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www.change2020.org)’에서 뉴스프로에 카드뉴스를 보내왔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고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작년 7월에 설립된 단체입니다.
세계 8위 컨테이너 선사인 국적선사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물류대란과 경제적 손실이 막대해 큰 이슈인 가운데,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바로 승선실습생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미 한 언론사의 보도로 이 바닥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이 또한 이슈로 오래 자리 잡지 못하고 잊혀질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번 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해기사 실습생, 소위 승선실습생은 해기사 지정교육기관과 오션폴리텍에서 소정의 학습을 마친 후, 위탁기관인 해양수산연수원이나 자교의 실습선 그리고 해운선사에서 승선해 승선실습교육에 임하게 된다. 특히 이번에 거론할 문제가 바로 해운선사에서의 실습이다. (이하 선사실습)
선사실습은 보통 6개월정도 이루어진다. ‘선원의 훈련, 자격증명 및 당직근무의 기준에 관한 국제협약’ ( 이하 STCW )의 기준에 맞는 훈련기록부를 작성하고 평가하면서 체계적인 승선실습교육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훈련기록부에 크게 벗어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교육이라고 보기 어려운 단순작업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지시 등이다. 장시간의 단순육체노동 혹은 밀폐구역 작업과 고소작업 등과 더불어 야식, 동영상 다운로드, 개인 심부름 등 사적인 업무를 강요하는 것 등이다. 이런 부조리에 대해 항의하기 어렵다. 해상생활의 특수성 때문이다. 고립된 환경에서 외부와의 소통에 어려움이 따르고 그로 인해 부당함을 대처하지 못하고 스스로 참는 일이 많다. 내부에서는 불만이 많지만 사회 밖에선 전혀 주목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그리고 임금에 대한 문제이다. 선원법이 보장하는 선원 최저임금기준에 합법적으로 제외되어있다. 선원 최저임금의 고시에 따르면 해기사 지정교육기관 출신으로 근로자 신분이 아닌 순수 기술습득을 목적으로 실습 승선한 경우는 최저임금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합법적으로 수산•해양계 교육기관 출신자가 실습생으로 승선하면 최저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해괴한 논리로 지금까지 적게는 월20만원에서 60만원대를 받는다.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실로 납득하기 어려운 급여가 아닌가 한다. 현장실습생에 관한 판례에 보면 실습교육 중에도 사용자의 이익증진에 영향이 있었다면 근로자로 봐야한다는 판례가 있다. 교육의 목적에 벗어나 사측에 이익을 안겨준다면 근로자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원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선원법을 준수하도록 되어있고 승선실습생은 선원법상 선원으로 제외되어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실습생은 ‘저임금 교육성 노동‘을 하고 있다. 물론 현장실습에선 작업현장에 동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피교육자가 느끼기에 과연 교육과정이라고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 승선실습을 거쳤던 해기사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으면 한다.
나는 이등기관사로 승선하는 동안 2명의 실습생이 거쳐 갔다. 월 30만원을 받던 미성년자 실습생이었다. 실습생이 동승하면서 분명 나는 작업 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고 편했다. 그들의 교육활동은 사용자인 선주에게 분명 이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실습생 시절도 그 친구들처럼 야간당직과 밤낮을 가리지 않은 입출항과 정비작업의 연속이었다. 최근 2016년 8월 3일부터 적용되는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개정안에서는 미성년자이거나 직업훈련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현장실습생에 대해 주 35시간, 합의 시 1일 1시간으로 총 5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현장실습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밤 10시에서 아침 6시까지의 시간과 휴일에는 현장실습을 금하고 있다. 그 외 근로기준법의 일부도 준용되는 등 현장실습생에 대한 보호적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조금씩 변화는 오고 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정작 선사실습생들은 이 사실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지 걱정이다.
이들의 고초를 교육기관과 더 나아가 해양수산부가 실습생의 처우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책임져야한다. 해운업계의 오래된 악습에 대해 취업률을 이유로 실습생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모습은 지양되어야할 것이다. 해기사는 유사 시, 물자수송을 담당하는 역할과 동시에 한국의 주력산업인 조선 및 해운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직이다. 해기사의 시작점에서 견디어야할 부당함의 무게를 덜어 주어야한다. 오늘도 선원법의 몇 문장에 힘겨운 하루를 보냈던 시절과 아직도 그 힘겨움을 겪어야할 예비해기사들을 생각하며 결의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