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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촛불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 上

(56) 촛불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

S. Macho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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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한 세상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된다. 순수한 가치를 수호하려고 했던 그 자세로 살아남아야지 그래야 이기는 거다. 아직 학생들이 싸우려고 했던 그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 이화여대 교수협의회장 김혜숙 교수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어두운 옥외에서 촛불을 들고 특정한 의제를 비폭력으로 표현하는 건강한 저항 방식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쓰여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초중고생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고,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며, 대학교수들이 성명을 발표한다면 그 정권은 이미 신뢰를 잃고 막을 내린 것이다. 57년 전 이승만도 그렇게 쫓겨나 망명지에서 죽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각종 불법 비리들은 사상 초유의 헌정파괴행위이자 민주공화국의 신성한 주권을 부당하게 찬탈한 범죄행위다. 국민은 박근혜 퇴진과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촛불 집회를 전국에서 이어나갔다. 그러나, 박근혜의 대국민담화는 거짓 반성과 핑계로 포장된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국민은 진정성 있는 사퇴를 원했다. 또한, 국정 문란 헌정파괴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최순실이 아닌 주권자인 국민이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작년 10월 25일 박근혜 1차 담화에 분노한 국민의 촛불집회는 미미하게 시작됐다.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1차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촛불> 범국민 행동의 날엔 이재명 성남시장, 노회찬 정의당 의원, 김종훈 무소속 의원 등 정치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촛불 무대에서 발언했다. 당시 주최 측 추산 3만 명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11월 4일 ‘최순실 게이트’ 연루를 사실상 부인하는 2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11월 5일 2차 촛불집회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진행하자 참가인원이 급격히 늘었다. 서울에서만 주최 측 추산 20만 명이 故 백남기 농민 영결식과 같이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촛불을 들었다. 이날부터 지방 참가인원과 합산했다. 12일 3차 촛불집회는 민중총궐기대회와 같이했다. 주최 측 추산 서울에서 최초 100만 명을 넘었고 지방에서도 10만 명이 모였다. 이날 법원은 청와대 900m 앞까지 행진을 허용했고, 경찰과 밤샘 대치해 연행된 시민 23명은 모두 석방됐다.

19일 4차 촛불집회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홍대입구역, 삼각지역, 마로니에 공원 등 동서남북에서 출발해 광화문광장으로 모이는 ‘국민 학익진 작전 지도’ 행진에 서울에서 60만 명이 참가했다. 전국 약 70여 곳에서 36만명이 전국동시 촛불집회 <대동하야지도>에 참가해 전국적으로 100만 촛불이 타올랐고 청와대 앞 500m까지 행진했다. 25일 금요일 저녁 박근혜 퇴진 광장 촛불 ‘물러나 Show’엔 강산에 등 음악인 공연이 있었다.

26일 오후 8시 정각 1분간 ‘1분간 실내 불 끄기! 1분간 자동차 경적을 울리기! 거리에서 박수로 응원하기!’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200만의 함성, 200만의 촛불> 5차엔 서울 150만, 지방 40만 등 190만 명이 참여했고, 청와대 200m 앞까지 행진했다. 그러나, 29일 박근혜는 3차 담화에서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에 미루고,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을 꺼냈다. 그러자, 30일 시민들은 1차 총파업 ‘시민불복종선언문/대국민 참여 호소문’을 발표했다.

12월 3일 제6차 <촛불의 선전포고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서울 170만, 지방 62만 등 약 232만 명으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이때부터 법원은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을 허용했고 처음으로 횃불이 등장한다. 평등한 집회환경을 위해 불쾌한 신체접촉, 추행/폭력 추방 등 민주주의 광장의 실천캠페인이 시작됐다. 이날도 대통령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 함성이 광화문과 여의도에 울렸다. 촛불집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둔 5~6차가 극에 달했다.

5일 여론조사에 박근혜 즉각 퇴진 찬성: 99.30%, 새누리당의 탄핵반대 내년 4월 퇴진 반대: 98.19%로 나왔다. 7일 저녁 퇴진 행동 매일 촛불 새누리당사 앞. 8일 저녁 국회 본관 앞 광장 박근혜 즉각 퇴진-응답하라 국회 1차 비상국민행동 ‘국회광장 주권자 시국대토론’. 9일 국회 본회의 폐회 시까지, 국회 본관 앞 광장 박근혜 즉각 퇴진-응답하라 국회 2차 비상국민행동을 열었다. 드디어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탄핵가결 안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이것은 보수/진보를 떠나 가장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10일 7차 <안나오면 쳐들어간다.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엔 ‘즉각 퇴진, 적폐 청산’을 외치는 104만 촛불의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는 축제였고, 헌법재판소 앞에서도 촛불을 밝혔다. 17일 8차 <끝까지 간다! 박근혜 즉각퇴진_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에는 77만이 모여 퇴진 콘서트 물러나쇼, 후 거리행진을 했다. 24일 9차 <끝까지 간다. 범국민행동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에는 70만 2천 명이 모여 “하야 크리스마스 캐럴 가사 바꿔 부르기! 탄핵심판 촉구 1만 시민 신문광고 및 한줄 의견서 보내기” 등 역사적인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즐겼다.

30일 ‘박근혜 정권 열사, 희생자를 기억하는 문화제, 그리고 행진’의 <광장을 지키는 별>행사가 열렸다. 31일 <송박영신 10차 범국민행동의 날>로 집회 참가자 연인원 1,000만 명 돌파했고, 110만 4천여 명이 모인 광화문에 형형색색의 폭죽 불꽃이 2016년 마지막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2017년 1월 5일(목) <광화문 매일 촛불’ 박근혜즉각퇴진과 헌재조기탄핵촉구 박근혜탄핵소추안 함께 읽기 시민촛불의 날>, 6일 <세월호 참사 1천일, 세월호 투쟁의 새로운 시작> 등 10일까지 <대한민국에서 바꾸고 싶은 3가지, 말해봐!> 행사가 이어졌다.

7일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 11차 집회는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두고 열렸다. 처음으로 법원에서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을 허용했고 서울 60만, 지방 4만3천 명이 모였다. 9~14일간 국민행동 재벌구속특별위원회 주최로 <청부입법 뇌물죄로 재벌총수 구속하라!> 집중행동기간을 열었다. 12일엔 박근혜 체제 적폐청산 6대 긴급현안 해결 국회대토론회가 있었다.

14일엔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을 재조명한 사전집회가 있었다. 광화문 13만과 지방 17,000여 명은 12차 <즉각퇴진, 조기탄핵, 공작정치주범 및 재벌총수구속>을 한 소리로 외쳤다. 정원 스님 시민사회장 공식장례가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장지로 출발했다. 19일 경향, 한겨레신문 전면광고 “헌재의 임무는 단 하나! 신속한 탄핵이다!”에 시민 6,737명이 동참했다.

21일 설맞이 촛불 13차 <내려와 박근혜, 바꾸자 헬조선, 설맞이 촛불>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 의혹을 받는 대기업 총수들을 체포•구속하는 도심 행진을 했다. 진눈깨비 내리고 추운 날씨에도 서울 32만 등 전국 35만 2천 명이 촛불을 들었다. 23~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법원 앞 집중 집회와 시국강연’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규탄 및 영장 재청구 촉구 촛불집회, 26일 “설 연휴 전야 촛불 한마당”을 서울 광화문광장, ‘설 촛불의 꿈’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을 포함 전국 60여 곳에서 동시다발 귀향선전전을 열었다.

시민들은 1월 31일 ~2월 3일 매일 저녁 서초동 법원 삼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다. 2월 4일 14차 <2월에는 탄핵하라>엔 42만 5천 명이 모여 ‘2월 탄핵’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었다. 7~10일 촛불집회가 광화문광장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매일 열렸다. 11일 15차 <천만촛불 명령이다. 2월 탄핵! 특검 연장!>엔 탄핵을 촉구하며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행사 후 광화문으로 행진해 집회를 이었다. 서울 75만 등 전국 80만 6천 명이 모였다. 14일 이재용 영장 재청구 2만 4,749여 명 서명을 특검에 전달했고, 16일 이재용 구속촉구 철야집회를 열었다.

18일 김제동의 ‘촛불권리선언을 위한 시민대토론’ <2017 대한민국, 꽃길을 부탁해> 가 장충체육관에서, 광화문에선 16차 <탄핵 지연 어림없다! 박근혜•황교안 즉각 퇴진 및 특검 연장, 공범자 구속>에 주최 측 추산 84만 명이 촛불을 켰다. 20일 시민 5만여 명의 ‘특검 연장 촉구 서명’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권성동 바른정당 의원에게 전달했다. 22일 ‘특검연장법을 조속히 처리하라’, 23~25일 국회 앞 정의당과 함께 ‘특검연장 촉구 촛불시민문화제’, ‘박근혜 탄핵 구속! 특검 연장! 48시간 비상행동’으로 1박 2일 대행진을 벌였다. 박근혜 정권 출범 4주년인 25일 17차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엔 108만 명이 박근혜 퇴장 레드카드 빨간색 촛불을 들었다. 서울정부종합청사에 레이저 빔으로 대형 녹색 촛불을 그렸다.

3월 1일 삼일절 18차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는 서울 30만 등 전국에서 107만 명이 촛불을 들었다. 4일 19차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 탄핵 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엔 서울 95만 포함 전국 105만 명으로 연인원 1,500만 명 돌파를 자축했다. 9일 저녁 광화문과 10일 아침 헌재 앞 밤샘 집회, 저녁 광화문광장에 약 10만여 명 운집했다. 금요일 밤 광장 곳곳에서 시민들은 샴페인, 맥주, 막걸리 등으로 옆 시민들과 기쁨을 나누며 불금이 아닌 ‘탄금(박근혜가 탄핵당한 금요일)’을 만끽했다. 처음으로 촛불집회 중 광장에서 술을 마신 날이었다.

촛불을 든지 133일째 날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는 파면되었고 촛불이 승리했다. 다음날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엔 광화문 65만과 대전 1,500, 세종 300, 대구 3,000, 울산 1,000, 부산 17,000, 광주 30,000, 전남 3,000 경북 860, 경남 1,500 그리고 제주 등 전국에서 70만여 명 모였다. 폭죽을 쏘아 올리고 노래하며 행진했고, 전을 부쳐 나누고, 꽃을 주고받았다. 자원봉사자들, 촛불 시민들, 그리고 환호를 받았던 연주자들 등 모두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134일간 20차례 집회에 총 참가인원 1,675만 3천 명인 광화문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연속 시위다. (계속)

*박근혜는 대통령에서 파면된 피의자 신분이라 직함을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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