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모사드와 말하는 개
S. Macho CHO
machobat@gmail.com
지난 4월 23일 토요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십여 발의 총성이 평온한 주말 아침 주택가를 깨웠다. 오토바이 엔진 굉음이 멀어져 갔다. 희생자는 가자(Gaza)지구 출신 35세 팔레스타인 과학자 파디 알-바츠(Fadi al-Batsh) 박사였다. 그는 전기 공학 시스템 전문가로 여러 논문도 쓴 팔레스타인의 뛰어난 차세대 과학자로 국제회의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하마스의 가장 중요한 요원 중 하나였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표적이었다고 그의 가족과 하마스(Hamas) 관계자는 모사드를 의심하며 이른 시일 내에 말레이시아 당국이 수사해 밝혀달라고 했다. 전직 이스라엘 비밀첩보원이자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암살 공작을 다룬 저서 ‘Rise and Kill First’를 쓴 로넨 베그만은 알-바츠 박사 암살사건은 모사드 작품이라 단언했다. 오토바이를 이용, 처리 후 도주하는 것은 모사드가 국외에서 흔히 하는 암살 공작방식이란다.
모사드는 오래전부터 하마스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외국에서 이스라엘에 대항할 무인 항공기나 수중 이동기구를 개발하고, 무기 제조 기술을 수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바츠 박사는 말레이시아에서 무기 체계를 연구하고 하마스를 대리해 북한 기관과 모종의 무기 거래에도 관여했다.
박사를 암살한 용의자 2명은 아직 말레이시아 내에 있을 거라고 말레이시아 경찰은 보고 있다. 범행에 쓰인 오토바이는 현장에서 가까운 호수 근처에 버려졌다. 당시 몽타주가 공개된 중동계 또는 유럽계인 용의자는 정보기관에 고용된 전문 청부살인업자일 수도 있다. 물론, 이스라엘 정부는 관련 없다고 부인했다.
‘뮌헨(Munich)’이란 영화가 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이 선수촌에 난입,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살해했다. 그 후, 모사드가 보복작전으로 유럽에서 관련자들을 찾아 암살한다는 줄거리다. 그런데, 목표 중 한 명인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고위급 인사를 모사드가 제거하려는 순간, 갑자기 술 취한 미국인 관광객들이 시비를 거는 통에 실패한다. 그 고위급 인사를 보호해 준 건 미국 정보기관 CIA였다. ‘이제 그만 적당히 하지’ 란 메시지였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다양한 정보기관을 운영한다. 그중에서도 언론과 영화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지만, 그 실체는 노출 안 된 정보기관 중 대표적인 곳이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다. 작년 예루살렘 포스트에 이스라엘 전직 군 장성이 CIA와 모사드 간의 비밀을 폭로한 흥미로운 기사가 떴다.
2002년 이스라엘 해군과 공군이 이란에서 출발한 팔레스타인 소유 대형선박을 수색해 보니 이슬람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Hezbollah)와 관련 있는 장거리 로켓포 등 50톤 규모의 중화기가 불법으로 선적됐단다. 만약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손으로 넘어갔다면, 이스라엘 주요 도시와 공항이 장거리 로켓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 정보를 준 배후는 CIA였다.
모사드는 팔레스타인이 중화기를 밀수할 것이라는 첩보의 퍼즐을 풀어야 했다. 날짜도 배 이름도 출발지도 모르니 오가는 수많은 선박을 다 조사할 수도 없었다. 또, 선박은 이름과 선적국가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CIA가 수집한 수많은 첩보 속에서 핀셋으로 선박명 첫 글자를 짚어낸 이는 모사드였다.
모사드의 알-바츠 박사 암살 작전은 이랬다. 이스라엘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되는 박사를 모사드가 가장 빠르게 제거해야 할 목표로 정했다. 모사드에서 목표로 정하면, 정보 위원회, 즉 이스라엘 정보기관 승인을 받는다. 작전에서 법적 승인은 필요 없다. 총리는 국방부 등 한두 관련부처 장관과 의논한 후 승인한다. 그러면, 모사드는 목표에 따라 며칠부터 몇 년간 계획과 제거방법을 짜고 실행한다.
전설적인 이스라엘 공작원이 창설한 이스라엘 북서부의 항구도시명을 딴 시저리어 부대(Caesarea unit)가 있다. 공작원을 훈련해 전 세계로 보내고, 주요 목표의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하는 게 임무다. 그중, 총검이란 뜻의 키돈(Kidon)팀은 암살과 특수공작 전문가들로 구성 실행 임무를 맡는다. 목표는 팔레스타인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시리아, 레바논, 이란, 유럽 등 다양하다.
모사드와 친밀한 중동국가의 정보기관도 있다. 요르단과 모로코, 이집트 같은 중동 내 친 이스라엘 국가들이다. 요르단 수도 암만은 모사드의 전통적인 활동지역이다. 1997년 모사드는 암만에서 하마스 지도자 카레드 메샬에게 독을 뿌렸다. 그 사실을 안 후세인 국왕이 즉시 이스라엘과 단교 조치를 공표했다. 그러자, 모사드는 바로 해독제를 보내 메샬의 목숨을 살렸고, 외교 관계는 다시 회복될 수 있었다.
모로코 하싼 국왕은 자국 내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모로코에 고급정보와 기술들을 제공했고, 모로코 수도 라밧에 모사드 지부를 세울 수 있었다. 심지어 모로코는 1965년 아랍 연맹 정상회의가 열릴 때 수상과 군 고위층 숙소에 모사드가 도청하도록 묵인까지 했다.
CIA는 암살 공작을 쉽게 하는 모사드와 다르게 암살 공작 등에 법적인 제약이 많다. CIA 법무 책임자, 법무부, 백악관 법무 담당 등의 다양한 의견 통일과 대통령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전직 CIA 관계자에 따르면, 제약 장치가 많아 암살을 계획 실행하기 어렵단다. 그래서, CIA는 모사드에게 정보를 흘리고 모사드는 피를 묻히는 역할을 한다.
공식적인 기록만 봐도 1956년부터 모사드는 전 세계를 무대로 무자비한 암살 납치 공작 활동을 벌였다. 구소련에서 비밀문서를 훔쳤고, 아르헨티나에서 고위 나치 전범자를 자국으로 납치해 전범 법정에 세웠다. 동유럽에선 전쟁범죄자를 암살했고, 이란에서 미그-21기를 훔쳐 이스라엘로 가지고 갔다. 우간다 공항에서 102명의 인질 구출 작전도 성공했고, 핵무기 과학자 여러 명을 암살했고, 이라크 원자력 시설을 폭격해 파괴했다. 에티오피아에 살던 8천여 명의 유대인을 이스라엘로 이주시켰다.
1986년엔 영국으로 망명해 원자력 기밀을 누설한 이스라엘 원자력 전문가를 여성 요원을 이용 이스라엘로 납치해 반역죄로 처벌했다. 이라크에서 스커드 미사일을 개량한 과학자와 PLO 정보부 수장을, 몰타에서 이슬람 지하드 단체와 자살폭탄 개발자를 암살했다. 2004년 시라아에서 하마스 지도자, 4년 후엔 헤즈볼라 지도자를 암살했다. 두바이 호텔 등에서 하마스 요원들과 과학자를 암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가자 지구, 터키와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하마스 요원들 간의 모든 통신내용은 모사드가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암살당한 이스라엘 적국 지도자들의 위치와 동선도 이스라엘의 촘촘한 정보망 덕이었다. 그러나, 종종 엉뚱한 인물을 암살해 외교 문제로 비화하고, 희생자 가족과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합의해 공작원을 석방했고, 공작원 신상이 외부에 바로 노출되는 등 실수도 있었다.
모사드는 CIA가 생긴 지 2년 뒤인 1949년 말 기존의 군 정보기관(Aman)과 국내 첩보기관(Shin Bet) 등과 공동작전을 위해 당시 총리의 명령으로 설립됐다. 전 현직 특수부대원 중에서 선발된 경험 많은 전문가들로 구성했다. 그쯤 미국 정보기관원들이 중동에서 비밀 또는 암살 공작 중 타국 정보기관 등에 노출되고 체포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모사드는 더 강력한 훈련과 기술로 분명한 첩보망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작 전문가는 독일 슈피겔지에, 모사드가 목표로 암살한 사람 중 무고한 사람들이 꽤 많다. Intifada(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투쟁) 기간 중 모사드는 하루에 4~5명의 무고한 팔레스타인사람을 암살했다, 고 증언했다.
‘현명한 지도자가 없으면 국가가 무너지고, 조언자가 많으면 안전하다(Proverbs 11:14 Where there is no wise guidance, a nation falls, but in an abundance of counselors there is safety)’가 모사드 표어다. 구약 경전 잠언 11장 14절을 정보기관의 표어로 삼는 것은 유대인들이 선민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을 방문하면, 입구에서 안내하는 이스라엘 직원들이 있는데 우리말을 너무 유창하게 잘한다. 그들이 모사드 요원들인데 외국으로 파견 나가려면 몇 년간 파견국의 언어와 풍습 등을 완벽하게 익힌단다.
한 사내가 예루살렘 주택가를 지나가다 한 집 대문에 ‘말하는 개 팝니다’ 광고를 봤다. 곧바로 주인에게 개를 사고 싶다고 하자, 뒤뜰로 가보란다. 뒤뜰에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앉아있다.
‘말할 줄 알아?’ 사내가 묻자,
‘당연하지’하고 개가 답한다.
‘그럼 살아온 이야기를 해봐’ 사내가 말하자,
개는 답했다,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안 때는 아주 어릴 때였고 뭔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모사드 요원에게 내 재능을 말했지. 그리곤, 진짜 바빴어. 공작원, 테러리스트, 각국 정상 등이 회의를 할 때 난 같은 방에 그냥 앉아 있었지. 아무도 개가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나는 모사드의 가장 유능한 비밀요원으로 8년간 일했어. 그런데, 너무 힘든 비밀임무라 피곤해서 좀 더 쉬운 직업을 택했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다른 임무를 맡았어. 테러용의자 가까이 앉아 대화를 듣는 거지. 그 덕에 중요한 첩보를 알아내 훈장도 여러 개 받았어. 그 당시 결혼도 했고 새끼도 많이 낳았지. 그리고, 지금은 은퇴했어.’
사내는 흥분해서 주인에게 당장 개를 사고 싶다고 하자, 주인은 ‘10불만 내라’고 했다.
‘저렇게 대단한 개를 왜 그렇게 싸게 파나요?’ 사내가 묻자,
주인은 ‘왜냐면, 저 개는 거짓말을 잘해요. 모사드에서 일한 적이 없어요.’
[저작권자 :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