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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믿쉽니까! ① 정교회

(41) 믿쉽니까! ① 정교회

S. Macho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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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2일 오후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쿠바를 공식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가 962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항 귀빈실에서 키릴 총대주교와 포옹하며 “마침내 (만났다)”라는 감탄사와 함께 “우리는 형제다”라며 이번 만남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AP•AFP통신 등 주요 외신은 이날 가톨릭과 정교회의 역사적 화해의 장을 세계 곳곳에 타진했다. 정교회 대부인 러시아 정교회 수장과 가톨릭 교황이 만난 것은 서기 1054년 기독교 교회가 동방과 서방으로 분열된 이후 처음이다.

정교회 교리의 근원은 성서와 성전(거룩한 전승)이다. 성서와 성전은 성령의 인도와 하느님의 빛으로 해석된다. 오소독스(Orthodoxy)란 그리스어로 ὀρθοδοξία(오르토독시아), 즉 정교(正敎), 정설(正說)이란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 가르쳐져 내려왔고 성서와 성전에 나타나 있는 올바른 신앙을 의미한다. 정교회 하면 그리스를 떠올리는 이유는 예수님이 전파한 말씀이 고대 그리스 문명으로부터 풍성해졌고, 그리스도의 소식을 당시 세계에 전도하는 데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고결한 가르침을 전하는 데 그리스 철학이 많이 사용되었고, 신약성서가 처음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으며 교부들의 업적들, 신앙의 신조, 교회 교리, 공의회의 결정, 정교회 성찬예배서, 기도서, 성가들이 모두 그리스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9~11세기 동안 교회에는 네 가지 분열이 일어난다. 첫 번째는 863년 포티오스 총대주교에 대한 로마교황의 파문이고, 두 교회가 완전히 단절하게 된 분열은 1054년 움베르토 추기경이 콘스탄티노플 성 소피아 성당 제단 위에 동방 교회를 향해 파문장을 던진 사건이다. 교회가 분열된 원인은 초대 교회 이후로 사도전승에는 없던 교리와 교회 행정 전반에 걸친 서반교회의 여러 변화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정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서방교회가 동방교회와 분리된 후 주요 4대 정교회의 발상지는 당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등이며 그곳에서 교리와 예배가 공식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각 자치교회가 예배를 진행해 왔다. 비신자들은 키프로스, 러시아, 그리스, 세르비아, 루마니아, 시나이, 그루지야, 불가리아, 폴란드정교회 등으로 구별해 생각하지만, 정교회는 그냥 ‘정교회’ 하나다.

정교회의 활동은 9세기에 가장 활발했고 슬라브족과 비잔틴 제국의 주변국들까지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오늘날 동유럽에 속하는 러시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에 1억여 명의 신도가 살고 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의 함락으로 그리스 정교회는 오트만 터키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교회의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됨으로써 선교의 기회를 잃었다. 그러자 러시아 정교회는 동방으로 눈을 돌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알래스카,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었다. 최근엔 우간다, 케냐, 콩고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아시아 비기독교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초 그리스도를 하나로 이어져 내여 오던 교회가 1054년 정교회와 천주교로 분리되고, 16세기 이후 또 개신교가 떨어져 나간 후 각 교회 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스도교가 동질성을 찾기 위해서는 분열하기 이전 1000년간 면면히 내려온 역사에 기초로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교가 분열되기 이전 로마를 비롯해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등에 있던 5대 교회는 저마다 나름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신앙을 고백해 왔다.

초창기 교회들은 로마 정교회를 권력의 첫째가 아닌 주님이 가르쳐 준 사랑과 인간에 대한 봉사로서 첫째였다고 인정했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은 형제들을 위해 봉사하라 했다. 최초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회의에서도 모든 사도는 평등했다. 베드로가 아닌 야곱이 주재한 회의에서는 하느님의 뜻으로 평등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모습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보인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여기에서 분열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서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평신도들에게 확신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교회에는 타 종교에 없는 일곱 가지 신비의 성사(聖事)의식이 있다.

  1. 세례성사. 교리 지도를 받은 사람이 특별 기도로 축성된 물에 세 번 몸을 담그며 ‘(마태오 28:19)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암송하면 이 순간부터 그는 정교회 신도가 된다.
  2. 견진성사. 세례성사에 이어 바로 거행되는 성령의 기름 바름의 성사다. 성사에 쓰이는 기름은 여러 향료를 섞은 ‘성 미로(Holy Myron)’라고 하며 성 대(大) 목요일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거행되는 특별 의식 중 총대주교와 일반 주교에 의해 축성한다.
  3. 성체성혈성사. 주님의 몸과 피를 신자들이 영(領)하는 성사다. 신성한 감사의 성사로 피 흘림이 없는 희생 제사다. 신자는 성사로 골고다의 희생에 참여한다. 주님의 성혈과 성체는 정교회 예식의 중요한 성찬예배로 행해진다.
  4. 신품성사. 신품의 특별한 선물은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주교에 의해 안수와 기도로 서품된다. 신품의 서품권은 서도들로부터 부여한 것으로 사도 계승권에 의해 교회에 속한다. 신품에는 보제, 사제, 주교의 세 가지 품이 있다.
  5. 고백성사.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부여한 죄를 사해주는 권한의 성사다.
  6. 결혼성사. 그리스도교 가정 건설을 추구하는 결혼 생활이 축성된다.
  7. 성유성사. 영혼과 육체의 건강회복을 위한 성사로, 이마, 볼, 손에 향유를 바르고 한 사람 이상의 사제가 주도하며 건강회복 등을 목적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정교회에서 동정녀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은 분인 영예로운 성인 테오토코스(Θεοτόκος)로 공경받는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 구세주를 대신하지 않고 하느님을 증명하는 성인이다. 정교 신학에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순결하고 거룩하며, 예수의 탄생과 삶, 선교,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수와 함께 한 초대 사도교회의 중심인 성인이다. 역시 거룩한 하느님의 어머니로 항상 사랑과 공경의 대상으로 기도의 중심에 있다. 성모에 대한 공경은 서기 431년 제3차 세계 공의회 이후 더욱 발전됐다.

정교회에서 성인은 신앙과 사랑으로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며 교회의 일부분, 하늘에 있는 믿음의 형제로 허락받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죽은 후 받는 최후의 심판은 두 가지가 있다. 죽자마자 바로 받는 사심판은 죽은 자의 전체적 도덕적 상태를 기준으로 정의로운 자인가 죄인인가를 심판한다. 그리고 이후에 받는 최후의 심판에서 착한 이는 부활해 축복을 받고, 악한 자는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가 말하는 재림은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을 앞에 불러 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 양은 오른쪽, 염소는 왼쪽에 놓을 것이다.’

정교회는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들과는 달리 성탄절보다 부활절을 중요시한다. 부활이 구원의 완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박인곤 한국 정교회 보제는 “부활절은 초대 교회부터 가장 큰 축일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구원이 이뤄졌다.”면서 “부활절은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예수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 날”이라 했다.

가톨릭 신부는 엄격하게 결혼을 못 하지만, 정교회는 초기부터 혼인, 자녀생산 및 재산 축척이 가능해 기혼자와 독신자 양쪽을 다 사제직으로 받아들였다. 서기 681년 제6차 세계공의회 규범 제12조와 제48조에서 사제와 보제직에 기혼자와 독신자 모두를 공식으로 허락했다. 그러나 주교들은 독신이 더 완전히 성직자의 임무를 잘 수행한다고 믿어 독신을 고집했다. 가톨릭과 달리 정교회는 각국 정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한다. 천주교 신부는 수염을 거의 기르지 않는다. 그러나 정교회는 거의 모든 신부가 수염을 기른다.

타 종교인과의 결혼에서 정교인이 아니지만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자, 또는 자녀가 정교인으로 세례받는 걸 동의하고 인정하고 서명한 경우만 허락한다. 그러나 사회적 특수성으로 예외도 존재한다. 천주교와는 다르게 정교회는 결혼의 불가분이성을 믿어 이혼은 재화합을 위한 모든 시도가 실패할 경우, 마지막으로 마태오 복음 19장 9절에 근거해 각자의 구원 길로 가는 이혼을 허락한다.

동방 정교회는 성서와 일곱 번의 공의회를 통해 확립된 교회 규범 등을 포함한 거룩한 전승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신앙의 신조)을 신앙고백의 기준으로 삼는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정경으로 채택하고 있으나, 경전의 궁극적인 권위는 ‘교회의 선택을 받은 문헌’이기 때문에 순전히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입장이다. 개신교와 같은 임의 독해는 인정하지 않지만, 진리탐구를 위한 성경의 다방면적인 연구 자체를 금하진 않는다. 정교회는 그리스도가 세웠고 오순절에 거룩한 사도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고 위대한 교부들에 의해 조직되고 지역 공의회와 세계 공의회의 보호를 받는 교회이다.

한국 정교회는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00년 2월 17일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서 한국 선교부의 책임자로 임명한 셋코브스키 사제의 접전으로 한국땅에서 첫 성찬예배가 거행되었고 이날은 한국 정교회의 생일이 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러시아 선교사들을 추방한다. 한국전쟁 중엔 그리스 군종 신부가 그리스 군인들과 모은 성금으로 파괴된 성 니콜라스 성당을 재건한다. 전쟁이 끝나자 북한과 동맹한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한국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는 단절됐고 국내 정교회 공동체끼리도 이견으로 한동안 단절됐었다.

1967년 정동 교회를 처분하고 서울 마포에 새로 건립된 돔 지붕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은 일반인들에겐 ‘초록색 대머리 교회’로 유명해졌다. 정교회는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종교였지만 영어판 정교회전해설문서가 번역 출판되는 등 국내에서도 점차 정교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지구 상의 인구 약 62억 가운데서 기독교도는 21억여만 명으로 추정한다. 전세계인구의 3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도란 말이다. 2014년 자료에 따르면 이 교인 수를 로마가톨릭교회 10억8천만여 명, 개신교(종교개혁교회) 약 8억4천여만 명 그리고 동방정교회 2억1천9백여만 명 등 크게 세 개 그룹으로 추산할 수 있다.

한국 내 정교회 신도 수는 일반 중형개신교회의 신도 수보다 적은 약 2,500여 명으로 현재 국내 12곳의 성당과 수도원에서 성찬을 드리고 있다.

“한국 대교구에 있는 성직자, 평신도, 남자, 여자, 젊은이, 모든 사람에게 신성한 은총과 활력이 내리시길 기원합니다.” † 제 270대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Bartholomew I of Constantinople, Ecumenical Patriarch of Constantin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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