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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공화국 : 나의 두 번째 여행

북조선인민공화국 : 나의 두 번째 여행

보는눈

5월 10일 서울 인천 공항을 떠나 심양으로 갔다. 이번 방문의 우리 일행은 단출하다. 사이 좋게 단체를 만들어 북조선 돕기를 15년간 해오신 애틀랜타에 계시는 J 목사님과 워싱턴에서 의사를 하시는 B 씨와 한팀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두 번째 북조선 방문으로 평화란 무엇인가를 피부로 느끼기 위한 나의 작은 순례행렬이다. 21세기에 분단으로 살고 있는 한반도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나 개인의 눈을 통해 이해하고 싶다. 이해되지 않는 세계지정학의 패권주의자들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작은 삶들,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권력자들이 만드는 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행동이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은 미국에 의해 악의 축에 들게 되고 세계의 미디어에 의해 악마나 미친 사람들이 사는 세상처럼 보여지는 곳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고 나도 그중에 한 명이 되는 모방형 사람으로 살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행동하는 나의 삶을 살 것인지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은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한반도의 휴전선 이북이지만 휴전선 이남과 같은 역사를 갖고 같은 조상의 후예로 태어난 땅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갖은 사람들에게는 금단의 나라인 것이다. 지금은 통일부에 북조선을 방문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북조선사람들과 제 삼국에서 만나는 것도 신고를 해도 통일부에서 신고를 접수하지 않아 모든 북조선 사람들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통일부가 불법으로 만들고 있는 세상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프랑스 국적자이고 프랑스는 자국민에게는 여행 주의시키는 지역은 있어도 금지시키는 지역은 없으니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여행 자유권이 있는 시민인 셈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나에게 북에 대해 왜 관심을 갖고 방문도 하는지를 묻는다. 나는 북에 가족도 없고 연고자도 없다. 왜 북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하는가? 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것은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북조선 인민공화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가 이상하다. 내가 여행하고 싶은 곳을 가면 남들이 나의 여행에 대해 나쁘다고 비판할 권리가 있을까?

나는 페루도 가보고 탄자니아도, 키르기스스탄도 가 봤다. 중국도 가보고 캄보디아도 가봤다. 40 개국 이상은 여행했다. 왜 북조선 인민공화국을 가면 안 되는지 나에게 답을 달라!

물론 북조선 인민공화국은 나에게 특별한 나라이다. 이곳은 부시가 악의 축이라고 선포한 이래에 전 세계 미디어가 관심을 갖고 철저하게 악마화를 하는 나라이다. 그 전에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갑자기 미국의 전쟁광 조지 W 부시가 악마의 축의 한나라로 격상(격하)를 시키는 통에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갖고 나쁜 악마 같은 뉴스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북조선인민공화국에도 한반도의 반만년 역사 속에서 고고히 타고 내려온 한민족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내가 어찌 이점을 외면하고 살 수 있으랴. 나도 이 한반도의 딸이고 이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니 나의 유전자적 쌍둥이가 살고 있는 나라를 외면하는 짐승 같은 짓을 나는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근 40년을 외국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 부모와 형제를 잊은 적이 없듯이 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전 세계 미디어가 악마화를 하면 할수록 나의 유전자 쌍둥이들에 대한 호기심을 더 커지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자세로 보여진다. 즉 세계 정치권과 미디어에서 악마화를 하면 그들은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나의 일부를 악마화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나를 모르는 타인들에 의해 내가 악마화 될 이유를 나는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반쪽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처음 북조선 인민공화국을 찾아봤을 때는 낯설기만 했다. 마치 남의 집에 가는 것처럼, 남의 나라에 가는 것처럼 멀뚱하게 관광객처럼 행동해야 할 것 같아 어정쩡하게 마치 관광지에 가서 이것저것 객체 즉 물건이나 건축물의 외형만 보면서 마음이 열지 못하고 방문을 했다. 나의 행동을 지시하는 나의 생각이 어디서 경직되어 있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두 번째 방문으로 북조선은 나에게는 이제 생소한 곳이 아니다.

북조선 인민공화국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조국이다. 조국이 이렇고 조국이 저렇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우리같이 해외동포들이 북조선 인민공화국을 방문해 주면서 조국이라고 말해주면 그 사람들은 너무너무 좋아한다. 같은 조국을 공유하고 있는 한 핏줄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조국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구시대의 단어로 생각이 든다. 물론 서로 생각의 차이이고 습관이 차이지만 조국이라고 말하면 상당히 검증되지 않은 자칭 애국주의자들만이 쓰는 단어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나의 개념이다. 나에게 조국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나의 어머니의 나라인 대한민국이 먼저 떠오르니 이건 아마도 오랫동안 내가 받은 교육으로 길들어진 생각이리라. 나의 조국(homeland)은 한반도라는 생각을 가져야겠다. 여행기의 서술이 길어졌다. 이만큼 북조선 인민공화국을 방문하는 것에는 설명이 필요한 세상이다.

이번 여행 역시 심양에서 비자를 받고 고려항공을 타고 북조선을 가게 되었다. 이번 비행기엔 우리 같은 여행객들이 많이 없어 썽글한 느낌을 주고 있다. 유엔의 2270 제재로 여행객들도 많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햇볕이 반사되어 보이는 북조선의 땅은 나에게 더 이상 금단의 나라가 아니다.

이번에 도착한 순안공항은 2015년에 신축된 깨끗한 현대식 건물이다. 입국심사도 빨리 마칠 수 있는 여러 개의 출입국 심사대가 있었다. 간단한 입국절차를 마치고 짐을 찾는 곳으로 가니 짐 찾는 곳도 옛 터미널과는 달리 쾌적한 환경의 컨베이어 벨트가 작동되고 있다.

순안공항에서 짐을 찾고 마중을 나와 있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안내원을 만나 평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이 지난주에 내린 비 때문인지 깨끗하고 산뜻하게 보였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5월 6일 시작한 당대회가 끝나서인지 부산한 느낌을 받았다. 길거리에 걷는 사람도 많고 자전거와 자동차가 지난번보다 더 많아 보였다.

우리는 2년 전에 우리 일행이 묵었던 대동강변에 있는 평양호텔에 짐을 풀게 되었다. 2년 전에 본 평양호텔의 직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나도 본 적이 있는 호텔직원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다들 우리가 다시 방문해 준 것에 아주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호텔에 2년 전과 다른 것은 호텔 로비에 커피점이 생긴 것이다. 지난번에는 큰 창문 쪽으로 소파나 안락의자들로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 커피를 내려주는 커피점이 있다. 여기 커피점은 바(bar)식으로 커피대 앞에 앉을 수 있는 높은 의자가 있어서 특히 여기서 담배를 피는 남자들이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평양호텔은 주로 재일동포들이 조국의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할 때 묵는 호텔이라 재일동포들이 많이 투숙을 하고 있다. 조총련계의 재일 동포들에게는 조국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나라 없는 시민으로 일본에서 성장하고 나이 들어가면서 북으로 간 가족과 친지를 만나러 오는 재일 동포들은 노장년 세대부터 중년 소년세대까지 다양해 보인다. 이들이 조국에 있는 가족과 친지를 만나는 날은 호텔 로비가 북적거렸다.

평양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대동강 강변을 조깅을 하면서 대동문이 있는 데까지 한 바퀴를 돌았다. 이날도 역시 몇몇 중.노년에 속하는 여자분들이 강가에서 녹음기를 켜놓고 이곳 특유의 춤, 율동을 하는 그룹을 보았다. 대동강변에 낚시꾼들이나 강변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어린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나와 운동하는 것이나, 출근길로 바쁜 발걸음의 평양인들을 보는 것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친선병원을 방문하였다. 워싱턴 DC 에서 활동하시는 B 의사는 이 병원이 필요로 하는 물리 치료 소모품을 준비해 기증하였다. 기증에 대한 보답으로 이 병원에서는 3차례 정도 물리치료를 받아 보라고 하였다. 나는 평소에 운동을 하면서 육체적으로 크게 아픈 곳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물리치료를 받아 보라는 제안에 치료를 받고 싶어졌다. 나를 담당하신 여의사는 내가 어디 아픈 곳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평소대로 별로 아픈 곳은 없는데 무릎이 가끔 아픈 적이 있다고 하면서 진찰과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 여의사는 꼼꼼하게 나의 등을 한 곳 한 곳 집어가면서 내가 아파하는 곳을 찾아내고 무릎의 아픈 곳도 정확하게 집어주면서 약간의 비정상적인 목뼈와 허리뼈를 알려주었다. 북조선에서는 물자는 없어도 인력자원이 최대로 정예화된 것을 알게 되었다. 물리치료를 받은 후에는 이 친선병원을 방문할 때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던 내 몸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부터인지 전신물리치료로 마사지같이 온몸을 아주 부드럽게 주물러 주었는데 온몸과 무릎에 은근한 통증과 짜릿짜릿한 통증이 생기는지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만경대 학생 소년 궁전을 방문하였다. 5000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과외 특별활동을 하는 곳으로 말굽 모양의 웅장한 건물의 압도적인 건물양식은 북조선의 건축특색인 것 같다. 1980년대 말에 건축된 건물이지만 몇 년의 보수공사를 거쳐 올해 다시 개관을 하였다고 한다. 이번 보수 리모델링을 한 내부는 각진 곳이 없이 부드러운 원형의 선을 이용해 벽도 각진 벽이 없이 다 곡선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을 한다.

청소년들이 배구와 농구를 연습하고 있는 체육관부터 시작해서 손풍금반, 발레반, 가야금, 붓글씨 등 체육, 예술 과목과 컴퓨터와 과학 방까지 다 포함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6세부터 16세까지의 청소년들이 원하는 과외 특별활동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소년궁전은 각 지역마다 하나씩 있어서 어느 지역 청소년이든지 특별활동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배우는 학생들은 자의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며 선택과목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이나 잘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에 대한 투자가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특기를 배우는 기회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체적이고 집중적인데 무척 놀라웠다. 저녁에서는 청소년들이 배운 특기를 공연하는 만경대학생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청소년들의 공연은 북조선 특유의 군가와 산업혁명의 신바람을 일으키는 노래와 연주, 춤이 복합적인, 우리 문화의 전통적인 모습과 자동차 사회의 신바람을 어울려 율동과 연주가 이어지는 5 재미난 공연이었다. 청소년의 공연을 보면서 미래에 투자를 하는 나라와 활력을 북돋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평양은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날은 우리의 방문 주요 사업인 황해북도 상원군과 중화군의 묘목장, 양묘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번에 평양과 황해북도의 지방을 다니면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를 타도하자는 슬로건이 보이지 않고 인덕주의를 강조하는 어머니당에 대한 슬로건과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려는 슬로건이 더 눈에 띄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중화군 묘목장에서는 “산과 들에 더 많은 나무를 심어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자” 라는 슬로건을 대형 시멘트 벽을 세워서 빨간 글체로 박아 놓았다. 놀라운 변화다.

우리가 방문한 상원군의 묘목장은 비닐하우스와 그늘막을 설치해 놓은 곳으로 나무들의 종자씨를 채취해 말려서 묘목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다. 2014년에 방문했을 때는 비닐하우스에 비닐이 쳐 있었는데 이번에는 비닐이 하나도 없이 알루미늄 사시만 앙상한 가지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비닐이 낡아서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늘막을 쳐 놓은 망도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비닐하우스에 비닐이 없어 그늘을 만들어 온도를 조정할 수가 없어 씨가 싹이 트고 한 뼘이라도 자라는 사이에 낮의 직사광의 열기와 밤의 온도 차이로 벌레 등 병이 쉽게 걸려 많은 싹들이 크지 못하고 병에 걸려 죽는다고 한다. 작년에 지원한 솔라파넬이 지붕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의한 후 우리는 중화군으로 이동하였다. 중화군 역시 슬로건이 변해 있었다. 이곳에는 “산림조성과 보호사업을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리자” 였다. 산림 사업을 위해 총체적 군중적운동으로 벌이고 있는 것이 확연하다. 나무를 심어야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화군에서는 우리가 전년도에 식수한 나무들을 살피고 지원하기로 약속한 펌프와 솔라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양묘장 관리 지배인 측에서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많다고 한다.

이분들이 관리해야 하는 들과 밭과 산지가 넓은데 우물을 한군데만 파 펌프를 설치해 솔라파넬 전기로 작동을 하면 물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물을 이동하는 장비와 기술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므로 차라리 이동이 가능한 양수기를 구입하는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분 들은 구체적으로 타지역에서 사용하는 양수기 모델을 보여 주면서 8마력짜리 양수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을 부탁했다. 우리는 양묘장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물자를 지원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지원이므로 흔쾌히 동의를 하였다.

중화군의 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치료를 받기 위해 친선병원에 들려 K 의사의 부드러운 마사지를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 어제는 온몸의 통증이 왔는데 두 번째 치료 후에는 별로 통증이 오지 않고 무감각한 상태였다. 세 번째 날은 원산으로 가는 일정이 계획되었다. 원산에는 J 목사가 7년 전부터 지원을 한 고아원인 육아원을 방문하는 것이다. 2013년 가을 J 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보여준 육아원의 아이들 졸망졸망 모여 있는 사진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2014년에 원산 육아원을 방문했을 때 실내는 벽의 페인트가 얼룩이 져 있었고 바닥은 비닐장판으로 아이들에게는 추워 보였었다. 그래도 우리 같은 방문객을 위해 몇몇 아이들에게 입혀 놓은 색동옷은 도리어 어린이들의 부족한 실태를 강조해서 보이는 것 같아서 맘이 많이 아팠다.

이번 원산여행도 지난번처럼 평양서부터 포장이 많이 파손이 되어 최고 60킬로 이상을 달리지 못하면서 여러 작은 터널을 지나 신평금강 명승지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원산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지난번 방문한 곳은 원산 육아원이 2015년 말에 개관을 한 신 건축물이 육아원, 애육원, 소학교, 중등학교의 신 건축물들이 있는 교육단지처럼 조성된 곳이었다. 물론 170명의 육아원생을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이번에 건축된 건물은 밝은 색상의 창문도 원형으로 외벽에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전체가 주황색 등 강한 색상으로 칠해져 있는 현대식 건물이었다.

이 육아원 입구에는 실내화가 놓여 있고 손을 소독하는 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린이들의 위생을 위해 방문객들은 손을 씻고 들어가야 한다. 너무나 놀라운 발전이다. 이 건축물을 짓기 위해 김정은 원수가 현지방문을 수 차례하고 고아들은 부모가 있는 아이들보다 더 잘 키워야 한다는 지시를 하면서 육아원생들에게는 식량배급이 우선적으로 되도록 지시를 하여 지금의 육아원생들의 식단은 어린이들의 필요량에 맞추어 준비되고 있다고 하였다.

Figure1 원산 육아원 외부

원산육아원 외부

Figure 2 원산 육아원 내부 놀이방
원산육아원 내부 놀이방

놀라운 발전이다. 2년 전에 정부에서 육아원을 새로 건축할 계획이 세워졌는데, 예산이 없어서 짓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했지만 이렇게 완벽한 변화를 할 것으로 상상을 못했었다. 특히 셋 쌍둥이일 경우는 부모가 어떤 형편이든 아이 셋을 한꺼번에 키우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국가가 육아원에서 키워준다고 하는 셋 쌍둥이가 4가족이나 있었다. 한 방에 한 가족 아이들이 산다고 한다.

figure 3

삼태자(셋 쌍둥이 가족)

아이들이 산뜻한 환경에서 현대식으로 전기난방장치가 되어있고 부엌도 스테인리스 주방시설이 되어있는 곳을 보니 북조선 변화의 일면을 보고 체험하는 기회다.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육아원 원장에게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물건은 무엇인지 상의를 하니 지금까지 J 목사가 어려울 때 지원해준 설탕, 기름, 비닐 장판 등등 다 고마웠다고 하면서, 그리고 작년에 지원해준 솔라파넬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더 이상 필요 없어 창고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부가 우선적으로 전기를 공급해 주는 곳이라 전기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잔디 깎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육아원 놀이터와 함께 잔디로 조경을 예쁘게 해두어 손으로 하기에는 너무 힘들다고 한다. 우리는 잔디 깎는 기계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원산에 가면 싱싱한 생선과 해물을 먹기 위해 송도림으로 간다. 소나무가 빼곡하게 서 있고 해당화가 만개를 하고 있는 송도의 해변가에 있는 송도식당은 특색 있는 요리로는 자연산 생선회 이외에도 왕소라회, 전복, 대합조개 등과 B 씨가 작년에 맛보고는 이것 때문에 다시 북조선에 와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어죽을 먹었다. 신선한 생선회와 해물회들이 일품이었다.

나는 2년 전에는 준비성 부족으로 동해 바닷물을 맛보지 못한 탓에 이번엔 준비해간 수영복을 입고 5월의 약간의 찬 기운이 있는 동해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다시 와서 또 수영을 하리라!

Figure 4

송도림 앞 동해에서 수영하다

원산에서 평양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포장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길가에 보이는 논들과 물이 차있는 논들 사이 모내기를 준비하는 농민들을 보면서 올해는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다.

4번째 날은 일요일이다. 전날 밤부터 계속 봄비가 내리고 아침 식사 후에도 조금도 그칠 것 같지 않았다. J 목사님의 요청으로 칠곡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고 점심은 옥류관에서 평양 쟁반냉면을 먹는 간단한 일정을 하는 것으로 결정해서 가는 데 비는 마치 여름비 마냥 굵은 빗줄이 장대비처럼 퍼붓고 있다. 칠곡교회는 자그만 하지만 아주 훌륭한 성악대가 있어 인상이 깊다.

5번째 날인 월요일은 완전히 소풍 가는 분위기였다. 묘향산을 당일로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도시락을 준비해서 간다고 했다. 묘향산은 원래 1박을 향산호텔에서 하면서 비로봉으로 산행도 하고 온천도 즐기는 것이 좋은데 우리 일정이 짧은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당일로 한다고 안내원이 묘향산의 멋을 만끽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나야 일단은 한번이라도 가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도 좋다고 했다.

아침 9시쯤 평양역 근처의 식당으로 도시락을 찾으러 가는 데 평양역에서는 아침 출근길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부산스럽게 걷고 각자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마치 서울역이나 청량리역 앞에 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버스와 승용차들이 혼잡스러운 게 평양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여기도 출근길은 다 바쁜가 보다. 운전기사가 아침에 기차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아 평양역이 바쁘다고 한다.

묘향산으로 가는 도로는 포장이 잘 되어있는 편이었다. 논에 모내는 풍경과 반대편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비료를 운반하는 트럭들이 줄지어 가는 것이 원산이나 개성으로 가는 도로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들이었다. 청천강변을 따라서 설치된 묘향산으로 가는 길에는 하나씩 나타나는 북조선의 수력발전소는 물을 가득 담은 청천강을 따라 건설되어 있어 내일의 풍요함을 누리기 위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청천강을 따라 나타나는 산줄기와 청천강의 가득찬 물이 한반도 땅의 아름다운 산세와 물세의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묘향산에 입구에서 삼각형 모양의 향산호텔을 지나 국제친선전시관으로 갔다, 국제친선관의 건축물은 외부는 기와와 은근한 연분홍색이 나는 단청을 입혀 아주 현대적 감각으로 건축했음에도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고급스러운 외장은 백색 화강암에 내부는 백색 대리석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백색 화강암이나 백색에 흑색이 듬성듬성 섞여 있는 대리석도 북조선의 황해남북도에서 나는 국산품이란다. 2관의 출입문은 9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금고의 문이었지만 아주 부드럽게 열리는 기술을 겸비한 문이었다.

이 국제 친선관에는 북조선 지도자들이 타 국가와 외교 친선관계를 맺으면서 받은 선물들을 전시하는 곳으로 제 2관은 김정일 지도자 시대 때 받은 선물이고 1관은 김일성, 김정은 지도자들이 받은 선물들이다.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2만 점이 넘는 선물 중 몇몇 선물들을 둘러 봤는데 선물들의 가치는 각 나라의 지역적 특색이 표출되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자랑할 선물들이었다.

북조선의 건물들의 특징은 입구에 들어서면 그 웅장함을 보여주기 위한 높은 천장과 기둥들과 벽화나 조각물들이다. 깊은 숲 속에서 감춰져 있는 보물고 속에는 북조선이 첫 번째로 선물 받은 경비행기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다음으로 만폭동을 향하는 묘향산 길을 따라 만폭동의 산에서 내려오는 5월의 찬물에 발을 담그면서 비로봉을 앞에 두고 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여러 반찬의 진수성찬으로 차려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묘향산의 보현사는 1044년에 재건된 사찰로 암자와 전이 많아 경내에서는 비를 맞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고 한국 내란을 겪으면서 많은 전들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보현사의 만세루의 단청은 남한에서는 본 적이 없는 연 푸른색으로 흰색이 주도를 이루면서 푸른 계통으로 그 색상의 우아함에 감탄을 했다.

figure 5

보현사 만세루 단청

의장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 인상적이었다.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아름다운 조국에 더 이상 피가 흐르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을 느꼈다.

미국이 북조선을 향해 준비하고 있는 북조선 붕괴 초토화 작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작전일까? 미군들이야 컴퓨터 앞에서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북조선에 융단폭격을 가할 때 만면의 웃음을 지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올리겠지만 과연 우리 조상이 물려준 이 땅에 미국이 유린하는 피 흘리는 조국을 남쪽에서도 만면에 웃음을 지면서 박수를 칠 수 있을까?

우리 조상이 금수강산을 보존해서 후대에 물려주었는데 우리는 누가 만든 이념으로 누구를 위해 서로 피 흘리며 싸워야 하는가? 우리 후대를 위해서 하는 짓거리는 아닐 것이다. 전쟁을 만병통치약으로 믿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위해 북조선을 초토화 시켜 인민을 살상하려는 가? 전쟁범죄자들이 승리를 할 경우 그들은 재판을 받지 않는 불공정한 사회는 강자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을 초토화하는 융단폭격은 무작위 살인기계일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죽은 북조선 인민은 그 당시 20%인 400만으로 추정하는데 만약 이번에 더 강력한 무기로 북조선을 향해 대대적인 국제사회 불법 선제공격 무기로는 북조선 민간인 2천4백만 명을 다 살해할 것인가?

역사에 남을 살인자들은 과연 미국의 조이스틱을 놀리는 자인가? 아니면 남쪽에서 박수치는 자들일까? 역사가 대답하리라! 한반도의 반만년 역사의 끝자락에서 한반도 민족 2000만 명 몰살 역사로 만들 자들은 누구인가? 북조선 인민몰살 계획을 국제사회에서도 눈감고 지나간다면 한반도 민족의 원한은 누가 갚을 것인가? 선제공격이라는 이름의 조이스틱을 만지는 자들은 북조선에 폭격기 B-2를 10대가 폭탄을 투하하는 단추를 누를 때 그들은 만족의 웃음을 띠면서 엄지손가락을 쳐 들겠지. 그리고 그자들은 그날 편한 잠을 자겠지. 그들의 미국의 한구석에서 누른 단추와 조이스특을 돌린 행위를 영웅적이라고 칭송하겠지. 미국의 한반도 민족 대량학살에 남녘의 전쟁광들은 만족의 즐거움의 춤을 출까? 아마도….

미국은 이미 한국전쟁 때도 북조선에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려고 하였다. 이들을 사담 후세인이나 아사드가 자국민에게 생화학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라크 시리아를 공격하는 것에 정당화를 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불법인 선제공격으로 북 인민을 2000만 명 살해하는 것은 무엇으로 정당화할 것인가?

북조선 인민들의 굶는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자들이 인권이 침해되고 있어서 북조선 인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외치는 자들이 북조선 인민들에게 융단폭격을 해서 인민들을 몰살 살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은 자선인가 인도주의인가 묻고 싶다? 우리는 어떤 위선의 가면으로 포장하면서 불법도 정당화 하는 멋진 논리를 펴면서 살 것인가?

마지막으로 남은 하루는 평양에서 보내기로 했다. 2016년 1월 1일 개관한 과학기술 전시관을 방문할 차례이다. 일년의 공사기간으로 건설된 과학전시관은 평양의 진주가 될 것 같다. 붕소 원소모양을 바탕으로 건축한 현대식 건물은 멀리서 봐도 한번 방문해야 하는 평양의 명소가 될 것 같다. 과학기술전당 앞에는 탁 트여진 공간에 펜모양의 조형물 앞에 놓인 분수대는 원근법을 이용해 더 멋있게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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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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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전당 내부

북조선이 과학기술의 나라로 가기 위한 대장정의 시작을 표출하는 것 같았다. 나의 여행은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평양호텔에서 청천에서 왔다는 어린이와의 만남이었다.

figure 8

나의 이번 여행은 대단히 즐거운 여행이었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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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왠지 남한에서 반공주의자들이 외치는 듯, 그반대에서 똑같은 논리로 말을 하는 것같아 쓸픕니다.
    저도 외국에서 몇십년을 살아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도 외국 시민권자입니다.) 이글을 쓰신 분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표현인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각자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과 생김새를 달리 하면 위험 천만한 일이지요.
    여행가서 잠시 보고 느낀 것도 중요하고 존중 받아야 할 일이지만,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우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다른 곳으로 여행 가면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을 다 느낍니다.
    허나 좋은 점만을 부각시키거나, 나쁜 점만을 부각시키지 말고, 본인이 느낀점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나도 프랑스 파리에 여행 간적이 있습니다.
    워낙 가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내눈에 좋아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것이 불편하거나 나쁘게 보이는 것보다 더 많았습니다.
    샹제리제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나만의 만족, 뿌듯함, 즐거움, 바겟트와 커피에 향기에 흠뻑 취해도 보고, 놀만디에 가서는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던 에스프레소 한잔, 너무도 좋아 보였습니다.
    샹제리제 거리에서 그 많던 집시들 거지들 모두 내눈에는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 처럼 여행을 가거나 잠시 머무를 때는 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바보는 아닐진데, 북한에 대해서 무슨 행위가 일어날때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저의 부모도 모두 북한분들이십니다.
    글쓰신 분의 가족도 북한 출신 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이산 가족의 아픔을 갖고 살아 오신 분들 중에는 저희 부모도 계셨지요.
    저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 왔습니다.
    위의 내용을 보면 또하나 안타까운 글의 흐름이 보여서 꼭 무슨 선전을 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쓰신 것이 아니라면 저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요.
    분명한 것은 북한 처럼 권력을 세습하는 곳은 없고, 그 권력의 승계자가 중세의 왕같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마구 죽이고, 국민을 잘 살게하려고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그저 위험한 장난감의 개발에 의존하여 세계 모든 국가에 대해 위협하여 먹고 살려고 하는 동네 양아치들 하는 짓을 하는 거 아닌가요 ?
    진정으로 같은 유전자를 갖고 사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려면 진정한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조언해야 합니다.
    조국 통일을 등에 엎고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위에 열거한 내용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고, 남한의 정권에 대해서만 날선 비판과 저주만을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건가요?
    왜 양쪽에게 똑같이 칭찬과 비판을 하지 않는 건가요 ?
    그네들은 북쪽에만 서서 북한의 인권과 정치 상황, 전쟁 위협등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가 없는 건가요 ?
    항상 미제가 어쨌느니, 남조선 괴뢰도당이 어쨌느니, 이런 말만 하고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는 칭찬 일색인가요 ?
    진짜 칭찬 받을 일만 하고 있나요 ?
    사람을 마구 죽이는거 ? 자기 고모부도 가차없이 죽이는거 ? 인민들의 안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거 ?
    자기의 사치에는 인색하지 않는거 ?
    도대체 이렇게 해야할 말과 일이 많은데 엉뚱한 논리로 장님 코끼리 만지는 놀음에 빠져 있는 이유는 뭔가요 ?
    북한에 2번이 아니라 1000번, 10000번을 가도 생각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같은 놀음만 놀고 있을 겁니다.
    진정으로 북한을 한 가족으로 아우르고 살기를 원한다면, 잘못했을 때 매도 들을 줄 알아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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