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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위크, 중국과 한국의 생존 ‘위안부’ 여성들 조명

더 위크, 중국과 한국의 생존 ‘위안부’ 여성들 조명
-일본군 성노예 여성들의 얼굴에 그려진 전쟁의 유령들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확대되곤 해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기억되고 기록되어야 할 ‘위안부’ 여성들

더 위크 지는 한국과 중국에 생존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성적노예로 고통을 받은 ‘위안부’ 여성들의 현재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잔인한 전쟁의 유령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위안부’ 여성들의 눈과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보여준다.

더 위크는 ‘위안부’ 여성들의 모습을 담으며 중국과 한국에 생존 위안부 여성들,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이며 기록되어야 할 역사임을 사진을 통해 강조하며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전한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더 위크 지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Eliz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TFnB7N

CAPTURED: A PHOTO BLOG

Touching portraits of former ‘comfort Women’
‘위안부’ 여성들의 가슴 아픈 초상화

A look at some of the last, nearly forgotten victims of World War II
이제는 거의 잊혀진, 2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의 마지막 몇 모습을 보다

Lauren Ha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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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avages of World War II spread across the globe, touching almost every continent. And though the war ended more than 70 years ago, its ghosts linger on for some of its oldest victims.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은 거의 모든 대륙을 거치며 전세계적으로 확산된다. 전쟁은 70여 년 전에 끝났지만, 전쟁의 유령은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남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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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ang Xiantu rests on a traditional brick bed in her house in Xiyan Town, Shanxi Province, China. Zhang was 16 years old, and recently married, when Japanese soldiers broke into her home and seized her. She couldn’t run away because her feet were bound. Zhang, who died in November 2015, was the only surviving comfort woman of the 16 plaintiffs in Shanxi who sued the Japanese government in 1990s. Their claims were denied. | July 18, 2015 | REUTERS/Kim Kyung-Hoon)

장 시안추 할머니가 중국 산시성 시안시 자신의 집의 전통 벽돌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 군인들이 장 할머니 집에 침입하여 그녀를 붙잡아 갔을 때, 그녀는 갓 결혼한 16세 소녀였다. 할머니는 발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었다. 2015년 11월 사망한 장 할머니는 1990년대 일본정부를 고소한 산시성의 16명 원고들 중 유일하게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였다. 이들의 소송은 기각되었다. |2015년 7월 18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In the early 1900s and up through the end of World War II, Japan deployed its military across Asia in an attempt to expand its power and resources in the Pacific. In occupied Chinese and Korean territories, authorities kept aggressive troops “in check” by recruiting, tricking, and outright kidnapping women and forcing them into brothels run by the Japanese military. Exact numbers of the enslaved women, called “comfort women,” a euphemism for forced prostitution, are hard to come by and estimates range from 20,000 to 200,000 women. Most of these women died. And in the messy period after Japan’s surrender at the end of World War II, the survivors, some of whom were just teenagers when they were kidnapped, hid their past to protect their family, find a husband, build a life, and start again.

1900년대 초,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종전까지, 일본은 태평양 지역에서 지배권과 자원을 확대하기 위해 아시아 전역에 일본군을 배치했다. 일본당국은 중국 및 한국의 일본군 점령 지역에서 여성들을 모집하고, 속이고 노골적으로 납치해 일본군이 운영하는 사창가에 강제로 몰아넣음으로써 공격적인 일본 군대를 “억제”시켰다. 강제 매춘의 완곡한 표현으로 이른바 ‘위안부’로 일컬어지는, 일본군의 성노예가 된 여성들의 정확한 숫자를 얻기는 힘들지만, 2만에서 20만 명의 범위로 추산된다. 이 여성들의 대부분은 이미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시, 일본의 항복 이후 혼란스러운 기간 동안, 납치당했을 당시 고작 십대 소녀였던 생존자들은 가족들을 보호하고, 남편을 찾고, 삶을 꾸려나가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그들의 과거를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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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ormer fortress, now abandoned, where Japanese soldiers kept women they abducted, in Xipan village, Shanxi Province. | July 18, 2015 ||(REUTERS/Kim Kyung-Hoon)

일본군이 납치한 여성들을 가뒀던 지금은 버려진 과거 요새, 산시성 시판 마을 |2015년 7월 18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In China, the survivors and their stories might have just faded into obscurity if it hadn’t been for a few dedicated activists and lawyers who located about 20 living Chinese comfort women. Over the decades, they have been working on the women’s behalf to secure compensation and a formal apology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But due to the shifting and often tumultuous political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China, the remaining Chinese victims, fewer in number every year, have so far been denied reparations.

약 20명의 생존 중국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낸 몇 명의 헌신적인 활동가들과 변호사들이 아니었다면, 중국에서 생존자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을지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이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신해, 일본정부로부터 보상과 공식적인 사과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 간의 유동적이고 종종 급변하는 정치적인 관계로 인해, 매년 더 적은 숫자로 남아있는 중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상은 거부되어왔다.

In South Korea, a more organized political movement has helped surface more than 238 victims over the years, a fraction of whom are still alive today. In the 1990s, Japan issued an apology and set up a private fund for survivors in South Korea, but the government and many of the victims largely rejected it. In December 2015, Japan and South Korea reached a new landmark agreement that included an apology and a promise of $8.3 million paid to the women by the Japanese government. While the deal has been praised by U.S. Secretary of State John Kerry, among others, as a step toward mending the equally fraught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many of the comfort women, as well as the Chinese activists fighting for their own agreement, remain critical.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더욱 조직적인 정치적 활동이 오늘날까지 생존한 피해자들의 일부분인 238명 이상의 피해자들을 도왔다. 1990년대에는, 일본이 사과를 표하고 한국의 생존자들을 위한 민간 기금을 설립했으나, 한국정부와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이를 거부하였다. 2015년 12월, 한국과 일본은 일본정부의 사과 및 피해자들에게 830만 달러의 지불을 약속하는 획기적인 새 합의에 도달했다. 이 협상은 양국 간의 난처한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거라며 환영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비롯해 많은 이들로부터 긍정적으로 평가 되어온 반면, 많은 ‘위안부’ 피해자들과 중국 ‘위안부’ 합의를 위해 싸워온 중국 활동가들은 이 합의에 비판적이다.

In the summer of 2015, Reuters photographer Kim Kyung-Hoon visited some of the remaining Chinese and South Korean comfort women. Below, a look at his beautiful and emotional portraits of the survivors in their homes.

2015년 여름, 김경훈 로이터통신 사진기자는 중국과 한국의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을 방문했다. 그들의 집에서 찍은, 아름답고도 서글픈 생존자들의 초상화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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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 Lane at her house in Gucheng Town, Shanxi Province, China. According to her statement, Ren was abducted by Japanese soldiers when she was 15 years old. | July 17, 2015 |(REUTERS/Kim Kyung-Hoon)

중국 산시성 구청 마을 집에 있는 렌 래인 할머니. 본인의 진술에 의하면, 그녀는 15세 때 일본군에 의해 납치되었다. |2015년 7월 17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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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o Juxiang, 92, in her house in Gucheng Town, Shanxi Province, China, was either 15 or 16 years old when she was abducted. | July 16, 2015 |(REUTERS/Kim Kyung-Hoon)

중국 산시성 구청 마을 집에 있는 92세 하오 주시앙 할머니는 15세 또는 16세 때 납치되었다. |2015년 7월 16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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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o Yuelian, in her home in Taiyuan, Shanxi Province, China, was taken by Japanese soldiers when she was 17. Hao was never able to have children of her own, something her family blames on her treatment in the brothels, but later adopted a daughter. | July 16, 2015 (REUTERS/Kim Kyung-Hoon)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 집에 있는 하오 유얼랸 할머니는 17세 때 일본군에게 잡혀갔다. 할머니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는데, 가족들은 할머니가 ‘위안소’에서 당한 일 탓이라 생각한다. 할머니는 나중에 딸 한 명을 입양하였다. |2015년 7월 16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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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Oksun lives in a special shelter for former comfort women in Gwangju, South Korea. According to her testimony, Lee was 15 when she was taken from South Korea to an airfield in China, where she was habitually raped, and then moved to various Japanese military brothels. | July 24, 2015 | (REUTERS/Kim Kyung-Hoon

이옥순 할머니는 한국 광주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특별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다.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할머니는 15세 때 한국에서 중국의 군용비행장으로 잡혀가 수시로 강간당했고, 이후 일본군의 여러 사창가들로 옮겨졌다. |2015년 7월 24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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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okdong holds her painting, titled “The Day a 14-year-old Girl is Stolen Away,” in her room in a shelter for former comfort women in Seoul, South Korea. According to her testimony, Kim was taken to multiple Japanese military brothels in China, Malaysia, and Indonesia, from 1940 until Japan’s surrender in 1945. She said that on the worst days, she was forced to have sex with what “seemed like more than 50” Japanese soldiers. | July 23, 2015 | (REUTERS/Kim Kyung-Hoon

김복동 할머니가 서울 ‘위안부’ 보호시설 자신의 방에서 ‘14세 소녀 끌려가는 날’이라는 제목의 자신의 그림을 들고 있다.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할머니는 1940년부터 일본이 항복했던 1945년까지,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여러 곳의 일본군 사창가로 끌려다녔다. 할머니는, 최악의 날에는 “50명이 넘는 듯한” 일본군과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2015년 7월 23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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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 Wonok sits in her room in a shelter for former comfort women in Seoul, South Korea. According to her testimony, Gil was taken to a military brothel in China in 1940, where she caught syphilis and developed tumors. A Japanese military doctor eventually removed her uterus leaving her unable to bear children. | July 23, 2015 2015 | (REUTERS/Kim Kyung-Hoon)

길원옥 할머니가 한국 서울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자신의 방에 앉아 있다.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1940년, 할머니는 중국에 위치한 일본군 사창가로 끌려갔고, 이곳에서 후에 종양으로 발전한 매독에 감염됐다. 결국 일본군의관이 그녀의 자궁을 제거하여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2015년 7월 23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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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emorial wall commemorating Korean comfort women at the War and Women’s Human Rights Museum in Seoul, South Korea. | July 22, 2015 | (REUTERS/Kim Kyung-Hoon)

한국 서울,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 있는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의 벽 |2015년 7월 22일 | 로이터 통신/김경훈)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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