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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한국 생존 위안부들 ‘일본 진실한 사과와 배상해야 한다.’

로이터, 한국 생존 위안부들 ‘일본 진실한 사과와 배상해야 한다.’
-잔혹한 범죄 생존자들 날마다 죽어가고 있어
-문 대통령 이번 주 “아프다고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로이터 통신이 얼마 남지 않은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얼마 남지 않은 종군위안부 중 한명인 이용수 할머니의 참혹한 삶을 조명하며 일본군 강제 성노예였던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다루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통신은 22일 “South Korea’s surviving ‘comfort women’ spend final years seeking atonement from Japan-일본의 속죄를 요구하며 말년을 보내는 한국의 생존 ‘위안부’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제 일본 전시위안소에서 살아남은 한국의 희생자는 채 30명이 되지 않는다며 그 중 한명인 이용수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로이터 통신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점령 기간 동안 3만 명에서 2십만 명의 한국 여성들이 성노예로 강제 동원되었다는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며 이제 그들 중 겨우 27명의 등록된 한국의 희생자들이 살아있고 이들이 아직 증언할 수 있는 동안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뿐만 아니라 법적인 배상을 받아내려는 이들의 노력에 절박감이 느껴진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가장 활발한 활동가인 김복동 할머니가 암으로 이제 몇 개월 밖에 살수 없는 상태여서 인터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며칠 전에도 한 희생자가 사망하였으며 올 들어 6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1965년 한일협정에서의 배상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일본의 주장, 또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이루어졌던 합의 등이 ‘위안부’ 여성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한국 조사단의 결론을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일본이 양국관계를 위협한다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2015년 협상 하에 조성된 기금을 폐기하고 보다 “희생자 중심의” 접근 방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1992년부터 나는 일본에 진실한 사과를 요청해왔으며,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라고 이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이것을 27년 동안 해왔으며, 눈이 오든지 비가 오든지, 혹은 날씨가 춥든지 덥든지 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피맺힌 호소를 전하며 진정성이 결여된 일본의 지원을 받은 재단을 문재인 정부가 해산했다고 전했다.

“아프다고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며 “지속가능하고 견고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문대통령의 결연한 발언을 소개하기도 한 로이터 통신은 일본 당국자들은 한국 정부가 입장을 바꿨다고 여기며, 이미 합의된 바를 재검토하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일본인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의 생존자들은 매일매일 세상을 떠나고 있고, 아베는 아마 기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과하고, 진실을 말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한 맺힌 발언으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글, 이하로)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로이터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reut.rs/2FAOZ6k

South Korea’s surviving ‘comfort women’ spend final years seeking atonement from Japan

일본의 속죄를 요구하며 말년을 보내는 한국의 생존 ‘위안부’들

Josh Smith, Haejin Choi

DAEGU, South Korea (Reuters) – When 17-year-old Lee Yong-soo returned home to South Korea in 1945 after years as a child sex slave for Japanese troops, her family, having given her up for dead, thought she was a ghost.

한국 대구 (로이터) – 17세의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의 어린이 성노예로 수년 간을 보낸 후 1945년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그녀가 죽은 줄로만 생각했던 그녀의 가족은 유령이라고 생각했다.

Lee Yong-soo, 90, one of less than 30 known surviving South Korean victims of JapanÕs wartime brothels, displays a photograph in Daegu, South Korea October 30, 2018, of her taken shortly after she returned to Korea in 1945 after being held at an airbase for kamikaze pilots in Taiwan. REUTERS/ Josh Smith

일본 전시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30명이 채 안되는, 세상에 알려진 한국 희생자들 중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90세)가 대만의 가미카제 조종사 공군기지에 붙들려 있다가 1945년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찍은 자신의 사진을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구에서 보여주고 있다.

“When I returned, I had a deep wound,” Lee told Reuters, holding a black and white photo of herself in a traditional Korean dress, taken in her first year back home.

“돌아왔을 때, 나는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고 이씨는 고국으로 돌아온 첫 해에 한복을 입고 찍은 자신의 흑백 사진을 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She still remembers the blue and purple fabric of that dress, but other memories from those years are more traumatic.

그녀는 여전히 그 때 입었던 한복의 청색과 자주색 옷감을 기억하지만, 그 시절의 다른 기억들은 보다 충격적으로 남아있다.

“I thought I was going to die,” Lee said of the abuse and torture she endured in a brothel at an airfield in Taiwan used by Japanese kamikaze pilots in the final years of World War Two.

이씨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무렵 일본의 가미카제 조종사들이 대만의 비행장에서 이용했던 위안소에서 그녀가 견뎠던 학대와 고문에 대해 “나는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Now 90 years old, Lee says she feels like a sincere apology from Japanese authorities for the wartime exploitation of so-called “comfort women” is no nearer now than when she returned home more than 70 years ago.

이제 90세가 된 이씨는 소위 “위안부” 전시 착취에 대한 일본 당국으로부터의 진실한 사과가 70여 년 전 자신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보다 지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Japan says the claims have been settled by past agreements and apologies, and that the continued controversy threatens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일본은 과거의 합의와 사과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이 지속적인 논란은 양국 관계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Some historians estimate 30,000 to 200,000 Korean women were forced into sex slavery during Japan’s occupation from 1910 to 1945, in some cases under the pretext of employment or to pay off a relative’s debt.

일부 역사학자들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점령 기간 동안 30,000명에서 200,000명의 한국 여성들이 성노예로 강제 동원되었다고 추정하며, 어떤 경우에는 고용 명목 또는 친척의 빚을 청산해준다는 구실 하에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Now with only 27 registered South Korean survivors still alive, there is a sense of urgency behind efforts by the women to receive a formal apology as well as legal compensation from Japan while their voices can still be heard.

현재 단 27명만의 등록된 한국인 희생자들이 생존해 있는 가운데, 이들이 아직 증언할 수 있는 동안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뿐만 아니라 법적인 배상을 받아내려는 이 여성들의 노력에 절박감이 느껴진다.

Just days before Reuters interviewed Lee at her one-room apartment in the southern city of Daegu, a fellow victim had died, one of six so far in 2018.

대구시 남쪽에 있는 이씨의 원룸 아파트에서 로이터 통신이 인터뷰를 진행하기 바로 며칠 전 다른 한 희생자가 사망했으며, 이는 2018년 들어 사망한 여섯 명 중 한 명이다.

Another survivor, Kim Bok-dong, said she wanted to share her story, but suffering from cancer and expected to live only a few more months, she was unable to find time to speak.

또 다른 생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지만, 암 투병으로 단 몇 개월밖에 살 수 없는 상태로, 말을 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SINCERE APOLOGY”

“진실된 사과”

Under the 1965 treaty, Japan reached a deal with South Korea to provide an $800 million aid-and-loan package in exchange for Seoul considering all wartime compensation issues settled.

1965년 조약에 따라, 일본은 한국 정부가 모든 전쟁 배상 문제를 해결된 것으로 여기는 대가로 8억 달러의 원조 및 융자 패키지를 한국에 공여하기로 하는 합의를 한국과 맺었다.

A South Korean panel late last year concluded a separate 2015 deal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had failed to meet the needs of former “comfort women”.

작년 말 한국의 전문 조사단은 2015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별도의 협상이 과거 “위안부” 여성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Acting on that conclusion,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is week shut down a fund created under the 2015 deal and vowed to pursue a more “victim-oriented” approach, a move Japan said threatened the two countries’ relations.

이같은 결론에 따라 금주 한국 정부는 2015년 협상 하에 조성된 기금을 폐기하고 보다 “희생자 중심의” 접근 방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이 양국 관계를 위협한다고 말한 바로 그것이었다.

A sense of shame and secrecy meant most tales of abuse and coercion at the brothels for Japanese troops were never discussed publicly, until Kim Hak-sun, one of the South Korean victims, came forward in 1991.

수치스러워 감추려는 심정 때문에, 일본군 위안소에서의 학대와 강요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한국 희생자들 가운데 한 명인 김학선 할머니가 1991년 처음으로 나서기 전까지 전혀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She and two other former comfort women joined a class action lawsuit against Japan, which prompted the Japanese government to acknowledge its role for the first time in 1993. The case was eventually dismissed by Japan’s highest courts in 2004.

그녀와 다른 두 명의 전 위안부 여성들은 일본을 상대로 한 집단 소송에 합류하였으며, 이는 일본 정부가 1993년 자신들의 역할을 처음으로 인정하게끔 만들었다. 이 소송은 2004년 일본 최고재판소에 의해 결국 기각되었다.

Lee was one of the survivors emboldened by Kim’s move, and has since worked to raise awareness, including meeting the Pope and traveling to North Korea to meet other victims.

이씨는 김씨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생존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서 이후 교황을 만나고 다른 희생자들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것을 포함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Since 1992, I had been asking Japan to make sincere apology, that is what I want,” Lee said. “I have been doing this for 27 years, it doesn’t matter whether it was raining or snowing, or the weather was cold or hot.”

“1992년부터 나는 일본에 진실한 사과를 요청해왔으며,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라고 이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이것을 27년동안 해왔으며, 눈이 오든지 비가 오든지, 혹은 날씨가 춥든지 덥든지 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UNRESOLVED DISPUTE

해결되지 않은 논쟁

From 1995 to 2007, Japan created a fund from donations to make payments to women throughout Asia, budgeted money for their welfare support and sent letters of apology from successive premiers.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 정부는 아시아 전역에 있는 여성들에게 지급하기 위해 기부금으로 자금을 조성했으며 그들을 위한 복지지원을 위해 예산을 편성했고 연이은 총리들의 사과 편지를 보냈다.

While a number of survivors have accepted compensation over the years, many South Koreans see the issue as unresolved because of what they consider a lack of sincerity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많은 생존자들이 지난 수 년에 걸쳐 배상을 받아들였지만, 많은 한국의 생존자들은 일본 정부의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본다.

Despite apologies from Japan, for example, the first comfort women fund was criticized in South Korea for not being direct compensation from the state, and the 2015 deal was faulted for failing to include a clear statement of the Japanese government’s legal responsibility.

일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최초의 위안부 기금은 일본 국가로부터의 직접적인 배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비판을 받았으며, 2015년 합의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에 대한 명확한 진술이 빠져 있어서 비난을 받았다.

Japan says South Korea had waived all claims in the 1965 pact, and that under the 2015 deal, Japan agreed to provide the funds to help the women heal “psychological wounds”.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1965년 협정을 맺으며 모든 배상 요구를 포기했고, 2015년 협의문에 따라 일본 정부는 위안부 여성들의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기 위한 자금을 제공하기로 동의했다고 말한다.

Critics of South Korea have also accused it of ignoring the complicity of some Koreans in the sex trade at the time.

한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또한 한국 정부가 당시 성매매에 관여한 일부 한국인 공범들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Shutting the Japan-funded foundation i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steps President Moon Jae-in’s administration has taken as it revisits the comfort women controversy.

일본의 지원을 받은 재단을 해산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 정부가 위안부 논쟁을 재검토하며 취한 가장 중요한 조치 중의 하나이다.

In the past year, South Korea has also opened a new research center aimed at consolidating academic study of comfort women, named the first Comfort Women Day and unveiled a new memorial in Cheonan, a city south of Seoul.

지난해에 한국 정부는 위안부 여성에 대한 통합 연구를 목적으로 한 새로운 연구센터를 출범시켰으며 첫 위안부 여성의 날을 만들고 한국의 한 도시인 천안에 새로운 기념관을 공개했다.

“We cannot ignore the truth just because it hurts,” Moon said this week. “For the sake of sustainable and solid Korea-Japan relations, we must face up to the truth.”

문 대통령은 이번 주 “아프다고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며 “지속가능하고 견고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Lee said she thinks Moon is “trying his best,” and in a statement released from her hospital bed this week, Kim said the move to close the foundation restored her trust in the South Korean president.

이 할머니는 문 대통령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병상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김 할머니는 재단을 해체한 것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Moon’s efforts, however, have faced pushback from Japanese officials, including Prime Minister Shinzo Abe.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은 아베 신조 총리를 포함한 일본 관료들로부터 반발을 자아냈다.

Earlier this year, Japan formally complained after South Korea’s foreign minister raised the issue in a speech at the United Nations.

올해 초 일본은 한국 외무부 장관이 유엔 연설에서 그 문제를 제기한 후 공식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Japanese officials have expressed frustration at what they see as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changing positions and efforts to revisit settled agreements.

일본 당국자들은 한국 정부가 입장을 바꿨다고 여기며, 이미 합의된 바를 재검토하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For survivors like Lee, Japan’s protests ring hollow.

이 할머니와 같은 생존자들에게 일본의 항의는 공허하게 들린다.

“The survivors of the heinous crimes the Japanese committed are dying day by day, and I bet Abe is dancing for joy,” Lee said, becoming animated as she described her frustration. “They should apologize, tell the truth, and pay the legal compensation.”

이 할머니는 좌절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일본인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의 생존자들은 매일매일 세상을 떠나고 있고, 아베는 아마 기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그들은 사과하고, 진실을 말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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