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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타임스, 세월호 참사 그 후 2년의 고통과 분노 그려

LA 타임스, 세월호 참사 그 후 2년의 고통과 분노 그려
– 동생 잃은 권오현 씨의 고통, <업사이드 다운> 김동빈 감독이 본 한국사회 모습
– 참사와 참사 후 한국사회가 보여준 모습들을 포괄적으로 정리

세월호 2주기를 앞둔 15일, LA 타임스가  ‘세월호 참사 2년 후에도 남아있는 고통과 분노’는 제목의 기사로 세월호 2주기를 조명했다.

단원고 희생자 고 권오천 군을 동생으로 둔 싱어송라이터 권오현 씨와 단원고 희생자 4명의 아버지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을 만든 김동빈 감독의 이야기를 전하며, “세월호 참사는 한국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운 주제”임을 보여준다.

기사는 참사와 참사 후 한국사회가 보여준 모습들을 포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확한 조사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 우익 시민단체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 그만하라며 가하는 부적절한 비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과 계획,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농성장 모습 등도 담겨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LA 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Eliz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lat.ms/1MzBy4a

Pain and anger in South Korea two years after the Sewol ferry tragedy

세월호 참사 2년 후에도 남아있는 고통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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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school students hold candles to pay their respects to the victims of the Sewol ferry disaster during a ceremony April 15 on the eve of the sinking’s two-year anniversary in Ansan, South Korea. (Ahn Young-joon / Associated Press)
세월호 침몰 2주기 전날인 4월15일 한국 안산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Steven Borowiec

Two years ago, Kwon Oh-hyun was living a life of rhythm and harmony, working as a singer-songwriter.

2년 전, 권오현씨는 싱어송라이터로 리듬과 하모니가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He spent weekdays composing music that he sold to production studios; on weekends he performed rousing rock songs live at venues around South Korea.

그는 주중에는 프로덕션 스튜디오에 판매할 음악을 작곡했고 주말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라이브로 신나는 록 음악을 연주했다.

Then, on April 16, 2014, the Sewol ferry sank off the country’s south coast, resulting in more than 300 deaths. Kwon’s younger brother, Kwon Oh-cheon, was among the many high school students who perished.

그러던 2014년 4월16일, 여객선 세월호가 한국 남해안에서 침몰해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권 씨의 남동생 권오천 군도 그 때 희생된 많은 고등학생 중 한 명이다.

Kwon no longer sings the same kinds of songs.

권 씨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Before my brother’s death, I was really into upbeat music,” the 28-year-old Kwon said. “But after that, I could only write or perform sad songs.”

28세의 권 씨는 “동생이 죽기 전까진 경쾌한 음악을 굉장히 즐겼는데 이 이후에는 슬픈 음악만 쓰거나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The Sewol disaster remains a painful subject in South Korea, and victims’ families are still fighting for an investigation that will determine and explain exactly what happened. The ferry had been en route from Incheon on the country’s northwestern coast to the resort island of Jeju when it sank.

세월호 참사는 한국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운 주제이며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론짓고 설명할 수 있는 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이 여객선은 한국 북서쪽 해안의 인천항을 떠나 휴양섬인 제주도로 항해하던 중에 침몰했다.

Relatives and friends of the victims won’t forget the sordid details that emerged about the ferry and the company that ran it.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세월호와 그 운항사에 관해 드러난 추잡한 세부 내용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Instead of working to evacuate the sinking ferry, the captain and crew fled on the first rescue ship that came to the scene, and some crewmembers sipped beer while waiting to be rescued. The owner of Cheonghaejin Marine, the company that owned the Sewol, ignored orders to appear for questioning; later, his body was found decomposing in a plum orchard, surrounded by empty liquor bottles.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대신, 선장과 선원들은 현장에 첫 번째로 도착한 구조선으로 도망쳤고 몇몇 선원들은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세월호를 소유한 청해진해운의 소유주는 경찰 출석 요구를 무시했으며, 후에 그의 사체가 한 매실 밭에서 빈 술병들에 둘러싸여 썩어가는 채로 발견되었다.

As the details trickled out, South Korean society united in rage and sorrow, but as the emotional duress dragged on, the sinking became politicized. Right-wing civic groups have accused the victims’ families of milking the spotlight and trying to use the sinking as a pretext to wrest compensation from the government.

이런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한국 사회는 분노와 슬픔으로 하나가 되었지만, 감정적 압박이 지속되면서 세월호 침몰은 정치화되었다. 우익 시민단체들은 세월호 유족들이 대중의 관심을 짜내고 정부로부터 보상을 뜯어내기 위한 구실로 세월호 침몰 사건을 사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Though the ferry’s captain and senior crew members were sentenced to prison terms in a 2014 trial, a group of bereaved families and politicians have continued seeking answers to questions such as how the ferry got permission to leave port dangerously overloaded and why the Coast Guard failed to rescue more passengers. About 170 of the more than 470 people aboard the vessel were rescued.

세월호의 선장과 수석 선원들이 2014년의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음에도, 유족과 정치인들은 세월호가 위험하게 화물을 과적했음에도 어떻게 출항을 승인받았는지, 그리고 왜 해경은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등 의문에 대한 답을 지속적으로 찾아왔다. 승선했던 470여 명 중 약 170명이 구조되었다.

The victims’ families have maintained that they won’t give up until the complete truth about the sinking has been found, while right-wing groups urge them to give up and go home, arguing that further investigation is a waste of government time and money.

우익 단체들이 더 이상의 조사는 정부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유족들에게 포기하고 집에 가라고 촉구하지만, 그들은 침몰에 대한 완전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An ad hoc fact-finding committee organized by the government and outside experts from fields including maritime safety has taken statements from the ferry’s crew and Cheonghaejin Marine staff. In June, the committee is scheduled to put forth a bill in parliament mandating further investigation into how the ferry sank.

정부 및 해상안전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외부 전문가들로 조직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선원들과 청해진해운 직원들의 증언을 들었다. 세월호 특조위는 6월에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는지 더 조사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In the meantime, filmmaker Kim Dong-bin timed the release of his documentary “Upside Down” to coincide with the sinking’s second anniversary. The film tells the story of four high school students who died in the sinking, through interviews with their fathers.

한편, 영화감독 김동빈은 세월호 2주기에 맞춰 그의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을 공개했다. 그 영화는 세월호 침몰로 죽은 네 명의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그들의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한다.

Kim said he was motivated to make the film in part by how the Sewol has become a divisive subject in South Korea. “There is this negative stigma surrounding the Sewol. Unless they feel it on their skin, I find it hard to motivate people to care about the tragedy,” Kim wrote in an email.

김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부분적 계기는 세월호가 한국에 분열을 일으키는 주제가 된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를 둘러싼 뭔가 부정적인 오명이 있다. 직접 피부로 느끼지 않는 한, 사람들이 이 비극에 관심을 갖도록 자극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그는 이메일을 통해 전했다.

Kwon is among those who have no trouble caring. He still thinks of the morning he heard the Sewol was in distress, knowing that Kwon Oh-cheon and his classmates were aboard on a school trip to a holiday island. Kwon rushed to the scene, arriving in time to identify his brother’s body when divers recovered the teenager from the ferry’s hull, the second confirmed casualty.

권 씨는 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아직도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아침을 떠올린다. 그는 권오천 군과 급우들이 휴양섬으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세월호에 탄 것을 알고 있었다. 권 씨는 서둘러 그 장소로 달려갔고 때마침 잠수부들이 세월호 선체에서 동생을 인양했을 때 동생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두 번째로 확인된 희생자였다.

In the months after the sinking, Kwon would vomit after eating anything, even sometimes after drinking water, and lost more than 50 pounds over a period of six months.

침몰 후 몇 달이 지나서 권 씨는 먹는 것 마다 토했다. 심지어는 물을 마실 때도 토하곤 했고 6개월 후 50파운드(23킬로그램) 이상 체중이 줄었다.

Doctors told Kwon he had a form of bulimia caused by guilt over being alive and able to enjoy food, while his brother was dead. He was encouraged to attend regular counseling, but declined, saying he would rather his wounds remained raw.

의사들은 권 씨에게 동생은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서 음식을 먹는다는 죄의식 때문에 생긴 일종의 식욕이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기적인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권유받았지만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겠다며 이를 거부했다.

“The pain I feel over my brother’s death is my last connection to him,” Kwon said. “If I lose this anguish, I will have fully lost him.”

그는 “동생의 죽음으로 내가 느끼는 고통은 동생과의 마지막 연결이다. 만일 이런 괴로움을 잃는다면 난 동생을 완전히 잃게 된다”고 말했다.

Kwon and others maintain a sit-in site in Gwanghwamun Square in the center of the South Korean capital, where they have set up temporary housing and hung sparsely worded, emotional messages, including, “Together to the end” and “Let’s reveal the truth of the Sewol.” They take shifts staying round-the-clock at the site, passing out pamphlets with information on the sinking.

권 씨와 다른 이들은 한국의 수도 한복판에 있는 광화문 광장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임시거처를 만들었고 “끝까지 함께”와 “세월호 진실을 밝히자”를 포함한 간단한 문구와 감정을 호소하는 내용을 걸어 놓았다. 그들은 세월호 침몰 정보를 담은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24시간 교대로 그 농성장을 지킨다.

On a hazy, early spring evening, as the city buzzed with families out to see blooming cherry blossoms, the families and their supporters held a concert in Gwanghwamun Square, singing songs and drawing pictures in honor of those who died.

연무가 낀 이른 봄 저녁에 서울은 만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나온 가족들로 부산할 때, 세월호 유가족들과 지지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열었다.

Kim Min-soo, a 23-year-old college senior who felt sympathy for those who lost loved ones, knelt on the concrete, using pastels to draw a picture of the Sewol ferry on top of tall blue waves.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느낀 대학교 4학년 김민수(23) 씨는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파스텔을 사용해 높고 푸른 파도 위에 세월호가 있는 그림을 그렸다.

An accompanying message read: “We won’t forget.”

그림에 그려진 내용은 “잊지 않을게”였다.

Borowiec is a special correspondent.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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