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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바이든의 선택

NYT,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바이든의 선택

– 대유행이 세계 민주주의 후퇴 시켜, 정체성에 혼란
– 다수로 선출된 신독재, 반민주주의가 민주주의 행세
– 바이든, 인도 터키 진정한 민주주의로 견인해야

이반 크라스테브는 5월12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 Biden Can’t Decide What Counts as a ‘Democracy’ (바이든은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라는 기고문에서 바이든은 궁지에 몰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려 한다고 말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여러 국가들의 민주주의 연합을 구상한다는 계획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앞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미국이 민주주의를 독점해 뭔가를 새롭게 정의하겠다는 계획은 포기하라고 말한다. 너무 제한적이고 미국을 위선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반은 스웨덴의 뷔 뎀 연구소의 ‘전 세계 2020년 민주주의 수준이 1990년 말 정도로 전락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인도, 터키의 예를 들어 새로운 독재의 탄생이 그 이유라고 밝혔다. 이 새로운 독재는 냉전시대의 군부정권과도 다르게, 민주주의와 독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이반은 말한다.

그는, 이와 같이 오늘날의 비민주국가는 상당수가 예전에는 민주국가였다면서, 이들이 비민주국가가 된 이유는 시민들의 민주주의가 자신들만을 위해 작동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독재적이고 인기 영합주의자들에게 투표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나라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면서, 인도는 현재 방역에 무참히 실패했지만 바로 직전 모디 국무총리의 신임도는 미국이나 유럽 국민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신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았고 말하고 있다.

또, 이러한 새로운 독재주의는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다수가 결정하는 진짜 민주주의인 양 행세한다고 말하고 신독재주의자들이 민주주의적 자격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미국인과 프랑스인의 대다수는 자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규정하기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반은 그 이유가 지난 일 년 동안의 봉쇄 정책 및 그에 관한 제한이 원인임을 제시하면서 사회가 공포와 불확실성으로 뒤덮인 상태에서 민주적 통치에 대한 인식에 혼란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유행과 싸우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구별이 흐려졌으며 각 국가의 정체가 대유행에 얼마나 잘 대응할지 또는 그 반대일지를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이나 뉴질랜드 같은 민주주의 국가 뿐만 아니라 중국 같은 독재 국가도 대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말하면서, 어떤 정권의 유형이 시민의 자유에 대해 어떤 제한을 가할지, 어떤 경제정책을 채택할 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언급한다. 그는, 정치철학자 데이비드 런치만의 말을 빌어 “봉쇄 조치 하에서 민주주의 국가는 다른 정치 체제와의 공통점을 보여주는데, 정치는 결국 권력과 질서” 라고 간단히 말한다.

또,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의 모호한 경계가 국제 정치 측면에서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면서, 바이든이 프리덤 하우스(루스벨트의 후원 하에 설립, 전 세계 민주주의 확산과 인권시장 및 국제 언론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영리 인권단체_편집자 주)나 뷔 뎀의 연구 결과를 따른다면 인도 같은 나라는 민주주의 동맹에 낄 수 없을 것이며, 바이든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충실하다면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인도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바이든 정부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제안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나 터키 같은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로 행세하는 것을 눈감아 주든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도 세계의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역할을 따로 맡든지 하라는 것이다. 이반은 후자를 택할 것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민주적 정부의 국제적 정당성은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언급하고 있다.(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의 기사 전문이다.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nyti.ms/3ycoTxQ

Biden Can’t Decide What Counts as a ‘Democracy’

바이든은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May 12, 2021

By Ivan Krastev

Mr. Krastev is a contributing Opinion writer who focuses on international politics.

이반 크라스테브는 국제 정치에 주안점을 둔 사설 기고가이다.

Democracy is on the ropes, and President Biden says he wants to fight back. He plans to call a summit of democracies and to mobilize a broad coalition of democratic governments to contain the rise of authoritarian powers like China and Russia. That appears eminently sensible. It also resonates with the progressive moment in the United States, as many Americans are determined to repair their democracy, making it fairer and more inclusive.

민주주의가 궁지에 몰린 상태이며,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고 말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같은 독재 정권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상회담 개최와 민주주의 정부 간의 광범위한 연합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마침 많은 미국인들이 더 공정하고 더 포괄적인 방향으로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바로잡기로 다짐함에 따라 점진적인 시기와도 반향을 일으켰다.

But there’s a snag: To succeed in building a democratic coalition against the authoritarians, the United States will need to jettison its monopoly on defining who counts as “democratic.” If it doesn’t, it will end up with either a coalition that is too limited to serve America’s strategic interests or a coalition making Washington look indefensibly hypocritical.

하지만 문제가 있다: 독재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연합 구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홀로 독점해서 누가 “민주주의”인지 정의하는 것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행보는 너무 제한적이라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기여할 수 없는 연합이 되거나 미국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위선적인 국가로 보이게 만드는 연합이 되어버릴 수 있다.

In a report published in March, the Swedish research organization V Dem posits that “the level of democracy enjoyed by the average global citizen in 2020 is down to the levels last found around 1990.” In V Dem’s judgment, the elected autocracy — a political regime in which democracy is reduced to the unconstrained power of a majority — is today’s most common regime type. India, Turkey and Hungary are exemplars. These new authoritarians are very different from their Cold War-era relatives, which were often military regimes. They cross the borders between democracy and authoritarianism almost as frequently as smugglers cross state borders.

3월 출간된 보고서에서, 스웨덴의 연구기관인 비 뎀(V Dem,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은 “2020년 일반적인 전세계 시민이 누렸던 민주주의 수준이 1990년 경 마지막으로 발견되었던 수준으로 하락했다”라고 상정한다. 브이뎀의 판단에 따르면, 선출된 독재 정권이 — 민주주의가 다수의 제약 없는 권력으로 격하된 정치 체제 — 오늘날 가장 흔한 유형이다. 인도, 터키 및 헝가리가 그 예이다. 이러한 새로운 독재자들은 종종 군부 정권도 있었던 냉전시대의 독재자들과는 매우 다르다. 이들은 밀수업자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만큼이나 빈번하게 민주주의와 독재주의의 경계를 넘나든다.

Many of today’s new non-democracies are in fact former democracies. And in many of these countries, citizens voted for authoritarian populists specifically in the hope of making democracy work for them. The government’s supporters in electoral autocracies like India and Hungary or electoral democracies like Poland, countries that organizations like V Dem and its American counterpart Freedom House countenance as democratic backsliders, will insist that they live in democracies. As of January, the percentage of Indians who trusted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was far higher than the number of Americans or Europeans who trusted their leaders. (To be fair, Mr. Modi’s popularity has taken a serious hit over the past month as Covid-19 has raged across India in large part because of what many describe as the starkest failure of governance since the country’s independence.)

오늘날 신규 비 민주국가들의 상당수는 사실은 예전에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리고 이들 국가 중 상당수의 국가에서, 시민들은 특히 민주주의가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희망으로 독재적인 인기 영합주의자들에게 투표했다. 인도나 헝가리 같은 선거 독재국가들, 폴란드 같은 선거 민주국가들, 비 뎀이나 이와 비슷한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 같은 기관이 민주주의가 퇴보한 것으로 보는 국가들의 정부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1월 현재 기준, 인도의 나란드라 모디 국무총리를 신뢰하는 국민의 비율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신뢰하는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의 수치 보다 훨씬 더 높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묘사했듯 인도 독립 이후 가장 명백한 통치 실패로 인해 코로나19가 인도에서 광범위하게 맹위를 떨침에 따라 모디 총리의 인기는 지난 한 달간 심한 타격을 입었다.)

The new authoritarianism fashions itself not as an alternative to democracy but as a real democracy, one in which a majority governs. The concept of “backsliding” that is so frequently used in the State Department has blinded many in the American government to the fact that a simple Cold War continuum with democracy on one end and authoritarianism on the other no longer suffices. “Backsliding,” a concept introduced by missionaries to explain how recently converted Christians “slid back” into their pre-Christian habits, confuses rather than clarifies because for missionaries, backsliders were worse than infidels.

새로운 독재주의는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다수가 결정하는 진짜 민주주의인 양 행세한다. 국무부에서 빈번하게 사용된 “퇴보”라는 개념은 미국 정부 내 수많은 사람들의 시야를 가려서 한 쪽에는 민주주의, 다른 쪽에는 독재주의를 둔 단순한 냉전의 연속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 “퇴보”는 선교사들이 어떻게 최근 개종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전 습성으로 “퇴보”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개념이며, 선교사들에게는 퇴보가 신앙심이 없는 것 보다 훨씬 더 나쁘기 때문에 이 개념은 명확하게 하기 보다는 헷갈리게 만든다.

The world’s liberal democracies have lost their monopoly to define what democracy is, not simply because the new authoritarians claim democratic credentials (they have won free if not always fair elections), but also because — as a recent study conducted by Pew Research demonstrated — a vast majority of Americans and French are deeply disappointed with their own political system. Some are unconvinced they even still live in a democracy. This is true for many other European countries, as well.

신 독재주의자들이 민주주의적 자격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항상 공정한 선거는 아니었더라도 자유 선거에서 당선되긴 했다), 퓨 리서치가 실시한 최근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 미국인과 프랑스인 대다수가 자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규정할 독점권을 상실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기타 많은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What has happened? I suspect that part of it is a year of lockdown and related restrictions. The perception of what constitutes democratic governance has been scrambled as societies have been infected with fear and uncertainty. The past year of battling the pandemic in many places has made democracies and authoritarian regimes less distinguishable than they used to be. One can no longer glean from a county’s regime type how well (or how poorly) it will respond to the pandemic. It is democracies like South Korea and New Zealand but also autocracies like China that have handled it successfully. Regime type also won’t predict what restrictions on citizen freedoms or what kind of economic policies a government will adopt. In the words of the political philosopher David Runciman, “Under a lockdown, democracies reveal what they have in common with other political regimes: here too politics is ultimately about power and order.”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지난 일 년 동안의 봉쇄 및 봉쇄 관련 제한이 그 이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공포와 불확실성으로 뒤덮히며 민주적 통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혼란스러워졌다. 지난 해 대유행과 싸우는 많은 곳들에서 민주주의 국가들과 독재 정권들에 대한 구별은 예전보다 흐려졌다. 한 국가의 정권이 대유행병에 얼마나 잘 대응할 것인가(또는 얼마나 형편없을 것인가)를 더 이상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이나 뉴질랜드 같은 민주주의 국가 뿐 아니라 중국과 같은 독재 국가도 대우행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 또한 어떤 정권 유형이 시민의 자유에 대해 어떤 제한을 가할지 혹은 정부가 어떤 종류의 경제 정책을 채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치철학자인 데이비드 런치만은 “봉쇄 조치 하에서 민주주의 국가는 다른 정치 체제와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역시 정치는 궁극적으로 권력과 질서이다”라고 말했다.

The blurring of the border between democracies and non-democracies has far-reaching consequences when it comes to international politics. If the Biden administration is to be guided by the ratings of a Freedom House or V Dem, countries like India have no place in its alliance. Yet if it is guided by America’s strategic interests, India is of paramount importance for any Western attempt to contain China’s influence in Asia.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 사이의 모호한 경계는 국제 정치 측면에서 방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바이든 정권이 프리덤하우스나 비 뎀의 연구결과를 따른다면 인도 같은 나라는 동맹에 낄 자리가 없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따른다면,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서방 국가의 어떤 시도에서도 인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So, Washington has a choice. It should either hypocritically pretend that for the purpose of containing China, countries like India and Turkey are democracies or rhetorically decouple its efforts to contain China and Russia from its efforts to revive global democracy. I suggest the Biden administration take the second road. In our social-media-saturated world, hypocrisy is the ultimate vice. And while the legitimacy of democratic activists comes from speaking truth to power, the international legitimacy of democratic governments comes from speaking truth about power.

이제 바이든 정부는 선택할 수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나 터키같은 국가들이 마치 민주주의 국가인 양 위선을 무릅쓰고 눈감아주든지, 아니면 수사학적으로나마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세계 민주주의를 소생시키려는 노력을 따로 분리시키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두 번째 길을 택할 것을 제안한다. 소셜 미디어로 포화된 세계에서 위선은 궁극적 악이다. 민주적 활동가의 정당성은 권력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데서 나오지만, 민주적 정부의 국제적 정당성은 권력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데서 나온다.

Ivan Krastev is a contributing Opinion writer, the chairman of the Center for Liberal Strategies, a permanent fellow at the Institute for Human Sciences in Vienna and the author, most recently, of “Is It Tomorrow Yet?: Paradoxes of the Pandemic.”

이반 크라스테브는 오피니언 기고 작가이자 자유주의 전략 센터의 회장이며 비엔나에 있는 인간과학연구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가장 최근 저작으로 “내일은 아직인가? 대유행의 역설”이 있다.

[번역 저작권자: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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