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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듣는다, 고로 생각한다

(2) 나는 듣는다, 고로 생각한다

박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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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블로그

어릴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는 바로 “말 잘 들으라”는 말 아닌가 한다. 말을 잘 들으면, 어른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착한 사람”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착한 사람이란, 공부 잘하고 말썽부리지 않고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말하자면 해당 계층의 귀감이자 전범(典範)이며, 그것의 첩경은 엄마 아빠의 말, 이웃 어른의 말, 교사의 말을 잘 들으면 되는 것이다(쉽지는 않다). 그런데 그 “말 잘 들으라”는 말을 성인이 되어서도 듣는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요원하기 때문일까? 글쎄, 착한 사람 되기가 쉽지는 않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말 잘 듣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생각 없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잘 듣는다는 것은 뭘까? 이 두 가지의 “잘 듣기”는 어떻게 다른가? 어릴 적의 잘 듣기는 그야말로 “시키는 걸 잘 기억해서 그대로 행동하라”는 뜻일 것이다. 듣고 행함이 있는 쌍방은 있지만, 소통방식에선 원웨이 커뮤니케이션이다. 그 행간에는 의심하지 말라, 의문 갖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럴 때의 듣기능력은 무엇이 중요한가? 그야말로, 토씨 하나 흩날리지 않게 귓속에 잘 주워담는 것이다. 그것을 “소극적 듣기”라 하자. 듣기와 반응하기가 서로 다르지 않다. 밥 먹어라, 하면 밥 먹고 공부하라 하면 공부하는 것이다. 제발 그 모든 것을 알아서 하라, 하면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말 잘 듣기는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까?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고 세상의 위험을 습득할 때까지, 즉, 자동차는 위험하고 뜨거운 것은 조심해야 하고 사나운 동물은 피해야 하고… 등등, 재차 증명할 필요가 없는 위험을 내재시킬 때까지일 것이다.

그러나 판단능력이 생기고 사고가 가능한 나이가 되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게 해선 안 된다. 더는 듣는 것이 곧 믿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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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블로그

내가 만약 어린아이이고, 탁자 위에 놓인 사탕 상자의 뚜껑을 열려고 할 때 누군가 ‘위험해, 열지 마!’ 라고 해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사탕을 못 먹었다면 그것으로 나를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같은 상황일 때 아무 의심 없는 행동으로 내가 먹고 싶은 사탕을 먹을 수 없었다면, 그리고 그 말이 거짓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면, 그건 남을 비난할 일이 못 된다. 왜냐면, 사탕 상자가 위험한 이유가 뭔지, 위험한 물건이라면 왜 탁자 위에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상대의 말이 사실인지 의견인지, 옳은 근거를 가진 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면서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을 “비판적 듣기” 라고 한다. 비판을 비난과 같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그 두 가지가 섞일 이유는 없다. 비판의 기준은 객관성에 있지만, 비난의 기준은 주관에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말을 잘 듣는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일치한다. 그래서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은 피수용자에게 예쁨 받는다. 들은 말에 대한 의문이나 질문은 곧 믿음이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같아서, 우리가 자란 환경에서 비판적 듣기능력이 신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가족문화, 대학 때까지 이어지는 일제식 수업 등에서는 일방적 청취 능력 이외에 비판이라는 이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우리에게 토론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비판적 듣기 능력의 부재에 많은 원인이 있다.

비판적 듣기는 “당신은 틀렸다” 가 아니라 “당신의 주장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 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잘 파악한다는 것이고, 잘 파악했다는 것은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말하려는 논점을 파악하고 그 논점에 비추어 주장의 맥락이나 근거, 논거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화자의 논점 확인과 이해를 위한 질문이 허용되어야 한다.

토론의 성과는 어떤 사실에 대해 집단 지성의 질서 있는 논쟁을 통한 객관성의 획득에 있다. 하나의 의견이 커뮤니티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공론이 될 때는, 흠결과 단점이 최소화된 상태로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 듣기는 어찌 보면 민주주의에서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미국은 지금 대통령 경선 토론회로 뜨겁다는 소식이다.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치르는 토론회는 횟수도 엄청나지만, 당락을 좌우하는 중요한 절차로 인식되고 있다. 왜 그럴까? 토론만큼 사람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형식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요점을 파악해 적절한 대답과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외모가 멋있다거나 자기주장만 펼쳐놓는 사람보다 더 능력 있고 호감이 가는 인물임은 틀림없다. 미국 국민은 대통령 후보의 토론 능력을 아주 중요한 요소로 본다고 하니, 그 점 부러울 뿐이다.

TIP
1. 사실을 말할 때는 정확한 출처를 들어야 한다. 생각을 말할 때는, 타당한 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왜?’ 라고 물어야 한다.
2. 친구가 이성과 헤어져 슬픔을 호소해 올 때는 비판적 듣기가 아니라 ‘공감적 듣기’ 능력이 중요하다. 그야말로, 들어주는 사람의 태도가 화자에 미치는 영향이 큰 듣기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마음을 터놓는 상대에게는 ‘공감적 듣기’가 더욱 필요하다. ‘너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표시를 표정으로, 몸짓으로, 또는 짧은 공감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청자의 자세이다. 한마디로, ‘토로’하려는 사람에게 ‘토론’하려 해선 안 된다.
3. ‘경청’은 듣기의 태도이지 듣기의 종류는 아니다. 어떤 말이든지 잘 경청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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