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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영국 트럼프 거짓말에 동참 안된다!

가디언, 영국 트럼프 거짓말에 동참 안된다!
-‘육지전 돌입시 미국 패배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
-트럼프 ‘거짓에 근거한 유엔 연설’ 위험

영국의 가디언지가 트럼프의 ‘북한 완전 파괴’ 유엔연설을 매우 위험했다며 ‘북한이 제시하는 모든 위협적 언동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에 실존적 위협을 제기한다는 생각은 과대망상적인 어리석음일 뿐’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가디언은 설사 북이 괌, 하와이 혹은 오레곤을 향해 핵 미사일을 발사해 미국이 보복에 나서게 된다 해도 북핵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위험은 미국을 또 다른 아시아의 육지전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아마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18일 ‘Ignore Trump’s lies. North Korea is no threat to Britain-트럼프의 거짓말은 무시하라. 북한은 영국에 위협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대북제재 동참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메이 총리에게 트럼프에 동조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메이 총리는 7월 G20 양자회담, 8월 아베와의 정상회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북 압박을 위한 중국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미국의 국제적 대북제재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오고 있다. 이런 메이 총리에게 가디언이 트럼프에 놀아나지 말 것을 충고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트럼프의 유엔연설에 대해 ‘남성 호르몬으로 충전되어 열변을 토했다’거나 ‘유아적인 수사를 구사’라는 등으로 트럼프의 저급한 발언을 한껏 비꼬면서 트럼프의 연설이 ‘거짓에 근거하고 있기에 위험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선택은 권력의 특권이며 – 절제는 권력의 의무’이지만 트럼프는 그 어느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트럼프가 내뱉는 독설의 두 대상국인 이란과 북한은 서로 전혀 다르긴 하지만 미국과 미 동맹국들이 가진 같은 무기로 자신들을 방어하려 하고 있다. 어떤 외부 세력도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럴 권리가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우리가 핵 확산을 탐탁하지 않게 여길지 모르나 다른 국가에 그 점을 설교할 수는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가다인은 트럼프가 취임 시 “미국 우선”이라는 그럴 듯한 표현 하에 급진적인 국외 문제 비개입 정책을 시사했지만 전혀 실현되지 못했고 ‘심지어 조지 W. 부시보다 훨씬 더 빠르게 트럼프는 높은 지위가 가져오는 권력 휘두르기와 호언장담을 비롯한 군사 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져 들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영국이 트럼프의 이 거짓말에 동참해서는 안된다며 블레어가 영미관계를 재구성한 뒤(미국과 동맹을 튼튼히 한 뒤, 또는 영국이 미국의 졸병이 된 뒤) 그 대가로 무시무시할 만큼의 영국 병사들의 생명과 납세자들의 돈, 그리고 국내 테러의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상기시키며 ‘미국의 모든 잘못된 모험에 대한 지난 20년 간의 비겁한 지지에서 영국의 이익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평화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특히 메이 총리와 아베 일본 수상의 북핵 제재에 대한 회담을 예로 들며 ‘북한은 영국이나 나토, 혹은 영국의 어떤 이익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베트남전에 참전을 거부한 해롤드 윌슨을 상기시켰다.

즉 영국과 상관없는 북핵 문제에서 손을 떼고 트럼프의 거짓광기에 동참하지 말라는 요구다. 가디언은 영국의 외교정책이 고대 샤머니즘 의식과 같다고 혹평하며 북 제재문제에 대해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와 같이 행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생명이 희생되고 경비가 들며 국가 이익도 없다. 영국의 정책은 트럼프의 정책이 위험한 만큼 수치스럽다’고 일갈하며 기사를 마무리 했다.

트럼프의 광기어린 전쟁 파괴발언에 전 세계 양심과 언론들이 비판을 서슴치 않고 있다. (글, 이하로 대기자)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가디언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2xTkF21

Ignore Trump’s lies. North Korea is no threat to Britain

트럼프의 거짓말은 무시하라. 북한은 영국에 위협이 아니다

Simon Jenkins

Kim Jong-un does not present an existential threat, and in the end it will be up to China to cut him down to size

김정은은 실존적 위협이 되지 않으며, 결국에 가서는 김정은을 제 위치로 돌려놓는 일은 중국의 의지에 달릴 것이다.

Wednesday 20 September 2017 18.22 BST Last modified on Wednesday 20 September 2017 22.00 BST

Donald Trump’s ‘testosterone tub-thumping’ address to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Photograph: Eduardo Munoz/Reuters

유엔총회에서 ‘남성 호르몬으로 충전되어 열변을 토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연설

Donald Trump’s United Nations performance on Tuesday was dangerous. It was dangerous not for the testosterone tub-thumping and infantile imagery. It was dangerous for being based on a lie. Trump said: “If forced to defend ourselves and our allies, we will have no choice but to totally destroy North Korea.”

지난 화요일 트럼프의 유엔 연설은 위험했다. 남성 호르몬으로 충전되어 열변을 토했거나 유아적인 수사를 구사해서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거짓에 근거하고 있기에 위험했다. 트럼프는 “우리 나라와 동맹국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에게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Choice is the privilege of power – and moderation is its obligation. Trump understands neither. The two objects of his vitriol, Iran and North Korea, apart from being wholly unalike, are seeking to defend themselves with the same weapons as are deployed by America and its allies. No outside force is likely to stop them, nor is it clear by what right it might do so. We may not like nuclear proliferation, but we can hardly lecture others on the subject.

선택은 권력의 특권이며 – 절제는 권력의 의무이다. 트럼프는 그 어느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내뱉는 독설의 두 대상국인 이란과 북한은 서로 전혀 다르긴 하지만 미국과 미 동맹국들이 가진 같은 무기로 자신들을 방어하려 하고 있다. 어떤 외부 세력도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럴 권리가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우리가 핵 확산을 탐탁하지 않게 여길지 모르나 다른 국가에 그 점을 설교할 수는 없다.

Meanwhile the idea that North Korea, for all its posturing, poses an existential threat to America is paranoid absurdity. Were its ruler to go mad and direct a nuclear missile at Guam or Hawaii or Oregon, it would cause a terrible mess, and a crisis in Chinese-American relations. Few would argue against retaliation. But the greatest danger is that it would suck America into another Asian land war and probably a defeat. As in the case of America’s war in Vietnam, that again would be a choice, but not a necessity.

한편 북한이 제시하는 모든 위협적 언동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에 실존적 위협을 제기한다는 생각은 과대망상적인 어리석음일 뿐이다. 북한의 통치자가 미쳐서 괌, 하와이 혹은 오레곤을 향해 핵 미사일을 발시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혼란을 가져올 것이고 중-미 관계에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누구도 보복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은 미국을 또다른 아시아의 육지전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아마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베트남에서 행한 미국 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 역시 선택이지 필수는 아닐 것이다.

On coming to office, Trump hinted at a policy of radical non-intervention abroad, under the plausible rubric of “America first”. He declared himself sceptical of the Iraq and Afghan wars, fed up with Nato, averse to the Saudi alliance and eager for a rapprochement with Russia. Even in terms of past American isolationism, this was dramatic stuff. We waited eagerly to see how it might work in practice.

취임 시 트럼프는 “미국 우선”이라는 그럴 듯한 표현 하에 급진적인 국외 문제 비개입 정책을 시사했다. 그는 이란과 아프칸 전쟁에 회의적이라고 선언했고, 나토에 진저리났다고 했으며, 사우디와의 동맹을 반대하고 러시아와의 화해를 갈망했다. 과거 미국 고립주의의 관점에서도, 이것은 극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는지 보고 싶어 기다렸다.

The answer is clear – not at all. Even faster than George W Bush, Trump has slithered into the militarism, bullying and bombast that is the seduction of high office. His daily tweets amount to little more than “my adjective is bigger than yours”. He thrills to the call of the pipe and the drum. He whams bombs into Syria, and sends more troops to Iraq and Afghanistan. He wants to “win” in the only way he knows how, by belligerence. His greatest weakness is constantly to imply he has no choice.

대답은 명확하다 –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 심지어 조지 W. 부시보다 훨씬 더 빠르게 트럼프는 높은 지위가 가져오는 권력 휘두르기와 호언장담을 비롯한 군사 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져 들었다. 그가 매일 같이 올리는 트윗글은 “내 수식어가 네것보다 더 대단하다”는 식이다. 그는 군악대 행진 소리에 짜릿함을 느낀다. 트럼프는 시리아에 폭탄을 쏟아 붓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추가 병력을 파견한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인 호전적인 방법으로 “승리하기”를 원한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끊임없이 암시한다는 것이다.

Britain should have nothing to do with this lie. We are at the 20th anniversary of Tony Blair’s 1997 recasting of Anglo-American relations. There would be no more “blue water”, as over Vietnam, Ireland and the Falklands. Blair’s aide Jonathan Powell told the new ambassador to Washington, Christopher Meyer, that his job was simply “to get up the arse of the White House and stay there”.

영국은 이 거짓말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토니 블레어 총리의 1997년 영미 관계 재구성 2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베트남, 아일랜드, 포클랜드에서와 같은 “푸른 물(역주: clear blue water를 줄인 말로 상호 간의 의견 차이를 뜻하는 말, 여기에서는 영국과 미국이 이견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블레어의 보좌관 조나단 파월는 크리스토퍼 마이어 신임 주미대사에게 그의 역할은 그저 “백악관에 가서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Blair did just that, and his successors have remained ensconced there ever since. The cost has been appalling, in British soldiers’ lives and taxpayers’ money, and in the galvanisation of domestic terrorism. Yet it is impossible to detect a jot of world peace, let alone British advantage, in these two decades of craven support for America’s every misguided venture.

블레어 총리는 꼭 그대로 했고 그의 후임자들은 이후로 줄곧 그곳에 안착했다. 그 대가는 무시무시할 만큼의 영국 병사들의 생명과 납세자들의 돈, 그리고 국내 테러의 급증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잘못된 모험에 대한 지난 20년 간의 비겁한 지지에서 영국의 이익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평화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We remain trapped in Blair’s bind. We are still inexcusably bombing civilian targets in Iraq and Syria. We are still building carriers and outdated jets to meet Nato targets unrelated to any strategic need. We are still crippling the defence budget to pay for a useless nuclear “deterrent”. We still have 500 troops fighting a war in Afghanistan.

우리는 블레어 총리가 만든 곤경에 빠져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용서받지 못할 폭격을 가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전략적 필요와는 상관없는 나토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항공모함과 구식 제트기를 건조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쓸데없는 핵 “억제력”을 감당하기 위해 국방 예산을 마비시키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서 500개의 중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The Afghan war demonstrates the ailment at the heart of British foreign policy – its inexplicability. When asked why we were in Afghanistan, Blair would say we were “defending freedom” and “building a better nation”. Gordon Brown said we were “keeping British streets safe”. David Cameron said we were “driving terrorists out of that country”. What is it about Downing Street that obliges its occupants to talk such rubbish?

아프간 전쟁은 영국 외교정책의 심장부에 있는 질환, 그 설명불가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왜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자유를 지키고”, “더 나은 나라를 건설하고” 있다고 블레어 총리는 말하곤 했다. 고든 브라운은 우리가 “영국의 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카메론은 우리가 “그 나라에서 테러리스트를 몰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다우닝 거리의 총리 관저가 무엇이 문제여서 그곳에만 들어가면 이런 쓰레기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것일까?

An intriguingly frank debate on Afghanistan took place last week at the 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 in Whitehall. With commendable frankness, present and past soldiers, diplomats and politicians reviewed Theo Farrell’s Unwinnable, a devastating account of the Afghan saga, in which every British military failure down the ages has been compressed into the cesspit of expense, death and misery called Helmand.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흥미로울 만치 솔직한 토론이 지난 주 화이트홀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에서 개최되었다. 전현직 군인들, 외교관들, 및 정치인들이, 유사 이래 모든 영국 군대의 실패가 헬만드라 불리는 비용, 죽음 그리고 비참함의 온상으로 압축되어 보여지는 참혹한 아프간의 무용담, 테오 파렐의 난공불락(Unwinnable)을 칭찬받을 만한 솔직한 태도로 재검토했다.

Apart from its sense of “lions led by donkeys”, the book shows what happens when soldiers and politicians dare not speak truth to Downing Street power. Seminar participants kept asking each other: “Who is to blame?” It was hard not to shout: “You lot!”

‘당나귀가 이끄는 사자(역주: 무능한 지도자들이 용맹한 전사들을 죽음으로 몬다는 표현)’라는 주제와는 별도로, 이 책은 군인과 정치인이 다우닝 스트리트의 권력에 감히 진실을 말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누가 비난받아 마땅한가?”라고 계속 서로에게 물었다. “당신들!”이라고 소리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British fiascos in Iraq and Afghanistan were due simply to Blair’s eagerness to backrub George Bush in his grotesque responses to 9/11. We are now doing the same to Trump. North Korea is a tinpot dictatorship utterly in thrall to China, whose painful responsibility must one day be to cut its throat. Its leader has mastered the art of taunting to distraction one American president after another. Each week Trump rises to the bait.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인들이 겪은 낭패들은 기괴한 방법으로 조지 부시가 9.11에 대응할 때 이에 아부하려는 블레어 총리의 일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트럼프에게 똑같이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 좌우되는 하찮은 독재국가로서, 언젠가 그 목을 치는 것은 중국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운 책임이 될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는 미국 대통령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조롱의 기술을 마스터했다. 매주 트럼프가 그 미끼를 물고 있다.

Korea is no threat to Britain, or to Nato, or to any known British interest. Yet Theresa May went to Tokyo last month to discuss with its prime minister “what can be done” about Korea. She brought, according to an aide, “a message for China’s President Xi Jinping, telling him in no uncertain terms that it is his responsibility to rein in Kim Jong-un”. This was opium war talk. Britain even refused to rule out a military or cyberwarfare response. London, said May, stood “shoulder to shoulder” with America. Why? Harold Wilson resisted that temptation over Vietnam. It was, and still is, nothing to do with Britain.

북한은 영국이나 나토, 혹은 영국의 어떤 이익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달 테레사 메이 총리는 도쿄를 방문해 북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일본 총리와 논의했다. 한 측근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시진핑 주석에게 김정은을 통제할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것은 아편전쟁식 어조였다. 영국은 심지어 군사적 또는 사이버 전쟁식의 대응을 배제하는 것을 거부했다. 메이 총리는 영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말했다. 왜일까? 해롤드 윌슨은 베트남에 대한 유혹을 뿌리쳤다. 베트남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영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British foreign policy is like an ancient shamanic ritual. Coated in dust, it is taken down from its shelf whenever a prime minister feels in need of a plane ride, a red carpet and an urge to lecture the world. Like her predecessors, May has to incant the gospel according to Tony, that any of Kipling’s “lesser breeds without the law” who dare to upset Washington are “completely unacceptable” to London. She then bombs an occasional Muslim village to show she is “right behind America on terrorism”. A crusty retainer duly puts the policy back on its shelf.

영국의 외교 정책은 고대 샤머니즘 의식과 같다. 총리가 여행을 하거나, 공식 행사에 참가할 필요가 있을 때 혹은 세계를 가르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마다 그 외교정책은 먼지로 덮힌 채로 선반에서 꺼내진다.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메이 총리는 토니식 복음을 읊어야 한다. 그것은 미국을 감히 화나게 만드는 키플링의 “무법의 야만인들”을 영국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메이 총리는 그런 다음 종종 무슬림 마을에 폭탄을 던져 “테러 행위에 있어 미국을 지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그 정책을 다시 선반에 올려놓는다.

No other European country feels the need to behave like this. It costs lives and money, and is in no conceivable national interest. British policy is as shaming as Trump’s is dangerous.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와 같이 행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생명이 희생되고 경비가 들며 국가 이익도 없다. 영국의 정책은 트럼프의 정책이 위험한 만큼 수치스럽다.

• Simon Jenkins is a Guardian columnist

[번역 저작권자 :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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