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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착한 예비군!

(23) 착한 예비군!

S. Macho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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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이 운영되는 국가는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캐나다, 중국, 체코 공화국, 덴마크, 에스토니아, 프랑스, 인도, 아일랜드, 이딸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말레이시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필리핀, 스페인, 스리랑카, 스웨덴, 스위스, 태국 등이다. 1757년 월급의 반만 주고도 국내외 전쟁터로 보낼 수 있는 민병대 법이 공표된 영국, 미국과 다르게 핀란드, 중화민국(대만), 싱가폴, 이스라엘, 콜롬비아 등은 병역을 마친 후 몇 년간 의무적으로 예비군훈련을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참 착하다. 군복무를 마친 후 또 몇 년간 군말 없이 예비군 교육을 받으니 말이다. 만기제대 후 4년간 동원예비군, 그 이후 4년간 향토예비군, 그리고 40세 전까지 연 1회 민방위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래도 불만 불평 없이 성실하게 통지서가 날라오면 달려간다. 대한민국 예비군 누리집에 따르면, 1961년 12월 총 6개 조항인 향토예비군설치법제정 공포됐고, 1968년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다’는 표어를 들고 250만 향토예비군무장을 시작했다. 향토예비군은 전시•사변 기타 이에 따르는 국가 비상사태하에서 현역군 부대 편성이나 작전수요를 위한 동원에 대비하며 적이나 무장공비의 침투 또는 무장소요가 있거나 그 우려가 있는 지역 안에서 적이나 무장공비의 소멸과 무장 소요를 진압하고 중요시설 및 병참선을 경비하며 기타 민방위 기본법에 의한 민방위 업무의 지원업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예비군이 설치될 당시부터 예비군의 정치적 이용 문제는 쟁점이 되었다. 예비군에게 정신 교육을 빙자하여 특정 정치 이념과 특정 정당의 사상을 주입하는 것도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래서 법으로도 예비군의 정치적 이용을 금하고 있지만, 이 법은 사문화되었다. 예비군 훈련, 특히 정신교육 시간에 강사나 교관이 안보를 빙자하여 극우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다반사다. 전두환 독재정권 때인 1980년 12월 여러 가지 임무가 추가되었는데, 그 중 “무장소요가 있거나 그 우려가 있는 지역 안에서의 무장소요의 진압”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다행히 예비군이 시위진압에 투입되는 불상사는 없었지만, 법률상 시위진압에의 동원이 얼마든지 가능한 채로 예비군을 둔다는 것은 민주국가에 맞지 않는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예비군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 진압 문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예비군 존재의 목적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명박이나 박근혜 정권의 예비군 교육장에서 정치적이고 정권을 찬양하는 교육은 이젠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집회 때 많은 예비역들이 군복을 착용하고 거리로 나와 질서유지 및 시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자 명박이 정부는 군용마크를 포함한 예비군복은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9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18조의 4에 의거 예비군이 동원되었거나 교육훈련을 위하여 소집되었을 때에만 착용하며, 이 외는 군무원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 제9조 군복 등의 착용•사용금지에 의거 사용을 제한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친 정부성향 시위 및 집회에 나타나는 군복과 군용마크착용자들은 전혀 제지를 받지 않고 오히려 공권력의 보호를 받고 있다.

김형태 의원은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예비군 훈련 참가자에게 지급하는 보상비가 유가 인상과 관련 교통비 등 실비가 비현실적이다. 최소 1일 노임 단가 수준의 예비군훈련 참가자 보상비의 현실화가 필요하다. 훈련 참석을 위해 소요되는 경비 정도는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예비군 훈련 참여를 위해 예비군 자신이 경비를 부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은 예비군도 공수낙하 등 특수교육을 받는다. 이 경우도 사회봉급과 특수수당 등 보상비를 받지만 우리나라는 예비군 참가자가 평균 1만 2870원을 지출하고 예비군들은 일반훈련에 5천여 원 정도의 턱없이 적은 금액을 경비로 받을 뿐이다.

논란도 많다. 민주화 운동 진압 동원, 1993년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사고 사건, 2009년 전염병 환자 동원 논란, 주특기를 고려하지 않은 동원훈련, 생계 지장에 대한 비판, 장비 부족에 대한 논란, 정치적 악용 논란, 예비군 효율성 논란,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자 처벌 논란, 훈련자원 관리 허술 문제, 훈련 통제 미비 등이 결국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지난 5월 13일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으로 가해자를 포함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친 참사가 났다. 28일엔 수색 훈련을 하던 예비군들이 던진 ‘연습용 수류탄’이 터지면서 산불이나 예비군 2병이 화상을 입는 등 군의 안일한 대처 등이다.

친목, 애국, 명예단체라고 주장하는 재향군인회는 1952년 결성됐다. 고급 간부 출신들의 기득권 수호와 이권 확보에 주력하고 반민족, 반통일, 반 자주국방을 유지하며, 엄청난 액수의 정부보조 및 각종 이권수익사업개입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처럼 복수의 재향군인회를 통한 선의의 경쟁 체제를 위해 (가칭)평화재향군인회가 2005년 만들어졌다. 설립자 표명렬 예비역 준장은 ‘국민에게 신뢰받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제대군인 단체로 자주국방의 밑거름이 되고 조국의 평화통일에 이바지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약 3천여 명의 장 사병 출신 회원들은 간부와 병 모두가 자발적 참여하는 다자 협력적 자주국방의 안보관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평화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대북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관련 시민단체 등과 협력하고 미국 평화재향군인회 Veterans for Peace와 연대해 반전평화 운동에 앞장서고, ‘6.25전후 민간인 학살 현장 탐방’ 등 많은 활동을 통해 국민의 격려를 받고 있다. 또한, 친일반역도들과 독재옹호 세력에 의해 무너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민족군대’, 인간 존엄성을 제일의 가치로 하여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사랑하는 ‘민주군대’ 그리고 자주적 안보관을 바탕으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통일군대’ 이러한 3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평화재향군인회는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정신에 기초를 두고 친일세력의 잔재 청산을 지향한다고 표명렬, 김기준 상임공동대표는 말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오스트레일리아는 군 복무가 지원제다. 또한, 나라의 크기와 약 2,300여만 명의 인구에 비례해 군인의 숫자는 약 6만 명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며 그나마 해군이 규모가 있고 강하다. 부족한 군 병력 때문에 종종 20~40대 남녀를 대상으로 현역군인이나 예비군모집 홍보광고를 볼 수 있으나 대다수 젊은이는 자유가 없고 명령과 제약이 많다는 선입관 때문에 단체생활이나 규제된 환경을 싫어한다. 보통 1년에 몇 주간 예비군훈련을 받으면 나라에서 많은 혜택도 주고 직장인 등은 예비군훈련 기간도 근무로 인정해준다. 그러나 막상 지원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일부 군복에 열광하고 이민정책반대를 외치며 애국자 행세하는 보수주의자들도 막상 예비군 지원이나 훈련엔 발을 뒤로 뺀다.

마약범죄자를 증오하고 마약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내 손을 잡아끌던 극우파 오스트레일리아 친구가 있었다. 얼마 후 불법군사단체구성혐의자로 그의 얼굴이 언론을 탔다. ‘마약 없는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이란 단체를 결성해 지원자를 모집하고 집 지하실에 기관총과 사제폭탄 등을 숨겨두었다가 체포된 것이다. 불법군사단체결성과 불법무기 소지혐의로 재판받느라 법원을 들락거렸고 사회의 주목받았지만, 투철한 애국심과 성실한 사회생활이 참작되어 감옥까진 안 가고 가벼운 처벌로 끝났던 것 같다.

우리 부대 출신들은 예비군훈련이 면제다.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에서 예비군훈련을 딱 한 번 받아봤다. 막 제대하고 지방 친척 집에 인사 갔다가 바쁘다는 사촌 형 대신 동원훈련에 들어갔었다. 그 당시엔 그런 예비군훈련대리자들이 종종 있었다. 어떤 사내가 ‘이번이 동원 마지막이다’라고 한소리 하자, 누군가가 ‘저 양반 몇 년 전부터 저 소리야’ 해서 다 같이 웃고, 훈련을 끝내고 밤마다 형 친구들과 술 사다 마신 기억이 있다.

외국 몇 나라에서 예비군훈련을 받았고 덕에 그 나라들 재향군인회원이 됐다. 대한민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동맹국이고 내가 당시 특수부대원 무술교관이던 덕분에 오스트레일리아 예비군훈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도시에서 내륙으로 서너 시간 떨어진 산으로 다른 예비군지원자들과 군용트럭에 실려 가니 한국에서의 군대 시절이 생각난다. 군 훈련장인 산기슭에 여러 동의 군용텐트, 이동식 화장실과 샤워실, 취사실 등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가 군에서 20여 명 넘게 자던 야전 천막이 여기선 4인용이다. 훈련군복, 개인장비 등을 받았다. 다른 나라 군복을 입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중간에 훈련 못 받겠다고 도망갈까 봐 그런지 훈련은 편했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군에서 처음 도입한 차양이 넓은 부니 햇과 군복도 지형에 맞게 독특한 위장무늬 군복. 바지엔 옆 주머니가 없고 속칭 건방 주머니만 옆에 달려있다. 총은 오스트리아 제를 사용한다. 나는 군 경험이 있었고 제대한 지 몇 년 안 되었으니 사격이나 훈련에 금방 적응됐으나 대다수 예비군은 군복과 사격 등이 진짜 난생처음이라 군대와 훈련에 대한 개념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 한국에서 훈련병 시절 정신없이 기합 받다 보니 오른쪽 군화만 두 짝 신고 며칠을 뛰어다녔다. 나중에 왼쪽만 두 짝 신은 동기 놈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식사는 야전식이라는데 빵, 스테이크, 삶은 감자, 채소, 디저트 등이고 여군 아가씨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배급한다. 난 여군들과 같이 있는 게 신기했다. 일부 예비군들은 군 조직과 계급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인지 현역 여군들과 거침없이 농담을 던지고 여군들은 잘도 받아준다. 식기도 현역취사병들이 다 닦아준다. 비록 포도주 없었지만, 햇살 좋은 들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야전용 식탁에 앉아 먹는 군용 스테이크는 19세기 프랑스 낭만파문학의 선구자 샤토브리앙 Chateaubriand의 이름을 딴 최상급 안심스테이크를 먹는 기분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훈련이다. 7시 지나서 일어나 샤워하고 인원 점검하고 맨손체조하고 구보하고, 빵, 시리얼과 잼, 베이컨 등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오전 교육을 시작으로 가벼운 행군과 모의작전, 기초군사훈련 등을 받았다. 군에서 3년간 쏴댔으니 사격에선 내가 주목을 받았다. 현역들과 맥주 1박스 걸고 몇십 미터 앞의 세운 담배 한 개비 맞추기 등에서 이겼다. 그런데 사격 후, 탄피를 줍지 않으니 마무리를 안 한 거 같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마지막 날엔 다들 모여 훈련 소감 등을 적어내고, 교관들과 훈련과 군대 등에 관해 토론도 했다. 소시지, 고기 바비큐에 맥주로 예비군훈련완수의 기쁨을 나눴다. 현역들은 지원자들에게 내년에 또 와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하라며 적극적으로 홍보와 병력확보에 열을 올린다. 다들 나보고 군대 체질이라며 기회가 되면 이번엔 오스트레일리아군에 입대하란다. 오스트레일리아 방위군 소속인 예비군Army Reserve은 총 17,000여 명의 정규예비군과 12,000여 명의 예비병력이 각 주에 걸쳐 6개 여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엔 동양인은 나 하나였으나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 예비군복을 입은 다양한 인종을 볼 수 있다.

누군가 물어보기에 내 군대생활 이야기를 해주자 현역이나 예비군이나 다들 재미있게 듣는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88서울올림픽과 상관없이 단지 서울, 한국, 북한, 5.18 광주 학살, 한국전쟁 등만 아는 정도다. 나는 솔직히 예비군훈련을 즐겼다. 군복 입고 군용천막에서 생활했지만, 그 당시 느낌은 날씨 좋은 날 공기 맑은 들판으로 학창시절 보이스카우트 행사나 소풍 등과 겹쳐진다. 그러나 나무와 풀, 흙 냄새를 맡으니 잠시 잊혔던 내 군대 이런저런 소소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훈련장 야전식당엔 식수와 주스 등이 준비돼 있는데, 햇빛을 받아 미지근하다. 누군가가 주스가 미지근하다고 불평하자, 교관이 소리친다. “여긴 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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