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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50일 그리고, 자가격리 14일

(87) 말레이시아에서 50일 그리고, 자가격리 14일

Macho CHO

machobat@gmail.com

원래는 10일간 출장이었다. 몇 개월 전부터 조율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출발 3일 전 코로나바이러스(CV19)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가 대한민국에서 출발한 탑승객 입국 금지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음날엔, 대구, 청도 방문자만 입국 금지란다. 주최측과 유일한 한국 대표인 나는 한시름 놨다.

250여 석에 탑승객은 40여 명 남짓. 대부분은 CV19 이유로 네팔 등으로 돌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승무원과 승객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나, 현지 공항과 도심엔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꽤 보였다. 당시 확진자가 많은 한국에서 온 나를 대부분은 개의치 않았다. 일주일 후 시내 한 약국 앞 마스크 구매자들 줄이 보였다. 그쯤 ‘마스크 매진’을 써 붙인 약국들이 많이 보였다.

귀국 전날, 항공사에서 한국, 중국, 이란, 이딸리아 노선 운항 중단 안내 이메일이 왔다. 낙담하는 나를 친구들은 며칠간 리조트로 데리고 갔다. 현지 친구가 자기 집 방이 여유 있다며 한국 갈 때까지 와 묵으란다. 다른 친구가 신도시의 빌라와 콘도가 비었다며 내주었다. 친구 집은 부담을 줄 것 같고, 빌라는 상점이 멀어, 상가가 있는 콘도를 택했다. 중국, 태국, 말레이, 유럽, 아랍 등 여러 식당과 대형마트 등이 있어 편했다. 친구들이 찾아와 식사도 하고, 음식도 주고 갔다. 길어봐야 일 이주 후면 비행기가 뜰 테지. 거기까진 괜찮았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이동제한령(MCO) 1단계를 발표했다. 모든 시민은 2주간 생필품 구매, 병원 진료 등을 제외하곤 야외활동, 단체 모임 등 이동이 금지된다. 모든 공공시설과 관공서는 문 닫고, 거주 반경 10km 이상 차량 이동 시 허가증이 필요하고, 식당은 일부 배달 만 가능하다. 상가 내 휴게시설도 다 폐쇄됐다.

국경이 봉쇄되고 모든 국내외 민항기 운항도 중단됐다. 평일 낮 도로에 차들도 거의 안보이고, 음식 배달용 오토바이만 오갔다. 무장군인과 경찰이 도로 곳곳에서 검문하며 MCO위반자를 즉시 체포한다는 현지 뉴스가 나온다. 콘도관리인은 나에게 오늘부터 밖에서 조깅하지말라 당부한다. 말레이시아 내 CV19 확진자가 3천 명을 넘었다.

친구가 준 현지 돈, 환전한 돈, 신용카드와 한국 돈 등 걱정은 없었다. 손 세정제와 마스크도 넉넉했다. 그러나, 지인들과는 전화와 SNS로만 연락해 답답했다. 한국의 가족과 거래처 등에 상황을 전했다. 콘도 내 수영장, 헬스클럽, 공원 등 공간도 폐쇄됐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다. 계획한 모든 일정이 어긋났고, 난생처음 상상도 못한 현실이었다.

마트도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만 문을 열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렸다. 경비원들은 사람들을 일정 간격으로 줄 세우고, 체온을 재고, 손에 소독제를 뿌렸다. 사람들이 매장에서 나오면 그 수만큼만 들여보냈다. 지역 내 다른 마트가 확진자로 폐쇄돼, 지역거주민들이 이리로 다 몰렸다. 쌀, 빵, 식용유, 계란, 국수 등 대부분 먹거리 진열대는 곧 비었고 한동안 생필품 공급이 불안정했었다. 나도 괜스레 불안해졌다.

20층 전망 좋은 콘도는 가구, 시설 다 좋은데 빈집이라 인터넷 연결이 안 됐다. 1시간 빠른 한국에 맞춰 일과를 나름 계획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1시간 실내운동하며 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샤워 후 와이파이가 되는 3층 상가로 내려가 전날 이메일 등 확인, 한국방송 뉴스, 영화 등을 다운받고, 현지 뉴스를 훑어본 후, 방으로 올라와 아침을 먹고 다운받은 뉴스를 시청하고, 점심 해 먹고, 내려와 인터넷 하고, 콘도 내를 오르내리며 한 바퀴 돌면 오후 4시쯤 된다. 집 안 청소하고, 저녁 먹고, 콘도 주위를 산책하고, 인터넷 하다 저녁 8시 매장 문 닫을 쯤 올라와 세탁 후 책을 읽거나 다운받은 영화를 보고 밤 10시쯤 자는 단순한 생활이 이어졌다.

매일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상가 앞에 죽치니 경비원, 미화원, 마트 매니저, 직원 등과 가까워졌다. 그 덕에 매일 체온을 재고, 마트에선 원하는 품목을 일찍 사고 지역 정보도 알 수 있었다. 콘도 앞 사거리 건너편의 현지인 아파트 단지 내 상점은 마트보다 농수산물 가격이 쌌다.

시간 때울 겸, 동네 상점들과 근처 콘도 단지 내 상점 등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떤 품목은 어디가 싼지 훤해졌다. 몇 블록 건너 한 아랍 식당은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착해 경찰 눈을 피해 포장 음식을 사서 30분 정도는 운동 삼아 걸어 다녔다.

판사가 도로에서 조깅하다 체포된 한국인 2명 등 내외국인에게 1개월 구금 또는 벌금(한화 약 30만 원)을 판결했다, 외국인노동자 밀집 지역 등에 확진자가 증가하고, MCO를 어긴 사람들이 매일 체포됐다는 뉴스가 나온다. 하루는 순찰 온 경찰들이 날 보더니 상가 같은 공공장소에서 노트북 펴고 일하지 말란다.

말레이시아는 주류세가 높지만 맥주 등 쉽게 살 수 있고, 마트엔 다양한 한국식품도 있지만, 별로 당기지 않았다. 말레이, 아랍, 인도 식자재를 사다 강황과 커리를 넣고 요리해 먹었다. 2주 전 예약했던 4월 초 인천행 항공편이 취소됐다. 가도 2주 격리 중 선거는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착잡해졌다. 비정기적이지만 요금이 두 세배 높은 인천행 직항, 동남아 등 경유 비행편이 잠시 보였으나 금방 매진됐다.

친구도 못 만나고, 모임도 못 하고, 외출도 못 하는 단순한 일과가 나름대로 적응되고 익숙해졌다. 청소하고, 세탁하고, 목욕하고, 매번 느낌이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식료품과 생필품 구매 등으로 두꺼워지는 영수증 봉투와 반대로 지갑은 얇아져 갔다.

말레이시아 보건부장관이 MCO를 2주 더 연장한다는 뉴스가 뜨자 혹시나 했던 기대가 무너지며 심란해졌다. 그러면, 비행기는 또 못 뜬다. 입맛도 없고 막막하다. 얼마 전까지 사전 선거를 기대했던 게 사치였다. 갑자기 숨이 막히며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만 같아 하루에도 몇 번씩 칫솔질하고, 샤워하거나 창문, 현관문을 열어놓고 청소기를 돌렸다.

인터넷을 보니 봉쇄조치로 나처럼 오도 가도 못한 외국인이 많았다. 현지 언론사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니, 정부 방침이 강경하다며 조금만 참고 견디란 답이다. 말레이시아 의료계도 연장과 완화 둘로 의견이 나뉘었다. 생업을 잃고, 소득이 막혔고, 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만 주민들 대부분은 MCO 연장을 찬성한다.

희망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이상 차이다. 언제 집에 갈지 기약이 없는 것은 큰 절망감을 가슴에 안겼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너 그냥 여기서 살아라’, ‘보기 좋네’ 등 SNS에 올리는 단순한 농담, 장난 댓글과 문자도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짜증이 났다. 이대로 몇 달 계속되면 어쩌나! 호흡이 콱 막혔다. 심란한 생각에 몇 일밤을 설쳤다. 안절부절못하고 몸이 떨렸다.

가만히 있으면 속상하고 진정이 안 돼, 실내에서 서성이면 미칠 것 같고,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며 난동을 부릴 것 같아 급히 밖으로 나왔다. 전에 몇 년간 매달 호주와 미국 출장을 다녔다. 매번 10시간 이상을 기내에 앉아 있어야 하니 나중엔 술이나 잠도 해결책이 못됐다. 비행기만 타면 손이 막 떨리고 자신을 통제 못 할 것 같았다.

군대에서 제대까지 남은 일수를 계산하면 희망이 안 보여 손이 막 떨렸던 때 같다. 콘도 주위를 미친 듯이 이리저리 걸었다. 그러다, 파란 하늘을 보며 전화해 어머니 목소릴 들으니 신기하게도 곧 마음이 차분해졌다. 잘 있으니 걱정마시라, 곧 갈 거라 말씀드렸다.

혼자 고립돼 있으니 새로운 정보에 어둡다. 혹시나 하고 한국대사관에 전화해 항공편 등 문의했다. 나처럼 귀국길이 막힌 일시방문자, 유학생, 체류자 등이 수 천 명이 넘는단다. 교민회를 통해 특별기 운항을 알았다. 떨리는 가슴으로 재빨리 항공권을 살 때 마우스를 클릭하던 몇 분이 몇 시간처럼 길었다. 세 배 이상 비싼 편도 요금이지만 대안이 없었다. 세 번째 MCO가 발표된 날이었다.

3일 후 출발. 갑자기 바빠졌다. 어차피 남은 음식은 가지고 갈 수도 없으니 끼니를 계산해 식자재를 나눴다. 일주일 만에 화장실에 갔다. 희망이 생기자 모든 게 달라 보였다. 지인들도 같이 기뻐해 줬다. 한 친구는 같이 식사 못 해 미안하다며 내 전화기 선납 요금을 충전해줬다.

떠나는 날 새벽부터 집안 밖을 청소하고 소독약을 뿌리고 세탁을 했다. 가방을 싸고 쓰레기를 처리했다. 한 달 넘게 갑자기 머물다가 갑자기 떠나려니 시원섭섭했다. 떠나는 걸 알자 정이 든 마트 매니저와 경비원들이 작별 인사를 한다. 혹시 모르니 일찍 출발하라는 친구의 조언으로 늦은 오후에 일찌감치 그랩 택시를 불러 공항을 향했다.

고속도로 입구에서 군경검문을 받았다.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자동차를 거의 못 봤다. 낮에도 썰렁한 공항엔 경찰과 직원 몇만 보인다. 시간이 되자 적막감이 든 넓은 공항의 체크인카운터와 출국심사, 보안 검색 등에 현지 직원들과 한국인들이 모여들었다. 출국자가 적으니 절차도 까다롭지 않았다. 큰 걱정은 혹시 운항이 갑자기 취소될까 봐서였다.

승객으로 꽉 찬 여객기는 밤 12시 가까워져 이륙했고, 나는 40일 만에 맥주 등 술을 마셨다. 아침 7시 인천에 착륙했다. 방역복의 군경 요원들은 일사불란하고 능숙하게 우릴 안내하고 검사하고 친절하게 통제한다. 난 같은 방향인 귀국자들과 공항버스로 담당구청보건소에 갔다. 상담, 검사 후 구청 차량으로 집에 오니 오후 1시쯤.

미리 연락받은 가족이 자가격리를 위해 준비한 식료품, 친구들이 보내준 음식과 술도 넉넉했다. 짐을 풀고 세탁과 샤워를 했다. 구청에서 세정제, 로션, 온도계, 마스크, 안내문 세트도 주었고, 전화로 증상 등을 주시로 확인했다. 보건소에서 ‘검사결과 음성’이란 문자가 왔다. 주민센터에선 현금 10만 원 또는 금액 상당 생필품 중 선택하란다. 매일 2차례 체온 등 건강상태를 스스로 진단해 자가격리앱을 통해 담당공무원에게 보냈다.

입국자 주의사항과 자가격리대상자 생활수칙을 잘 따르고 있다. 이상 증상이 없으면 2주 자가격리가 해제된다는 보건소 문자를 받았다. 다음 주엔 문 밖에 나갈 수 있다. 돌아보니, 10일 출장이 예정에 없던 말레이시아에서 50일 살기가 됐다.

그 동안 전 세계에서 3백4만여명 넘게 확진자가 나와 1/3이 완치됐고, 24만명 가까이 죽었다. CV19는 앞으로도 천천히 질기게 오랫동안 우리를 깊숙이 물고 늘어질 것 같다. 분명히 새롭고 멋진 경험들이었다. 팬더믹 환경, 친구, 대한민국대사관과 해외한인회의 민원처리, 군경민방역요원들, 중앙방역대책본부, 대통령, 그리고 국가와 정부.

최근 유럽항공안전청(EASA)이 CV19 전염 고위험 지역 공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했고, 세계는 한국이 이동통제 없이 잘 대처하고 빠르게 진단 및 완치하는 국가라고 칭찬한다. 말레이시아 총리는 ‘MCO 해제 이후 새로운 보편적인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거다’라고 했다.

CV19 팬더믹 동안에 인간이 숨을 죽이자 지구 환경은 깨끗해지고 공기가 맑아졌다. 조계종 원행스님은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날에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 햇빛과 공기와 물과 흙 그리고 함께하는 모든 생명들의 청정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하였습니다.”라 했다.

5월 2일 기준 CV19 국내 누적 확진자 10,780명, 격리해제자 9,123명, 사망자 250명으로 세계 36위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고문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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