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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키 교수, 일본 ‘납치 문제 3원칙’ 철회해야 

와다 하루키 교수, 일본 ‘납치 문제 3원칙’ 철회해야 

– 북일 관계의 가장 큰 장애는 ‘납치 문제 3원칙’
– 아베 신조, 3원칙 포기하고 협상 재개해야
– 북일 국교 정상화해야

북미 정상 회담 후, 연일 각종 매체를 통해서 납치 문제 해결을 어필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 오늘( 6월 30일)도 납치 문제를 상징하는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단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과 악수하는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납치 문제 해결 없이는 북조선과 아무런 타협을 할 수 없으며, 미국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고 꾸준히 주장한 결과,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학원 비리 때문에 떨어졌던 지지율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비서 시절부터, 북조선의 납치 문제에 관여해온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정권 때 관방장관 시절에 북조선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주목을 받고, 고이즈미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됐다. 총리가 된 후에도 자신이 총리로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런 아베 총리의 언동을 정치적인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동경대학 명예교수인 와다 하루키 교수는 잘라 말한다.

지난 6월 25일, 동경에서 있었던 심포지엄에서 와다 교수는 북미 회담 후에 일본의 역할을 얘기하며, 지금 북일 간의 협상을 가로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는 아베 정권이 내걸고 있는 ‘납치 문제 3 원칙’이며, 일본은 이 3 원칙을 포기하고 하루빨리 북조선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의 내용을 전한 가나가와 신문에 의하면, 와다 교수는 우선 한반도를 비롯 북동 아시아 전역에 감돌았던 전쟁의 공포를 해소했다는 의미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했다. 남북, 북미 회담 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북조선에 협력과 지원을 표명하고 있는데도, 일본만 유일하게 북조선에 대한 압력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조선의 협상으로 휴전 상태가 평화 체제로 전환될 경우, 일본은 지금까지 의식을 못 했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건, 한국 전쟁 당시 (일본은 자기들의 의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일본도 전쟁에 참여했었고, 북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을 전쟁 상대로 간주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을 것이고, 70년대에 불법적으로 일본 국민을 납치했을 당시에도 북조선은 전쟁 하에서 적국에 대해 펼친 공작이라는 인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일 국교 정상화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과거 청산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이후의 북일 간의 반 전쟁상태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의미도 갖는다고 와다 교수는 말한다.

지금까지는 북일 국교 정상화를 좋게 생각 안 하는 미국의 반대도 있었지만,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방침도 전환됐다. 와다 교수는 남북, 북미가 만들어 낸 새로운 지평 위에서 일본도 하루 빨리 북조선과의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6월 30일 가나가와 신문 기사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 김명호

기사 바로가기: https://bit.ly/2KugqA9

米朝会談と日本の役割、国交正常化が解決の道
북미 회담과 일본의 역할, 국교 정상화가 해결의 열쇠

和田春樹 1938年大阪市生まれ。東大卒。東大教授を経て名誉教授。専門はロシア史、現代朝鮮研究。著書に「北朝鮮現代史」など。

와다 하루키 1938년 오사카 생. 동경 대학 졸업. 동경대 교수 후 명예 교수로. 전문은 러시아 역사, 현대 조선 연구. 저서 ‘북조선 현대사’ 등.

朝鮮戦争も拉致事件も冷戦という対立が生んだ悲劇だった。朝鮮戦争が始まった6月25日に合わせて都内で開かれたシンポジウム。米朝首脳会談に平和への一歩を見る和田春樹・東大名誉教授は日朝国交正常化交渉の再開とその前になすべきことを訴えた。

한국전쟁도 납치 사건도 냉전이라는 대립에서 생겨난 비극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에 맞춰서 동경에서 열린 심포지엄. 북미 정상회담 속에 평화를 향한 첫발을 봤다는 와다 하루키 동경대 명예교수가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의 재개와 그 전에 해야 할 일을 논했다.

12日の米朝首脳会談は日本海、北朝鮮、北東アジアを覆ってきた戦争の恐怖、核戦争の恐怖をひとまず終わらせたという意味で大きな歴史的意義を持つ。平和と和解、共生と協力の世界に向かう過程の始まり、第一歩と評価できる。

12일에 있었던 북미 정상회담은 동해, 북조선, 동북아시아에 감돌았던 전쟁의 공포, 핵전쟁의 공포를 끝냈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평화와 화해, 공생과 협력의 세계로 향하는 과정의 시작, 첫발이라 평가할 수 있다.

北朝鮮が直面した戦争の危機感は、日本海を舞台にした原子力空母、原子力潜水艦、イージス艦からなる米艦隊との対峙から発生している。朝鮮半島の非核化だけでなく日本海の非核化、平和化が必要になる。言うまでもなくその実現は日本列島、沖縄の平和化、非核化と切り離せない。

북조선이 직면한 전쟁의 위기감은 동해의 무대로 한 원자력 항공모함, 원자력 잠수함, 이지스함으로 구성된 미 함대와의 대치에서 발생한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동해의 비핵화, 평화화가 필요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에는 일본 열도와 오키나와의 평화화와 비핵화도 무관하지 않다.

従って、米朝交渉でまとめられるべき非核化の最終プログラムは、朝鮮半島と日本海、日本列島全体を包含する軍縮プログラムになるほかない。在韓、在日米軍についても全面的な検討が行われなければならず、米朝2国間の交渉から北東アジアの日本、韓国、中国、ロシアを加えた6か国の協議に拡大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따라서, 북미 협상에서 언급되어야 할 비핵화의 최종 단계에서는, 한반도와 동해, 일본 열도 전체를 포함한 군축 프로그램이 될 수밖에 없다. 재한, 재일 미군에 관해서도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북미 두 나라의 협상에서 동북아시아의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6개국의 협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米朝両国の努力に対して韓国、中国は金正恩朝鮮労働委員長との首脳会談を重ね、協力、支援する動きを始めている。ロシアも外相を平壌に派遣して協力を申し出ている。日本だけ、安倍晋三首相と河野太郎外相がトランプ大統領の方針転換に背を向け、北朝鮮への圧力をなお高め、CVIDを受け入れさせるという敵対的思考の殻の中に閉じこもっている。

북미 양국의 노력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협력과 지원을 시작하고 있다. 러시아도 외무장관을 평양으로 보내서 협력을 제안했다. 일본만, 아베 신조 총리와 고노 다로 외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 전환에 등을 돌리고, 북조선에 대한 압력을 더욱 높이고, CVID를 주장한다는 적대적 사고의 틀에 갇혀있다.

もちろん状況を考えれば、日朝首脳会談への意欲を表明しないわけにはいかず、安倍首相も言及はしている。しかし、会談の目的は拉致問題の解決のためだという表明をいまもってやめていない。国内メディアも拉致問題の解決が最重要だという安倍首相の言葉を繰り返すこと以外をしていない。ここで、第1次安倍内閣発足時の2006年に打ち出された「拉致問題三原則」が、日本政府と国民の北朝鮮に対する政策と認識を凍結させていると指摘しなければならない。

물론 상황을 생각하면,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의욕을 표명 안 할 수는 없어서 아베 총리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회담의 목적은 납치 문제 해결이라는 주장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국내 언론도 납치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는 아베 총리의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이 시점에서 제1차 아베 정권 때인 2006년에 내놓은 ‘납치 문제 3원칙’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의 북조선에 대한 정책과 인식을 동결시키고 있다고 지적해야 한다.

戦争状態下に拉致
전쟁 상태에서의 납치

日本は朝鮮における侵略と植民地支配の歴史を清算し、平和的で正常な国家関係を樹立するための日朝国交正常化交渉を1991年に開始した。2年間で8回の会談を行ったところで決裂し、以後8年間が無為に過ぎた。2000年に再開されるも3回の会談でまた中断。そして02年に日朝首脳会談が行なわれ、日朝平壌宣言の合意が成立した。

일본은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적이고 정상인 국가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북일 국교 정상화 협상을 1991년에 시작했다. 2년 동안 8번의 회담이 열렸으나 결렬되었으며 그 후, 8년간은 진척이 없었다. 2000년에 재개했지만 세 번 만에 다시 중단. 그리고 2002년에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고, 북일 평양 선언의 합의가 성립됐다.

ここでは、国交正常化の早期実現やその後の経済協力の実施、関係国間の対話を促し、核・ミサイル問題の解決を図ることが確認された。だが、北朝鮮政府が13人の日本人拉致の事実を認めて謝罪し、「8人死亡」と発表したことが世論の反感を掻き立て、交渉は1回で止まってしまった。04年に第2回首脳会談が行なわれたものの、横田めぐみさんの遺骨を巡る対立から四たび決裂状態に陥る。かくして開始から28年になる国交正常化交渉は未だ妥結に至らず、日朝間の歴史清算はなされず、国交は樹立していない。北朝鮮は国連加盟193か国のうち、日本が国交を持たない唯一の国として存在している。

이 선언에서는 국교 정상화의 조기 실현과 이어지는 경제 협력 시행, 관계국과의 대화를 촉구하고,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북조선 정부가 13인의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고 사죄, ‘8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하자 반발 여론이 일어나 협상은 한 번으로 끝나고 만다. 2004년에 제2차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요코타 메구미 씨의 유해를 둘러싼 대립 때문에 다시 결렬 상태가 되고 만다. 이렇게 해서, 시작부터 28년이 지난 국교 정상화 교섭은 아직도 타결을 못 하고, 북일 간의 역사 청산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국교도 수립되지 않았다. UN 가맹국 193개국 중, 북한은 유일하게 일본과 국교가 없는 나라이다.

南北と米朝の間の交渉により、朝鮮戦争の休戦状態を真の平和体制に転換させることが話題になっている。このことは、日本にも従来意識されることのなかった課題を突き付けている。

남북과 북미 사이의 협상으로, 한국 전쟁의 휴전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일본에 지금까지 의식하지 않았던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朝鮮戦争の始まった1950年6月25日、敗戦5年後の日本は米軍の占領下にあった。日本にいた米軍はただちに韓国を助けるため出撃し、日本へ移動してきた空軍と海軍は日本を基地にして北朝鮮軍を攻撃した。米軍は国連軍の主力となり、東京に国連軍司令部が設立された。横田と嘉手納の米軍基地にはB29が配備され、連日出撃し爆撃を加えた。日本の民間船員は米軍の戦車上陸船に乗り込み、仁川上陸作戦を決行する米海兵隊を運んだ。海上保安庁の掃海艇は上陸作戦前夜に機雷除去にあたり、事実上の戦争行為に直接参加した。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6월 25일, 패전 후 5년째인 일본은 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일본에 있었던 미군은 바로 한국을 구하기 위해 출격했고, 일본에 이동한 공군과 해군은 일본을 기지로 삼아 북조선군을 공격했다. 미군은 UN군의 주력이 되어, 동경에 UN군 사령부가 설립됐다. 요코타와 가데나 미군 기지에는 B29가 배치되고, 연일 출격하여 폭격을 가했다. 일본의 민간인 선원은 미군의 전차 상륙함에 승선해서, 인천 상륙 작전을 결행하기 위한 미 해병대를 날랐다. 해상 보안청의 소해정은 상륙 작전 전야에 기뢰 제거를 담당, 사실상 전쟁에 직접 참여했다.

このように日本は米軍の戦争を支援したが、それは敗戦国として占領軍の司令官命令に無条件で従う誓約していたからで、自国の意思決定により戦争に協力したわけではないと説明されている。だが、北朝鮮側からすれば、日本は米国との戦争で最重要な基地国家であり、日本との関係は戦争状態にあったと捉えていたのだろうと思う。

이렇듯, 일본은 미군의 전쟁을 지원했으나, 그건 패전국으로서 점령군 사령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지, 일본의 의지로 전쟁에 협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기지 국가이며, 일본과의 관계도 전쟁 상대로 생각했을 것이다.

北朝鮮にとって53年の休戦協定締結後も、この認識は続いていたと考えられる。北朝鮮の工作機関が70年代から一定期間、日本国民を不法に拉致したのは、北朝鮮側が日本との関係は戦争状態にあると考えていたからだとみることができる。従って、国交正常化とは歴史の清算だけでなく、朝鮮戦争から始まった日朝間の半戦争状態に終止符を打つことも意味する。それはまた、今日の課題である朝鮮半島における平和体制構築の一環になるといえる。

북조선은 53년에 휴전 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이런 인식은 계속됐을 것이다. 북조선의 공작기관이 70년대부터 일정 기간, 일본 국민을 불법으로 납치한 것은 북조선이 일본과의 관계를 전쟁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교 정상화는 역사 청산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된 북일 간의 반전쟁 상태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뜻도 있다. 그것은 또한, 오늘의 과제인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의 일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交渉による解決を
협상을 통한 해결을

NPO법인 Peace Depot 특별 고문, 우메바야시 히로미치(왼편)와 함께 ‘납치 문제 3원칙’의 포기를 호소하는 와다 하루키 씨. (6월 25일, 동경 지요다구 연합회관)

日朝国交正常化交渉を再開するにあたり、日本側としてなさねばならないのは安倍首相が掲げる拉致三原則を放棄することだ。この原則は(1)拉致問題は日本の最重要課題 (2)拉致問題の解決なくして国交正常化なし (3)拉致被害者は全員生きており、全員を生還させることが拉致問題の解決だ- とするものだ。

북일 국교 정상화 협상을 재개하기 앞서, 일본 측이 해야 할 일은, 아베 총리가 내세우는 납치 3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다. 3 원칙이란 (1) 납치 문제는 일본의 최우선 과제다, (2)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는 국교 정상화는 없다, (3) 납치 피해자는 전원 살아 있으며, 전원의 생환이 납치 문제의 해결이다라는 내용이다.

拉致問題が重要な課題であることには誰も反対しない。しかし、日本の最重要課題であり、内閣を挙げて取り組むというのは、拉致問題での「活躍」が日米の政界で認められ、宰相の座に上り詰めた安倍首相のパフォーマンスにすぎない。

납치 문제가 중요한 과제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전 정부가 총력을 다 해서 임한다는 것은 납치 문제에서의 ‘활약’이 미국과 일본의 정계에서 인정받아, 수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아베 총리의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第一の原則は、第二の原則のため置かれたものといえ、第二の原則は、国交正常化を目指していく中で拉致問題の解決を進めるという方針を修正するものだった。それは国交樹立に反対する米政府や日本の一部勢力の希望に沿うものでもあった。三原則のうち、最も重要なのは第三の原則、拉致被害者は全員生きているという断定だ。被害者家族の心情としては、このように言うことは十分に理解できる。しかし、拉致を実行した北朝鮮政府から「8人死亡」と通告された日本政府がこのように言うことは、北朝鮮政府がうそをついている、信頼できないと言うのに等しく、北朝鮮政府との外交交渉の扉を閉ざすことと同義だ。

첫 번째 원칙은 두 번째 원칙을 위한 것이지만, 두 번째 원칙은 국교 정상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납치 문제도 해결한다는 방침을 수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미국 정부나 일본 내의 일부 세력의 희망에 의한 것이다. 3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원칙인 납치 피해자는 모두 살아있다고 단정하는 부분이다. 피해자 가족의 심정으로는 이렇게 믿고 싶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납치한 북조선 정부가 ‘8명 사망’이라고 하고 있는데도 일본 정부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북조선 정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과 같으며, 북조선 정부와의 외교 협상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과 같다.

このような考え方が今日まで日本を縛り、日本の世論とメディアを縛ってきた。日朝国交正常化を妨げ、拉致問題解決のための一層の交渉を不可能にしてきた。北朝鮮が再調査を約束した20014年のストックホルム合意が履行をみなかったのも、結局は三原則があったからだった。

이런 생각이 지금까지 일본의 발목을 잡고, 일본 여론과 언론을 묶어 놓았다. 북일 국교 정상화를 가로막고,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마저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북조선이 재조사를 약속한 2014년 스톡홀름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것도, 결국은 이 3원칙 때문이었다.

従って第一の急務は三原則を検討し、捨て去ることだ。そうしてこそ国交正常化交渉の再開を望むことができ、交渉を進める中で拉致問題解決のための一層の交渉を進められる。国交正常化に対する米国の反対はもはや取り下げられた。 日本は南北、米朝首脳会談が切り開いた新しい地平の上で、速やかに交渉を再開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れは北朝鮮に新しい安全保障を与える道でもある。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3원칙을 검토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교 정상화 협상을 재개할 수 있고,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한층 의미 있는 협상을 할 수 있게 된다. 국교 정상화에 대한 미국의 반대도 이젠 없어졌다. 일본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만들어 낸 새로운 지평에서 하루빨리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 그것은 곧 북조선에 새로운 안전 보당을 부여하는 길이기도 하다.

[번역 저작권자 :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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