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Headline / 독일 타쯔, 형제복지원은 심각한 인권유린

독일 타쯔, 형제복지원은 심각한 인권유린

독일 타쯔, 형제복지원은 심각한 인권유린
– 전두환의 “도시미화 계획”으로 수천 명이 형제복지원에 수용
– 원생들, 무차별 폭력과 성폭력 앞에 속수무책, 강제노역에도 동원돼
– 형제복지원 원장, 전두환의 개입으로 단 2년 6개월 형 선고받아
– 박근혜 정부, 사건 재수사 불허

국내에서 잊혀졌던 형제원 사건이 해외 유력 언론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어 화제다.

르몽드, 더 스타, 데일리 메일이 최근 AP 통신의 형제원 탐사보도를 연이어 보도한 가운데 독일의 타쯔도 22일 ‘1988년 대한민국, 수천 명의 “부랑자들” 체포’ 라는 제목의 기사를 서울발로 타전했다. 스포츠란에 올라온 크레처머 기자의 기사는, “형제복지원”의 인권과 관련하여 1988년 하계 올림픽과 2018년 동계 올림픽을 앞에 둔 한국 인권유린의 실상을 보도하고, 독일 스포츠인들에게 한국 인권의 현주소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기사는 먼저 1988년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의 두 얼굴을 가진 대한민국을 묘사한다. 1988년 올림픽 경기를 유치하며 국제적으로 경제부흥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냈던 대한민국과 이면에는 나라의 이미지 쇄신이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당했던 독재국가로서의 대한민국.

기사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독재자 전두환이 행한 심각한 인권침해였고 인권유린의 희생자들은 현재까지도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진실 규명 또한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말한다.

타쯔는 전두환 정권이 “도시미화 계획”의 일환으로 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했으며 이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잔혹하게 인권유린을 당했는지 AP 통신을 인용하여 자세히 묘사했다.

기사는 원생들이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한 댓가로 형제복지원의 소유주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덧붙였다.

기사에서는 80년대 후반에 형제복지원이 폐쇄됐으나 이에 대한 수사에 외압이 있었으며 수사 종결을 종용했던 검사들 중 하나는 현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고문 (박희태)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형제복지원 원장은 횡령죄로 단 2년 6개월의 형을 받았을 뿐이며 이는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의 직접적인 개입에 따라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타쯔는 현재 야당 국회의원들이 이 사건을 재수사하려고 하나 재정적 부담과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현 정부가 이를 불허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는 현재 옛 형제원 부지 위에 아파트촌이 서 있고 아파트 건설 당시 약 100여 개의 유골이 나왔다고 말함으로써 현 정부의 반대 이유가 과연 설득력이 있는지 묻는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타쯔 기사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 그리스도의 편지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TuF6nV

Südkorea im Jahr 1988

1988년 대한민국

Tausende „Vagabunden“ verhaftet

수천 명의 „부랑자들“ 체포

Vor den Olympischen Spielen 1988 fanden in Südkorea systematische Menschenrechtsverletzungen statt. Opfer warten bis heute auf Entschädigung.

1988년 하계 올림픽 경기 전에 대한민국에서는 계획에 따른 인권침해들이 일어났다. 희생자들은 오늘날까지도 피해보상을 기다리고 있다.

Fabian Kretschmer

파비안 크레처머
베를린 타게스짜이퉁

TAZ 2016년 4월 22일
http://www.taz.de/!5294396/
http://www.taz.de/Suedkorea-im-Jahr-1988/!5294396/

www_taz_de_20160426_234733(1)

www_taz_de_20160426_234847(2)

Einer der Insassen heute: Choi Seung-woo (links) steht einem ehemaligem Wassertank des Brüderheims

‚형제복지원“ 원생 (이하 원생)중의 한 사람 현재: 최승우 (왼쪽)씨가 그 당시 형제복지원 물탱크에 서 있다. 사진 AP

SEOUL taz | Während der Olympischen Spiele 1988 in Seoul konnte sich Südkorea erstmals im Rampenlicht der Weltöffentlichkeit präsentieren: als aufstrebende Wirtschaftsmacht, modern und selbstbewusst. Während Studenten ihr Recht auf Demokratie einforderten, leitete der damalige Autokrat Chun Doo-hwan gigantische „Stadtverschönerungen“ ein, um das Image des Landes aufzupolieren: Privatautos durften nur jeden zweiten Tag fahren, Hundefleischrestaurants wurden vorübergehend geschlossen, über 720.000 Bewohner alter Baracken wurden zwangsumgesiedelt.

서울 베를린 타게스짜이퉁 |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경기 동안, 전 세계여론의 주목 아래 처음으로 대한민국은 발전하는 경제 열강으로서 현대적이고 자신감 있게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대학생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동안에, 그 당시 독재자 전두환은 나라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기 위해 엄청난 “도시미화 계획“을 시작했다. 개인 승용차는 단지 이틀마다 한 번만 운행하도록 했고, 보신탕집들은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으며, 오래된 판잣집 가건물에 살던 72만이 넘은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Wie eine Recherche der Nachrichtenagentur AP nun zeigt, kam es damals auch zu schwerwiegenden Menschenrechtsverletzungen. Deren Aufklärung wird bis heute von der Regierung unterdrückt. Tausende „Vagabunden“ wurden damals verhaftet. Die systematischen Säuberungsaktionen trafen nicht nur Obdachlose, Alkoholiker und psychisch Kranke, sondern zu einem Großteil verwahrloste Kinder. Viertausend von ihnen landeten im sogenannten Brüderheim. „Das war keine Wohlfahrtseinrichtung, sondern ein Konzentrationslager“, sagt ein Rechtsanwalt.

AP통신 탐사가 이제 보도하는 것처럼, 그 당시에 또한 심각한 인권유린이 있었다.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 규명은 정부에 의해 오늘날까지도 통제된다. 수천 명의 “떠돌이“들이 그 당시에 구금되었다. 계획대로 조직적인 추방작업들은 단지 집 없는 사람, 술주정뱅이와 정신병자뿐만 아니라, 오갈 데 없는 청소년의 다수가 표적이 되었다. 이들 중에 4천여 명이 소위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다. 한 변호사는 “이곳은 복지 단체가 아니라, 강제수용소였다“라고 말한다.

Der ehemalige Insasse Choi Seung-woo wurde laut Angaben von AP als 14-Jähriger von einem Polizisten aufgegriffen, weil er ein Stück Brot geklaut haben soll. Um ein Geständnis zu erzwingen, riss de Polizist dem Jungen an jenem Tag im Jahr 1982 die Hose vom Leib und hielt ein brennendes Feuerzeug an sein Genitale. Für die nächsten fünf Jahre wurde Choi im Brüderheim eingekerkert. Bereits in seiner ersten Nacht wurde er von einem Wächter vergewaltigt. Am nächsten Morgen sah der Junge, wie eine Frau mit einem Schlagstock geprügelt wurde, bis Blut aus ihrem Kopf rann. Ein anderes Mal hätten die Wärter einen schreienden Mann mit einer blauen Plane bedeckt, zu Boden gestoßen und auf ihn eingetreten. Als die Plane von dem toten Mann abgefallen sei, war nur mehr das Weiß der Augen zu sehen.

그 당시 원생이었던 최승우 씨는 AP통신에 따르면, 14세 소년으로서 그는 빵 한 개를 훔쳤을 것이라는 이유때문에 경찰에 붙잡혔다. 자백을 강제로 받아내기 위해, 경찰은 1982년 어느 날 소년에게 바지를 벗기고 생식기에다 라이터 불을 지폈다. 그 이후 5년간 최 씨는 “형제복지원“에 감금되었다. 첫날 밤에 이미 그는 경비원에 의해 능욕을 당했었다. 다음 날 아침 최 씨는 한 여인이 몽둥이로 머리에서 피가 날 때까지 맞는 것을 보았다. 또 다른 때는 경비원들이 소리치는 남자를 푸른 덮개로 덮어씌우고, 바닥에 밀어뜨리고 그를 짓밟았다. 죽은 사람에게서 덮개가 벗겨졌을 때, 단지 흰 눈동자만 볼 수 있었다.

Laut Angaben der Heimleitung sollen zwischen 1975 und 1986 insgesamt 513 Insassen gestorben sein. Die Dunkelziffer dürfte weitaus höher liegen. In den Akten wurde als Todesgrund meist „Herzfehler“ oder „Schwäche“ angegeben. Wegen Fluchtgefahr sollen Insassen erst in Krankenhäuser gelassen worden sein, wenn sie bereits halb im Sterben lagen. Ein Zeitzeuge berichtet von einem „Strafvollzugsraum“, in dem täglich Inhaftierte zu Tode geprügelt wurden. Die Leichen sollen auf Anordnung des Heimleiters in einem nahe gelegenen Waldstück begraben worden sein.

“형제복지원“ 측의 진술에 의하면, 1975년에서 1986년 사이에 총 513명의 원생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실제 수치는 훨씬 더 높은 숫자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서류철에는 사인으로서 대부분 “심장 결함“ 내지는 “허약“을 이유로 들고 있다. 도주 위험 때문에 원생들이 이미 반쯤 죽은 상태에 놓이게 되면, 그때서야 병원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한 증인은 매일 원생들이 죽도록 매질을 당했던 “형집행 공간“에 대해 알린다. 시체는 형제복지원 원장의 지시에 따라 가까이 위치한 숲 언저리에 매장하도록 했었다.

Winterspiele 2018 in der Vorbereitung

2018년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에

Für den Besitzer war das Heim vor allem ein hochprofitables Geschäft: Auf dem Gelände des Heims sollen die Insassen als weitgehend unbezahlte Arbeitssklaven in zwanzig Fabriken gearbeitet haben. Die dort hergestellten Hemden und Schuhe seien auch nach Europa exportiert worden. Erst Ende der 80er Jahre wurde die Einrichtung nach einer Razzia geschlossen. Einer der Staatsanwälte, die damals darauf drängten, die Ermittlungen einzustellen, dient der heutigen Regierungspartei als Berater. Nach direkten Interventionen des damaligen Präsidenten Chun Doo-hwan musste der Heimleiter bis heute nicht für die Missbrauchsfälle büßen, lediglich für die Veruntreuung von Millionen an Regierungsgeldern zweieinhalb Jahre Haft absitzen. Seine Familie führte noch bis 2013 weitere Bildungs- und Wohlfahrtseinrichtungen.

무엇보다도 “형제복지원“은 소유자에게는 높은 수익이 남는 장사였다. 복지원 부지에 원생들은 지속적으로 무급의 노예들로서 20개 공장에서 일을 했어야만 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셔츠와 신발은 유럽으로도 수출되었다. 8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이 시설은 경찰의 기습 수색 이후로 폐쇄되었다. 그 당시 수사를 종결하도록 위협했던 검사들 중의 한 사람은 현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그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의 직접적인 개입에 따라 “형제복지원“ 원장은 오늘날까지도 폭행 사건들 때문에 형벌을 받지 않았고, 다만 정부 돈 수백만 유로의 횡령으로 2년 반 감옥 생활을 했어야만 했다. 그의 가족은 2013년까지도 여전히 교육 시설과 복지시설을 운용하고 있었다.

Während sich Südkorea nun auf die Olympischen Winterspiele 2018 in Pyeongchang vorbereitet, warten die ehemaligen Insassen weiter vergeblich auf finanzielle Entschädigung oder eine offizielle Entschuldigung. Versuche eines oppositionellen Abgeordneten, den Fall erneut aufzurollen, werden von der Regierung abgeblockt – mit der Begründung, dass die Ereignisse zu lange zurückliegen. „Sich nur auf einen einzigen Verstoß gegen die Menschenrechte zu fokussieren würde die Regierung finanziell belasten und einen negativen Präzedenzfall schaffen“, sagte ein Beamter des Innenministeriums.

대한민국이 이제 2018년 평창에서 개최될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에, 그 당시 원생들은 계속 성과 없이 금전적인 손해배상이나 공식적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건을 새롭게 다시 제기하고자 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각종 시도는 사건이 너무 오래 지난 것이라는 근거로 현 정부에 의해 차단된다. 내무부 한 공무원은 “단지 유일한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해 집중하는 일은 재정적으로 정부에 부담이 되고 부정적인 선례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Längst wurde das ehemalige Heim abgerissen. Eine Apartmentsiedlung steht auf dem Grundstück. In den 90er Jahren entdeckten Bauarbeiter bei Ausgrabungen rund hundert Knochenstücke, eingewickelt in blaue Planen.

오래전 그 당시 “형제복지원“은 허물어졌다. 그 부지 위에 한 아파트촌이 서 있다. 90년대에 건설 노동자들은 발굴작업에서 푸른 덮개에 감싸인 약 100여 유골들을 발견했었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소셜 댓글
뉴스프로 후원하기

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