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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88이 격차의 시작이었지만 평창은 통합의 시작되길

NYT, 88이 격차의 시작이었지만 평창은 통합의 시작되길 
– 88올림픽 이후 남한,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 급속한 성장
– 북한, 폐쇄정책과 김씨 일가 세습 여전, 핵개발로 고립자초 
– 평창올림픽, 단일팀 구성 등 대화와 긴장완화의 신호 

NYT가 통계 및 대조적인 사진 자료를 통해 88올림픽 이후 급격하게 벌어진 남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의 격차에 대해 보도했다. 남한은 88올림픽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며 급속히 산업화된 데 비해 북한은 침체일로를 걸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자료를 인용한 수출품의 비교에서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등 첨단 산업 위주인데 비해 북한은 아직도 1차 산업 수준에서 머물고 있어 심각한 대조를 보였다. 중국과 베트남이 같은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소련의 붕괴에 영향을 받아 재빨리 개방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나 북한은 여전히 폐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남한이 케이 팝이나 드라마로 아시아 최대의 문화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한 이 즈음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국제 사회에서 외면받으면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것도 대조적인 모습으로 꼽았다.

기사는 이 원인의 하나로 정치적 스탠스의 차이로 보고 있다. 1988년을 기점으로 북한은 아직도 김씨 일가가 지배하고 있으며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 비해 한국은 군부지배를 벗어나 드디어 권위적인 정부를 온 국민의 평화적인 촛불혁명으로 물러나도록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소외된 은둔자 김정은과 국제적 동맹 강화를 약속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예로 들면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상할 수 없었던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남북한의 격차를 좁힐 순 없지만 이전의 역사를 공유하는 남북한이 서로 대화와 화합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를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2Eqn86U

How South Korea Left the North Behind

한국은 어떻게 북한을 제체고 앞서게 되었나

By MOTOKO RICH, CHOE SANG-HUN, AUDREY CARLSEN and MEGAN SPECIA FEB. 6, 2018

Joe Patronite/Getty Images

In 1988, the last time South Korea hosted the Olympics, North and South Korea were more alike than different, separated by an arbitrary line yet joined by history, language and the bonds of family.

한국이 지난 번 올림픽을 개최했던 1988년 남북한은 임의적인 선으로 분단되었지만 역사, 언어 및 가족유대로 하나가 되어, 서로 다르지 않고 비슷했다.

Both Koreas had come a long way, emerging from colonial rule and rebuilding their economies after a devastating civil war.

남북한 모두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끔찍한 내전을 겪은 후 경제를 재건하며 먼 길을 온 터였다.

But the Olympics in Seoul in 1988 ended up being a turning point. Over the past 30 years, the two countries have diverged sharply — economically, politically and culturally.

그러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결국 전환점이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남북한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급격하게 달라졌다.

South Korea rapidly industrialized, growing at one of the fastest rates in the world. The North stagnated.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급속히 산업화되었다. 북한은 침체되었다.

Source: Maddison Project Database. Data is estimated on the economies of the regions that would become North and South Korea. The Korean Peninsula was formally divided in 1945.

출처: 메디슨 프로젝트 데이타베이스.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경제 데이터. 공식적으로 한반도는 1945년 분단되었다.

The South shed its military dictatorship and opened up to the world. The North remained isolated and authoritarian, and endured a devastating famine that killed an estimated 2 million people, according to some estimates.

한국은 군부독재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 북한은 고립된 독재 국가로 남았으며, 일부 추정에 의하면 2백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끔찍한 기근을 겪었다.

Life expectancy 기대수명
Source: The World Bank(출처: 세계은행)

South Korea now exports Samsung phones, Hyundai cars and popular soap operas. North Korea, hamstrung by sanctions, still relies on exports of coal, clothing and shellfish.

지금 한국은 삼성폰, 현대차 및 인기 있는 드라마를 수출하고 있다. 북한은 제재에 묶인 채로 여전히 석탄, 직물과 어패류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Source: The 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 2015
출처: 2015년 경제적 복잡성 관측소(OEC)

In 1988, North Korea did not even participate in the Seoul Olympics, and it mounted a deadly terrorist attack 10 months before the Olympics. On Friday, its delegation will march under a single flag with the South Korean team at the opening ceremonies of the Winter Olympics in Pyeongchang.

북한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으며, 올림픽 10개월 전 치명적인 테러공격을 가했다. 금요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북한 대표단은 한국 대표팀과 함께 단일기를 들고 입장할 것이다.

The display of athletic unity, however, belies the vast gap that has opened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three decades since the Seoul games.

그러나 스포츠 부문에서 하나가 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간 남북한 사이에 벌어진 엄청난 격차를 감추지는 못한다.

Other Communist countries in Asia, including China and Vietnam, saw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n 1991 as a warning, and they quickly reformed their economies and opened their markets. The North remained closed.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의 다른 공산주의 국가는 1991년 소련 붕괴를 경고로 받아들였으며 재빨리 국가 경제를 개혁하고 시장 개방을 하였다. 북한은 여전히 폐쇄적으로 남아 있었다.

It pursued the development of nuclear weapons and long-range missiles, making it an international pariah. Although North Korea’s economy started to grow moderately in recent years, devastating sanctions imposed by the United Nations prohibit it from selling its leading exports, and the economy could be shrinking again.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며 국제사회에서 외면받았다. 북한 경제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지만, UN이 북한의 주요 수출 품목 판매 금지라는 절망적인 제재 조치를 가하여 북한 경제는 다시 하락세를 맞이할 수도 있다.

When the Soviet Union collapsed, the North’s economy soon followed. Floods and drought compounded the situation, leading to a devastating famine. Food in the North is still rationed, with the best goods distributed only to a small group of elites with government connections.

소련이 붕괴하자 북한의 경제도 바로 영향을 받았다. 당시 홍수와 가뭄까지 더해져 기근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북한의 식량은 아직도 제한적으로 배급되고 있으며, 최고급 제품들은 정부와 인맥이 있는 소수 엘리트 계층에만 지급된다.

By the time of North Korea’s famine, South Korea had become a booming cultural capital, exporting K-pop, its answer to American boy bands, to its former adversaries, China and Japan.

북한이 기근 문제를 겪을 때 쯤, 남한에서는 문화 중심지로 호황을 누리며 과거의 적대국인 중국과 일본에 미국의 소년 밴드에 해당하는 자체 K팝을 수출하고 있었다.

Associated Press; MBC via YouTube

South Korea became Asia’s leading exporter of culture — producing music, movies and television dramas.

한국은 아시아 최대 문화 수출국이 되었으며, 음악, 영화, TV 드라마 등을 제작했다.

At one time, both countries could afford to build intricate subways beneath their capitals. But a decade after the Seoul Olympics, only one government could afford to keep its trains running regularly.

한때 남북한 모두 수도에 복잡한 지하철망을 건설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 이후 10년이 지나자 둘 중 한 정부만이 지하철을 정기적으로 운영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Pristine and ornate as a national museum, the Pyongyang subway system is little used. Seoul’s subway stations are capitalist showcases plastered with movie posters and makeup ads.

국립박물관만큼 깨끗하고 화려한 평양의 지하철 시스템은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서울 지하철 역은 영화 포스터와 화장품 광고 등으로 뒤덮인 자본주의의 진열장이 되고 있다.

Patrick Aventurier/Getty Images; Chung Sung-Jun/Getty Images

Built to showcase North Korean industry and double as atomic bomb shelters, the stations of the Pyongyang metro are decorated with revolutionary propaganda. The train cars, which have not be upgraded in decades, remain mostly empty.

북한 산업을 과시하고 수소 폭탄 대피소로 겸용하기 위해 세워진 평양 지하철역은 혁명 선전광고가 가득하다. 수십 년 간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지하철 객실은 거의 텅 비어있다.

Virtually all of North Korea’s early success – including its subway system – as well as its later misfortunes can be attributed to the country’s ruling family, the Kims.

사실상 북한이 초기에 거둔 거의 모든 성공(지하철 시스템 포함)은 후기의 불운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지배하는 김씨 가문의 탓이다.

The same family that ruled North Korea in 1988 rules it today. And the same authoritarianism pioneered by the country’s founder, Kim Il-sung, is continued by his grandson, Kim Jong-un.

1988년에 북한을 지배했던 바로 그 가문이 지금도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북한을 세운 김일성이 이끈 독재체제는 손자인 김정은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In the North, all public gatherings are organized by the state. In the South, people are free to protest against the government.

북한에서 모든 공공 모임은 국가에서 조직한다. 남한의 경우 국민들은 자유롭게 반정부 시위를 벌인다.


Korean Central News Agency; Jeon Heon-Kyun/European Pressphoto Agency

At the time of the Seoul Games, South Korea had recently emerged from military dictatorship. Just eight years earlier, South Korean military forces massacred students and citizens protesting authoritarian rule.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로부터 막 벗어난 참이었다. 겨우 8년 전에 한국 군부는 계엄령에 항의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학살했다.

When huge student and labor protests rocked South Korea again in 1987, the government deployed riot police officers and tear gas before eventually agreeing to democratic reforms.

1987년 대규모 학생과 노동자 시위가 한국을 뒤흔들자 정부는 진압경찰과 최루가스를 투입했지만 이후 결국 민주적 개혁에 합의했다.

Just over a year ago, protesters held candlelight vigils vigils every weekend for months to demand the impeachment of the country’s president, Park Geun-hye. The protests, which eventually led to Ms. Park’s removal from office, were uniformly peaceful.

단지 1년 남짓한 과거,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몇 달 동안 매주말마다 촛불시위를 벌였다. 결국 박 대통령을 직위에서 끌어내린 이 시위는 한결같이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Central to the politics of each country in recent years has been the North’s steadfast pursuit of nuclear weapons, which has led to sanctions and isolation.

최근 몇년동안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확고한 추진이 각국 정치의 중요사안이었는데 이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고립으로 이어졌다.

Kim Jong-un, the North’s leader, is a veritable recluse who has alienated much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South Korea’s president, Moon Jae-in, has pledged to strengthen international alliances.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은 국제사회에서 소외된 진정한 의미의 은둔자이다. 반면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적인 동맹 강화를 약속했다.


KRT, via Associated Press; Pool photo by Jorge Silva

With the North participating in this month’s Games, will the two Koreas now begin to converge — or is it too late?

이번 달에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가운데 바야흐로 남북한이 통합되기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너무 늦은 것일까?

Just a few weeks ago, the idea of the North participating in Games would have been unthinkable. Mr. Kim spent much of 2017 developing and testing bombs and ballistic missiles in defiance of international demands.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저항하여 폭탄과 탄도미사일을 시험하며 2017년의 대부분을 보냈다.

Now, President Moon Jae-in of South Korea says he hopes the Pyeongchang Olympics could end a stalemate and propel the countries to talks.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교착상태를 끝내고 대화를 시작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In a sign of the easing tensions, the countries will not only march together during the opening ceremonies but will also compete as a single unified team in women’s ice hockey.

긴장 완화의 신호로, 남북한은 개회식에서 함께 행진할 뿐만 아니라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단일팀으로 뛸 예정이다.

Ultimately, two countries that appear so different, even from space — where the lights of the South far outshine those of the North — have a shared history much longer than the three decades between Olympics. These Games may be a chapter in that history, but they are far from the last one.

궁극적으로 남북한은 우주 공간에서 볼 때조차 남한의 불빛이 북한을 압도하듯 서로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두 차례의 올림픽 사이 30년의 간격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이 두 올림픽은 그 역사의 한 장이 될수 있을지 모르나 마지막 장은 결코 아니다.

Satellite imagery from NASA

Correction: Feb. 6, 2018 
An earlier version of this article misstated the timing of a terrorist attack by North Korea. It occurred 10 months before the 1988 Seoul Olympics, not a little over two months beforehand.

이 기사의 이전 버전에서 북한 테러 공격의 시간을 잘못 기술했다. 이 테러는 서울 올림픽으로부터 2개월 전아 아니라 10개월 전에 벌어졌다.

[번역 저작권자 :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부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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