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층, 보고 있나? 2차 TV 토론
박수희
미국 대선 후보는 보통 3회 정도에 걸친 링컨-더글러스 모델의 토론을 치른다. 공화당 후보였던 링컨과 민주당 재선 후보인 스티븐 더글러스 사이에 노예제도를 쟁점으로 7차에 걸쳐 치러진 1:1 스탠딩 토론이 모델이 되어 오늘날까지 다양한 변화를 거쳤다. 양당체제인 미국에서 당연히 토론형식은 1:1이 되겠지만, 이 방식은 쟁점에 집중하고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여러 면모를 검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어제 있었던 2차 대선후보 스탠딩 토론은 4:1 토론이라고 이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스탠딩 토론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미 대선후보 간의 1:1 구도를 연상한 듯 상대후보에 대한 즉각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자신을 제외한 1을 누구로 규정하고 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구도였다. 그러나, 심리적인 상대와 현실적인 상대는 엄연히 다르다. 한 번에 1의 위치를 차지하는 후보도 있겠지만, 내 옆을 먼저 쳐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후보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TV 토론에서는 그런 영리함도 눈으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대선 토론에서 집중 공격을 받는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이미 보았다.
어제의 토론은 상대를 선택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얘기보다는 원하는 상대를 골라 흠집 내기에 집중하는 흠집 토론이 되었다. 유승민 후보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어제의 유승민 후보는 당내 입장에 좌우된 듯 대단히 조바심이 나 보였다. 차분하고도 확고한 논증이 돋보이던 토론의 제왕에서 벼랑에 선 승부사로 변신한 느낌이었다. 상대 후보에게 해명을 강요하면서 몰아붙이거나, 물고 늘어지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상대 후보의 답변에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몸짓 언어까지도 마치 준비된 듯 보였다.
안철수 후보는 역시 학습능력이 대단한 후보였다. 초등학생에서 단숨에 중학생으로 월반한 수준을 보여줬다. 표정이나 답변이 훨씬 부드럽고 여유로워졌지만 몇 가지 질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지난 시간 문-안 후보 간 공방이 되었던 문제를 유승민 후보에게 의견을 구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분명히 해야 하는 것과 집착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다르다. 후자가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심상정 후보는 토론을 잘 한다. 그런데, 따지고 묻는 부분에서 유감스러운 면이 있다. 상대의 어떤 공약에 문제가 있다면 그 공약 자체의 맥락을 따져서 공격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너희가 그럴 수가 있느냐? 식으로 따지는 것은 감정싸움일 때나 유효하다. 상대 후보의 공약을 나와 똑같이 만들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진보 진영의 토론자는 잘 하면 본전이다. 벌써 심상정 후보의 어제 토론으로 당내 균열이 있다는 말도 있다. 유연함, 배려, 유머러스함 등은 진보를 더 가치 있게 보이는 덕목이기도 하다.
홍준표 후보는 1차토론 때 보다 발언 기회가 훨씬 많았다는 것만으로도 선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의 그 아무것이나 자르고 보자는 듯 한 칼솜씨를 마구 휘둘러 댔다. 특히, 상대 후보 나 정당의 과거 행적에 대해 확인 절차는커녕 이랬잖아요! 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물론, 역대 대통령을 폄훼하는 언사까지 거침없었다. 더구나 홍준표 후보는 두 번이나 “이정희 같다”는 말로 유승민 후보와 거리두기를 확실히 했는데, 자신을 박근혜로 코스프레 하면서 지지층의 단결을 주문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나아진 점은 어색한 웃음기와 어색한 말투를 거둔 것이다. 가장 공격을 많이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토론 능력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눌변인 문 후보에게 달변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1등인 문재인 후보가 집중 공격을 당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후보에게도 숙제가 있다. 남은 선거기간 동안 안희정 이재명 두 후보를 지지했던 부동층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부동층을 확고하게 붙잡으려면 좀 더 세련된 토론의 기술이 필요하다. 부당한 질문에 대해서는 내용이 아니라 그 질문 자체의 부당함을 공격해야 한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이 부당하다는 것에 이유를 들어 분명히 짚어줘야 한다. 무응답은 토론의 룰에서는 인정한 것이 아니지만, 평상시의 대화에서는 절반의 인정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권자들이 토론의 룰을 숙지하고 TV토론을 보진 않는다. 공격하는 사람들은 필사적인데 문 후보는 우물쭈물하다가 답변할 순간을 놓쳐버리는 일이 잦다.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확인해 주면 된다. 문 후보는 공격당하는 입장을 충분히 견지하고, 상대의 전술을 읽어내면서 대처하는 여유 있는 방어 전략이 필요하다.
총 6회에 걸친 TV 토론이 이제 4회 남았다. 준비기간이 짧은 대선이니만큼 각 후보들이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에 토론을 꼼꼼하게 준비하기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지층을 확고히 하고 부동층을 흡수하는 데 TV 토론의 역할이 크다. 대비를 한다면 스파링 파이터를 두고 예상 질문과 답변을 계속하면서 능숙한 대처를 준비하면 좋겠다. 연일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마타도어, 검증이 필요한 사실들이 쏟아지고 있는 대선 국면이다. 각 후보는 자신에게 취약한 계층이나 연령대에 맞는 공약을 어필할 기회를 만들려고 애써야 한다. 6차까지 이어지는 TV 토론에서 어떻게 하면 중언부언을 피하고 신선한 질문과 진심어린 답변으로 유권자의 머릿속에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낙관을 심어줄 수 있는지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루한 과거 심판, 우격다짐 등으로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열중할 때 지지층은 흩어지고 부동층은 멀어질 것이다. 사실관계 공방이 이어진다면 대선 토론에 알파고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후보를 모시는 방송사 측에도 토론 형식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요구한다. 이번 토론의 경우 “스탠딩”이란 형식이 왜 필요한 지 전혀 설득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유세에 시달리는 후보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