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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알리스트, 유교적 전통을 거부하는 한국의 청년 세대

아시알리스트, 유교적 전통을 거부하는 한국의 청년 세대
-유교 이념은 국가 재건을 위해 강요된 것
-네트워크로 무장한 젊은이들에게 안 통해
-전대미문의 7주간 대규모 집회서 결집
-다가올 사회 개혁이 더 어려운 해결 과제

아시아 문제 전문 프랑스어 사이트 <아시알리스트>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촉발한 한국의 ‘촛불 혁명’을 통해 청년 세대가 유교 전통을 벗어나려 하는 걸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쥘리에트 모리요는 12일 자로 « 한국 : 젊은 세대는 유교 이념을 탄핵하고 싶다 »는 제목의 기사를 쓰고 « 권력에 대항한 전대미문의 엄청난 저항과 유교 사상의 해묵은 속박은 한국 현대사에서 역사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고 분석했다.

기사는 탄핵안 가결이 결정됐던 지난 9일 오후 국회 앞 시민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운을 뗀다. 이는 « 7주 동안의 대규모 집회 끝에 자연스럽게 터진 본능적인 기쁨 »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수백만 시민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 더 힘든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고 적었다. 더 힘든 과정이란 각종 제도와 사고방식까지 바꾸는 근본적인 사회 개혁을 뜻한다.

한국 역사에서 혁명의 순간에는 항상 청년 세대가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번 촛불 혁명에도 젊은이들이 주도했지만 양상은 전과 다르다고 봤다. « 현재 한국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더 이상 신뢰도 없 »는 이 젊은이들은 매우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세계로 열린 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적었다.

한국 역사에서 혁명의 순간에는 항상 청년 세대가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번 촛불 혁명에도 젊은이들이 주도했지만 양상은 전과 다르다고 봤다. « 현재 한국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더 이상 신뢰도 없 »는 이 젊은이들은 매우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세계로 열린 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적었다. 이 “탈정치화된 젊은 세대들이 몇 주간에 걸친 엄청난 시위를 이끌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강력한 저항은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 유교 이념의 뚜껑이 폭발한 것 »이라고 비유했다.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유교 이념이란 것도 국가 재건을 위해 박정희가 강요한 것이며, 비슷한 방식이 북한에서도 작동했다고 주장했다. 장자에 대한 순종을 주요 덕목으로 삼는 유교 이념의 부작용으로 세월호의 사례를 들었다. « 가만히 있으라 »는 말을 듣지 않은 학생들이 주로 살아남은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비판 정신이나 추론 능력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 맹목적인 복종, 촌지, 수박 겉핥기식 지식 쌓기나 벼락치기, 씨족 네트워크의 과도한 중요성(학연, 혈연, 지연) 등 » 유교 전통의 부작용과 함께 « 한국호가 침몰하고 있다 »는 것이다. ‘헬조선’에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고, 평판이며 이런 외적 요인들이 개인을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조상과 부모로부터 온 것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받은 교육이었다. 하지만 이제 끝났다. 우리 뜻대로 생각할 수 있다 »는 한 대학생의 말을 소개했다.

글쓴이는 «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환상적인 현상은 실제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변화의 시작일 뿐 »이라며 « 68 혁명과 같은 대지진이 일어났다 »고 글을 맺었다.

번역 및 감수 : Sang-Phil JEONG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2gzDaLL

Corée du Sud : la jeunesse veut destituer le confucianisme

한국 : 젊은 세대는 유교 이념을 탄핵하고 싶다

Juliette Morillot

쥘리에트 모리요

Lors d’une session extraordinaire le 9 décembre dernier, le Parlement sud-coréen a voté la destitution de la présidente Park Geun-hye. C’est l’aboutissement de sept semaines d’une protestation populaire sans précédent marquée par la mobilisation massive d’une jeunesse apolitisée et déterminée. Cette révolte inédite et formidable contre l’autorité et le carcan séculaire du confucianisme marque un tournant historique dans l’histoire de la société coréenne.

지난 12월 9일 임시국회에서 한국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탈정치화되고 단호해진 젊은 세대들이 대규모로 결집하면서 전에 없던 민중적 저항이 7주 동안 이어진 결과였다. 권력에 대항한 이러한 전대미문의 엄청난 저항과 유교 사상의 해묵은 속박은 한국 현대사에서 역사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C’est la clameur d’un peuple qui s’est élevée ce vendredi 9 décembre dernier à 16 heures exactement. A ce moment précis, sur les téléphones portables s’affichait l’annonce tant attendue du vote de destitution de la présidente sud-coréenne par le Parlement. Une clameur immense sur la grande place de Yeouido, face à l’Assemblée nationale, suivie d’embrassades, de danses, de joie, une joie spontanée explosant enfin librement après sept semaines de manifestations massives.

12월 9일 금요일 오후 4시에 맞춰 일어난 것은 국민들의 함성이었다. 정확히 그 순간에 휴대전화에는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는, 그렇게 기다렸던 소식이 표시됐다. 국회 앞 여의도 광장의 거대한 함성이 일어난 이후 사람들은 껴안고, 춤을 추고, 기쁨을 나눴다. 7주 동안의 대규모 집회 끝에 자연스럽게 터진 본능적인 기쁨이었다.

Le verdict était historique et sans appel : 234 députés ont en effet voté en faveur de la motion de destitution de Park Geun-hye, engluée depuis le mois d’octobre dans un tentaculaire scandale aux allures de mauvais feuilleton, alors que 56 députés seulement s’y sont opposés. Mieux encore, dans un camouflet décomplexé, 60 députés du Saenuri, le parti de la présidente, ont eux aussi soutenu la motion pour l’écarter du pouvoir – afin que la motion passe, il fallait, rappelons-le, le vote d’au moins 200 députés sur un total de 300.

투표 결과는 역사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의원 234명이 지난 10월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저질 드라마에 가까운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박근혜 탄핵안에 찬성을 던진 것이다. 반면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단 56명이었다. 게다가 대통령 소속 정당인 새누리당 의원 60명이 콤플렉스를 벗어버린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 탄핵안이 효력을 얻기 위해서는 전체 의원 수 300명 중 최소한 200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 C’est notre mobilisation et la pression populaire qui ont permis la victoire, explique Choi, doctorant à l’université Kookmin. Aujourd’hui, nous sommes arrivés à un point de non- retour. Mais il ne faut pas baisser la garde. » Car rien n’est acquis. La présidente, en dépit du vote, n’est pas encore destituée. En effet, la décision doit être confirmée par la Cour constitutionnelle qui dispose de cent quatre-vingt jours pour avaliser le processus.

국민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 씨는 « 국민들이 결집하고 압박을 했던 것이 승리를 불러왔다. 이제 우리는 돌아갈 길이 없는 곳에 와 있다. 그렇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고 말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얻은 게 없기 때문이다. 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아직 물러나지 않았다. 최종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내리게 된다. 절차상 180일을 쓸 수 있다.

En mars 2004, le président Roh Moo-hyun avait lui aussi été destitué par le Parlement, pour violation des lois électorales. Mais soixante-trois jours plus tard, le 30 mai, les neuf juges de la Cour constitutionnelle l’avaient blanchi. Une situation aux antipodes de ce qui se passe aujourd’hui puisqu’à l’époque Roh Moo-hyun était soutenu par 60 % de la population.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역시 국회에 의해 탄핵된 적이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였다. 63일 후인 5월 30일 9명의 헌법재판관들은 기각했다. 현재의 상황과 정반대인 것이 당시 노무현은 국민 60%의 지지를 받았었다.

« La Cour constitutionnelle est très conservatrice mais, estime le jeune doctorant, je ne pense pas qu’elle osera aller à l’encontre de la vox populi. Cela risquerait de créer une révolution et si les manifestants sont jusqu’ici restés très calmes, la situation pourrait dégénérer. Ensuite il faudra rester vigilant, car il n’est pas question que Park s’en tire comme cela. Elle a trahi la Corée, elle doit être jugée et condamnée. »

최 씨는 « 헌법재판소는 매우 보수적이다. 하지만 감히 민중의 소리를 외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혁명의 위험까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위 참가자들은 굉장히 차분했지만 상황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가 그렇게 물러나는 게 다가 아니다. 그는 나라를 배신했다. 법정에 서야 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Car pour Choi comme pour les millions de Coréens, familles, couples, professeurs, syndicalistes, étudiants, paysans qui depuis des semaines demandent la destitution de la présidente, le combat n’est pas fini. Loin de là. Et le plus difficile est à venir.

수백만의 한국인, 다시 말해 가족, 커플, 교수, 노조원, 학생, 농부 등과 마찬가지로 최 씨 역시 몇 주 전부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멀었다. 더 힘든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Jeunesses révolutionnaires

혁명적인 젊은 세대

Réformer la société coréenne. En profondeur, dans ses institutions, dans ses mentalités, dans ses grands conglomérats industriels, les fameux chaebol, mais aussi jusqu’au sein-même des foyers, dans les relations entre les êtres et la mentalité de chacun.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 것. 근본적으로 각종 제도와 정신구조, 저 유명한 재벌로 대표되는 대기업 그리고 심지어 가족 내부의 일까지, 또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각자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

De tout temps dans l’histoire de la Corée, c’est la jeunesse, les étudiants qui ont fait les révolutions. Dans les années 1980, ce furent eux qui, les premiers, se dressèrent contre la dictature militaire, appelant à la démocratie. Chaque année, à l’anniversaire du soulèvement de Gwangju (광주 민주화 운동 ou 오일팔) le 18 mai 1980, étudiants et forces de l’ordre s’affrontaient sur les campus universitaires. Les ouvrages du poète rebelle Kim Ji-ha, interdit par la dictature, circulaient sous le manteau, véhiculant espoir et fureur. « En secret, j’écris ton nom, avec une soif ardente, j’écris ton nom ‘démocratie’. »

한국 역사의 어디에서건 혁명을 일으킨 것은 학생들 즉, 젊은 세대였다. 1980년대 처음으로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외친 것도 그들이었다. 매년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되면 학생들과 경찰기동대는 대학캠퍼스에서 맞붙었다. 독재정권에 의해 금지된 저항시인 김지하의 작품은 희망과 분노를 전파하며 각자의 외투 속에서 외투 속으로 유포됐다.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

A cette époque, il s’agissait de protester contre l’instauration de la loi martiale et la répression politique des opposants. Une lutte politisée, extrêmement violente, émaillée d’immolations par le feu. Dans la capitale, le spectacle des camions grillagés des forces anti-émeutes, les relents piquants des gaz lacrymogènes faisaient partie du quotidien. « On se battait pour un idéal politique, pour la démocratie, explique Park alors étudiant à l’université Nationale de Séoul. C’était dangereux car d’emblée, nous étions soupçonnés d’être communistes, pro-Corée du Nord ! Le climat des manifestations n’avait rien à voir avec le calme et la dignité de celles qui ont mené à la destitution de Park Geun-hye. »

그 시절에는 계엄령과 야당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맞서야 했었다. 투쟁은 정치적이었고, 분신자살을 할 정도로 극단적인 폭력성을 띄었다. 수도 서울에서 시위진압 부대의 철창 트럭과 최루탄의 악취는 일상이었다. 서울대생 박 씨는 « 우린 정치적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그런데 우리는 곧 북한에 동조하는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었다. 당시 집회의 분위기는 박근혜 퇴진을 이끌어 낸 오늘날 집회의 평화로움이나 품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 설명했다.

Quelques années plus tard, les manifestations ont repris : d’abord en 2004, en soutien du président Roh Moo-hyun qui venait d’être destitué, puis en 2007 après la décision de son successeur, Lee Myung-bak, de reprendre les importations de bœuf américain, suspendues depuis 2003, condition préalable à la ratification de l’accord de libre-échange. « Nous, les vieux qui avions manifesté pour la démocratie, combattu pour notre pays, nous avons bien senti à l’époque que la jeunesse ne se sentait pas concernée… Les jeunes ne se sont pas mobilisés du tout, c’est pourquoi aujourd’hui, ce qui se passe est exceptionnel. » Et nouveau.

몇 년이 흐른 뒤 시위가 다시 시작됐다. 우선 2004년 탄핵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였다. 이어 2007년에는 그의 후임인 이명박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2003년부터 중단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한 뒤 일어났다. « 우리 늙은 세대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저항했고, 나라를 위해 싸웠다. 당시 우리는 젊은 세대들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젊은이들은 전혀 모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오늘날 이런 모습이 놀라운 것이다. » 그리고 또다시 시위가 시작됐다.

Corruption dès le jardin d’enfants

유치원에도 있는 부패

Car cette fois-ci, c’est une jeunesse totalement apolitisée qui a mené les spectaculaires manifestations des semaines dernières. Une jeunesse désabusée, déçue, qui ne se reconnaît pas dans la société coréenne actuelle et qui n’a plus confiance. En rien. Cette nouvelle génération, ouverte sur le monde, profondément dynamique et créative, ultra-connectée, a voyagé, étudié à l’étranger. Elle sait aussi le pouvoir qu’elle possède. « On ne combat pas avec des armes : Internet, c’est plus efficace ! Je ne crois plus dans le discours que l’on nous sert, explique Tae-il, étudiant en sciences humaines. Nous savions bien sûr comment fonctionnait notre pays. Nous savions à quel point tout était corrompu. Mais finalement, je dis presque merci à Park Geun-hye car par sa bêtise et son arrogance, elle va nous permettre d’avancer, et peut-être de changer le système. »

왜냐하면 이번에는 완벽하게 탈정치화된 젊은 세대들이 몇 주간에 걸친 엄청난 시위를 이끌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각성하고 실망한 젊은이들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더 이상 신뢰도 없다. 전혀 없다. 세계로 열려 있는 이 새로운 세대는 매우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어디서든 연결돼 있어서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고 공부를 했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가진 능력이 뭔지를 안다.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태일 씨는 « 우린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는다. 인터넷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제시된 연설들도 믿지 않는다. 우리도 이 나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얼마나 썩어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박근혜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그의 잘못과 교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그리고 어쩌면 시스템을 바꿀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고 말했다.

Au-delà de la liste interminable des griefs contre la présidente (corruption, collusion entre les politiques et les grands conglomérats, trahison des secrets de l’État, omnipotence des grandes familles gouvernantes, dérive autoritaire, régression de la liberté d’expression et de la presse, emprisonnement de syndicalistes, publication de manuels d’histoire « officielle », absence inexpliquée de la présidente lors du naufrage du Sewol, etc…), c’est tout le fonctionnement de la société qui est remis en cause.

대통령의 기소장에 적힌 끝없는 항목들(비리, 정경유착, 국가기밀누설, 지배층 가족들의 절대권력, 권위주의적 일탈,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노조원 구속, 국정 교과서 출간, 세월호 침몰 당시 대통령의 설명되지 않은 부재 등)은 그 차원을 넘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 사회의 모든 작동방식이기도 하다.

« La corruption, s’insurge Tae-il, commence dès le jardin d’enfants et l’école primaire. Vous trouvez normal, vous, que l’on doive donner une enveloppe à l’institutrice pour que sa fille ou son fils soit au premier rang pendant la classe ? Nous avons appris depuis notre plus jeune âge à obéir, à courber la tête. C’est dans notre éducation : nous respectons ce qui vient de nos aînés, de nos parents ; mais maintenant c’est fini, nous pouvons penser par nous-mêmes. »

태일 씨는 « 부패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기 아들이나 딸이 수업 중 맨 앞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선생님에게 봉투를 주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보이시나 ? 우리는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복종하고 머리를 숙이는 법을 배웠다. 조상과 부모로부터 온 것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받은 교육이었다. 하지만 이제 끝났다. 우리도 우리 뜻대로 생각할 수 있다 »고 토로했다.

Le bateau coréen coule

침몰하는 한국 배

Cette rébellion calme, puissante de la jeunesse coréenne, c’est tout simplement le couvercle du confucianisme qui explose. Ce confucianisme qui structure profondément la société, et sur lequel Park Chung-hee s’appuya pour obtenir docilité et dévotion lors de la reconstruction du pays dans les années 1960-1970, donnant lieu au fameux miracle économique. C’est aussi sur cette structure confucéenne que s’appuya, au nord du 38ème parallèle, Kim Il-sung pour bâtir le « paradis nord-coréen ».

한국 젊은 세대의 이 평화롭고 강력한 저항은 단순히 유교 이념의 뚜껑이 폭발해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유교 이념은 그 유명한 경제 기적을 이뤘던 1960~1970년대 나라를 재건하면서 박정희가 순종과 헌신을 얻기 위해 국민들에게 강요한 것이다. 38선 북쪽의 김일성 역시 « 천국의 북한 »을 세우기 위해 이 유교 이념의 구조를 내세웠다.

Le confucianisme, introduit au XIVème siècle en réaction à la corruption et au désordre qui minaient le royaume de Goryeo, impose une structure sociale stricte, le respect des aînés à tous les niveaux (enfants envers les parents, parents envers les ancêtres, employé envers son patron, élève envers son professeur, peuple envers le gouvernement). Il est aujourd’hui devenu le pire ennemi de la jeunesse coréenne. Comment oublier que lors du naufrage du Sewol en 2014, seuls furent sauvés les élèves qui osèrent désobéir à leur professeur leur recommandant de rester dans leur cabine tandis que le bateau coulait ?

유교 사상은 14세기 고려 왕조를 갉아먹던 부패와 혼란에 대한 반동으로 소개돼 엄격한 사회구조를 강요했다. 이를테면 모든 계층에서 장자에 대한 존중(부모에 대한 자식의 존중, 조상에 대한 부모의 존중, 사장에 대한 근로자의 존중, 선생에 대한 학생의 존중, 정부에 대한 국민의 존중)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한국 젊은 세대에게 최악의 장애물이 됐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할 때 목숨을 건진 학생들은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객실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생님의 말을 따르지 않은 학생들뿐이었다는 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

Obéissance aveugle, pots de vins, apprentissage valorisant érudition et bachotage plutôt qu’esprit critique et raisonnement, importance démesurée des réseaux claniques (université, famille, région), tout cela est dépassé. Le bateau coréen coule et la jeunesse ne s’identifie plus à cette société engluée dans son passé, tirée vers le bas, la société du « Hell Choson » (« l’enfer, c’est la Corée »)*, où les apparences comptent plus que la nature des choses, où l’autre devient censeur et le monde extérieur oppression.

비판정신이나 추론 능력보다는 맹목적인 복종, 촌지, 수박 겉핥기식 지식 쌓기나 벼락치기, 씨족 네트워크의 과도한 중요성(학연, 혈연, 지연) 등 이 모든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다. 한국호는 침몰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수면 아래로 끌어당기는 이 사회와 자신들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헬조선’에서 겉모습은 사물의 본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남의 눈에 의해 좌우되며 사회는 숨 막히게 된다.

« Je suis partie vivre au Danemark, se confie Okja, titulaire d’un double doctorat d’histoire et d’économie. Je suis restée sans emploi pendant deux ans en Corée après l’obtention de mes diplômes et j’ai fini par trouver un poste de secrétaire ! Le regard des autres est tellement fort que j’étais malade rien qu’à l’idée de sortir dans la rue. Au Danemark, je peux sortir en jeans, pas maquillée… J’ai refusé la chirurgie esthétique, même si mes parents m’ont dit que c’était mieux pour trouver un mari et du boulot. Ici, à Copenhague, je travaille dans une pâtisserie. Je gagne peu. Mais je vis enfin. Je respire. En Corée, j’étouffais à petit feu. »

옥자 씨는 « 덴마크로 이민을 떠났다. 역사와 경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학위 취득 이후 2년 동안 직업도 없이 지냈다. 그러다 구한 일이 비서 일이었다. 남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워 길거리에 나가는 생각만 해도 몸이 아플 정도였다. 덴마크에서는 청바지에 화장도 하지 않고 다닌다. 부모님들은 내게 결혼하거나 직장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성형수술을 권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여기 코펜하겐에서 나는 빵집에서 일한다. 조금 벌지만 숨을 내쉬면서 살아간다. 한국에서는 서서히 질식하는 것 같았다 »고 털어놓았다.

Mai 68 séoulite

서울판 68 혁명

Aujourd’hui, consciente de l’extraordinaire pouvoir que confèrent les réseaux sociaux, Internet et les innombrables associations qui ont surgi ces dernières années, la jeunesse coréenne ultra-connectée, n’accepte plus de se faire dicter sa pensée et compte bien le faire savoir. « Il est temps que ceux qui nous gouvernent comprennent que nous ne goberons plus aveuglément tout ce qu’on nous dit, renchérit Tae-il. C’est comme pour la Corée du Nord : depuis tout petit, on m’a rabâché que l’ennemi était nord-coréen, que tous nos sacrifices, c’était pour nous défendre. Mes parents et grands-parents nous ont bourré le crâne de la peur d’une invasion. Même dans le métro, on me disait que des Nord-Coréens allaient surgir dans des tunnels creusés depuis le 38ème parallèle et qui déboucheraient dans les galeries commerçantes souterraines ! Cela aussi doit changer. Je n’ai pas peur de Pyongyang, je n’ai pas peur qu’ils nous attaquent. Pour moi, la Corée du Nord, c’est un pays comme un autre. Je ne me sens pas d’attache particulière. Mais j’aimerais bien y aller un jour en touriste : il paraît que c’est magnifique. Mais rien que de dire cela je sais que je suis déjà suspect ! »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와 인터넷, 셀 수 없이 많은 각종 커뮤니티의 놀라운 능력을 알고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어디에서든 서로 연결돼 있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태인 씨는 «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이젠 우리가 덮어놓고 자신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다. 마치 북한에서처럼 나 역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적은 북한이라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 모든 희생이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내게 북에서 쳐들어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세뇌시켰다. 심지어 북한 사람들이 38선에서부터 땅굴을 파고 지하철에까지 불쑥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상가들을 뚫고 말이다. 이것도 바뀌어야 한다. 나는 북한 정부가 두렵지 않다.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에 겁먹지 않는다. 나에게 북한은 그냥 하나의 나라일 뿐이다. 그들에게 특별한 애착도 느끼지 않는다. 언젠가 여행은 해보고 싶다. 아주 아름다울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고 덧붙였다.

Désormais, le plus difficile est à venir et tout reste à faire. Car le formidable phénomène auquel nous assistons n’est en réalité que le début d’une transformation profonde et de la société coréenne. Un tremblement de terre aux allures de Mai 68, comme l’écrit Dorian Malovic dans le quotidien La Croix.

이제 가장 어려운 것은 앞으로다. 모든 것이 해야 할 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환상적인 현상은 실제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변화의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간지 <라크루아>의 도리앙 말로빅 기자가 묘사한 것처럼 68 혁명과 같은 대지진이 일어났다.

[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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