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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영화사의 맥락에서 본 ‘오징어게임’과 그 이후

한국 현대 영화사의 맥락에서 본 ‘오징어게임’과 그 이후

– 군부와 민주화항쟁 겪은 감독세대들의 시대정신 계승
– 민주주의 이면의 계급 불평등의 진실 그려
– 오징어게임은 박찬욱 감독 ‘옥자’ 성공이 발판
– ‘넷플릭스 히트’ 창작자의 새로운 고민 돼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1월 8일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한국 영화 제작자들은 약자들의 힘이 되어주었다‘ (Long before ‘Squid Game,’ South Korea filmmakers elevated the underdog)라는 기사를 통해 ‘오징어게임’이 한국에서 탄생하고 세계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한국의 독특한 현대사와 그 분위기를 헤쳐온 감독들의 창작정신을 조명했다.

기사는 ‘오징어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7년 여름부터 거슬러 올라가야한다고 말한다. 당시 대규모 민주화 항쟁 여파 속에서 한국의 신생 감독들은 26년 동안의 군부 통치 하에서 창의성을 억압해 온 검열제도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그 정신은 민주주의의 이면에 도사린 불평등과 약자에 대한 억압 등이 스토리가 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어,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 항쟁은 1990년대 전반에 걸쳐 그 시기에 떠오른 감독들의 길이 되어주었다고 말하고, 당시 영화 감독들이 탐구한 주제는 계급적 충돌이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부산행, 킹덤 등도 그런 주제가 반영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기사는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진달용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 영화감독 세대가 오늘날 한국영화의 선구자라라 칭하면서, 이들이 다룬 사람들의 투쟁이 오징어게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추세는 또 한국의 신진영화감독들에게 그들이 몸담은 영화산업에 뿌리내린 불평등과 권력 남용의 주제가 결국 지구촌 전 세계인들의 공통 관심사라는 확신을 주었다고 언급한다.

기사는 또, 수십 년 전 한국의 군사 정권은 전면적 검열로 소재를 제한해 반공 선전, 가족 중심, 집단적 국가 정체성이라는 협소한 소재만을 다룰 수 있었다고 언급하며 1980년대에 와서 시민들은 군부와 맞서 결국 1987년 대규모 집회로 전환점을 맞이했으며 이후 1990년대 중반 검열이 폐지된 이후 10여년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면서 창의성이 꽃핀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노동운동과 남북한 문제, 젠더 문제 및 계급 간 분열 등 군부통치 하에서 금지됐던 주제들을 탐구했으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은 경제 불균형과 파산, 가난을 다루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국 및 동아시아 영화전문가인 홍콩 대학교 매그난 박 교수는 과거에 금기시되었던 것이 문제되지 않게 되었다면서, 한국영화감독들은 항상 사회의 도덕적 신념을 제시하려고 노력해 왔다며 권력 남용을 고발하고 약자들을 양지로 이끌어냈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민주화 저항 시위로 폭력을 겪은 주인공의 트라우마와 그의 사회적 실패를 그린 박하사탕을 제작한 이창동 감독은, 개인은 역사와 사회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간혹 개인은 역사의 희생양이 되고, 그러한 일이 벌어질 때 그의 삶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면서 내 영화를 통해 젊은 세대가 사회의 숨겨진 진실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이후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등 군부통치 하에서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남북한 관계를 그린 영화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고 전한다.

기사는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진교수의 말을 인용해, 2000년 들어 제작비의 상승과 민간 투자 감소로 더 많은 제작자들이 금융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에 기대기 시작했지만 2008년부터 2017년 사이 두 보수측 대통령의 집권 동안 정부는 비판적이거나 진보적 성향의 제작자들을 엄중 단속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참모들이 수천명의 감독을 포함한 기타 사람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한 제약들로 인해 넷플릭스는 한국 감독들에게 점점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으며 그로써 당시 공장형 기업을 비판한 옥자가 성공하자 많은 감독들이 넷플릭스에 몰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특히 진교수는 ‘오징어게임이 옥자에서 시작된 흐름의 결과물‘ 이라고 밝히면서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이라는 문제들이 점점 더 세계화되어가고 있어 이들의 작품이 어느 때보다 더 공감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이정민 선임연구원은 이것이 한국의 스토리텔링 여정이며, 우연히도 이 이야기들이 전세계 시청자들의 반응을 촉발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사는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이 하나의 압박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오징어게임이 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수익성과 새로운 창의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고 우려한다.

한국예술종합대학에 재학 중인, 최근 독립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한 학생은 ‘지금 우리가 갈등하고 있는 것은 내 영화가 충분히 넷플릭스식인가? 라는 것이다’ 라는 말로 그 고민을 대변하고 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전문이다.

감수: 임옥

번역: 이소민/주대환

기사 바로가기: https://wapo.st/3Fo8nxq

Long before ‘Squid Game,’ South Korea filmmakers elevated the underdog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한참 전 부터 한국 영화 제작자들은 약자들의 힘이 되어주었다

Director Hwang Dong-hyuk, center, with actor Lee Jung-jae, right, during a scene of South Korea’s “Squid Game.” (Netflix/AFP)

드라마 “오징어 게임” 촬영장에서 가운데 황동혁 감독과 우측의 배우 이정재

By Michelle Ye Hee Lee

November 8, 2021 at 5:00 a.m. EST

TOKYO — To fully understand South Korea’s megahit “Squid Game,” a good place to start is summer 1987.

도쿄 –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한국 작품 “오징어 게임”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은 1987년 여름이다.

In the aftermath of mass pro-democracy protests, a group of fledgling filmmakers in Seoul published a manifesto denouncing censorship under 26 years of military-directed rule that had muzzled their creativity.

대규모 민주화 항쟁의 여파 속에서, 한국의 신생 영화 제작자들은 26년 동안 군부의 통치 하에서 자신들의 창의성을 억압해온 검열제도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Making movies in this country is like walking naked through a thorn bush,” they wrote in 1987. “We can no longer tolerate social contempt, economic poverty and political alienation. We must not wait for anyone to speak on our behalf.”

그들은 1987년 성명문에서 “이 나라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마치 발가벗고 가시덤불 속을 걷는 것과 같다”라며 “우리는 더 이상 사회적인 경멸, 경제적인 빈곤과 정치적인 소외를 참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대변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라고 썼다

The sentiment still informs the work of many South Korean filmmakers who find rich veins in the internal tensions of democracy, the limbo of the perennial underdog and the struggles of those left behind in a nation made rich by global commerce and giant corporations.

그 정서는 민주주의의 내부적 갈등, 영원한 약자의 불안정한 상태 및 국제 교역과 대기업에 의해 부를 일군 나라에서 낙오된 자들의 몸부림 등에서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찾아낸 한국의 많은 영화 제작자들의 작품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Those protests in the late 1980s paved the way for a generation of directors emerging during South Korea’s liberalization through the 1990s. The themes they explored then are reflected in some recent global hits: Academy-Award winning “Parasite,” about class warfare between the poor and the privileged; “Train to Busan,” in which characters fight for survival during a zombie apocalypse caused by a dishonest biochemical company; and “Kingdom,” a series about the corruption of the rulers of a fictional realm facing a plague that turns people into zombies.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 항쟁은 1990년대 전반에 걸친 한국의 자유화 시기에 부상한 영화감독 세대를 위해 길을 개척해주었다. 당시 영화 감독들이 탐구했던 주제는 빈곤층과 특권층 사이의 계급적 충돌을 다룬 아카데미 수상작 “기생충”, 부정직한 생명공학 기업으로 야기된 좀비 대란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부산행” 그리고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역병에 직면한 가상의 왕국에서 지배계층의 부패를 다루는 “킹덤” 등 최근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몇몇 작품에도 반영되었다.

“They were the harbingers of today’s Korean cinema,” said Dal Yong Jin, South Korean film expert at Simon Fraser University in Canada, referring to the influential generation of directors that rose to fame in the 1990s. “Back then, they focused on people’s struggles. … Now, [shows like] ‘Kingdom’ and ‘Squid Game’ portray similar issues.”

한국 영화 전문가인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의 진달용 교수는 1990년대에 유명해진 영향력있는 영화감독 세대에 대해, “오늘날 한국 영화의 선구자”라고 칭하며 “당시에 그들은 사람들의 투쟁에 초점을 두었다. …요즘 ‘킹덤’과 ‘오징어 게임’[같은 작품들]도 비슷한 주제를 그린다”라고 말했다.

The trend has given confidence to emerging Korean filmmakers that there is global interest in the themes of inequality and abuse of power that have deep roots in their industry.

그러한 추세는 한국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신인 영화 감독들에게, 그들이 몸 담고 있는 영화 산업에 뿌리내린 불평등과 권력 남용의 주제가 결국 지구촌 전 세계인들의 공통 관심사라는 확신을 주었다

Store names and character names hold truth and deeper meaning in Netflix’s “Squid Game.” (Allie Caren, Michelle Lee/The Washington Post)

넷플리스의 “오징어 게임”에서 가게 이름과 등장인물의 이름은 진실을 반영하며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The success of ‘Squid Game’ made me realize once again that there are plenty of interesting and meaningful inspirations in our realities,” said Chan Song, an 18-year-old incoming filmmaking student at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in Seoul, “and that the problems and concerns we are grappling with daily in South Korea could resonate around the world.”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제작과의 신입생인 18세의 찬송 학생은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우리의 현실에 흥미롭고 의미 있는 영감이 많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해주었다”라며 “한국에서 우리가 매일 씨름하고 있는 문제점과 우려는 전 세계에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Hidden truths’

‘숨겨진 진실’

Under sweeping censorship laws imposed by the South Korean military decades ago, filmmakers were limited to just a handful of topics, such as anti-communist propaganda, and positive representations of family life and collective national identity.

수십년 전 한국의 군사 정권에 의해 만들어졌던 전면적 검열법에 의해 영화 제작자들은 반공 선전, 가족 생활의 긍정적 묘사, 집단적 국가 정체성과 같은 협소한 소재로 제약을 받았다.

In the 1980s, students, civic groups and labor unions pressured the government into full democratization, staging demonstrations and enduring amid harsh crackdowns in which some protesters were killed. The nationwide rallies in summer 1987, sparked by the authoritarian leader Chun Doo-hwan’s handpicking of his successor, were a turning point.

1980년대 학생들, 시민 단체와 노동조합은 일부 시위자들의 목숨을 잃게 만든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시위를 벌이고 견디며 전면적인 민주화로 이행하도록 정부를 압박했다. 독재자인 전두환이 자신의 후계자를 직접 지명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1987년 여름 전국적인 규모의 집회가 전환점이 되었다.

The decade that followed brought rapid change and a burst of unshackled creativity after censorship laws were lifted in the mid-1990s. These trailblazers included Bong Joon-ho, the director of “Parasite” and “Okja,” a 2017 film about corporate greed that follows the story of a girl who tries to rescue her pig from the U.S. meat industry.

1990년대 중반 검열법이 폐지된 이후 10년 동안 급격한 변화가 있었고, 속박에서 벗어난 창의성이 활짝 피어났다. 이들 선구자들 중에는 “기생충”과 미국의 육류 산업으로부터 자신의 돼지를 구하려고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는, 기업의 탐욕을 다룬 2017년 영화 “옥자”의 감독 봉준호도 포함된다.

Bong Joon-ho, left, and Han Jin-won accept the Oscar for original screenplay for “Parasite” during the 92nd Annual Academy Awards at the Dolby Theatre in Hollywood on Feb. 09, 2020. (Kevin Winter/Getty Images)

2020년 2월 9일 봉준호(왼쪽)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헐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개최된 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에서 “기생충”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하고 있다.

They explored topics that had been banned under military rule, including the labor movement, separation of the two Koreas, gender issues and class divisions. When the Asian financial crisis hit in 1997, they tackled economic inequality, bankruptcy and poverty.

그들은 노동운동, 남북한 분단, 젠더 문제 및 계급간 분열 등 군부통치 하에서는 금지되었던 주제들을 탐구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몰아쳤을 때 그들은 경제 불균형, 파산과 가난을 다루었다.

“What was formerly forbidden were now fair game,” said Aaron Han Joon Magnan- Park, a Korea and East Asia film expert at the University of Hong Kong.

한국과 동아시아 영화 전문가인 홍콩대학교의 아론 한준 매그난-박은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것이 이제는 해도 문제되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South Korean cinema had always had an activist bent, but these directors pushed the boundaries of their newfound artistic freedom, Magnan-Park said.

매그난-박은 한국 영화는 늘 활동가적 성향이 있었지만 이들 감독들은 새롭게 찾은 예술적 자유의 경계를 뛰어 넘었다고 말했다.

“South Korean filmmakers always remained committed to being the moral conscious of their society,” he said. “They chose to draw attention to those who abused their positions of power … and make visible those who society wanted to relegate into the invisible.”

그는 “한국의 영화 제작자들은 항상 사회의 도덕적 신념으로 남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게 하고 …사회가 음지로 내몰았던 약자들을 양지로 이끌어 내곤 했다”고 덧붙였다.

Park Kwang-soo’s “A Beautiful Youth Jeon Tae-il” in 1995 portrayed the labor movement through the real-life story of Jeon Tae-il, a sewing worker who set himself on fire in 1970 to protest poor working conditions under the military regime.

1995년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군부정권 하에서 빈약한 노동 조건에 저항하며 1970년 스스로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살랐던 봉제공 전태일의 실제 삶을 통해 노동운동을 묘사했다.

In Lee Chang-dong’s “Peppermint Candy” in 2000, the protagonist died by suicide after suffering being traumatized by the violence of the pro-democracy protests in the 1980s and losing his job in the 1997 financial crisis.

2000년 이창동의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은 1980년대 민주화 저항 시위의 폭력으로 트라우마를 겪으며 1997년 금융위기 때 실직한 후 자살했다.

“An individual cannot be freed from history or social reality. … In some cases, he becomes a victim of history, and when that happens, his life is not all that beautiful,” Lee said in a 2002 interview. “Through my movie, I hope the younger generation can gain a new perspective on society’s ‘hidden truths.’”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이창동 감독은 “개인은 역사와 사회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간혹 그는 역사의 희생양이 되고, 그러한 일이 벌어질 때 그의 삶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언급하며, “내 영화를 통해서 나는 젊은 세대가 사회의 ‘숨겨진 진실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Movies that portrayed North and South Korean relations in nuanced ways that were impossible under military rule became widely popular. They include Kang Je-kyu’s “Shiri” in 1999, which contrasted South Korean material excess and North Korean poverty, and Park Chan-wook’s “Joint Security Area” in 2000, which featured a friendship formed between South Korean and North Korean soldiers across the demilitarized zone.

군부 통치 하에서는 불가능했던 미묘한 방식으로 남북한 관계를 드러냈던 영화들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남한의 물질적 풍요와 북한의 빈곤을 대비시킨 1999년 강재규 감독의 “쉬리”와 비무장지대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꽃피운 우정을 그린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Netflix-esque enough?’

‘넷플릭스식이면 충분?’

With soaring production costs and dwindling sources of private funding to produce ambitious projects, more creators began turning to the government for financial support in the 2000s, said Jin, of Simon Fraser University.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진 교수는 제작비가 치솟고, 야심 찬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한 민간 자금 투자가 감소하면서 2000년대 들어 더 많은 제작자들이 금융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에 기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Bu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under two conservative presidents from 2008 to 2017 began cracking down on filmmakers who were deemed critical or progressive. During the 2017 impeachment trial of President Park Geun-hye, investigators found that her aides blacklisted thousands of directors and others who were critical of her leadership.

그러나 2008년부터 2017년 사이 두 명의 보수측 대통령의 집권 동안 정부는 비판적이거나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제작자들에 대해 엄중 단속하기 시작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에서 수사관들은 박근혜의 참모들이 박근혜 지도력에 비판적인 수천 명의 감독들과 기타 사람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사실을 밝혔다.

Such restrictions meant that Netflix became an increasingly attractive option for South Korean directors, who found a well-financed home on the platform, Jin said. When “Okja” made it big on Netflix, creators began flocking there.

진 교수는 그러한 제약들이 넷플릭스가 한국 감독들에게 점점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이들은 넷플릭스라는 자금이 넉넉한 플랫폼을 발견한 것이다. “옥자”가 넷플릭스에서 성공하자 제작자들이 넷플릭스에 몰리기 시작했다.

“‘Squid Game’ is the outcome” of the trend that began with “Okja,” Jin said.

진 교수는 “’오징어 게임’은 ’옥자’에서 시작된 추세의 결과물이다”라고 했다.

The shift to Netflix and other streaming sites comes at an opportune time for South Korean filmmakers, because the issues of inequality and economic anxieties are becoming increasingly global, making their work more relatable than ever.

넷플릭스와 기타 스트리밍 사이트로의 전환은 영화 제작자들에게 있어 시의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의 문제들이 점점 더 세계화되어가고 있어 이들의 작품들은 어느 때보다 더욱 공감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They’re asking questions about who we are as a nation, as a people,” said Chung Min Lee, a senior fellow at the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who has studied the evolution of South Korean soft power. “This is South Korea’s storytelling journey, and as it happens, they have triggered a global audience.”

한국의 문화경쟁력 발전 및 성장을 연구한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이정민 선임 연구원은 “그들은 국가로서 국민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 묻고 있다”고 말하며, “이것은 한국의 스토리텔링 여정이며, 우연히도, 이 이야기들이 전세계 시청자들의 반응을 촉발시켰다”라고 했다.

But the dependence on Netflix has created pressure on some aspiring filmmakers, who worry that “Squid Game” has set a new bar on how profitable and provocative their films should be.

그러나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은 몇몇 능력 있는 영화제작자들에게는 압박이 되었다. 그들은 “오징어 게임”이 자신들의 영화가 얼마나 수익성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도발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정해 놓은 점을 우려하고 있다.

Director Lee Chang-dong at the opening of the third Gangneun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South Korea on Oct. 22. (Yonhap/EPA-EFE/REX/Shutterstock)

10월 2일 제3회 강릉 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이창동 감독

Lim Si-yeon, a third-year student at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draws inspiration from the work of Lee Chang-dong, one of the auteurs from the late 1990s. She recently debuted an independent film, “The Killing of a Hamster,” about a girl who grows up in the shadow of her twin sister. Her favorite movie is Lee’s 2007 “Milyang,” about social pressures placed on a divorced single mother. It portrayed nuanced social commentary about marginalized women in Korea, she said, adding that she isn’t sure the work would necessarily be popular in the Netflix era.

한국예술종합대학 3학년 임시연 씨는 1990년대 말 당시부터 개성 있는 감독 중 하나로 꼽히는 이창동 감독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는다. 임시연 씨는 최근 “햄스터 죽이기”라는 제목의, 쌍둥이 언니의 그늘에서 성장하는 한 소녀에 관한 독립영화로 영화계에 들어섰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2007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다. “밀양”은 이혼해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 여성에게 지워지는 사회적 압박에 관한 영화다. 임시연 씨는 그 작품이 한국에서 소외된 여성에 대한 미묘한 사회적 해석을 그리고 있다며, 넷플릭스 시대에 그 작품이 인기가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Something we are struggling with now is, ‘Is my movie Netflix-esque enough?’” Lim, 22, said. “I want to be a director who whispers my message to my viewers, like the way ‘Milyang’ made an impact on me, by drawing out the deeply buried pains of the audience and helping them heal in a profound way.”

22살의 임시연 씨는 “지금 우리가 갈등하고 있는 것은 ‘내 영화가 충분히 넷플릭스식인가?’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나는 ‘밀양’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 방식대로, 나의 메시지를 내 영화의 관객들에게 속삭여주어 관객들의 깊이 내재된 상처들을 끄집어 내고 심오한 방식으로 그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감독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Grace Moon in Seoul contributed to this report.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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