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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박근혜는 꾀병을 멈추고 당당하게 나서라

논평] 박근혜는 꾀병을 멈추고 당당하게 나서라

– 꾀병 부릴 만큼 상황 한가하지 않아

– 국가 원수가 얄팍한 꾀병 부리는 광경은 참담

Wycliff Luk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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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지도자의 건강 상태는 일급비밀이다. 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같이 국가의 기능이 고도화되고, 또 관료적 위계질서가 확고한 한국 상황에서 국가 원수가 외국 순방 일정 동안 병을 얻어 국정 수행에 차질이 생겼다는 소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병명까지 구체적으로 밝히며 1~2일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정보를 언론을 통해 흘렸다. 친정부를 넘어 아예 사실상의 정부 기관지 노릇을 하고 있는 대다수 언론들은 이를 아무 논평 없이 속보로 띄웟다.

옐친 집권기 러시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마피아가 창궐하면서 사회는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경제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부도지경까지 갔다. 이 시기 한국의 나이트클럽엔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 러시아 여성들이 반라의 의상을 입고 춤추는 광경이 흔하게 목격됐다. 경제난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옐친은 보드카에 취해 비틀거렸다. 집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즐겼다면 모르겠다. 그는 미국 방문 중엔 보드카에 취해 거리를 배회했으며 독일에선 술에 취해 예정에도 없는 연설을 했다. 보드카에 취해 비틀거리는 옐친의 모습은 세계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고, 국제사회는 옐친을 주정뱅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지도자의 무능으로 인해 러시아 여성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성매매 산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루스벨트는 1921년 소아마비를 앓아 늘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그는 강력한 의지로 소아마비를 극복했고, 미 헌정 사상 초유의 4선 대통령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의 건강을 우려하는 시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종전이 임박한 시점에 뇌일혈로 서거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가정을 해 본다면 그가 승기를 잡기 위해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던 시점에 서거했다면 전쟁의 물줄기가 어디로 흘렀을지는 예측 불허였다.

윈스턴 처칠은 더하다. 그는 전쟁 수행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느껴 항우울제인 암페타민을 자주 복용했다. 그의 암페타민 복용은 주치의도 우려할만한 수준이었고, 이에 보좌진들은 늘 그의 건강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만에 하나 처칠이 암페타민 과다복용 부작용으로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전쟁정책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친다.

병가 낼 만큼 상황이 한가한가?

지금은 국가 원수가 한가하게 병가를 즐길 시기가 아니다. 먼저 이완구 국무총리의 낙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의혹에 과거 삼청교육대 전력까지 이완구는 인사청문회에서 이미 부적격 판정이 났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이완구 카드를 밀어붙였고, 이렇게 총리가 된 이완구는 사정의 칼날을 뽑았다가 ‘성완종 리스트’라는 스캔들을 불러왔다.

게다가 외교 상황도 급박하다. 박근혜가 남미 순방에 나선 사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일본 총리는 22일(수)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다. 과거사와 영토분쟁으로 긴장 관계에 놓인 양국 정상이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 자체만으로도 빅뉴스다.

그러나 더 큰 뉴스가 기다리고 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25일(토) <한겨레> 기고에서 이번 회의의 의의에 대해 “미국에 맞서 국제질서를 재편해보겠다는 중국에다, 아시아의 최대 투자국인 일본에다, 올해 말 경제통합을 앞둔 아세안 10개국이 뒤섞여 서로 이문을 따지는 양자회담과 다자회담을 벌이는 현장”이라고 적었다. 풀이하자면, 중국과 일본은 이 자리에서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면서 물밑에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 순간 K팝 동호회 회원과 만나 사진 찍고, 패션쇼에 참석하는 등 정상외교라고 하기에도 낯 뜨거운 행사에 참석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가 병을 얻어 국정 수행을 못하는 지경이라니,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박근혜의 이번 남미 순방은 처음부터 끝까지 얄팍한 속내가 보인다. 세월호 1주기와 성완종 리스트로 국내가 어수선한 시기 도망치듯 빠져 나가더니 순방 기간 동안 총리가 사임해 입장표명이 불가피한 처지가 됐다. 더구나 같은 시기 굵직한 국제회의가 있었기에 외유성 순방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감수해야 할 신세다.

그런데 돌아와서 1~2일 동안 쉬어야 한다니, 그 시기가 묘하게 29일 재보선과 겹친다. 만약 새누리당이 재보선에서 승리하면, 예의 그 환한 미소로 국민들 앞에서 건재를 과시할 것인가? 역으로 새누리가 패배하면, 병가를 빌미로 또 다시 외국 순방에 나설 심산인가?

국가원수에 자리에 앉았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은 응당 짊어져야 한다. 그 일이 싫다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꾀병이나 부리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고, 꾀병을 순순히 용납해줄 만큼 국내외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 앞에서 꾀병을 핑계로 산적한 현안을 피해가려는 얄팍한 처세를 멈춰주기 바란다. 국민 앞에서 창피하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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