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희의 토론하는 대한민국 10]
6차 TV 토론, 후보들의 명과 암
박수희
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마지막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한 후보들 / 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 선거도 그렇지만, 짧은 선거 기간 동안 6회에 걸친 TV토론을 통해 후보자를 검증한 전례도 없었다. 국민들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토론에 높은 시청률로 이번 대선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TV 토론은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이변을 일으켰고, 몇몇 후보자의 운명을 결정했다. 최대 수혜자는 홍준표 후보일 것이다. TV토론 초반에만 해도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 하느냐마느냐 사퇴의 기로에 서 있던 홍 후보였다.
그러나, 1등 공격하기와 눈치 보지 않고 막말하기 전략이 오히려 극우의 결집을 초래했고 급기야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넘보게 됐다. 반대로 안철수 현상의 거품은 TV토론이 걷어냈다고 할 수 있다. 갑철수, MB아바타 발언을 정점으로 빠르게 하강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심상정과 홍준표에게로 흩어졌다.
심 상정 후보도 TV토론의 수혜자다. 심상정은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아는 후보이다. 오늘도 첫 발언을 거제도 크레인 사고 노동자를 기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어떤 사안에도 망설임 없이 소신을 어필했고, 공격과 방어는 물론 반론에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이 젊은 층을 움직여 정의당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두 자릿수의 지지율을 넘보게 됐다.
그러나, 진검승부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오늘의 마지막 TV토론은 기대 이하였다. 매 회마다 문재인 후보를 사정없이 공격해 온 홍 후보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탄핵 반대세력 결집에 성공한 홍 후보는 부자들을 향해 마음대로 돈 쓸 자유를 주겠다고 러브콜을 보냈으며 여태 참았지 싶은 문 후보 아들의 취업 문제를 거론했고, 사사건건 물어뜯다시피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토론 평에 여러 번 문 후보는 특히 홍 후보에게 단호해야 한다고 썼는데, 홍 후보 같은 스타일은 빌미를 주면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문 후보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홍 후보의 포지션이 대선 이후 자유한국당의 태도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홍 후보의 오늘 토론은 비윤리, 비도덕적 자질을 드러내 보였다. 비장한 마음으로 마지막 토론에 임했을 유승민 후보에게 “유 후보가 덕이 없어 바른 정당 의원들이 탈당했다”며 비수를 꽂는 모습은 막말과 몰염치의 최고봉이라 할 만 했다.
안철수 후보가 상대의 질문에 아닙니다 라는 짧은 답변으로 일관하는 모습도 안타까웠다. 상대가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내가 발언할 기회와 다름없다. 내가 하려는 정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기에 새롭다는 말은 정체가 모호한 말장난 같았다. 오늘, 모든 후보들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는데 특히 안철수 후보는 자신감도 생기도 없어 보였다. 안철수 후보는 호오가 얼굴에 금방 드러난다.
홍준표 후보와 토론할 때는 무시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문재인 후보와 토론할 때는 적대감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것이 좋은 지 나쁜지는 알 수 없으나, 시청자이자 유권자들은 정서적으로 대통령감인지 아닌지를 은연중에 가린다. 안철수 후보가 그동안 TV토론에서 보여 준 모습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자신에게 부여된 가치의 괴리에서 오는 불편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부여된 가치에 충실하고 싶었지만, 토론이라는 논리적 툴 속에서 두 가지가 결코 일치하지 못함이 본인 스스로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
홍준표 후보는 같은 상황을 뻔뻔함과 몰염치로 밀고 나간다. 목적을 위해 자신의 가치는 얼마든지 수정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TV토론은 안철수 후보에겐 또 한번 자신을 트랜스폼할 기회일 것이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안후보가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포맷할지 궁금하다. 유승민 후보는 그동안 토론에서 끝까지 답을 듣겠다는 듯이 상대의 말꼬리를 놓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전 회 차에 걸쳐 가장 모범적인 토론 태도를 보여주었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 토론을 잘 했음에도 평가가 갈렸으나, 유승민 후보는 전반적으로 좋은 점수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던 지지율이 오히려 탈당사태를 겪으면서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조차도 구태의연한 수구본색을 드러낸 탈당의원들을 규탄하며 유승민 후보의 완주를 기원하고 또 응원한다. 분단된 국가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념적 가짜 보수의 시대를 끝내고,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는 정당으로 성장할 때까지가 유후보의 완주의 약속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문재인 후보에게는, 대통령이 된다면 강한 리더십과 결속력을 주문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유외강이었다면, 문재인 후보는 외유내강이기를 바래본다. 탄핵을 주도한 자들이 자신들의 이기심과 두려움을 앞세워 침을 뱉고 떠난 우물로 되돌아갔다, 홍준표 후보로 인해 방방곡곡의 묻지마 우클릭 세력들은 더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강물은 녹조로 덮여 신음하고, 사람들은 깊어가는 계층 간의 간극 때문에 신음한다. 사드를 비롯해, 곳곳마다 대청소가 필요한 정국이다. 강한 리더십으로 동서 간, 계층 간, 세대 간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19대 대전을 기점으로, 정치인의 TV토론이 좀 더 형식을 갖춰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6회에 걸친 TV토론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과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보았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눈은 더 높아질 것이다. 앞으로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토론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를 미리 연구하고 연습해야 할 것이다. 논리가 없고 명망뿐인 정치인들은 똑똑한 유권자들 앞에 TV토론으로 먼저 심판 받을 것이다. TV토론이 유권자들과 정치인들의 민주적 의식과 수준을 견인하는 좋은 도구로 쓰였으면 한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