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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엑스포제, 한국 아동학대 문제 원인 집중 조명

코리아엑스포제, 한국 아동학대 문제 원인 집중 조명
– 자녀가 소유물이 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정체성
– 아동학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한심할 정도로 부적절

한국의 학구열 특히 부모들의 공부하는 자녀 지원 현상은 자식을 잘 키워야 할 농작물로 여기는 풍토를 낳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은 ‘농사’에 비유되곤 한다. 농사는 책임과 소유가 따르게 된다. 일정기간 동안 들인 노력의 여하에 따라 성과물이 완전히 다르고, 반드시 평가가 따르게 된다. 어느 농부도 자신이 경작한 농작물이 엉망이 되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의 평가가 반드시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좋은 성과를 위해 돈과 시간뿐만 아니라 ‘더 좋은 무언가’를 제공하는 집착을 보이게 된다. 이 모든 농작물이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자식은 자신이 소유한 ‘농작물’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소유욕이 지나칠 때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24일 코리아엑스포제가 집중 보도했다.

기사는 지난해 12월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인천 11세 여아 학대’사건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장기 결석생 현황조사에 착수하여 ‘부천 초등생 토막살인 사건’을 발견한 사실을 상세히 전하며 “1월 18일 기준으로, 정부는 여전히 7명의 실종 아동들의 소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원인을 한국에서 심각하게 평가되지 않고 있지만 심각한 문제인 ‘아동학대’문제로 접근했다.

기사는 한국에서 아동학대 문제가 과소평가되는 이유로 정부의 부정확한 통계를 들었다. 기사는 보건복지부 자료를 인용해 “2004년에서 2014년 사이에 확인된 아동학대 사건들의 수가 3,891건에서 1만 24건으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전제한 후, “이것은 검증된 사례이고, 2013년에는 1만 3,076건의 아동학대가 신고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는 전체 신고건수 중 절반인 6,796건인 확인된 사건만 통계로 잡음으로써 상당수 신고된 건수는 누락시켜왔다. 신고된 모든 건수를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며 정부의 부정확한 집계를 비판했다.

둘째로, “아동학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한심할 정도로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2010년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5657건의 확인된 아동학대 사건 중 겨우 290건만 재판에 부쳐졌고 그중에서도 판결이 내려진 것은 160건에 불과했다. 자녀 양육이 언제나 정부의 권한을 벗어난 사적 영역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걸 인지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던 2014년 ‘아동학대자를 처벌하는 특별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아동학대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자, 정부가 과연 아동학대를 예방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의심받고 있다고 한국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셋째로,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아동학대를 가정문제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제대로 신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부천 초등생 토막살인 사건’ 아버지의 “내 아이니까 간섭하지 마시오”라는 항변처럼 아이들에 대한 압박, 훈육, 그리고 학대는 “그 아이에 대한 최상의 관심”이라는 말로 정당화되어 아이에 대한 부모의 태도 영역에서는 같은 뜻으로 여겨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한계를 꼬집었다.

또한, 아이들을 자신의 운명을 책임진 개인이 아니라 소유물로 생각한다는 부모가 있는 한 아이에게 물리적 행위를 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리한 공부를 강요하는 것도 아동학대에 해당된다며 한국에서 기자가 겪은 서글픈 에피소드를 전했다.

기사는 한국에서 아동학대 문제의 해결은 “한국인 부모의 심리를 의심하는 것”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근거로 2014년 확인된 아동학대의 77.2%에 해당하는 학대자들이 친부모들이었으며, 부모들이 스스로를 아이들 세계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심리적 학대에 가까운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 인정되는 한, 더욱 극단적인 아동학대는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코리아 엑스포제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Eliz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ZYRliH

CHILDREN OF MISFORTUNE

불운한 어린이들

by SE-WOONG KOOJANUARY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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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dinner one evening, a South Korean journalist friend posed what seemed like a riddle: “Let’s say there is a high school reunion. One classmate is a Samsung executive with a high-school graduate for a son. Another is a security guard whose son attends Seoul National University. Who do you think will be the envy of everyone at the party?”

어느 날 밤 저녁 식사에서 한국인 저널리스트 친구가 수수께끼 같은 것을 냈다: “고등학교 동창모임이 있다고 치자. 한 친구는 삼성 임원으로 고졸인 아들이 있다. 또 다른 친구는 경비원인데 아들이 서울대학교에 다닌다. 동창모임에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산 사람은 과연 누굴까?”

If you say the Samsung exec as I did, you may have some way to go before understanding how South Korea works.

내가 그런 것처럼 삼성 임원이라 답한다면, 당신은 한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려면 한참 멀었을 수도 있다.

I am struck by how often South Koreans of a certain age refer to childrearing as jasik nongsa, literally “child farming.” The parent is farmer and the child his crop. Much as a farmer who fails to grow perfect produce is no good farmer, a parent who cannot raise a successful child is no good parent. And when parenthood is central to one’s identity — every ‘normal’ South Korean should marry and have children — a child who doesn’t meet the typical standard of success is not just doing himself disservice; he brings his parents down, too.

나는 특정 연령대의 한국인들이 자식 키우는 것을 “자식농사”라고 너무나 자주 부르는 것에 깜짝 놀랐다. 부모는 농부요 자식은 부모의 농작물이다. 완벽한 농작물을 길러내지 못한 농부가 훌륭한 농부가 아니듯, 성공한 자식을 길러내지 못한 부모 역시 훌륭한 부모가 아니다. 부모가 되는 것이 한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이 될 경우- 모든 ‘정상적인’ 한국인들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 전형적인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자식은 비단 자신에게만 해가 되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기도 하다.

One could be a Samsung executive or even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but without children of distinction there is bound to be gossip and sniping behind the back.

누구나 삼성 이사, 혹은 심지어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만, 뛰어난 자녀들이 없이는 뒤에서 가십거리가 되거나 비난을 사게 되어 있다.

South Korea is naturally famous for education fervor and parents who do anything and everything in their power for children’s success. Borrow money to pay for private education on the side. Buy or rent an apartment one cannot afford just to be in a better school district. Dictate every minute and hour of the child’s schedule so he grows up to be an academic superstar.

한국은 사실상 교육열과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가진 힘으로 무엇이든 하는 부모로 유명하다. 그들은 별도의 사교육을 위해 돈을 빌린다. 단지 더 나은 학군에 들기 위해 살 능력이 안 되는 아파트를 빌리거나 산다. 자녀가 학계의 영웅으로 자랄 수 있도록 스케줄의 일분일초를 지시한다.

The question is when this parental investment turns into bona fide ownership. I have seen enough South Korean parents act like they own their children. And when a parent lets his sense of ownership go overboard, disturbing consequences can ensue.

문제는 이러한 부모의 투자가 실질적인 소유권으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부모들이 자식을 마치 소유물처럼 대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는데, 이런 부모의 자식에 대한 소유권이 지나칠 때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Last week, South Korea was shocked by the news from the city of Bucheon, west of Seoul, about a father who murdered his seven-year-old son three years ago. He flushed some parts of the boy’s corpse down the toilet and disposed of others as garbage. Remainders were kept in pieces in the family’s freezer until now.

지난주 대한민국은 서울의 서쪽에 위치한 부천시에서 한 아버지가 3년 전 일곱 살 난 아들을 살해한 소식이 전해져 충격에 휩싸였다. 이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 일부를 화장실 변기에 흘려버리고 다른 일부는 쓰레기로 버렸다. 시신의 나머지는 지금까지 집 냉동고에 토막으로 보관했다.

The gruesome discovery was made possible by an equally terrible revelation last December: A girl, aged 11, escaped a second-floor apartment in Incheon by climbing down the gas pipe. She had been held captive by her gaming addict father and his girlfriend for two years, suffering starvation and frequent beatings. When the girl was found and reported to the police by a nearby store owner, she weighed only 16 kilograms (35 pounds) — the average weight of a four-year-old.

지난 12월, 이 사건만큼 끔찍한 사건이 발견됐다. 11세 여아가 인천의 어느 2층 아파트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내려가 탈출했다. 이 소녀는 게임 중독자 아버지와 2년간 교제해 온 아버지의 여자친구에 의해 감금된 채 굶주림과 잦은 폭력으로 고통받았다. 근처 가게 주인이 소녀를 발견해 경찰서에 신고했을 때, 소녀의 체중은 16kg(35 파운드) 밖에 나가지 않았다. 이는 4세 아이의 평균 체중이다.

Once the news of the abused girl made headlines the government began investigating the welfare of all primary school-aged children who had been absent from class for extensive periods. In its course the Bucheon case came to light. The father, identified only by his surname, Choe, had been brutalizing his son for two years and finally ended the boy’s life during a two-hour beating in November 2012. The mother, too, had been complicit in the cover-up of the crime. It seems she cared only for her daughter, and not her son who exhibited signs of behavioral disorder.

이 학대당한 소녀의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하자마자, 정부는 모든 초등학교 장기결석 학생들의 복지상태 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부천사건이 알려지게 됐다. 최 씨로만 알려진 이 사건의 아버지는 아들을 2년 동안 잔인하게 학대해왔고, 2012년 11월 두 시간 동안의 구타 끝에 결국 아들을 숨지게 했다. 아들의 어머니 역시, 이 범죄를 은폐하는 데 공모해왔다. 어머니는 행동장애 징후를 보인 아들은 내버려두고 딸만 돌본 듯하다.

As of January 18, the government was still to ascertain the whereabouts of seven other missing children.

1월 18일 기준으로, 정부는 여전히 7명의 실종 아동들의 소재를 확인하지 못했다.

Although these two cases are extreme, child abuse is a serious yet underestimated problem in South Korea. Between 2004 and 2014 the number of confirmed child abuse cases grew exponentially, jumping nearly threefold from 3,891 to 10,024 according to the Ministry of Public Health and Welfare.

비록 이 두 사건이 극단적이라 하더라도, 아동학대는 한국에서 심각하지만 과소평가된 문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4년에서 2014년 사이에 확인된 아동학대 사건들의 수가 3891 건에서 1만 24 건으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But these are only the verified cases; the numbers rise much higher if all reported cases are counted. For example, one estimate puts the number of reported cases of child abuse in 2013 as 13,076. The government, however,counted only half that as confirmed — 6,796 to be exact.

그러나 이것은 검증된 사례의 경우고, 신고된 모든 건수를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예를 들어, 2013년에는 1만 3076건의 아동학대가 신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부는 거기에서 절반인 6796건만 확인된 건수로서 통계에 포함했다.

And even reported cases might not give a complete picture because child abuse has long been considered a family matter in South Korea. Underreporting is routine.

그리고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아동학대를 가정문제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신고된 사례만으로는 전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제대로 신고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Until very recently the government’s response to child abuse has been woefully inadequate. To go by data from 2010, it is remarkable to see that out of 5,657 confirmed cases of child abuse only 290 were referred for trial. Court ruling was issued in mere 160 cases.

가장 최근까지도 아동학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한심할 정도로 부적절했다. 2010년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5657 건의 확인된 아동학대 사건 중 겨우 290 건만 재판에 부쳐졌다. 그중에서도 판결이 내려진 것은 160 건에 불과했다.

In the case of the seven-year-old boy killed in Bucheon, two teachers visited his home twice but could not meet him. Even though primary and middle school education is compulsory in South Korea, the school had no authority to ensure the boy’s attendance and referred the case to the local government office. Municipal officials, however, did not act at all.

부천 7세 아동 살해사건의 경우, 두 명의 교사가 두 번 가정을 방문했지만 해당 아동을 만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초등 및 중등 교육이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그 아동의 출석을 요구할 권한이 없었기에 지역 관청에 조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시청 책임자는 어떤 조치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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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AONMAGAZINE

For the first time the government legislated a special law in January 2014 specifically aimed at punishing child abusers. It came in response to three separate cases of child abuse between 2008 and 2013 in the southeastern industrial city of Ulsan and North Gyeongsang Province adjacent to it. In each case the child suffered prolonged abuse before dying in the hands of his or her stepmother.

2014년 1월 정부는 최초로 아동학대자를 처벌하는 특례법을 제정했다. 이는 2008년에서 2013년에 남동부 산업도시 울산과 이곳과 가까운 경상북도에서 벌어진 세 건의 아동학대 사건 이후 생겨난 법이다. 각각의 사건에서 아이들은 계모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다가 숨졌다.

Worse, in one of these cases, the eight-year-old victim’s parents tried to pin the beating and murder on their other child — the victim’s 12-year-old sister who first made a false confession under parental pressure before the truth emerged.

더욱 심한 것은, 이 중 한 사건에서는 숨진 8세 아동의 부모가 매질과 살인의 책임을 12세 누나의 탓으로 돌리려 했다는 점이다. 이 아이는 부모의 강압으로 처음에는 거짓 진술을 했지만, 결국 진실이 드러났다.

The regularity of high-profile child abuse cases in South Korea casts doubt on the government’s effort at prevention. Just one month after the special law was enacted, in October 2014, a woman, again in Ulsan, killed her two-year-old adopted daughter. The cause was brain hemorrhage from being beaten with a metal beam.

한국에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아동학대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자, 정부가 과연 아동학대를 예방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의심받고 있다. 특례법이 발효된 지 한 달 만인 2014년 10월, 또다시 울산에서 한 여성이 입양한 두 살 딸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망원인은 쇠막대기로 구타당한 데 따른 뇌출혈이었다.

And now the tragedies in Seoul’s two western satellite cities of Bucheon and Incheon.

그리고 지금 서울 서쪽의 두 위성도시, 부천과 인천의 비극이 있다.

I have said elsewhere that many South Korean parents’ approach to childrearing amounts to abuse. It was almost a century ago that criticisms were first raised against the conventional Korean attitude toward children: “As long as parents live, children have no freedom and are treated like slaves or livestock not unlike subjects of a feudal lord.” We do not think much about the South Korean holiday that falls each year on May 5 — Children’s Day — but as Dafna Zur, my friend and specialist in South Korean children’s literature, notes, the very concept of “children” behind the day — eorini in Korean — was radical in 1920 when Japanese-educated reformer Bang Jeong-hwan first introduced it to Koreans. The idea of children as innocent beings deserving of protection and nurture was novel, and went against the existing idea of offspring solely as a source of economic and social benefit to the family unit.

나는 다른 곳에서 많은 한국 부모의 양육방식은 학대에 해당한다고 말해왔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전통적인 방식에 대한 비판이 처음 제기된 것은 거의 한 세기 전의 일이다: “부모가 살아있는 한, 아이들에겐 자유가 없고 마치 봉건 영주의 노예나 가축과 같은 대상과 다를 바가 없이 취급되었다.” 우리는 매해 5월 5일-어린이날-에 오는 한국의 공휴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지만, 나의 친구이자 한국 아동 문학 전문가인 다프나 주가 지적하듯이, 일본 교육을 받은 개혁가 방정환이 한국에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소개한 1920년 당시, 이날의 이름에 붙은 ‘어린이’라는 개념 자체가 급진적인 것이었다. 보호와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는 순수한 존재로서 어린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었으며, 오로지 가족 단위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위한 자원으로서의 자식이라는 기존 관념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Although Children’s Day continues to be celebrated, there are times I wonder if much has changed. When I told one parent during my hagwon teaching stint years ago, “I want your son to have fun and learn something in the process,” she replied without so much as blinking, “I don’t care how much work you make him do or how little fun he has. I just want him to come home with As.”

비록 어린이날이 계속해서 기념되고 있지만 나는 많은 것이 변했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몇 해 전 내가 학원 강사였던 동안 한 부모에게 “당신의 아들이 이 과정을 재미있어 하고 무언가를 배우기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곧바로 “선생님이 얼마나 많이 아이에게 시키는지 또는 아이가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는 관심 없고 단지 아이가 A를 받아 오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I have had students who say they never want to see their mother or wish they could spend more time with their fathers who never come home because of work and golf. I still overhear mothers huddled over beverages and brochures at local coffee shops between the hours of 2 and 4 pm discussing how best to commit children to schedules going beyond 2018.

나에게는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거나 일과 골프로 바빠 집에 오지 않는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들이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 동네 커피숍에 모여 음료와 안내책자를 놓고 2018년 이후까지 어떻게 아이들을 공부에 전념하게 할지 스케줄을 짜는 것을 의논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Of course, forcing children to study is vastly different from beating them to death. But the two behaviors have in common the idea of children as property, not individuals in charge of their own destinies.

물론 아이들에게 공부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그들을 죽도록 때리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행동에는 아이들을 자신의 운명을 책임진 개인이 아니라 소유물로 생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Overbearing South Korean parents with whom I have tried to reason on behalf of students have a stock answer: “It’s my child so don’t interfere.” The father who cut up his own son’s body protests, “But I was beaten, too, as a child.” He says he was merely exercising his parental prerogative, punishing a wayward boy.

학생들을 대신해 내가 설득하려고 노력했던, 고압적인 한국 부모들은 상투적인 대답을 한다: “내 아이니까 간섭하지 마시오.”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아버지는 항변한다. “하지만 어릴 때 나도 맞았다”고. 그는 그저 말 안 듣는 아들을 처벌하는 부모로서의 특권을 행사했다고 말한다.

Pressure, discipline and abuse of children share spots on the spectrum of parental attitude toward children, justified with identical words: “in the best interest of the child.” Parents supposedly know best, but if anything the child abuse crisis indicates that this conventional wisdom must be contested. The special law from 2014 broke grounds in recognizing that childrearing cannot always be seen as a matter of the private sphere beyond the government’s reach. But we must go much further than that.

아이들에 대한 압박, 훈육, 그리고 학대는 “그 아이에 대한 최상의 관심”이라는 말로 정당화되어 아이에 대한 부모의 태도 영역에서는 같은 뜻으로 여겨진다. 부모들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어떤 경우 아동학대 위기는 이러한 통념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2014년 발효된 특례법은 자녀 양육이 언제나 정부의 권한을 벗어난 사적 영역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걸 인지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보다 더 많이 앞서 가야 한다.

Laws can help but the next obvious step toward reducing child abuse in South Korea is to question the psychology of South Korean parenthood. In 2014, abusers in 77.2 percent of confirmed child abuse cases were biological parents. As long as parents are permitted to view themselves as masters of their children’s universe and exercise control bordering on psychological abuse, child abuse of more extreme kinds will not abate.

법이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한국에서 아동학대를 줄이는 명확한 다음 단계는 한국인 부모의 심리를 의심하는 것이다. 2014년 확인된 아동학대의 77.2%에 해당하는 학대자들이 친부모들이었다. 부모들이 스스로를 아이들 세계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심리적 학대에 가까운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 인정되는 한, 더욱 극단적인 아동학대는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To return to the story that began this essay, I wanted to ask which child was happier: the Samsung executive’s child who did not go on to university or the security guard’s Seoul National University-attending child. Perhaps both. Perhaps neither. We will never know because the story was never about happiness of children, only that of parents. Children’s wellbeing is of no importance when parental pride is at stake.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필자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삼성 임원의 아이 혹은 경비원의 서울대 입학한 아이 중 어느 아이가 더 행복했을까 묻고 싶다. 둘 다 행복할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부모들의 행복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부모의 자부심이 걸려있다면 아이들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In writing this essay I greatly benefited from an article by Prof. Emeritus Heo Nam-sun, titled “Significance of the Special Law Concerning Punishment of Child Abuse and Future Tasks in Korea.” It is available courtesy of ChildFund Korea at this link [Korean].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허남선 명예교수의 논문 “한국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의미와 과제”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논문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찾을 수 있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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