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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모순: 일본의 수치 문화와 한국인의 역사의식

Two Contradictions: the Japanese Shame Culture and Koreans’ Sense of History

두 가지 모순: 일본의 수치 문화와 한국인의 역사의식

박영원(충남국립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Mark Ramseyer, 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 at Harvard Law School, has recently claimed in his paper that sex slaves in Imperial Japan, known as “comfort women,” were not forced but voluntarily employed. Whenever somebody makes this kind of claim, two questions always occupy my mind: First, what have we Koreans done with our history?; Second, what does the Japanese shame culture say about their crimes against humanity?

하버드 법대의 일본법률 연구자인 J. 마크 램지어 미쓰비시 기금 교수는 최근 자신의 논문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위안부”로 알려진 성 노예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고용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매번 누군가가 이런 주장을 할 때마다, 두 가지 질문이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해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둘째, 일본의 수치 문화는 그들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해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일본의 수치 문화는 그들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In the first place, Ramseyer’s antiacademic and ahistorical claim about “comfort women” is not different from the old argument made by the Japanese government over the years. Sadly enough, there is almost nothing we can do but denounce its publication or demand the withdrawal of the article. Then, we come to realize again that it is we who are to blame for not fighting back enough against falsification and abuse of history made by Japan. It is true that the fault is not entirely in Japan, but in ourselves partly because our lack of historical sense has made their denialism possible for about eighty years.

우선, “위안부”에 대한 램지어 교수의 반학문적, 반역사적 주장은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수년 동안 주장해온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이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논문을 비난하고 출판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그 동안 일본의 역사 조작과 왜곡에 강력히 대처하고 싸우지 못한 건 바로 우리 탓이라고 스스로 비난합니다. 잘못은 일본에만 전적으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사의식 부재는 해방 이후 거의 80년 동안 일본의 역사 부정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When freed from Japan in 1945, we tried, but completely failed in bringing pro-Japan traitors to justice because of the interference of the newborn government. As you know well, many European countries pursued, found, and executed a great number of Nazi collaborators during and after the war. But in Korea, most of those traitors were allowed not only to live, but also to serve for the country. It was due to low literacy and no trained workforce among the ordinary people at that time. These educated traitors sneakily covered their identities under the banner of anticommunism because anticommunism was much stronger than the anti-Japanese sentiment in the already divided peninsula between South and North. This paved the way for them to take leading positions in many fields of Korean society. Moreover, they could keep their illegal wealth built under the auspices of Japan. It is no wonder that they became the root of the far-right political group in South Korea. Some of them still support the Japanese rule and miss the military dictatorship of the 70s and 80s, even calling the latter the good old days.

1945년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우리는 친일 반역자들을 처단하려고 했지만, 초대 정부의 방해로 완전히 실패로 끝납니다. 그것은 여러 유럽 국가가 2차대전을 전후하여 엄청난 수의 나치 부역자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찾아내어 처형한 것과 다릅니다.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새로 수립된 정부에서 공직을 차지하기까지 합니다. 당시의 높은 문맹률과 훈련된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교육받은 친일 부역자들은 이미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반일 감정보다 반공산주의 정서가 더 강한 것을 틈타 그들의 친일 전력을 반공의 기치로 교묘하게 가린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많은 분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도록 길을 닦아줍니다. 더구나 그들은 일제의 후원으로 축적한 불의한 재물을 계속 소유할 수 있었지요. 그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극우 정치집단의 뿌리가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일본의 과거 식민통치를 지지하고, 70~80년대 반민주 군사 독재 통치를 좋았던 시절이라고 동경합니다.

As an example, how absurd it is to see a newspaper company, which used to praise Japanese imperialism, still thrive and prosper as a conservative media conglomerate! They have been making one half of South Koreans opinionated and biased by fake news and labeling woke people as red communists. They even side with Japan in sensitive matters like national security or the nation’s economy. Can you imagine that a pro-Nazi newspaper, if any, is tolerated and prosperous anywhere in Europe until now?

한 가지 예로, 일본의 제국주의를 찬양하던 신문사가 지금까지 보수 언론 재벌로 성장하여 번영하는 걸 본다는 것은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지요! 그들은 가짜뉴스로 절반의 한국인들을 편향된 의견으로 몰아넣었고, 깨어있는 시민을 빨갱이로 매도해왔습니다. 더구나 국가 안보나 경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선 일본 편에 서고 말입니다. 있지도 않겠지만, 친나치 신문사가 지금까지 유럽 어느 지역에서든지 용인되고 잘 나갈 수 있었을까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Secondly, whenever I encounter a blatant claim like Ramseyer’s and full support from Japanese society, a question arises as to what shame really means to the Japanese, an important element in their culture. According to Andy Crouch, in a shame culture you know you are good or bad by what your community says about you.* In Japan, people used to commit suicide in order to avoid shame, which is called ritual suicide, another Japanese culture in their tradition. Then, where is their sense of shame when they face strong accusations by the global community of their crimes against humanity during the war? Isn’t it contradictory?

두 번째로 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 같은 철면피한 주장과 이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일본 사회를 볼 때마다, 일본 문화에서 중요한 수치라는 개념이 일본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집니다. 앤디 크라우치에 따르면 수치 문화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선한 사람인지 혹은 악한 사람인지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또 일본에서는 수치를 당하느니 명예로운 자살을 선택하는 게 그들의 전통적인 문화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전쟁 중에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지구촌 커뮤니티의 비난 앞에서 그들의 수치감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것은 모순 아닌가요?

Another question is what the Japanese think about the suffering of the innocent people. Do they feel no shame, humiliation, or remorse for the victims at all? If they are really decent people as they claim, they must feel sorry for the suffering of the victims. It’s quite normal that children must be sad for the brutal crimes committed by their fathers. Unlike the German post-war generation, however, Japan has never formally apologized for terrible devastation brought to the people of Korea for thirty-six years. Rather, they revealed their shamelessness to the world by making all-out efforts to cover up the truth.

또 다른 질문은 무고한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일본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하여 수치스러움이나 불명예나 가책을 느끼지 않나요? 그들이 평소 주장하듯이 품위 있는 민족이라면, 그들은 희생자의 고통에 대해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전후 세대와 달리, 일본의 전범 후손들은 그들의 아버지 세대가 36년 동안 한국에서 저지른 끔찍한 죄악을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동원하여 수치를 모르는 파렴치함을 전 세계에 드러냈습니다.

또 다른 질문은 무고한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일본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하여 수치스러움이나 불명예나 가책을 느끼지 않나요?
그들이 평소 주장하듯이 품위 있는 민족이라면, 그들은 희생자의 고통에 대해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Ramseyer is known to have spent most of his childhood in Japan, attending Japanese schools from K to 6 and graduating from a college in Japan, not to mention his professorship at Harvard funded by Mitsubishi, a war profiteer company. It is ironic that his claim goes against the Japanese culture, as well as their sense of decency. I think this is a result of brainwashing of Japanese children about the “comfort women.” Ramseyer should know that his claim is in direct contradiction to what the Japanese believe and how they behave within their own society.

램지어 교수가 일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의 기금으로 마련한 하버드 법대 교수직에 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 대부분을 일본에 살면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년까지, 또 대학을 일본에서 다닌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주장은 일본인들이 가졌다는 품위와 수치 문화에 반합니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위안부”에 대하여 자녀들을 세뇌한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램지어 교수는 그의 주장이 일본인들이 믿는 것과 그들이 자국 내에서 처신하는 체면 문화와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I think now is the time for Japan to understand what shame really means, so their action makes global sense as a mature member of the G7 countries. It’s time to stop the abuse of history, so that their children live free from self-destructive shameful denial. Just learn from Germany: acknowledge, apologize, and make amends. Only then can we stop pointing fingers at each other, build a better world together without shame or pain, and be a good neighbor to each other in the future.

지금이야말로 일본은 수치의 개념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거지가 성숙한 G7 국가의 일원으로서 말이 되게 말입니다. 이제 그들은 자녀들이 자기 파괴적이고 부끄러운 역사 부정에서 벗어나 살 수 있도록 역사 왜곡을 중단할 때입니다. 독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인정하고, 사죄하고, 배상하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을 멈추고, 수치와 고통 없는 더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고, 미래에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What about our lack of sense of history and the old enemies of democracy in Korea? That is the biggest domestic challenge we have to overcome in the years to come. Suffice it to say that education, common sense, and a wise choice in the future election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역사의식 부재와 민주주의의 오래된 적폐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앞으로 수년 안에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국내 문제이고 도전입니다. 올바른 교육과 상식, 그리고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from “Andy Crouch: the Return of Shame,” Christian Today, March 10, 2015.

*Youngwon Park, a professor of English at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Daejeon, South Korea, educated at the U.S. institutions (MA from Wisconsin-Oshkosh; PhD from NYU; MDiv from Yale), and I authored a book, Milton and Isaiah: A Journey through the Drama of Salvation in Paradise Lost by Peter Lang, New York,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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