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아담 흉내내다 쫓겨났던 에덴, 오스트레일리아
S. Macho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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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Eden)은 히브리어로 ‘환희의 동산’, ‘태고의 정원’이라는 의미로 페르시아어 ‘헤덴(Heden)’에서 유래했다. 구약경전 창세기 2:8-24에 따르면, 야훼(Yhwh)는 7일간 천지창조 후에 최초의 사람 아담을 만들고 에덴동산에서 살라 명령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을 만들고, 모든 나무 열매는 따 먹을 수 있지만, 동산 한가운데 있는 선악나무의 열매만은 절대로 먹지말라 했다. 그리고 아담의 갈빗대로 아담의 아내 하와라는 여성을 만들어 줬다.
그런데, 뱀의 꾐에 빠진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알고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다가 야훼에게 들켜 출산의 고통을 치르고 평생 노동하며 살아야 한다는 벌을 받고 둘은 뒹굴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아브라함 쪽 종교들의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이 동산은 기독교의 전파로 동서양에 알려졌고, 오늘날에는 비록 그 위치는 논쟁이 되고 있지만, 종교와 인종을 떠나 여전히 이상향의 상징적 의미로 여겨진다.
지구 상엔 이든(Eden)을 지명으로 하는 곳이 꽤 된다. 그 중 하나가 오스트레일리아의 6개 주중 하나인 뉴사우스웰즈(New South Wales) 남부 해안에 있는 소박한 항구도시다. 주도(州都)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뻗은 해안 도로를 달려 울릉공(Wollongong), 포트 켐블러(Port Kembla), 부데리 국립공원(Booderee National Park) 등을 지나면 이든 안내판이 보인다. 이방인들이 처음 이든 앞바다에 나타난 건 18세기 말쯤이었다. 그때 오스트레일리아 땅의 주인인 애버리지니와 유럽에서 온 포경선에 탄 포경업자들이 처음 대면한다. 이방인들은 해안에 포경기지를 세우고 술과 담배, 고래 부산물을 미끼로 애버리지니를 일꾼으로 부려 먹었다.
이든이 지명이 된 유래는 두 개다. 첫째, 항상 청량한 바람, 맑은 강, 푸른 숲, 안락한 기후 및 풍부한 농수산물 등 먹을 거리가 풍부해 생활하기 편하자 ‘여기가 바로 낙원이다’해서 생긴 지명이다. 다른 유래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에 고위직으로 부임한 영국 귀족 조지 이든(George Eden)의 성(姓)을 딴 것이다. 그는 영-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참전했던 장교였다. 영국 지도층이 존경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제일 먼저 국가를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우는 것이다. 최근 한국 언론은 대한민국 4급 이상 고위공직자 중 병역 면제자는 2,520명, 아들까지 대를 이어 병역 면제한 자는 92명이라고 보도했다.
1850년대 이든에서 금광이 터지자 일확천금을 좇는 유럽계 정착민들이 몰려들고 학교, 교회, 상점, 호텔 등이 속속 문을 연다. 이때 이든은 시드니, 멜버른, 태즈메이니아 섬 등의 중간에 위치한항구였다. 금광과 해운운송 등으로 돈이 돌자 경마장이 생기고 밀려드는 관광객을 위해 식당과 유흥시설 등이 늘어난다. 그러나, 제일 활기 띠는 건 포경산업이었다. 퀸즐랜드 난류가 내려오는 6월~10월 사이 남극에서 혹등고래, 향유고래 등이 대규모로 먹이를 찾아 올라오면, 그들을 잡아먹으려 범고래 떼가 따라온다. 그 고래 떼를 보려는 방문객이 늘어나니 고래 관찰 관광이 가장 인기상품이 된다. 덕분에 지역상권이 크게 활기를 띤다.
고래는 1930년대까지 100년 가까이 이든을 먹여 살리고 유명하게 만든 가장 큰 효자였다. 고래 관련물이 전시된 범고래박물관(Eden’s Killer Whale Museum)을 가보면 그 역사를 잘 알 수 있다. 포경업자를 도와 고래잡이에 능숙했던 올드톰(Old Tom)이란 유명한 범고래 우두머리의 뼈도 전시돼 있다. 인간만큼 영리한 범고래들은 흡사 양몰이 개가 양 떼를 몰듯이 포경업자들을 도와 고래를 해안 쪽으로 몰았고 고래는 포경업자들에게 잡혀 죽었다. 포경업자들은 쓸모 없는 고래의 부산물 등을 범고래들에게 먹이로 던져주었으니 남는 장사였다.
고래는 고기, 가죽, 기름, 뼈까지 다 귀한 상품으로 버릴 게 없다. 그래서 몇 백 년간 남획하다 보니 멸종위기가 왔고 1986년 국제포경규제조약은 상업 목적의 고래잡이를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일본은 고래의 생태 등을 연구, 조사한다며 남극해와 북서 태평양 등에서 각종 고래를 무자비하게 남획해왔다. 2014년 호주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본의 남극해 포경을 금지해 달라는 제소를 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일본의 이런 고래 포획이 연구나 조사가 아닌 상업용이라고 판단해 일본정부에 남극해에서 고래잡이를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은 판결을 무시하고 지금도 고래를 식용으로 남획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고래고기가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심지어 일본 근해의 돌고래까지 멸종시키다시피 한다.
이든엔 약 3,500여 명의 대부분 원주인과 백인계 등이 살고 있다. 동양인은 못 봤다. 코코라 비치(Eden Cocora Beach), 베가 강(Bega River), 키세스 라군(Kisses Lagoon) 등 해변은 평화로워 가족여행에 안성맞춤이다. 바비큐 시설, 쉼터, 놀이터, 화장실과 샤워시설까지 잘 갖춰졌다. 단기 이용 가능한 통나무집들도 있다. 사람들은 사용한 후 깨끗하게 청소해 다음 사용자를 배려한다. 그래서 공공시설은 개념 있는 자만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남쪽으로 약 2km 길을 걸어가면 도보여행길과 연결된 쿼런틴베이(Quarantine Bay)가 나온다.
태평양 바람이 나뭇잎을 흔든다. 가을엔 나뭇잎 색도 변하고 낙엽도 진다. 주민들은 바람과 숲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간다. 북쪽 팜불라 비치에서 남쪽 그린 케이브 등대 사이에 해안선을 따라 보이드 국립공원(Boyd National Park)이 자리하고 있다. 해안선과 모래톱, 파도는 잘 어우러진 삼총사다. 이든 남쪽에 자리한 보이드 타워는 유명한 올드톰이 이끄는 범고래 떼가 고래들을 사냥하는 광경이 잘 보이던 전망대였다. 여기도 그린 케이프까지 30km 도보여행 루트가 이어진다. 보통 오전에 출발하면 해질녘쯤 그린 케이프 등대(Green Cape Light Station)에 도착한다. 보이드는 19세기 최초로 이든 개발에 힘썼던 사업가다.
내가 이든을 처음 알게 된 건 시드니에서 학교 다닐 때 패티란 친했던 예쁜 여학생 덕이었다. 이든이 고향인 그녀는 이든은 시드니보다 공기도 좋고 평화롭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따라 그녀의 고향 이든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농장을 하는 맘씨 좋은 그녀 가족 덕에 며칠간 그녀의 집에서 묵었다. 그녀 집 근처엔 강과 숲이 있었다. 내가 그녀와 사과를 먹으며 근처 숲 속을 걷다가 ‘사과도 먹었으니 여기가 에덴의 동산인 거 같다. 우리 아담과 이브 놀이하자. 이제 옷만 벗으면 진짜 에덴의 동산이다!’고 농담했다. 그렇게 둘이 아담, 이브를 흉내내다 그녀 오빠한테 걸렸고 곧 그녀 부모 귀에까지 들어가 난 그날 그녀의 집에서 쫓겨났다. 시드니는 걸어가기엔 좀 멀었다.
이든은 시드니까지 480km, 멜버른은 560km 거리라 차로 5~6시간 정도 걸린다. 컨츄리링크(CountryLink) 등 서너 개의 고속버스 회사가 캔버라, 시드니, 멜버른 노선을 운행한다. 이든의 주요 산업은 어업, 낙농업, 목재산업과 관광업 정도다. 시 중심에서 식당, 해변, 시내, 박물관 등 대부분 가까운 거리다. 해마다 약 55만여 명이 이든과 근교 지역을 찾는다. 대부분 고래를 보려고 온 사람들이다. 날씨는 겨울(5~9월) 평균 섭씨 영상 5도, 여름(11월~3월)엔 섭씨 25도 정도로 생활하기 좋다.
Eden, 에덴이라고 목소리 높여도 외국인은 못 알아듣는다. 에덴은 지극히 한국식 발음이고 외국에서는 [이:든]이라고 해야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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