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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 미투시대.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는 여전히 매춘부인가? 

CBC 미투시대.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는 여전히 매춘부인가? 

– 일본, 아베 이후 ‘강제적 증거 없어’ 기조 유지, 국제사회 비판
– 세계 곳곳의 일본군 성노예 동상 철거 요구 및 유네스코 협박도
– 24명의 고령 생존자, 진정한 사과 없다면 사후 매춘부 낙인 우려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In the #MeToo era, women used as sex slaves by Japanese in WW II are still seen as prostitutes, not victims (#미투시대에도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성노예로 이용당한 여성들이 여전히 희생자가 아니라 매춘부라 여겨진다) 라는 타이틀로,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인 이옥선 할머니를 비롯해 여러 관계자의 인터뷰를 다루었다.

먼저, 기사는 92세 생존자인 이옥선 할머니가 15세때 일본군의 위협 아래 납치되어 성노예로 강요당한 세월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면서 나눔의 집에 기거 중인 24명의 생존자들은 일본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일본정부는 생존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이라는 문제에 대해 부인하거나 회피하고 있다면서 2007년 아베 총리의 첫 임기에서 발표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그러한 입장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바 없다고 언급했다.

또,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첫 사과를 표명했던 1993년, 위안부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끌려갔음을 인정했고, 군부가 직접 적으로 개입되어 있었음을 밝힌 바 있으나,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이 그 사과문에 대해 성노예에 대한 강요라는 부분을 문제 삼아 왔으며 일본의 우익 측은 한술 더 떠서 위안부는 전문적인 매춘부라고 말했다고 기사는 밝히고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성노예나 강제적 여부의 문제는 다뤄지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에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9백만 달러의 희생자 기금을 설립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협의는 위안부 생존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일본정부는 한국, 필리핀 그리고 미국에서 일본군 성노예 여성들을 기념하는 동상을 제거할 것을 요구하고, 유네스코에는 위안부 서류가 세계기록유산에 추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금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해 왔다고 기사는 말한다.

도쿄 여성 전쟁 평화박물관의 감독인 와타나베 미나는 일본의 사과는 피해자의 증언을 무시하고 사실을 부정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한편, 위안부 여성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과거 관행이 오늘날 일본 정부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미투운동이나 타임스업 운동이 일본에서 견인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프 킹스턴 도쿄 템플 대학 아시아 연구소장은 아베 총리를 역사 수정주의자라고 부르며 일본정부는 성노예 문제를 성가신 문제로 여겨 사라지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올해 주미 일본대사로 부임한 스기야마 신슈케는 자신의 임무 중 하나가 미국 및 다른 나라에 있는 위안부 기념비에 대한 일본의 반대 입장을 관철하는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한 바 있다.

위안부 정의연대 주디스 밀킨슨 대표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그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일본 정부를 고립시키고 과거의 여성에 대한 처우와 현재 여성에 대한 처우를 연결 시키는 것 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눔의 집 안신권 대표는 위안부 여성들이 아직도 살아있음에도 일본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며, 할머니들이 죽으면 그들은 영원히 매춘부라는 낙인이 찍힐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캐나다 공영방송  CBC 보도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s://bit.ly/2KYdSqZ

In the #MeToo era, women used as sex slaves by Japanese in WW II are still seen as prostitutes, not victims

#미투시대에도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성노예로 이용 당한 여성들이 여전히 희생자가 아니라 매춘부라 여겨진다

The Japanese government admits the girls and young women in its military-run brothel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suffered badly. But what it won`t admit, despite plenty of evidence, including the words of survivors, is that the so-called comfort women were sex slaves who were taken against their will.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 매춘소에서 소녀와 젊은 여성들이 심하게 고통받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많은 증거와 생존자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소위 위안부들이 자기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간 성노예였다는 사실이다.

Japanese government admits girls and women suffered, but denies evidence they were taken against their will

일본 정부는 소녀와 여성들이 고통받은 것은 인정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갔다는 증거는 부인한다.

Nicole Percy & Adam Walsh • CBC News • Posted: Jul 07, 2018 4:00 AM ET | Last Updated: 4 hours ago

Lee Ok-sun, 92, says she was forced into sex slavery by the Japanese military during the Second World War. She and her fellow survivors are still waiting for a proper apology more than seven decades later, she says. (Adam Walsh/CBC )

92세의 이옥선 씨는 자신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성 노예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 그리고 다른 생존자들은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Lee Ok-sun was 15 years old in 1942, when two Japanese men in civilian clothes abducted her while she was out running errands in the port city of Busan, in what is now South Korea.

이옥선 씨는 민간인의 옷을 입은 두 명의 일본 남성들이 현재 한국의 항구 도시 부산에서 잔심부름 중이던 그녀를 납치했던 1942년, 15세였다.

She was eventually taken to an airfield in Japanese-occupied China, she says, where she was forced to spend her remaining teenage years as a sex slave for the military.

그녀는 일본이 차지했던 중국의 비행장으로 결국 끌려갔고, 남은 10대를 군을 위한 성 노예로 보내야 했다고 말한다.

Lee says she was whipped and threatened at gunpoint.

이 씨는 그녀가 채찍질을 당하고 총끝으로 위협당했다고 말한다.

“I somehow survived and am still surviving,” the 92-year-old says.

“나는 어쨌든 살아남았고 여전히 살아 있어요,” 92세의 그녀가 말한다.

Lee was one of the tens of thousands of teenagers and young women who were shipped to brothels run by the Imperial Japanese Army during the Second World War. The military called them “comfort women.” Most were from Korea and China, but some were also from the Philippines and other countries in Southeast Asia.

이 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일본 군대가 운영하는 사창가로 끌려간 수만 명의 10대와 젊은 여성 중 하나이다. 군대는 그들을 “위안부”라고 불렀다. 그들 대부분은 중국과 한국에서 왔지만, 필리핀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끌려온 이들도 있었다.

The House of Sharing is a care home for surviving comfort women on the outskirts of Seoul. Lee Ok-sun lives there. Busts of the home`s deceased residents are on display outside. (Adam Walsh/CBC )

나눔의 집은 서울 교외에 위치한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을 위한 요양소이다. 이옥순 씨는 거기에 산다. 나눔의 집 거주자 중 고인이 된 분들의 흉상이 밖에 전시되고 있다.

“We were not comfort women; we were forced into sexual slavery,” Lee said in a recent interview with CBC News.

“우리는 위안부가 아니었어요. 우리는 성노예로 강요받았어요,” 이 씨는 CBC 뉴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다.

After the war, Lee stayed in China for three decades before returning to South Korea. By this point, her parents had died, and she herself was listed as deceased because in 1942 she had simply vanished.

전쟁 이후, 이 씨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중국에 30년 머물렀다. 그 즈음 그녀의 부모님들은 돌아가셨고, 본인도 한국에서 1942년 실종되었기 때문에 사망처리가 되어있었다.

She was told of a communal retirement home for former comfort women on the outskirts of Seoul called the House of Sharing, and, feeling ostracized and alone, moved in. She still lives there today.

그녀는 나눔의 집이라고 불리는 서울 교외의 전 위안부 여성들을 위한 요양소에 대해 듣게 되었고, 배척당하는 것 같고 외로움을 느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오늘날도 그녀는 그곳에 산다.

Comfort women system was `regulated`

위안부 여성 시스템은 “관리되었다”

More than seven decades after the hellish experience, Lee and the fewer than 30 remaining survivors who live in the House of Sharing are still waiting for a proper apology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she says.

그 지옥 같은 경험 이후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나눔의 집에 있는 이 씨와 30명이 채 안 되는 생존자들은 여전히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In this #MeToo era, where women`s accounts of sexual assault and harassment are being listened to more than ever before, Lee says she`s still fighting to be believed.

성폭력과 성추행에 대한 여성의 증언이 이전 어느때보다 경청 되는 미투 시대에, 이 씨는 여전히 자신의 말이 신뢰받도록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The Japanese government says we are lying, and it makes me sad and angry and furious.”

“일본 정부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나를 슬프고, 화나고, 분노하게 합니다.”

A former comfort woman describes her isolation after her time as a war-time sex slave:

전 위안부 여성이 전시 성노예 이후 그녀의 고립을 묘사한다.


A former comfort woman who was used as a sex slave by Japanese soldier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describes her experience. (House of Sharing)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이용 당한 전 위안부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나눔의 집)

Despite having issued repeated apologies over the years, the Japanese government`s position in 2018 is that there`s no evidence the comfort women were taken against their will.

수년간 여러 번 사과를 표현했지만 2018년 일본 정부의 입장은 위안부 여성들이 자신들의 의사와 반해 끌려간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Prime Minister Shinzo Abe said as much during his first term in 2007, and the view has since become the official position of the government, which lobbies against international efforts to recognize what happened to the comfort women.

아베 신조 총리는 2007년 자신의 첫 임기 당시 그렇게 말했고, 그러한 입장이 그때부터 그의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되었다. 아베 정부는 위안부에게 일어난 일을 인식하려는 국제적 노력에 대항하여 로비하고 있다.

The Japanese government, led by Prime Minister Shinzo Abe, says there`s no evidence comfort women were taken against their will during the Second World War. (Issei Kato/Reuters)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들이 자신의 의사와 반해 끌려갔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During a briefing in June, an official with Japan`s Ministry of Foreign Affairs said the government has apologized repeatedly for what happened, but that it could not confirm that women were “forcefully taken away.”

6월의 브리핑 중, 일본 외무성의 한 관료는 일본 정부가 당시 일어난 일에 대해 여러 번 사과했지만, 그 여성들이 “강제적으로 끌려갔다”고는 확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The official said the comfort women system was indeed “regulated” by the military, but if a soldier had forcefully taken a woman, “they would have been punished.”

그 관료는 위안부 시스템이 군대에 의해 실제로 “관리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한 군인이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다면 “그들이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That represents a significant shift from Japan`s first apology, in 1993, which consisted of a statement that acknowledged comfort women were recruited against their will and that the military was directly involved.

이것은 1993년에 있던 일본의 첫 사과로부터의 큰 변화를 보여준다. 당시 사과문은 위안부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끌려갔음을 인정했고 군부가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었음을 인정했었다.

The government apologized for the “immeasurable pain and incurable physical and psychological wounds” the comfort women suffered.

일본 정부는 위안부 여성들이 겪었던 “측량할 수 없는 고통과 치유될 수 없는 심리적 육체적 상처”에 대해 사과했다.

The House of Sharing is considered a living museum. This section has portraits of the comfort women, as well as artifacts from their lives. (Adam Walsh/CBC )

나눔의 집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여겨진다. 이 쪽에는 위안부 여성들의 초상화와 생존 당시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Conservative politicians in Japan slammed the statement for years, insisting it includes fabrications, particularly that the women were forced to become sex slaves.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은 그 사과문이 거짓을 포함하고 있다고 수년간 비판했다. 특히 여성들이 성노예가 될 것을 강요받았다는 부분을 문제 삼았다.

Japanese media reports from 2014 quote a Japanese lawmaker telling parliament, “I heard from a former Japanese soldier that the comfort women thanked the military because they were able to send money back home.”

일본 언론은 2014년에 한 일본 국회의원이 의회에 말하는 발언을 보도한다. “나는 위안부 여성들이 집에 돈을 보낼 수 있어 군대에 고마워했다고 말한 사실을 전 일본 군인에게서 들었다.”

Call for removal of commemorative statues

기념 동상의 철거 요구

Others on the right have said the comfort women were professional prostitutes.

우익측의 다른 이들은 위안부가 전문적인 매춘부였다고 말했다.

In 2015, Japan and South Korea reached an agreement on the comfort women issue. Japan apologized again and set up a victims’ fund of about $9 million.

2015년 일본과 한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일본은 다시 사과를 했고 약 900백만 달러의 희생자 기금을 설립했다.

The agreement acknowledged the involvement of Japanese military officials and apologized to “all the women who underwent immeasurable and painful experiences and suffered incurable physical and psychological wounds as comfort women.”

그 합의는 일본군부 관료가 개입했음을 인정하고 “위안부로써 엄청난 고통스런 경험을 겪고 치유 불가능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모든 여성들”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It did not mention the term “sex slaves,” nor did it address the issue of whether girls and women were taken against their will. The deal explicitly states it is meant to solve the issue “finally and irreversibly.”

그 합의에서 “성노예‘라는 용어는 언급되지 않았고 소녀와 여성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끌려갔는지 여부의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그 협상은 이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려는 의도라고만 분명히 서술되었다.

Survivors were disappointed because they were not consulted in the negotiations. They also wanted Japan to accept legal responsibility and pay formal reparations.

생존자들은 그 협상에 있어 자신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했다. 그들은 또한 일본이 법적인 책임을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배상금을 지불하기를 원했다.

Mina Watanabe, the director and curator of the 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in Tokyo, says the legacy of Japan’s treatment of comfort women influences its treatment of women today. (Adam Walsh/CBC)

도쿄에 위치한 여성 전쟁 평화 박물관의 전시책임자이자 감독인 와타나베 미나는 위안부 여성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과거 관행이 오늘날 일본 정부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Mina Watanabe, director of Tokyo’s 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says Japan’s apologies don’t really mean anything because the government has ignored the testimony of victims and denied facts.

도쿄 여성 전쟁 평화 박물관의 감독인 와타나베 미나는 일본의 사과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의 증언을 무시하고 사실을 부정했기 때문에 실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I would say we don’t know for what acts the Japanese government apologized anymore.”

“일본정부가 어떤 행위에 대해 사과했는지 우리는 더 이상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She also points out the government has fought against activist efforts to support and recognize the women.

그녀는 또한 정부가 그 여성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아픔을 인정하려는 활동가들의 노력에 맞서 싸워왔다고 지적한다.

The government has called for the removal of statues commemorating the women in South Korea, the Philippines and the U.S. It has also threatened to withhold UNESCO funding to prevent comfort women documents from being added to the Memory of the World’s Register, a global project to preserve historical records.

일본정부는 한국과 필리핀 그리고 미국에서 이 여성들을 기념하는 동상을 제거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정부는 또한 위안부 서류가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기 위한 전세계적 계획인 세계 기록유산에 추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유네스코 기금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Impact seen today

현재에 미치는 영향력

Watanabe says the Japanese government’s goal is to rewrite history. It wants people to believe there was no forced recruitment of girls and young women into sexual slavery, and that they were all volunteers, she says.

와타나베는 일본정부의 목표가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정부는 소녀와 젊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로 모집하는 일이 없었고 그들이 모두 자원한 것이라고 국민들이 믿기를 원한다.

She says the legacy of Japan’s treatment of comfort women influences its treatment of women today. It helps explain, for example, why the #TimesUpand #MeToo movements have gained little traction in Japan.

그녀는 일본이 위안부를 대한 과거 유산이 오늘날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이것은 왜 #타임스업이나 #미투 운동이 일본에서 견인력을 거의 얻지 못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She says a pair of journalists who came forward with high-profile assault and harassment allegations faced an onslaught of online abuse for going public.

그녀는 세간의 이목을 끈 폭력과 희롱의 혐의를 제기한 몇 명의 언론인들이 공개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 온라인상의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The government of the Philippines was left in an awkward position on Jan. 11, 2018, after Japan criticised the trade partner and key aid recipient for authorising a comfort women memorial near the Japanese Embassy in Manila. (AFP/Getty Images/Noel Celis)

필리핀 정부는 마닐라 주재 일본 대사관 근처에 위안부 여성 기념비를 허가한 것에 대해 일본이 무역 동반자이자 주요 원조 수혜자인 필리핀을 비난한 후 2018년 1월 11일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Changing things in Japan won’t happen overnight, says Jeff Kingston, director of Asian studies at Temple University in Tokyo.

제프 킹스턴 도쿄 템플 대학 아시아 연구소장은 일본의 변화는 하루 밤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In a deeply patriarchal society, it’s hard to change attitudes, and the sense of male privilege is especially strong amongst the elite.”

“뿌리깊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려우며, 남성 특권 의식은 엘리트들 사이에서 특히 강하다.”

Kingston calls Prime Minister Abe a historical revisionist, and says there are mountains of evidence to support claims of former sex slaves.

킹스턴은 아베 총리를 역사 수정주의자라고 부르며 과거 성노예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말한다.

“Clearly there was coercion. If you talk to any of the former comfort women, they have heart-rending stories of how they were inducted into this system.” He says Japan’s “re-imposition of collective amnesia” only heightens the pain of Koreans, and is part of the government’s effort to make what it considers an “annoying issue” just go away.

그는 “분명 강압이 있었다. 만일 당신이 전 위안부 여성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며, 일본의 “집단 기억상실증 재발”은 한국인들의 더욱 고통을 부각시킬 뿐이며, “성가신 문제’로 여기는 것을 그저 사라지게 하려는 일본 정부 노력이라고 말한다.

International campaign

세계적 캠페인

Before he began his new post in Washington this spring, Japan’s ambassador to the U.S., Shinsuke Sugiyama, told reporters one of his priorities was to push Japan’s opposition to “comfort women commemoration statues in the U.S. and other countries.”

올해 봄 주미 일본대사로 부임하기 전 수기야마 신슈케는 자신의 우선 임무 중 하나가 “미국과 다른 나라에 있는 위안부 기념비”에 대한 일본의 반대 입장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The statues are a hot-button issue for the Japanese government. Last year, Tokyo temporarily recalled its ambassador to South Korea when a new monument was erected in Busan.

그 기념비들은 일본 정부의 뜨거운 쟁점들이다. 지난 해 일본 정부는 새로운 기념비가 부산에 설치될 당시 일시적으로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송환했다.

Another statue is found in St. Mary’s Square in San Francisco’s Chinatown. It shows three young girls holding hands on a pedestal. The girls are meant to represent those who were taken from Korea, China and the Philippines. Beside them stands a likeness of Korean activist Kim Hak-Sun, the first survivor to speak out about her experiences.

또 하나의 기념비가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메리 광장에 세워져 있다. 그 기념비는 받침대 위에 세 명의 젊은 여성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여성들은 한국, 중국, 필리핀에서 납치당한 여성들을 대표한다. 그 조각상 옆에는 자신의 경험을 생존자 중 처음으로 외부에 알린 한국의 김학선 활동가를 닮은 모습이 서 있다.

The statue was installed last year, funded by the Comfort Women Justice Coalition, a multinational grassroots organization dedicated to raising awareness.

그 조각상은 위안부 인식을 높이는데 헌신한 다국적 풀뿌리 조직인 위안부 정의연대가 기금을 마련해 지난 해에 설치되었다.

Messages of support for former comfort women sent from around South Korea and other countries on display at the House of Sharing. (Adam Walsh/CBC)

한국과 기타 국가들로부터 당도한 전 위안부 여성들을 지지하는 메시지들이 나뭄의 집에 전시되어 있다.

Coalition president Judith Mirkinson says the statue is not going anywhere, regardless of what the Japanese government wants.

위안부 정의연대 주디스 밀킨슨 대표는 그 조각상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This is not just a nationalist issue; this is a women’s issue … an issue of violence against women,” she said.

밀킨슨 대표는 “이것은 그저 국수주의적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To effect change requires isolating the Japanese government on the issue, and linking the treatment of women now with the treatment of women in the past, she says.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 문제에 있어 일본 정부를 고립시키고 과거의 여성에 대한 처우와 현재의 여성에 대한 처우를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But that could take time, which is a concern for Lee Ok-sun and her fellow survivors, who are all in their 80s or 90s.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그것이 80대와 90대인 이옥선 씨와 동료 생존자들의 우려이다.

Ahn Shin-kwon, chairman of the House of Sharing, says it’s vitally important to the surviving comfort women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acknowledge they’re telling the truth about their experience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Adam Walsh/CBC )

나눔의집 안신권 대표는 일본 정부가 2차 세계대전 중 생존 위안부 여성들이 경험한 것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인정하는 것이 이 여성들에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Ahn Shin-kwon, the director of the House of Sharing, which also acts as a museum and archive of survivors’ stories, says it’s crucial for his residents to know they’re believed.

생존자들의 이야기의 전시관이자 기록보관소 역할을 하고 있는 나눔의집 안신권 대표는, 거주하는 위안부 여성들이 하는 말이 신뢰를 받고 있음을 그들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What they fear the most is they are alive and are telling the truth, but the Japanese government is still denying and still saying they are lying,” he said.

안 대표는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살아 있고 진실을 말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부인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위안부 여성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ven with them alive, they are doing that. If they just die, then they are going to be labelled as prostitutes forever.”

그는 “그들이 살아 있는 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죽으면 그들은 영원히 매춘부 낙인 찍힐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Lee lives in the House of Sharing with about two dozen other survivors. She moved there when she returned to South Korea decades after the war because she had no surviving relatives to take care of her. (Adam Walsh)

이 씨는 약 24명의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나눔의 집에 살고 있다. 그녀는 전쟁 수십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돌봐줄 친척이 생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눔의 집으로 이주했다.

[번역 저작권자 :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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