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가 1930년대 초에 독립운동가인 외삼촌 ‘일창'(一蒼, 본명 허발)에게 보낸 휘호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수부선행'(水浮船行)이라고 쓴 4자의 한자성어는 이육사가 만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외삼촌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민족시인 이육사 친필 휘호 공개 '수부선행'(水浮船行)
[매일신문 2018.10.07]https://t.co/1DG11gnpGq— 김달진미술연구소 (@daljin) 2018년 10월 8일
이완재 영남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수부선행’이라는 글은 “한자성어 그대로 해석하면 ‘물이(외삼촌을 비롯한 독립자금 후원인들) 배(이육사를 비롯한 독립운동 동지들)를 띄워 가게 한다’는 뜻으로 당시 국내·외적인 정황으로 볼 때 외삼촌이 열심히 번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구매일)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의 종손자인 이승환 씨가 3일 경산시 자택에 보관 중인 이육사 사자성어 휘호를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성일권 기자 (사진/매일신문)
범산 허형의 셋째딸이자 일창 허발의 누이 허길은 진성이씨 이황의 13대손 이가호와 결혼했다. 허길은 이육사의 어머니이다. 허발의 딸 허은(許銀)은 석주 이상룡의 손자 며느리가 된다.
석주 이상룡의 아들 동구 이준형 독립운동가의 유고집 ‘동구유고’ 국역판에는 이준형 독립운동가의 둘째딸과 왕산 허위의 넷째 아들 허국이 만주에서 결혼하는 과정의 내용도 실려있다. 허발 가문과 이상룡 가문은 겹사돈 관계다.
이육사의 외조부 범산(凡山) 허형은 의병장이며, 13도 창의군(十三道倡義軍)의 군사장으로 활약한 왕산(旺山) 허위와는 사촌이다. 구미 왕산가는 방산 허훈, 성산 허겸, 범산 허형, 시산 허필 등 사위, 외척들과 임은허씨 가문 전체가 3대에 걸쳐 항일 운동을 벌인 대한민국의 최고 독립운동가문이다.
일창 허발 선생 (1872∼1955) 묘역의 비: 대구에 있는 국립신암선열공원은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공원으로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 묘지공원이다. 오십두분의 독립유공자가 안장되어있는데 네분이 미서훈자로 남아있다. 특히 일창 허발은 조국이 통일 되기 전에는 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서훈 신청도 하지 않았다. (사진 ⓒ김성대)
일창 허발의 비문을 쓴 안춘생은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로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만주로 망명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군에 배속되어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항일운동을 시작했다. 안춘생 준장은 9대 육균사관학교 교장(51년 10월~52년 11월)을 역임했으며 광복군이나 독립운동의 전력이 있는 육사 교장이기도 했다. (사진 ⓒ김성대)
독립운동가 일창 허발 의사는 이육사 시인의 큰 외삼촌이다. 허발 의사가 민족시인 이육사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은 묘소 앞 비석에도 기록되어 있다. 바로 경북 구미 임은동이 이육사의 외가다.
이육사는 친가쪽으로는 퇴계의 선비 정신과 외가쪽으로는 범산의 투사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기록에는 특히 작은 외삼촌인 일헌 허규가 이육사 시인의 형제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일창의 동생 일헌 허규(이육사의 작은 외삼촌)는 서훈의 모든 조건을 채우고도 남았지만 유언으로 “통일이 되기 전엔 서훈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 대한제국 당시 의병대장으로 맹활약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의 5촌 조카 허형식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주도한 장기태 위원장이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씨에게서 허락을 받아 일창의 독립유공자 서훈도 준비중이며 허규의 서훈 준비를 위해 아들 허술씨와 접촉중이다.
독립운동가 일창 허발 의사는 이육사 시인의 큰 외삼촌이다. 허발 의사가 민족시인 이육사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은 묘소 앞 비석에도 기록되어 있다. 바로 경북 구미 임은동이 이육사의 외가다.
이육사는 친가쪽으로는 퇴계의 선비 정신과 외가쪽으로는 범산의 투사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기록에는 특히 작은 외삼촌인 일헌 허규가 이육사 시인의 형제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일창의 동생 일헌 허규(이육사의 작은 외삼촌)는 서훈의 모든 조건을 채우고도 남았지만 유언으로 “통일이 되기 전엔 서훈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 대한제국 당시 의병대장으로 맹활약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의 5촌 조카 허형식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주도한 장기태 위원장이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씨에게서 허락을 받아 일창의 독립유공자 서훈도 준비중이며 허규의 서훈 준비를 위해 아들 허술씨와 접촉중이다.
학계에서는 이육사 시인의 시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표현된 인물이 허형식 장군일 것으로 보고 있다. https://t.co/Dw9C33Y4qi
— 대구경북민중언론 뉴스민 (@dgnewsmin) 2019년 4월 3일
'김일성과 동급' 허형식 장군은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허형식_서훈_신청 #민족문제연구소_구미지회 #동북항일연군_제3로군_군장 https://t.co/daPd86W3A0 장호철 기자
— 오마이뉴스 (@OhmyNews_Korea) 2019년 4월 5일
왕산·석주·육사 집안이 혼맥으로 대한민국 최고 독립운동 명문가를 이룬 사실을 널리 알린다면 그동안 묻혀져 왔던 공업도시 구미의 이미지를 한국 최고의 독립운동 가문을 배출한 고장으로 재평가받게 될 것이다.
백마 탄 만주벌판 초인은 최후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https://t.co/DMLfVg7ZpA
— 시라카와는 살아있다!! (@wook85) 2017년 5월 24일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씨가 왕산 순국 110년만에 처음 열린 추도식 후 구미 왕산 기념관에 허발 선생의 한약의서 ‘방약합편’ 등 유품을 기증했다고 하는데 그책과 유품이 안보인다고 하여 민문연 구미지회 회원들이 기념관을 방문해 각종 기록 서적을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방약합편을 찾기 위해 몇개월 수소문하던중 이번 4월8일 100년만에 처음 열린 임은동 독립만세운동에 허벽씨가 서울에서 내려왔을 때 그 유품이 다시 나타나서 찾게 되었다.
만주로 망명 후 독립군 연락처이자 군자금 조달처였던 일창한약방을 경영하며 일창 허발 선생이 남긴 한약의서 ‘방약합편’을 다시 찾게 되었다. (사진/ ⓒ박찬문)
본 방약합편은 일창(발)선생이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만주 지방에서 항일 투쟁시 일창한약방을 경영하시며 응용하여 쓰시던 책이며 한약방에서 나온 수입금은 왕산 가족의 생계도 부담하시며 군자금 마련에도 도움을 주셨습니다. 해방 후 6.25 동란시에도 대소가 식솔들의 생활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돌아가실때까지 귀중히 여기시던 책입니다. <기증자 손자 허벽> (사진/ ⓒ박찬문)
왕산기념관에 기증했었던 일창 허발선생의 유품 : 평소 탐독하시던 만해 선생 문집, 퇴계 선생, 문집 1집, 퇴계선생 문집 2집, 보인사 규범 1권(창기인 허위 외 38명), 일창(발) 유언 유명지서 1권 (78세에 씀), 대한제국 대 황제 즉위식 기념장, 창경궁, 인정전 아정(허민) 소장품등이다.
국보 226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의 #정전 인 '창경궁 명정전'이 어제(2일)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문틈으로만 볼 수 있었던 #명정전 의 내부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입니다. https://t.co/ULcgb3YVV8 pic.twitter.com/qZWHJ1QUl2
— KBS 뉴스 (@KBSnews) 2019년 4월 3일
안동 임청각 3대 종부 허은 여사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책에는 왕산 순국 후 일본 순사들이 구미 임은동 임은허씨들을 마구 잡아들이는 등 난리통 가운데 범산 허형의 장남 허민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는데 당시 일본의 간계로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고종의 어명으로 창경궁 명정전, 명정문의 현판을 쓴 사람이 바로 당대의 명필 범산 허형의 장남 허민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눈물 :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씨가 할아버지의 유품을 되찾게 되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왕산기념관 관계자들과 왕산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이 장면을 보면 무릎꿇고 석고대죄를 해야할 것이다.
일창 허발이 남긴 유언서 – <유언 유명지서 정해년 12월 병중> 1947년 정해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후손이 기증한 이 귀중한 독립운동가의 유품을 그동안 왕산기념관에서 보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독립운동가 기념관이 아니라도 어느 문학관이나 미술관 등에서도 기증받은 서적이나 유품등에 대한 도록이 있어 쉬이 찾을 수 있게 해야 하는것이 당연한데 현 왕산기념관과 기념사업회에서는 그러한 도록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번 4월 8일 임은동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하기 위해서 서울에서 온 허벽<모자 쓰신 분>씨와 대구에서 온 허형식 장군의 조카 허창수씨<태극기 든 분>. (사진ⓒ장호철)
허벽씨는 이번 임은동 독립만세운동 참석 겸 사라졌다는 할아버지의 유품을 찾으러 구미에 온 것이다. 다행히 다시 귀중한 유품을 찾게 되고 식사대접과 숙소제공까지 해준 구미시와 장세용 시장에게 감사의 말씀도 남겼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일창 허발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하자는 장기태 위원장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구미의 역사가 바로 세워지는 작업이 긴 어둠의 세월을 걷어내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땅 3,000 마지기를 팔아 성산 허겸과 왕산 허위의 의병 창의 군자금으로 보태준 방산 허훈의 후손과 만남의 자리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3.1혁명 100주년 독립운동을 예우하는 건 국가의 책무라며 아직 발굴하지 못한 분들은 연구 활동을 확대해서라도 마지막 한 분의 독립운동가까지 찾아내겠다고 약속했다.
오늘(25일) KBS 1TV에서 방영된 ‘나의 독립 영웅’에 문재인 대통령이 출연해 석주 이상룡 선생을 직접 소개했습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립운동가의 삶을 돌아봅니다. pic.twitter.com/Pjjlpre41f
— 대한민국 청와대 (@TheBlueHouseKR) 2019년 2월 25일
안동 임청각과 구미 왕산가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5일 KBS 1TV에서 방영된 특집에서 ‘나의 독립 영웅’ 석주 이상룡 선생을 소개했다. 왕산과 석주 그리고 육사를 잇는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구미 왕산기념관에 꼭 한번 들러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