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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언론, 세월호 희생자에 연민과 이해심도 없던 박근혜

獨 언론, 세월호 희생자에 연민과 이해심도 없던 박근혜
-세월호 인양 개시, 한국의 오래된 상처 다시 열어젖혀
-인양작업은 한국 정부의 실패 조명, 이상한 사고 끊이지 않아

세월호 인양 작업이 개시되어 국내외의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독일의 최대 일간지 중의 하나인 ‘쥐트도이체차이퉁’이 19일 세월호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나섰다.

특히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박근혜와 관련,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이나 이해심도 거의 보여주지 않았던 박근혜라고 표현한 뒤 ‘박근혜 씨는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박근혜 정부가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정 조사를 억누르려 시도해왔지만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비난했다.

독일 뮌헨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독일 최대 발행 부수의 권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19일 ‘Schiffsunglück in Südkorea-한국 세월호 참사, Auf den Grund gehen-진상 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세월호 인양이 시작되고 있는 현재, 진상조사위의 자금 고갈, 박근혜 정권의 끊임없는 진실 덮기, 세월호 침몰 직전의 구조상황과 배 안에 아직 생존해 있던 희생자들의 공포스런 모습들, 다이빙벨 투입과 해경의 방해, 한국 정부 당국의 끊임없는 방해, 이상호 기자의 다큐 ‘다이빙벨’에 얽힌 일화 등을 일일이 조명하고 나서 큰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기사는 세월호 인양이 한국민들의 오래된 상처를 다시 열어젖히고 있다며 침몰한 “세월호” 여객선의 인양 작업은 한국 정부와 당국의 실패를 조명해주며 일련의 이상한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상호 기자의 발언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거짓말과 은폐를 일삼아왔다며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고 해경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라는 엄중 지시를 받았다’는 KBS 보도부장 김시곤의 증언을 소개해 한국 정부의 조직적인 진실 은혜와 진실규명 방해가 이루어졌음을 폭로했다.

이 기사는 세월호 침몰과 해경의 의심스런 실패의 구조작업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한국 정부와 언론의 ‘사상 최대의 대대적인 구조작업’이라는 거짓말에 대해 상세하게 전했다. 특히 이종인 씨가 다이빙벨을 투입해 구조작업에 들어갔을 때 해경의 악의적인 방해작업으로 구조작업이 중단된 사실도 언급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해외 언론으로서는 드물게 직접적인 언어로 박근혜의 책임 회피와 한국 정부의 진실규명 방해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의 실패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의 이 기사는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고 세월호의 진실을 덮으려는 박근혜 정부의 노력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언론들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어 결코 그들의 은폐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쥐트도이체차이퉁’의 기사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28JqnIs

19. Juni 2016, 18:44 Uhr

Schiffsunglück in Südkorea

한국 세월호 참사

Auf den Grund gehen

진상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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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Hilfe eines Schwimmkrans soll die Fähre “Sewol” an die Oberfläche gehoben werden. Bei ihrem Untergang im April 2014 starben mehr als 300 Menschen. Bild: Yonhap/AFP

해상기중기를 이용해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려질 것이라 한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로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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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chinesische Firma “Shanghai Salvage” soll das 6825-Registertonnen-Schiff heben. In Südkoreas Gesellschaft reißt die Bergung alte Wunden auf. Bild: Yonhap/AFP

중국 회사 “상하이 샐비지”가 6,825톤의 선체를 들어 올릴 것이라 한다. 이 인양 작업은 한국 사회에서 오래된 상처를 다시 열어젖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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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ute weiß man: Das Schiff sank, weil es nach einem Umbau nicht mehr stabil im Wasser lag. Außerdem war es überladen und die Fracht nicht richtig befestigt. Bild: Yonhap/AFP

오늘날 우리는 세월호가 개축된 후 더 이상 바다에서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침몰했다는 것을 안다. 뿐만 아니라 선박은 과적했고 화물은 적절하게 고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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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ährend des Untergangs (Archivbild) versagte die Küstenwache völlig. Auch die Crew ließ die “Sewol” im Stich. Präsidentin Park Geun-hye blieb den Angehörigen der Opfer eine plausible Erklärung schuldig. Eine Untersuchungskommission wurde zwar eingesetzt – doch nun ist ihr das Geld ausgegangen.
Bild: Kim Hong-Ji/Reuters

배가 침몰하는 동안 (아카이브에 저장된 사진) 해경은 완전히 실패했다. 승무원들 또한 세월호를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희생자 가족들이게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이제 비용이 다 소모됐다.

Die Bergung der gesunkenen Passagierfähre “Sewol” wirft ein Schlaglicht auf das Versagen von Südkoreas Regierung und Behörden. Die seltsame Serie an Pannen reißt nicht ab.

침몰한 “세월호” 여객선의 인양 작업은 한국 정부와 당국의 실패를 조명해준다. 일련의 이상한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Von Christoph Neidhart, Tokio

Wenn er sich vorstelle, welche Ängste sein Junge ausgestanden habe, wolle er nicht weiterleben, weint der Vater von Kang Seung-mook. “Ich hätte mein Kind retten können. Aber ich sagte ihm, er solle auf die Küstenwache hören. Hätte ich gesagt, klettere an Deck, dann wäre er noch am Leben.” Als Kang um 9.43 Uhr übers Handy zuletzt mit Seung-mook sprach, hatte die Crew der Sewol die Fähre bereits im Stich gelassen und nur sich selber gerettet. Zuvor hatte sie den 325 Teenagern aus Ansan befohlen, an Bord zu bleiben, in der Kantine oder in den Kabinen. Die Kinder schickten Handy-Notrufe und Fotos aus der sinkenden Fähre. Aber gerettet wurden nur jene, die der Crew trotzten und an Deck kletterten. 250 Kinder und 54 Erwachsene kamen um, neun Leichen sind nie gefunden worden.

아들이 어떤 공포를 겪었을지를 상상하면 더 이상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며 강승묵 군의 아버지는 흐느낀다. “아이를 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아이에게 해경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갑판으로 올라가라고 말했더라면 내 아이는 살아 있을 것이다.” 강 씨가 마지막으로 9시 43분에 승묵 군과 통화했을 때 세월호 승무원들은 이미 배를 버리고 자신들만 구조되고 있었다. 그전에 승무원들은 안산에서 온 325명의 십대들에게 식당이나 객실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지시했다. 아이들은 침몰하는 배 안에서 휴대전화로 긴급 구조 요청과 사진을 보냈다. 하지만 승무원의 지시를 어기고 갑판으로 올라온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250명의 아이들과 54명의 성인이 목숨을 잃었고 9명의 시신은 수습되지 않았다.

Vorige Woche begann die chinesische Firma “Shanghai Salvage” mit der Bergung der Fähre, die am 16. April 2014 vor Koreas Südwestküste unterging. Die meisten der 172 Überlebenden wurden von Fischern und Frachtern gerettet, die Küstenwache versagte völlig. Nun reißt die Bergung des 6825-Bruttoregistertonnen-Schiffs die Wunden, die das Unglück in Südkoreas Gesellschaft gerissen hat, wieder auf. “Die Wahrheit darf nicht mit der Sewol untergehen”, verlangt Vater Kang im Dokumentarfilm “Die Tauchglocke”. Sein Macher, Lee Sang-ho, bezichtigt die Regierung von Präsidentin Park Geun-hye der Lüge und Vertuschung. Den großen Medienanstalten wirft er vor, sie hätten bewusst Falschmeldungen verbreitet. Das zumindest hat Kim Si-gon, Nachrichten-Chef des öffentlich-rechtlichen Fernsehens KBS, inzwischen bestätigt. Er und fünf hochrangige Kollegen seien vom Sitz der Präsidentin aus angerufen worden, mit der strikten Anweisung, jede Kritik der Küstenwache zu unterdrücken.

지난주 중국 회사인 “상하이 샐비지”가 한국 남서 해안에서 2014년 4월에 침몰한 여객선을 인양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생존자 172명 대부분은 어부와 화물선 선원들에 의해 구조됐고, 해경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제 이 6,825톤 여객선의 인양은 한국 사회를 비탄으로 내몰았던 상처를 다시 열어젖힌다. “진실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 강 씨는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에서 갈망한다. 이 영화의 제작자 이상호 씨는 박근혜 정부가 거짓말과 은폐를 해왔다고 주장한다. 주류 언론도 잘못된 보도를 일부러 했다고 그는 비난한다. 적어도 공영방송인 KBS 보도부장 김시곤이 그간 그점을 인정했다. 그와 5명의 선임자들은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고 해경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라는 엄중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Die Rettungstaucher waren bereit, aber die Küstenwache sagte: Das Wetter sei nicht sicher

구조 잠수사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해경은 날씨가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Der Dokumentarfilmer Lee, der selbst für das öffentlich-rechtliche Fernsehen gearbeitet hatte, bis er 2013 entlassen wurde, weil er den vorauseilenden Gehorsam des Chefs seines Senders MBC öffentlich kritisiert hatte, eilte nach dem Unglück für Gobalnews.com, einen Internet-Fernsehsender, in den Hafen Paengmok, wo bereits die ersten Angehörige eintrafen. Die Agentur Yonhap hatte gemeldet, alle Passagiere seien gerettet worden. Aber Lee war der einzige Journalist vor Ort. “Keine Kamera, nur verzweifelte Angehörige”, schimpft er. Später meldete KBS, 640 zivile und Militär-Taucher seien im Einsatz, Yonhap sprach von “Südkoreas größter Rettungsaktion mit 261 Schiffen und 35 Flugzeugen”. In Lees Film widerspricht ein Taucher noch vor Ort dieser Darstellung: “Die Küstenwache sagt, das Wetter sei nicht sicher. Für uns wäre es gut genug, aber so standen wir nur untätig herum.” Einige seien zwar doch noch mit einem Boot zum Wrack gefahren, “aber das war kaum mehr als eine symbolische Geste”. Von den erwähnten 35 Flugzeugen hat in Paengmok niemand etwas gesehen.

MBC 방송국 보도부장의 복종하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서 2013년 해고될 때까지 그 역시 공영 TV에서 일한 바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이상호 씨는 참사 후 인터넷 TV방송매체인 고발뉴스 방송을 위해 이미 최초의 가족들이 도착하고 있는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연합뉴스는 승객들이 모두 구조됐다고 보도했었다. 하지만 이 씨가 현장에 온 유일한 언론인이었다. “카메라도 없고 그저 절망한 가족들뿐이었다”고 그는 비난한다. 후에 KBS는 640명의 민간 잠수사와 군 잠수사가 투입되었다고 보도했고 연합뉴스는 “261대의 선박과 35대의 비행기가 동원된 한국 최대의 구조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 씨가 제작한 영화에서 현장에 있던 한 잠수사는 이러한 묘사를 반박한다. “해경은 날씨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에겐 괜찮다고 말했으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성댔을 뿐이다.” 몇몇은 배를 타고 참사 현장으로 가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저 상징적인 제스처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앞에 언급된 35대의 비행기는 팽목항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다.

Klarheit herrscht nur über die Ursachen der Katastrophe. Der Reeder hatte die Fähre mit Genehmigung der Behörden so umbauen lassen, dass sie nicht mehr stabil im Wasser lag. Die Crew überlud die Fähre um das Doppelte und machte Fracht und Lastfahrzeuge nicht richtig fest. Als die Sewol am Morgen schließlich zu krängen begann, lösten sich Teile der Fracht und verschlimmerten die Schieflage.

참사의 원인만은 명확하다. 선주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 선박을 개조해서 그 결과 선체는 더 이상 물에서 안정되지 않은 상태가 됐다. 승무원들은 선박을 두 배로 과적했으며 화물과 차량들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아침에 결국 기울기 시작했을 때 화물 일부가 풀려나왔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Einige Kinder sendeten noch Handyfotos aus Luftblasen im gesunkenen Wrack

몇몇 아이들이 가라앉은 선체 속의 숨 쉴 수 있는 공간에서 휴대폰 사진을 보냈다.

Wenn große Schiffe sinken, bilden sich im Innern Luftblasen, in denen Eingesperrte überleben können. Für ihre Rettung gelten 72 Stunden als “goldenes Zeitfenster”. Einige Kinder sandten noch Handy-Fotos aus solchen Luftblasen. Die Retter hätten sich deshalb beeilen müssen. Und sie hätten für die Bergung eine Tauchglocke gebraucht.

커다란 배가 침몰할 때 내부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며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다. 72시간은 그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구조를 위한 “골든 타임”이라 여겨진다. 일부 아이들은 그런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부터 휴대폰 사진을 보내기까지 했다. 구조자들은 그래서 서둘렀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구조를 위해 다이빙 벨이 필요했었다.

Lees Film zeigt, wie die Angehörigen im Dunkeln gelassen und belogen werden, und wie sie schließlich ein Treffen mit dem zuständigen Minister und dem Kommandanten der Küstenwache erzwingen. Er übertrug das Gespräch live, aber die Offiziellen hocken bloß verstockt da und lassen die Beschimpfungen der Eltern an sich abtropfen.

이상호 기자의 영화는 유가족들이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남겨지고 거짓말로 속임을 당하며 결국 어떻게 그들이 현 장관과 해경 청장과의 만남을 성사시키는지 보여준다. 이상호 씨는 대화를 실시간 방송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목상처럼 그냥 그곳에 앉아서 부모들의 고통을 들은 체 만 체한다.

Im Mittelpunkt von Lees Film steht der erfahrene Tauchunternehmer Lee Jong-in, der über Südkoreas einzige Tauchglocke verfügt. Er eilte als Freiwilliger nach Paengmok, um zu helfen. Doch die Küstenwache schickte ihn weg. Als er auf Druck der Eltern doch zum Einsatz kommt, rammt ein Boot der Küstenwache seine Barke mit dem Kran, an dem die Tauchglocke hängt. Journalist Lee hält das für einen Mordversuch, er habe anonyme Warnungen erhalten. Sicher hat die Küstenwache die Arbeit mit der Tauchglocke sabotiert. Und den Medien dann gesagt, Lee habe die Rettung gestört. “Welche Ehre oder Reputation kann so wichtig sein?”, fragt der Tauchunternehmer unter Tränen.

이상호 씨의 영화 중심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다이빙 벨을 소유하고 잠수 관제 경험이 풍부한 이종인 씨가 있다. 그는 자원 봉사자로서 도움을 주기 위해 팽목항으로 서둘러 갔다. 그러나 해경은 그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그가 결국 작업을 시작하자 해경의 배는 다이빙 벨이 매달린 크레인이 설치된 그의 배를 들이받는다. 이상호 기자는 이종인 씨가 익명의 경고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살인미수로 간주한다. 분명히 해안경비대는 다이빙 벨의 작업을 방해했다. 그리고 언론은 이 기자가 구조 작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예나 명성이 그렇게 중요할 수 있겠는가”라고 이종인 씨가 눈물이 머금고 말한다.

Niemand weiß, ob Lee mit der Tauchglocke hätte Kinder retten können. Er durfte es gar nicht versuchen, während Crew und Küstenwache ihre Pflicht vernachlässigten. Die Sewol sank über die Dauer von zwei Stunden, Zeit genug für die Kinder, an Deck zu klettern. Doch wie die Crew unterließ es auch Küstenwache, die Sewol zu evakuieren. Ihr Reeder hat sich mit Selbstmord der Verantwortung entzogen, ihr Kapitän wurde zu 36 Jahre Gefängnis verurteilt. Der Küstenwache-Kapitän, der die Sewol auch nicht evakuierte, erhielt vier Jahre wegen Pflichtvernachlässigung. Aber die Rolle der Regierung ist nie untersucht worden.

이종인 씨가 다이빙 벨을 이용해서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승무원들과 해경이 직무 태만으로 제 할 일을 다하지 않았던 동안, 그에게는 시도를 해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세월호는 두 시간에 걸쳐 침몰했으며, 그 시간은 아이들이 갑판으로 올라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승무원과 마찬가지로 해경도 세월호에서 승객을 대피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 세월호 선주는 자살로써 책임을 피했고 세월호 선장은 3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세월호에서 승객을 대피시키지 않았던 해경 정장은 근무 태만으로 4년형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역할은 결코 조사되지 않았다.

“Die Tauchglocke” sollte auf dem Filmfestival von Busan 2014 uraufgeführt werden. Suh Byung-soo, der Bürgermeister von Busan, versuchte das zu verhindern. “Damit hat er den Film erst bekannt gemacht”, sagt Lees Co-Regisseur Ahn Hye-ryong. Das Festival zeigte ihn trotzdem. Nun droht die Stadt Busan, der Hauptsponsor, dem Festival für 2016 die Gelder zu streichen.

“다이빙 벨”은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초연될 계획이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영화를 더 알려지게 했다”고 이상호 씨의 공동 감독 안혜령 씨가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제는 다이빙 벨을 상영했다. 영화제의 주요 후원자인 부산시는 2016년 영화제에 지원기금을 주지 않겠다고 위협한다.

Präsidentin Park Geun-hye blieb am Unglückstag unsichtbar, in Seoul kursieren Gerüchte über ihren Verbleib, Journalisten, die diese weiterverbreiteten, wurden strafverfolgt. Eine plausible Erklärung blieb Park, die auch später kaum Mitgefühl oder Verständnis für die Opfer zeigte, den Koreanern schuldig. Ihre Regierung hat versucht, eine parlamentarische Untersuchung des Unglücks zu unterdrücken. Immerhin – das gelang nicht. Aber jetzt, kurz vor der Hebung des Wracks, ist der Untersuchungskommission das Geld ausgegangen. Das Budget sei aufgebraucht, heißt es.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 당일 눈에 띄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그녀의 행방에 대한 소문이 나돌았으며 이 소문을 계속 퍼뜨린 언론인들은 기소당했다. 후에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이나 이해심도 거의 보여주지 않았던 박근혜 씨는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정 조사를 억누르려 시도해왔다.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기 조금 전인 지금 진상조사위원회는 자금이 없다. 예산이 다 소비됐다고 그들은 말한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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