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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세월호 1주기 맞아 우울한 한국 현실 대대적 보도

<르몽드>, 세월호 1주기 맞아 우울한 한국 현실 대대적 보도
– 1년 전부터 광화문 지키는 피해자 가족들 인터뷰
– 여전히 모호한 사고 상황 … 그리고 무성한 소문
– ‘사라진’ 7시간 논란 대통령이 흘린 눈물은 거짓
– 돈 밝히는 가족 매도하는 집단 … 둘로 나뉜 사회

프랑스 최대 일간지 <르몽드>가 세월호 침몰 1주기를 앞두고 사고 이후 지난 1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상황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 도쿄 특파원인 필립 메스메르 기자가 서울을 직접 방문해 작성된 이 기사는 지난 12일 인터넷판과 14일 자 지면에 실렸다. ‘사설과 분석’ 섹션면의 톱기사로 올라 삽화와 함께 상당히 많은 양이 할애됐다.

‘세월호 침몰에서 잊혀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1년째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 천막을 지키고 있는 가족들을 묘사하는 장면으로 운을 뗀다. 기사에 따르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침몰 당시의 상황이 모호하게 남아있다. 사고 직후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족들의 혼란이 가중됐다. 언론에서는 수많은 구조 인원이 투입됐다고 했지만 가족들이 직접 확인한 현장에서는 아무런 구조활동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더욱 절망한 이유는 “배려”와 “연민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어보이는 정부의 태도”에 있다. 느닷없는 정부의 배상금 관련 발표에 가족들은 삭발로 대응했다. 기사는 가족들은 돈이 아니라 “사고의 진실 규명과 선박의 인양을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런 정부의 태도들이 사고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참사를 잊게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비친다”고 덧붙였다.

정부를 향한 가족들의 비난의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사고 현장에 찾아와 보인 눈물을 “거짓으로 받아들”이고, “진상 규명을 하겠다던 약속은 공수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고 당일 ‘사라진’ 7시간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면서 대통령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됐고, 전 비서관을 만났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하게 됐다.

기사는 또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정치적 대립의 양상을 띄게 된 점을 눈여겨봤다. 가족들은 단식 투쟁을 벌였고, 극우단체들은 그들 앞에서 반대 시위로 맞불을 놓았다. 배상금 관련 발표가 이어지자 가족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특히 여당의 국회의원이라는 자까지 나서서 가족들에게 향해 “공금 도둑”이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기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1주기 행사를 어떤 방식으로 치러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이 비극이 잊혀지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가족들은 1주기 추모식이 다시 한 번 한국 사회를 둘로 갈라놓는 이미지를 남기는 건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르몽드> 기사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 Sang-Phil Jeong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DXQwMp

Les oubliés du naufrage du « Sewol »

세월호 침몰에서 잊혀진 사람들

Par Philippe Mesmer (Séoul, envoyé spécial)

필립 메스메르(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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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tentes blanches se dressent toujours à Gwanghwamun. Depuis près d’un an, elles résistent à la chaleur de l’été, aux rigueurs de l’hiver et aux attaques des mouvements nationalistes. Elles s’accrochent aux pavés du cœur de Séoul, sous l’œil figé dans une éternité martiale de la statue de l’amiral Li Sun-sin (1545-1598). Lui est un héros national pour ses victoires navales contre les Japonais.

그 흰색 천막들은 여전히 광화문을 지키고 있었다. 거의 1년 전부터 한여름의 불볕더위와 겨울의 매서운 추위,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견뎌내고 있다. 천막은 서울 심장부의 한 광장에, 불멸의 군인 이순신(1545-1598) 장군의 동상이 표현하고 있는 굳은 시선 아래 위치하고 있다. 그는 일본을 상대로 해전의 승리를 이끌어낸 국민적 영웅이다.

Les tentes, elles, entretiennent le souvenir d’une tragédie maritime des temps modernes, celle du ferry Sewol, naufragé le 16 avril 2014 au large des côtes sud-ouest de la péninsule. Le drame a fait 295 morts et 9 disparus, principalement des élèves de première du lycée Danwon d’Ansan, ville modeste et industrielle à une heure de train de la capitale sud-coréenne.

천막은 2014년 4월 16일 한반도 남서쪽 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슬픈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극은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를 낳았다. 피해자의 다수는 수도 서울에서 열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업도시 안산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

Dans le camp flottent une multitude de rubans jaunes. D’une couleur choisie pour son évocation du deuil, ils symbolisent une tragédie qui a profondément marqué et continue de diviser la Corée du Sud. Les blessures restent vives à l’approche du premier anniversaire du drame, promesse d’un moment de recueillement comme d’une pause de la colère et des frustrations qui rongent les proches des victimes. « Je suis tellement désespéré, témoigne Cho Nam-song, qui a perdu son fils dans le drame et passe la plupart du temps à Gwanghwamun, que je n’ai parfois plus envie de vivre. »

천막 사이사이로 수많은 노란 리본들이 넘실거린다. 국민적 슬픔을 애도하기 위해 선택된 색은 노랑이었다. 노란 리본은 한국 사회를 둘로 나누어 놓은, 깊이 새겨진 비극을 상징한다. 희생자 가족들을 괴롭히던 분노와 상심을 잠시 접어둔 채 묵념의 순간을 맞이해야 할 참사의 1주기가 다가오지만 상처는 여전히 예리하게 남아있다. 이 사고로 아들을 잃고 대부분의 시간을 광화문에서 보내고 있는 조남송씨는 “너무 절망스러워 때때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Oh Young-suk, ouvrier du textile venu de la province de Jeolla du Sud, une région pauvre du sud-ouest du pays, pour trouver du travail à Ansan, a également déserté sa maison pour le camp de Séoul, où il se bat « pour que le public reste informé ». « Je me souviendrai toujours de cette journée, souffle-t-il. J’ai pris le petit déjeuner avec mon fils, ce que je ne faisais jamais. Je lui ai souhaité “bon voyage” avant d’aller travailler. » Ce voyage était important pour les lycéens d’une génération, celle de 1997, qui n’a pu faire ceux prévus en primaire et au collège. « En 2003, il y a eu l’épidémie de SRAS et en 2008, la crise, rappelle M. Oh. Ce voyage, c’était leur dernière occasion avant l’université. »

한국의 남서쪽에 위치한 전라남도의 빈촌 출신으로 방직공장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안산에 정착한 오영석씨 역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집을 내팽개쳐 두고 광화문에 진을 쳤다. 그는 “지금도 그날이 기억난다. 평소와 다르게 나는 내 아들과 아침 식사를 했고 출근 전에 여행 잘 다녀오라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1997년생 고등학생들에게 이번 여행은 중요한 것이었다. 오씨는 “2003년에는 사스 파동이 있었고 2008년에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대학 가기 전 마지막 기회였다”고 덧붙였다.

Le drame est d’autant plus douloureux qu’il est perçu comme une trahison. Dans un pays où l’éducation est essentielle mais extrêmement onéreuse, les parents sacrifient beaucoup pour que leurs enfants intègrent les meilleures universités. « Depuis le drame, j’ai arrêté de travailler, avoue M. Oh. A quoi sert de continuer ? On ne sait même pas pourquoi nos enfants sont morts. »

이번 참사가 더 고통스러운 것은 일종의 배신행위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교육이 전부이고 매우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이 나라에서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최고의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많은 것을 희생한다. 오씨는 “참사 이후로 일을 그만두었다. 일은 계속해서 뭐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De fait, les circonstances du naufrage restent floues. Parti du port d’Incheon, à l’ouest de Séoul, le navire voguait vers l’île de Jeju (sud-ouest). Piloté à vive allure par un équipage inexpérimenté dans une zone maritime dangereuse, il aurait brusquement viré de bord, une manœuvre qui l’a fait chavirer. Des travaux destinés à augmenter le nombre de cabines auraient déséquilibré sa structure. Les véhicules et la cargaison embarqués auraient été mal arrimés. Et leur brusque déplacement aurait favorisé le chavirage. Il est apparu que l’équipage, réunissant des personnes en contrat précaire, n’avait suivi quasiment aucun exercice de sécurité.

실제로 침몰 당시의 상황은 여전히 모호하다. 배는 서울의 서쪽에 있는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를 향해 항해했다.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선원들이 키를 잡은 배는 상당한 속도로 위험한 지역을 통과했고, 갑자기 방향을 선회했다. 뒤이은 조작이 배를 전복시켰다. 배가 갑작스럽게 출렁이자 대충 고정된 차량과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전복되도록 도왔을 것이다.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던 선원들은 안전 교육을 거의 한 번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Révélées après le drame, ces informations se sont ajoutées au désarroi des familles face à l’incurie des secours. Amenés par bus sur l’île de Jindo (sud-ouest), la plus proche du lieu du naufrage, les proches des victimes avaient été surpris par l’absence de moyens mis en œuvre. « Les médias parlaient de 20 hélicoptères envoyés sur les lieux, se souvient Heo Heung-hwan, qui a perdu sa fille Da-youn dans le naufrage. Il n’y en avait aucun. »

참사 이후 쏟아지는 정보들이 구조대의 태만 속에 동요하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들은 버스로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섬 진도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사고에서 딸 다윤이를 잃은 허흥환씨는 “언론에서는 사고지점으로 20대의 헬기가 보내졌다고 했는데 단 한대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Les premiers corps récupérés ne l’ont pas été par des gardes-côtes ou des marins, mais par des plongeurs volontaires. Le centre national de gestion des crises basé à Séoul a dû s’en remettre à la télévision pour suivre les progrès des secours. L’armée n’a pu utiliser le Tongyeong, premier navire sud-coréen de sauvetage en mer, terminé en 2012, ayant coûté 159 milliards de wons (135 millions d’euros), au cœur d’importants scandales de corruption.

희생자 시신이 수습된 것은 민간 잠수사에 의해서였지 해경이나 해군의 의해서가 아니었다. 서울에 위치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구조 상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텔레비전을 참고했어야 했다. 해군은 1590억 원(1억 3500만 유로)을 들여 지난 2012년 건조한 한국 최초의 전문 구조함 통영함을 이용할 수 없었다. 통영함은 비리 스캔들의 한 가운데 있다.

Rumeurs

소문

Les différents services impliqués n’ont jamais su se coordonner pour délivrer des informations fiables ou répondre efficacement aux urgences de la situation. La chaîne MBC ayant annoncé dans un premier temps que tous les enfants étaient sauvés, certains se sont rassurés. « Je me suis dit : “Ils seront tout mouillés” », se souvient M. Oh. Les rumeurs se sont multipliées. « On nous a dit que les enfants avaient été envoyés sur d’autres îles, se souvient Lee Min-woo, le père d’une des victimes. J’ai téléphoné aux hôpitaux et on m’a dit : “Personne n’est arrivé.” »

여러 관련 기관들은 신빙성 있는 정보를 주거나 비상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어떠한 조화도 이루지 못했다. MBC는 사고 초반 모든 학생들이 살아있다고 보도해 일부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오씨는 “‘그럼 다 젖었겠네’라고 생각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소문은 확산됐다. 희생자 여학생의 아버지 이민우씨는 “누군가 우리에게 아이들이 다른 섬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나는 병원에 전화했는데 병원에서는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La douleur de perdre un proche ou un enfant a été exacerbée par l’attitude du pouvoir, qui a multiplié les maladresses et semble incapable de témoigner d’une compassion réelle pour les familles. Le 2 avril, 52 parents se sont rasé la tête pour protester contre le projet gouvernemental de dédommagement annoncé dans l’urgence quelques jours plus tôt, 420 millions de wons (357 000 euros) pour la perte d’un enfant et 780 millions de wons (663 000 euros) pour chaque professeur décédé.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피해자 가족을 위한 연민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어 보이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가족이나 아이를 잃은 고통은 더욱 고조됐다. 사망 학생 한 명 당 4억 2천만 원(35만 7000 유로), 사망 교사 한 명당 7억 8천만 원(66만 3000 유로)이라고 배상액을 발표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부모 52명은 지난 4월 2일 삭발을 감행했다.

Les parents ne veulent pas d’argent. Ils veulent une véritable enquête sur les causes du drame et le renflouement du navire. Un souhait que ne semble pas entendre le gouvernement, qui plaide depuis le 27 mars pour une révision de la loi dite « du Sewol », adoptée en novembre 2014 pour répondre aux attentes des familles et éviter toute répétition du drame. Le texte prévoyait une refonte de l’organisation de la sécurité publique sous l’autorité du premier ministre et un système de sanctions pour les personnes qui s’enrichiraient par des pratiques de gestion répréhensibles. Ce dernier point a été baptisé du nom de Yoo Byung-eun, dont la famille dirigeait Chonghaejin Marine, la compagnie propriétaire du bateau.

부모들은 돈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사고의 진실 규명과 선박의 인양을 원하고 있다. 그 바람이 정부에 울림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피해자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해 11월 채택된 ‘세월호 관련법’이 지난 3월 27일 정부의 시행령 입법예고 이후 상당 부분 수정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법안들은 국무총리 산하 공공안전 기관의 대대적인 개정과 부당하게 이득을 얻은 사람에 대한 처벌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사고 선박의 소유주인 청해진 해운 가족의 이름을 따 ‘유병언법’이라 명명됐다.

Cette société appartenait aux deux fils de Yoo Byung-eun, dont l’un est aujourd’hui en prison, Yoo Dae-kyun, et Yoo Hyuk-ki. Leur père fut aussi le gourou d’une puissante secte chrétienne, le Guwonpa, alors proche de nombreux dirigeants sud-coréens. Recherché par la police sud-coréenne, Yoo Byung-eun a été retrouvé mort en juin 2014 dans un verger à Suncheon, dans la province de Jeolla du Sud, à 300 km au sud de Séoul.

이 회사는 구속수감 중인 유대균과 유혁기 등 유병언의 두 아들 명의로 돼 있다. 아버지 유병언은 기독교 신흥 종파 중 하나인 구원파의 지도자여서 한국의 권력자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경찰에 쫓기던 유병언은 2014년 6월 서울에서 300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전라남도 순천의 한 농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La loi, votée quelques jours avant la condamnation à trente-six ans de prison du capitaine du Sewol, Lee Jeong-sok, prévoyait également la mise en place d’une commission d’enquête et d’un procureur spécial chargés de déterminer les responsabilités du drame. Or le gouvernement pourrait limiter les pouvoirs d’enquête de la commission et les moyens dont elle dispose. La moitié de ses membres devraient être des fonctionnaires.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에 대한 징역 36년형 선고가 이뤄지기 며칠 전에 통과한 법안은 참사의 책임을 밝힐 수 있는 특별 검사와 조사위원회의 설립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는 조사위원회의 권한과 재정을 제한할 수 있게 됐다. 위원회의 절반이 공무원으로 이뤄지게 됐다.

Pour les familles, une telle attitude montre que tout est fait pour oublier le drame et ne pas en tirer les leçons. La présidente Park Geun-hye est particulièrement critiquée. Ses larmes lors de sa première intervention au moment du drame sont aujourd’hui considérées par beaucoup comme fausses et, pour les familles, ses engagements à faire toute la lumière sur le drame n’ont pas été honorés.

가족들에게는 이런 정부의 태도들이 사고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참사를 잊게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비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비판을 받고 있다. 사고 수습을 위한 첫 방문에서 보여준 그녀의 눈물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거짓으로 받아들인다. 진상 규명을 하겠다던 그녀의 약속은 공수표가 돼버렸다.

L’image de la dirigeante a également été ternie par la polémique qui s’est développée autour de son emploi du temps le 16 avril. Elle avait « disparu » pendant sept heures. Où était-elle ? A la Maison Bleue, la présidence sud-coréenne, mais injoignable, affirme son entourage sans convaincre. Beaucoup de rumeurs ont circulé, évoquant même une rencontre avec un ex-conseiller.

4월 16일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면서 정부 총책임자의 이미지는 손상되고 말았다. 그녀는 7시간 동안 ‘사라졌었다’. 어디에 있었을까 ? 한국의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에 있었지만 연락은 닿지 않았다, 고 측근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설득력은 없다. 이전 비서관과의 만남까지 들먹거리는 수많은 소문들이 유포됐다.

Un affrontement politique

정치적 대립

Dans le même temps, les débats amorcés juste après le drame sur le rapide développement de la Corée, réalisé à marche forcée, au rythme du « pali-pali » (« plus vite, plus vite »), au détriment de la sécurité, semblent oubliés. « La collusion entre les chaebols [conglomérats] et les bureaucrates reste un problème structurel de la Corée du Sud, qui a contribué à la tragédie du Sewol », juge Kim Cheol, de l’institut de Séoul sur les politiques publiques.

동시에 참사 이후 안전을 희생시킨 채 “빨리 빨리”의 리듬으로 강행군을 거듭한 결과 이뤄낸 한국의 고속 성장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으나 이내 잊혀진 듯하다. 사회공공연구원 김철 연구실장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남아 있는 재벌과 고위 관료들의 결탁이 세월호 참사를 빚어냈다”고 말했다.

« Aujourd’hui, nous avons Samsung, ajoute le maire de Séoul, Park Won-soon, proche de l’opposition et soutien des familles de victimes. C’est bien, mais le drame du Sewol montre que nous avons omis certaines valeurs. Nous avons oublié les gens au profit de l’argent. »

피해자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는 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늘날 우리에겐 삼성이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가 어떤 가치들을 간과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돈을 우선하느라 사람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De quoi alimenter l’amertume des familles de victimes. « Aujourd’hui, la Corée n’est pas faite pour le peuple, tempête Lee Min-woo. C’est le peuple qui est là pour le gouvernement. »

희생자 가족의 고통을 무엇으로 쓰다듬을 수 있을까. 이민우씨는 “한국은 더 이상 국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국민은 정부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라며 격노했다.

Les médias sont aussi fortement critiqués depuis le drame. Dans le reportage sur la visite dans l’île de Jindo de la présidente Park le 17 avril, la chaîne publique KBS aurait effacé les manifestations de colère des familles. Son directeur de l’information, Kim Si-gon, a également suscité une vive colère en affirmant que « 300 morts n’étaient pas tant que ça en comparaison du nombre de victimes des accidents de la route ». Ce même Kim Si-gon a dû ensuite démissionner, vraisemblablement sous pression de la Maison Bleue, car il refusait de céder aux exigences présidentielles qui souhaitaient limiter les critiques émises contre les gardes-côtes et les secours. « Cette tragédie illustre les problèmes de la société coréenne, juge Heo Heung-hwan, ses dysfonctionnements, son injustice et sa corruption. »

언론 역시 참사 이후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됐다. 4월 17일 박 대통령이 진도에 방문했을 때, 공영방송 KBS는 리포트에서 가족들이 보인 분노의 표현들을 삭제해버렸다. 또 당시 김시곤 보도국장은 “사망 300명은 도로에서 벌어지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비하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 공분을 일으켰다. 김시곤 국장은 아마도 청와대의 압력에 의해 직위를 떠나야 했다. 왜냐하면 해경과 구조대에 대한 비판을 삼가달라는 청와대의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허흥환씨는 “이번 비극은 기능 장애, 불의, 부패 등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Dans ce contexte, l’opposition entre les familles, souvent issues de milieux modestes, et le gouvernement a pris l’allure d’un affrontement politique. Des grèves de la faim ont été organisées. Lors de sa visite en Corée du Sud, en août, le pape François a multiplié les gestes en faveur des familles, suscitant un certain embarras de la présidence.

이런 맥락에서 주로 평범한 배경을 가진 가족들과 정부의 대립은 빠르게 정치적인 모습을 띠었다. 단식 투쟁이 이어졌다.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피해자 가족들을 배려한 여러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는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Les organisations ultraconservatrices, qui seraient financées par le NIS, les services secrets proches du pouvoir, manifestent régulièrement contre la présence du camp de Gwanghwamun. L’annonce des dédommagements a été critiquée par ces groupuscules et des élus du parti Saenuri, la formation de la présidente Park Geun-hye, qui ont accusé les proches de victimes d’être des « voleurs de l’argent public ».

권력에 가까운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재정 지원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 극우단체들은 세월호 천막이 있는 광화문에서 주기적으로 시위를 한다. 피해자에 대한 배상 기준이 발표되자 극우 집단과 박근혜 대통령이 속해 있는 새누리당의 의원들은 가족들을 향해 “공금 도둑”이라고 비난했다.

Si bien que, à l’approche du premier anniversaire du drame, le malaise reste vif. « Le gouvernement a tout fait pour donner une image des familles comme uniquement intéressées par l’argent, déplorait, le 3 avril, dans un éditorial le quotidien de centre gauche Kyunghyang, afin d’occulter la vraie nature de l’accident et détourner l’attention de l’opinion. » Il fait également tout pour que le drame soit oublié.

사고 1주기가 다가오면서 불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중도좌파 언론인 <경향신문>은 지난 4월 3일 자 사설에서 “정부는 사고의 진실을 은폐하고 여론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가족들이 오직 돈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로 비치도록 무슨 일이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 비극이 잊혀지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Dans ce contexte, les familles ont prévu des cérémonies à Gwanghwamun, à Ansan et dans la baie de Paegmok, sur l’île de Jindo, loin des autorités sud-coréennes, qui, à quelques jours du 16 avril, hésitaient encore sur la forme de leur hommage, au risque de renvoyer l’image d’une société divisée jusque dans les tragédies qui touchent ses enfants.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은 광화문과 안산 그리고 권력에서 멀리 떨어진 진도 팽목항에서 1주기 추모식을 준비 중이다. 가족들은 4월 16일을 며칠 앞두고 어떤 방식으로 행사를 치러야 할지 망설였다. 아이들을 희생시킨 이 비극에서까지 둘로 나뉘어 버린 사회의 이미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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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omments

  1. 1. 뉴시스
    “세월호 유가족, 배신감에 고통 심화” 르몽드 세월호 1주기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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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 뉴스줌
    “세월호 유가족, 배신감에 고통 심화” 르몽드 세월호 1주기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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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3.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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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4. 미디어 다음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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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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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6. 비주얼다이브
    “상처는 여전히 예리하게 남아 있다”… 佛 르몽드, 세월호 1주기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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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7. 플러스 코리아
    , 세월호 1주기 맞아 우울한 한국 현실 대대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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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8. 수원 시민 신문
    , 세월호 1주기 맞아 우울한 한국 현실 대대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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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9.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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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0. 순천구례곡성담양인터넷 뉴스
    르몽드, 세월호 1주기 맞아 우울한 한국 현실 대대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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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11. 진실의 길
    세월호 1주기 맞아 우울한 한국 현실 대대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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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12. 보스턴 중앙일보
    “세월호 유가족, 배신감에 고통 심화” 르몽드 세월호 1주기 특집 다뤄
    http://bit.ly/1b0tXdj

  13. 13. 충청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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