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원하는 자? 누구인가?
-한강 작가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논란을 보며
이하로 대기자
한강 작가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번역이 감수를 마치고 올라온 것은 4일전이었다. 뉴스프로의 기사 완성 과정을 보면, 편집회의를 통해 번역할 기사가 결정되고, 번역하시는 분들에게 기사가 나누어져 번역을 부탁한다. 번역되어진 기사는 다시 취합되어 감수하는 분이 감수를 해서 올린다. 감수가 마친 기사가 올라오면 머리기사를 작성하는 사람이 번역된 기사를 바탕으로 머리기사를 작성하고 머리기사가 작성되고 나면 소개글을 붙여서 뉴스프로에 포스팅을 하는 그런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난 건강문제와 생업문제로 가끔 머리기사에 참여하는 그야말로 땡땡이 머리기사 담당자이다. 한강 작가의 뉴욕타임스 기사를 번역 추천한 죄로 머리기사를 맡게 되었으나, 막노동에 가까운 생업에 종사하느라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하다가 감수가 끝난 뒤 3일이 지나서야 겨우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기사를 쓰기 위해 한강 작가의 기고문 번역을 읽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한강 작가 기고문 캡처 사진
한강 작가가 한글로 쓰고 번역가가 영어로 번역해서 뉴욕타임스에 기고된 것을 뉴스프로가 다시 한글로 번역해내는 이상한 구도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 기고문이 마치 외세에 의해 전전긍긍하는 한반도의 모습만 같았다.
하지만 번역은 훌륭했고 감수는 탁월했다. 머리기사를 쓰기 위해 기사를 읽으며, 난 먹먹해지기 시작했고 끝내 눈물이 차올랐다.
한강 작가의 글 전체를 통해 어찌하든 전쟁을 막아내려는 작가의 절절한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한반도 전체가 괴멸되고 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에 뒤따를 셀 수조차 없을 수많은 죽음들, 통곡들.
한반도 전체가 그야말로 세월호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한반도와 연관이 되어 있는 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아니 막아내야 한다는 그 절박함이 한강 작가의 기고문 전체에 숨이 막히게, 흐르고 있었다. 온몸에 습기가 줄을 지어 삼투압처럼 눈으로 차올랐다.
한강의 기고문을 읽고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한국사람인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 하다. 기고문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기고문을 읽은 많은 미국인들이 이 기고문을 트럼프가 읽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전쟁-한국 전쟁이 한반도에서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들을, 그리고 이런 위기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국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며 위로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글의 힘을, 진실한 글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들이 요즘 매일 일어나고 있다.
한강 작가의 기고문을 읽고 내가 뉴스프로 구성원들에게 했던 말은 “이걸 어떻게 머리기사를 쓰라고, 해 앞에 반딧불이 같은데…”였다. 머리기사는 기사의 전하고자 하는 중심을 더하게 하는 것인데 한강작가의 기고문을 더 절실하게 하는 힘은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한강 작가의 기고문은 읽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곳 미국에서도.
그런데 한강 작가의 이 절절한 외침이 들리지 않는, 아니 듣고 싶지 않은, 더 나아가 한강 작가의 기고문을 문제 삼아 또 다시 종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색깔 논쟁을 일으키려는 부류들이 있다.
바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분단체제를 유지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적폐세력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한강 작가의 기고문이 뜨거운 감자가 되어 “아! 뜨거라”하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 정부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같은 사람들이다.
하나는 한국전쟁이 강대국들의 대리전이었다고 규정한 부분과 노근리 학살을 거론한 점을 들어, 또 한 부류는 적폐세력들의 공격과 미국의 심사를 거스릴까봐 노심초사해서(?)
우리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내내 적폐세력들에게 시달렸던 것이 바로 프레임 논쟁이었다. 본질은 감추고 엉뚱한 프레임을 씌워 논쟁을 촉발시켜 본질을 흐려버리는 것. 그러나 한강 작가 기고문의 본질은 ‘한반도에서 그 어떠한 전쟁도 안된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본질을 감추거나 흐리려는 자들은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이들은 분단을 유지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이고 전쟁을 바라는 자들인가?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말 전쟁인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틈이 날 때마다 ‘한반도에서 두 번 전쟁은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가 한강 작가의 기고문을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문제 삼아 ‘한씨 기고문은 한국전쟁을 강대국 간 ‘대리전(proxy war)’으로 규정하고 최근 한반도 긴장 고조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묻는 듯한 논지를 담고 있다.’며 “北도발 침묵하는 글에 청와대가 동조하는 것이냐”고 해묵은 색깔논쟁을 끄집어내 청와대와 한강 작가를 공격하고 있다.(조선일보)
강경화 외무부 장관은 국감에서 한강 작가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대해, “작가로서 개인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표현과 역사인식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다”고 대답했고 청와대 페이스북의 한강 글 게재에 “저와 협의했으면 올리지 말라 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한미동맹 깨져도 전쟁 안 된다’는 문정인 특보의 발언에 “적절치 않다 생각한다”고 대답했다.(연합뉴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당신들은 전쟁을 바라는 것이냐고.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서라면 전쟁이 일어나도 괜찮은 것이냐고.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당신과 나의 사랑하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짓밟아버린다. 전쟁이 일어나서 안 되는 이유를, 우리는 너무 절절하게 경험했고 배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괜찮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 한강 작가 기고문 캡처 사진
제대로 된 한민족 구성원이라면 모두, 각자 사는 곳에서 머물고 있는 위치에서 한반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강 작가처럼 주목을 끌 수 있는 사람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교수는 자신의 주변인들과 지역 현지 언론을 통해 전쟁은 안 된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알리고 있다.
노암 촘스키 등 저명인사들을 설득하여 한반도 전쟁반대 캠페인에 나서게 하고, 카터 전 대통령을 방문하고 백악관과 유엔본부 앞에서 시위를 하며 필사적으로 전쟁반대 분위기를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왜냐고?
내 사랑하는 민족이, 한반도가 트럼프가 말한 대로 괴멸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해외에 사는 이들뿐이겠는가? 한민족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쟁을 원하는 자? 민족의 구성원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미래는 트럼프가 아닌 우리 민족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사드 가고 평화오라!
전쟁 가고 평화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