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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닭장, 어디까지 가봤니?

(80) 닭장, 어디까지 가봤니?

-디스코텍, 불의에 저항하는 청소년들의 비밀공간

-레지스탕스 등 저항세력이 모인 비밀 지하공간

-서양과 한국의 나이트 클럽 문화

Macho CHO
machobat@gmail.com

 

(자료사진-구글 갈무리)

내가 나이트클럽을 처음 간 건 초등학생 때 부모님께서 지방에서 오신 친척 어르신들을 구경시켜드릴 때였다. 귀청을 때리는 음악과 요란한 조명 속에 난 무서워 엄마 손을 잡아끌었다. 고 3 겨울방학에 무전여행 간 부산 서면 백악관은 우리에게 하룻밤 추위를 막아줬다.

나이트클럽은 밤에 술, 춤과 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최초 나이트클럽은 1850년대 미국 뉴욕에서였다. 손님들은 생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마술공연 등을 즐겼다.

나치 점령하 프랑스에선 미국음악이 퇴폐적이라며 금지됐다. 레지스탕스 등 저항 세력이 모여 지하신문을 만들고 재즈, 스윙 등을 즐기며 정보를 교환했던 비밀 지하 공간 디스코텍. 디스코텍은 후에 프랑스와 독일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청소년의 비밀공간을 의미했다. 독일에서 레코드판을 틀어주는 DJ가 있던 최초의 무도장이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디스코텍이다.

매일 영업하는 국내와 달리 외국은 대부분 금, 토, 및 공휴일 전날 등에만 저녁 8시부터 오전 3시까지 영업을 한다. 입장료는 1~2만 원 정도. 물론 얼리버드(Early Bird)라고 일찍 온 손님은 입장료가 반값이고, 유명인과 여성은 종종 무료다.

외국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려면 복장 규정이 따른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깃이 있는 상의, 긴바지, 굽이 있는 신발, 여자는 치마에 힐이 있는 구두가 요구된다. 남녀 모두 18세 이상이란 공식 증명서가 필요하다. 음식물은 불허다.

입장료를 내고 손등에 도장이 찍히면 나이트를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다. 탄산수, 음료수, 맥주, 양주를 바에서 판다. 맥주는 330mL 1잔에 우리 돈 1만 원 정도. 깨지거나 부상 방지로 일회용 플라스틱 잔에 따라 준다. 모델 일하는 남녀가 종종 시간제 바텐더로 일한다.

국내에서는 나이트클럽을 흔히 나이트라 한다.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춤추는 댄스 플로어는 무대 앞에 있고, 술과 안주를 주문하는 테이블이 공간 대부분이다. 다수의 웨이터가 안팎에서 호객을 한다. 클럽은 댄스 플로어가 대부분이고 테이블은 구석에 몇 개 없다. 웨이터는 없고 소수의 문지기나 입장 관리자만 있다.

국내 나이트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전 후 가난한 나라에서 미군 상대 클럽을 본뜬 극소수 상류층 자제들만이 즐기던 공간이었다. 중년들은 댄스홀에서 재즈 음악에 춤을 췄다. ‘60년대로 넘어오자, 트위스트 열풍으로 미국 고고 댄싱을 흉내 낸 고고장이 생겼다. 고고장에선 DJ가 턴테이블로 믹스한 음악과 생음악이 흥을 돋웠다.

‘70년대부터 시설과 공간이 대형화된 디스코텍이 등장했다. 당시 야간통행 금지가 있어 젊은이들이 나이트에서 동틀 때까지 밤새워 노는 것을 올나이트라 불렀다. 신문엔 땐땐땐, 사교땐스 등 중년을 위한 댄스강습 쪽 광고도 보였다.

80년대 당시 대한민국은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3저 호황이었다. 노태우 때 36년 만에 야간통행 금지가 해제되자 새벽 4시까지 영업하는 나이트는 1980~2000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나이트는 최신 팝송을 즐길 수 있던 곳이자 인기 DJ가 연예계로 진출할 수 있던 길목이었다.

(자료사진-구글 갈무리)

당시 나이트를 닭장이라고 불렀다. 매일 밤 나이트 애국가 도쿄타운-Sara와 터치 바이 터치-Joy가 울려 퍼지면 암탉, 수탉들은 닭 볏을 흔들고 날개 짓하며 퍼드득거렸다. 종로 3가, 무교동, 신촌엔 유명한 나이트가 포진해 있었다. 대형 나이트는 자극적인 물 쇼, 불 쇼, 뱀 쇼 등 퇴폐적 공연으로 닭들을 끌어당겼으나 결국 화려함을 뒤로 빠르게 사라졌다. 40~50대 중년층 무도장인 관광 나이트나 카바레는 생음악이 연주되고 가수 공연과 스트립쇼 등이 이어졌다.

‘90년대엔 호텔 지하 나이트가 들어선다. 무대, 테이블, 룸으로 나뉘고, 초면의 남녀를 짝지어주는 부킹이란 독특한 한국식 즉석만남이 탄생한다. 강남의 나이트는 비싼 술값, 팁과 부킹의 대명사가 됐다. 나이트 앞에선 부킹녀 선물용 향수, 지갑 등을 팔고 그랬다. 덕분에 주위의 상권도 밤새 흥청거렸다.

강남에 ‘30대 이상만 입장 가능’이란 표어로 돈텔마마가 등장했다. 상호처럼 나이트에선 엄마에게 말하면 안 되는 일이 매일 일어났다. 줄리아나 등 20대 위주의 나이트와 비싼 룸살롱 사이에서 방황하던 30~40대 남녀의 해방구였다. 부킹 100% 성공 소문에 매일 1천 명 넘게 입장했다. 웨이터는 남자를 등쳐 매상을 올려주는 뛰어난 용모의 매상조 언니들을 선발, 관리했다.

콜라텍은 1990년대 중순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목적으로 생겨난 무알코올 나이트였다. 그러나, 2000년대 접어들며 청소년의 싸늘한 개 무시에 성인 콜라텍이란 노년층의 나이트로 갈아탄다. 전자오르간의 반주에 무명가수가 성인가요를 노래하고, 트로트 메들리가 귓전을 때리는 성인 콜라텍은 오전 11시~오후 7시까지만 영업하라고 허가가 났다

화려한 색상으로 한껏 멋을 낸 노년의 신사숙녀들이 노인 입장 관리자에게 입장료 2천 원을 내고 들어간다. 흰 장갑을 낀 ‘짝 도우미’가 끌어준 이성과 불루스와 지르박에 맞춰 사교댄스를 춘다. 머리 위로 화려한 싸이키 조명이 쉴새 없이 돌아간다. 술을 팔지 않는 조건의 성인 전용공간이라 매점에서는 쌍화차 등을 음료만 판다. 그러나, 불법으로 주류와 백반, 닭볶음탕까지 저렴한 식당도 함께 있다. 대형 업소엔 바둑장, 안마방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있다.

2000년 이후 록까페가 등장하자, 강남에서는 나이트가 부킹 전문 클럽으로, 웨이터들은 클럽의 MD, PM 등 ‘짝짓기꾼’으로 업그레이드 한다. 매출을 올리려 과감한 의상의 여성들을 남성 고객의 룸이나 테이블로 끌어다 앉힌다. 술과 안주가 추가된 룸 값만 수백만 원이고, 성범죄와 마약이 활개 치는 부작용도 따랐다. 대표적인 예가 버닝썬 사건이다. 비슷한 시기 홍대에는 힙합클럽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업소 앞에선 ‘삐끼’들이 100% 2차를 장담하며 행인을 잡아 끈다.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가면 ‘싸이’, ‘조용필’, ‘오십원’, ‘돼지엄마’, 숫자 등 명찰을 단 웨이터들이 명함을 건넨다. 웨이터에게 부킹 팁을 주면 여성 손을 잡아 끄는 보조, 룸웨이터, 룸보조가 나눠 갖는다. 20대가 홍대 앞 클럽을 찾듯이, 남친을 만들려 온 미시족은 성인나이트를 찾는다.

나이트 광고의 컨셉은 유치함이다. 화려한 원색에 큰 글씨체, 상호와 출연자 얼굴이 큼직한 전단이 건물 벽과 길바닥에 무차별 뿌려진다. 또, 요란한 음악을 틀고 번화가 주위를 도는 홍보차량 행렬은 사회적 민폐다.

현대인들이 나이트를 찾는 건 춤으로 치료받는 긍정적 현상이란다. 대부분 국내 무도장 등은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을 추모하는 6월 6일 현충일에 자발적으로 영업을 쉰다. 흔한 국내 나이트 상호는 ㅇㅇ관, 호박, 줄리아나, 돈텔마마 등이다.

강남은 수질이 좋지만, 장안동, 주안 등 변두리나 외곽이 가성비가 낫다. 여자보다 남자가 많은 주말은 피해라. 부킹은 새벽 2시 전에 끝내라. 너무 예쁜 여자만 고집하면 실패한다. 일행을 위해 양보와 희생도 필요하다. 토론하거나 술주정하는 여자는 빨리 내보내라. 부킹녀에게 술 적당히 줘라, 많이 마시면 딴 테이블이나 룸에서 고꾸라진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인기 그룹사운드 딕 훼밀리의 ‘또 만나요’가 나오면 나이트 폐장 시간이다.

(자료사진-구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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