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번째 이야기 : “그 김치 어디서 살 수 있어요?”
플리머스에서 Korean IPA 맥주와 어우러진 전주식 김치 시연회
에더블 사우스 쇼어 매거진, 메이플라워 브류잉 컴퍼니 협찬
임옥 기자
모든 일의 시작은 ‘술’이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와인을 한두 잔 마시고 나면 난 꼭 사고를 친다. 누구의 제안이든 덥썩 물어버리는 것이다. 예기치 않았던 파티도 그런 식으로 열게 되고, 평소 별로 친하지 않던 사람도 집에 머무르라 초대하고… 술깨면 후회할 일을 벌인다.
그날도 그랬다. 폴라를 만난 것은 지난해 연말, 집에서 친구들과 가진 파티에서였다. 음식 역사학자인 폴라는 우리집에서 걸어서 20분쯤 떨어진 호수가에 살고 있고 당연히 여러 다른 문화의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날 처음 나를 소개받고 내가 코리언이라고 하자 폴라는 대뜸, “김치 만들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옆에서 “당연히”라고 답하며 내 고향 전주를 자랑하고 우리 엄마 음식 솜씨를 자랑하고 그리고 지난 수 년 동안 엄마의 김치를 배우려 실패와 이따끔의 성공을 거듭해온 내 솜씨를 과장해서 자랑했다. 폴라는 다음 번 김치를 담글 때 자신도 꼭 와서 보고 싶다고 진지하게 부탁했고 난 와인의 기운을 빌어 오케이했다.
그리고 몇 달 후 폴라를 다시 초대할 때까지 난 기억과 실습을 거쳐 김치 레서피를 대충 만들어냈고 배추를 절이는 데 가장 좋다고 하는 염도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2월 폴라와 남편과 나는 함께 내가 만든 레서피를 가지고 김치를 담갔다. 그날 저녁 우리는 김치속과 절인 배추와 삶은 돼지고기로 보쌈을 먹으며 성공적인 김치 만들기를 자축하고 김치 데이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항상 마시는 와인 외에 남편이 특별히 내온 소주도 곁들여 마셨다. 그리고 폴라는 내 김치 레서피를, 지역 매거진에 올리는 자신의 음식 칼럼에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다시 이뿐만 아니라 매거진 스텝이 나와서 사진을 찍는 것에까지 동의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어 급기야는 폴라의 김치 레서피 칼럼을 담은 잡지의 가을 이슈 발행을 기념해 김치시연회를 여는 데에도 동의했다.
행사 일시는 9월말, 주최는 에더블 사우스쇼어 (Edible South Shore and South Coast) 매거진, 장소는 현지 맥주회사인 메이플라워 브류잉 컴퍼니. 우리는 맥주 제조가들과 직접 만나 함께 김치를 맛보며 행사에 선보일 맥주를 골랐다. 영국에서 18세기에 처음 제조를 시작했다는 IPA (Indian Pale Ale)는 맛이 깔끔해 평소에도 즐겨 마시던 맥주 종류인데 컴퍼니의 English IPA에 약간의 매운 스파이스를 첨가해 Korean IPA를 만들겠다고 컴퍼니의 제조팀이 제안했다.
메이플라워 메뉴와 실내 사진
폴라의 남편 프렛이 멤버 중 하나인 8인조 밴드, <딩기스(Dinghys)>가 연주를 맡게 됐다. 이십 달러씩 하는 티켓은 딱 100장 한정이라고 했다. 이십 달러에 김치를 비롯한 여러 음식의 시식, Korean IPA 시음, 그리고 라이브 뮤직이 포함되었다. 표는 일주일 전에 매진되었다고 폴라가 말해준다. 이때쯤 나는 슬슬 긴장이 되고 걱정도 되기 시작한다. 100명 앞에서 김치를 담고 더구나 설명까지, 아찔해진다.
일주일 전 폴라는 김치시연회에 빈대떡 시음도 할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 와인을 마시면서다. 인근 도시에 사는 친구, 순지씨, 경아씨가 도와주겠다고 자원했다.
드디어 9월29일 금요일. 아침 8시 우리는 전날 근처 농장에서 가져온 배추를 염도 10도의 소금물에 절이기 시작했다. 지난 몇 차례 남편과 나는 앞바다의 대서양 바다물을 이용해 배추를 절이기도 했는데 이번엔 그냥 천일염만을 사용했다. 대략 8시간 후 배추가 준비됐다.
시연회의 규모와 30분이라는 시간을 생각해서 일단 김치 속의 재료를 집에서 대부분 준비했다. 무우와 당근을 채를 썰고 파도 썰어 속을 버무릴 큰 통에 모두 담고, 찹쌀죽, 생강, 마늘, 양파, 배, 그리고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함께 믹서에 넣고 갈아 소스를 준비해서 용기에 담았다. 즉 현장에서는 고추가루와 통깨, 잣 등만 넣고 속을 만들어 김치에 속을 넣고 김치통에 넣는 장면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그날 7시, 시연이 시작되었다. 폴라가 진행을 도왔다. 아, 일단 남편의 권유로 나는 맥주를 한 잔 마셨다. 간단히 김치의 역사와 종류를 설명하고 재료를 하나하나 소개했다. 호기심에 가득한 청중들은 이미 맥주를 손에 든 채로 주위에 모여들었다. 김치를 먹어본 사람에게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대부분이 손을 든다. 실제로 김치를 담가본 사람을 묻자 놀랍게도 꽤 많은 손이 올라갔다.
여러 가지 진지한 질문들도 있었다. 한 남성은 숙성을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얼마인지 물었다. 난 겨울에는 2,3일, 여름에는 하루도 충분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폴라는 이에 덧붙여 김치 보관법인 장독을 땅에 묻는 방법도 소개했다. 높은 염도에 빨리 배추를 절이는 것과 낮은 염도로 서서히 절이는 것에 대해 묻는 질문도 있었다. 난 내가 그전에 배웠던대로 낮은 염도에 긴 시간 절이는 방법이 배추에 함유된 미네랑 등 각종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난 10퍼센트의 염도에 8시간 정도의 절임법을 택했다고 말한다. 대서양의 염도가 3.5퍼센트이니 바다물을 이용할 때는 천일염을 첨가해 10퍼센트 염도를 맞춘다.
시연 후에는 그날 담근 김치와 일주일 전에 미리 담가 알맞게 익힌 김치를 뜨거운 흰쌀밥, 그리고 구운 김과 함께 시음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상당히 매웠을텐데 맵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익은 김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자원봉사를 자청한 순지씨, 경아씨, 그리고 몇 십 장의 빈대떡을 구워낸 남편, 많은 이들이 정신없이 일을 했다. 물론 틈틈히 맥주도 마시고 다른 테이블의 피자와 치즈, 다른 먹거리들도 먹어가며. 누군가 “이 김치 어디에서 살 수 있죠?”하고 물었다. 농담이었겠지만.
행사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먹고 마신 사람들은 밴드의 유쾌한 음악에 맞추어 댄스를 시작했다. 대중 행사였는데 분위기는 마치 개인 파티처럼 사람들은 친밀하게 웃고 대화를 나누고 즐겁게 어울려 춤을 추는 아주 유쾌한 행사였다. 폴라는 이미 또다른 시연회를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난 그저 와인을 조심해야 한다…
사진 제공 : 이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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