반대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적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가진 다른 의견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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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이미지)

Pros and cons* . 토론에서 찬성, 반대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것은 찬반양론 또는 장점과 단점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이슈가 양면의 가치를 가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토론은 사안의 다른 면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토론은 반드시 문제 해결을 전제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입장을 통해 안건의 지평을 넓히고, 논리의 오류를 점검하고, 서로 생각지 못한 부분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치열한 논쟁을 통한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진실과 진리에 이르는 것이 토론의 더 큰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 뇌가 가진 속성 중에 “편승 효과” 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의견에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의견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만장일치라는 결과는 그래서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일찍이, 그런 집단사고의 오류를 간파한 멋진 장치가 있었다. 바로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제도이다. 토론문화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 제도의 연원은 중세 로마 교황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황청은 성인품 시성 전 후보자에 대해 반드시 찬반 토론을 거쳐 성인을 결정했는데 이때, 교황청에서 임명한 악마의 변호인은 의도적으로 반대의견을 내서 찬성하는 사람들의 설득을 필요로 했다. 악마의 변호인을 설득하지 못하면 결론은 유보됐다.

우리의 토론문화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를 “반대” 에 대한 인식에서 찾아본다. 우리는 긴 세월을 합법적인 민주공화국 국민으로 살아왔으면서도, 민주적인 절차와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제대로 학습할 시간을 그 어떤 세대도 갖지 못했다. 오로지 나의 주장만 반복하고, 상대는 무조건 틀리고 나는 옳다는 식의 토론, 넘어가서도 넘어와서도 안 된다는 서로의 벽을 확인하는 토론들. 우리는 왜 반대를 두려워할까? 그것은 내가 완벽해야 한다,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기인하지 않는가 싶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는 오류투성이이다. 토론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인식할 때, 우리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성의 힘이다.

반대가 용인되지 않는 사회는 생각이 멈춘 사회이다. 생각이 멈춘 사회는 성장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토론이 활발한 시기는 융성했다. 우리의 성군 세종도 토론을 즐겼다. 이조판서 허 조가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대하는 사람은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대가 있어야 토론이 있다. 도로를 건널 때 녹색 신호등만 있다면 오히려 위험하지 않겠는가.

*pros는 ‘for(찬성)’를 의미하는 라틴어 ‘pro’에서 ‘cons’는 ‘against(반대)’를 의미하는 ‘contra’에서 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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