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Headline / (33) 영화에 목숨 건 사람, 들

(33) 영화에 목숨 건 사람, 들

(33) 영화에 목숨 건 사람, 들

S. Macho CHO

rok-hid @ inbox . ru

2004년 11월 2일 아침 9시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심가. 자전거 타고 전용도로를 가던 한 남자가 갑자기 총격을 받는다. 미리 자전거를 세우고 기다리던 괴한의 권총에 그 남자와 지나가던 행인들이 맞았다. 그 남자는 비명과 함께 비틀거리며 필사적으로 반대편 길로 도망갔지만 쫓아온 괴한은 마치 처형하듯 쓰러진 그에게 수 발을 쏴 죽인 후 칼로 목을 베고 심장에 칼을 꽂았다. 그 남자는 절명했고 그 자리엔 ‘다음 목표는 아이얀’이란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평화롭던 네덜란드를 향한 충격의 경고였다.

사건 현장은 조화, 사진, 촛불 등을 들고 한 예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일주일 후 거행된 그의 장례식을 전 유럽은 슬픔 속에 지켜봤다. 인터넷에선 그를 옹호하거나 경멸하는 댓글들로 양분됐고, 모스크 방화시도, 집단폭행 등 백여 건이 넘는 이슬람교도인 무슬림대상 혐오범죄가 이어졌다. 각 정당에서는 반이슬람이민자법을 촉구하는 성명이 연이어 발표되고 법안도 제출된다.

인생은 영화란 말이 있다. 테오 반 고흐(Theodoor “Theo” van Gogh)가 감독한 ‘06/05(5월 6일)’와 ‘Submission(복종)’이란 이 두 영화에는 5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비극의 주인공 1, 테오는 47살 3개월의 젊은 나이로 그렇게 갔다. 테오는 네덜란드의 대표적 영화감독, 비평가, 시나리오작가이자 배우로 괴한의 총에 맞아 희생된 바로 그 남자다. 1982년부터 네덜란드 필름 페스티벌 수상작 ‘블라인드 데이트’ 등 26개의 영화를 감독했고 여러 권의 책도 썼으나 작업 중이던 2개의 영화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긴 채로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익숙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동생인 테오 반 고흐가 증조부였고, 삼촌은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 점령하의 네덜란드에서 레지스탕스 활동하다 잡혀 처형당했고, 부친은 국가정보국 첩보요원이었다. 그는 핌 포트윈과 절친했던 사이로 네덜란드 왕실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당원이기도 했다. 06/05은 토마스 로스(Tomas Ross)의 소설 De Zesde Mei을 각색한 2002년 5월 6일에 일어난 극우정치인 핌 포트윈의 암살을 파헤치는 사실과 허구가 뒤엉킨 사진작가의 이야기로 결국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영화 06/05는 자국 온라인업체와 계약해 2004년 말까진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었고 이듬해부터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주인공 2. 테오를 살해하고 도망가다 경찰 총에 맞고 체포된 괴한은 모하멧 보예리란 모로코 출신귀화자 청년이었고, 수사당국은 그가 네덜란드 내 급진이슬람 단체와 연계된 테러리스트라고 발표했다. 이듬해 그는 경찰관과 시민 살인미수, 불법 총기소지 및 살인혐의 유죄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 사건의 여파로 네덜란드 내 급진이슬람 단체와 관련 있는 알제리, 모로코 출신귀화자 무슬림용의자들이 경찰에 체포된다.

3번째 주인공은 ‘06/05’ 영화의 주인공 핌 포트윈(Wilhelmus Simon Petrus Pim Fortuyn)이다. 고급 이탈리아제 정장을 즐겨 입던 네덜란드 보수정치인, 작가, 사회학자였던 그가 극우정당의 총수직에서 쫓겨나며 기존 정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 핌은 네덜란드 내의 다문화주의, 이민, 이슬람에 대해 거침없는 언행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교를 ‘후퇴하는 문화’라며 비난했고, 무슬림 이민자들이 네덜란드의 다양성과 관용을 전통을 훼손한다며 ‘무슬림 퇴출’과 무슬림 유입을 막는 법을 만들자고 주장했고,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조’의 철폐를 발의했다.

“작은 면적의 네덜란드 현재 인구는 1천6백만이다. 국내에 약 1백만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다. 더 이상의 이민 유입은 막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 것이 쫓겨난 원인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인기는 오히려 이때부터 급등한다. 선거에서 당의 두 번째 후보로 흑인사업가를 지명해 자신이 외국인 혐오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부각했다. 그는 부정했지만,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대중영합주의 선동자라는 딱지를 그에게 붙였다. 그는 자신을 극우보다는 실용주의적인 중도우파 정치인이라 주장했고 떳떳하게 동성연애자라고 공개했다.

핌을 살해한 반 더 그라프가 4번째 주인공이다. 그는 재판정에서 핌이 자신의 정치력 확장을 위해 사회적 약자인 무슬림과 이민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걸 막으려 죽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교육도 받은 동물의 권리보호를 옹호하는 채식주의자이자 활동가였다. 2002년 5월 6일 반 더 그라프는 네덜란드 북쪽 도시 힐버섬에서 핌을 암살한다. 핌은 출마한 선거일을 9일 남겨놓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막 방송을 마치고 나오다 당했다. 총을 쏜 반 더 그라프는 곧 운전기사와 경찰관에게 잡혀 몇 달 후 법정에서 살인을 인정했고 18년형을 선고받고 12년 복역 후 2014년 가석방된다.

암살사건을 계기로 문화적 충돌과 차별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핌의 암살사건은 여러 음모설을 불러일으켰고 네덜란드 정계와 사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논의 끝에 선거는 예정대로 시행되었다. 그가 세운 신생당인 ‘리스트 핌 포트윈(LPF)’는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 시의회 선거에서 26석에 승리해 17%를 차지하는 등 핌의 암살 영향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당은 선장 없는 배처럼 몇 년 후 와해한다. 핌의 유해는 그가 자주 찾던 별장이 있는 이딸리아 북부 뽀르테노네의 한 도시로 이장된다.

무슬림 여성작가이자 국회의원인 아이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가 있다. 소말리아 모가디슈출신으로 그녀의 부친은 유명한 야당 정치가였고 여성대상 할례를 반대한 진보주의자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왜 여성들은 강제로 할례를 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하는가에 고민한다. 그러다 부친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그녀는 가족과 함께 케냐로 이주해 이슬람 교리만 독실히 공부하는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 후 정치적 망명으로 네덜란드에 정착한 후 여성인권운동가를 거쳐 국회의원이 되지만 망명신청 당시 가짜 서류를 이용했다는 의문점이 꼬리표처럼 달려있다.

테오가 감독한 ‘Submission’의 대본을 아이얀이 썼다.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10분짜리 단편영화는 이슬람교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를 비판한 문제작이었다. 2004년 8월 네덜란드 공영방송에서 방영된 이 영화는 4명의 무슬림 여성이 일부 이슬람 사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학대당하는 내용을 파격적으로 그려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여성 학대를 용인한 꾸란 4:34, 2:222과 24:2 세 구절을 여성의 알몸에 헤나로 그린 것이다. 그 내용은 결혼 몸가짐과 남자와 여성의 경건한 관계, 이혼과 화해를 관장하는 법,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 여러 가지 등의 다양한 해석들이었다. 검은색 반투명 드레스 뒤로 나신을 드러낸 여성들은 알라의 가르침을 독백했다.

테오가 살해되자 논란과 갈등을 유발한 이 작품은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치른다. 무슬림들은 이 영화를 보면 심기가 불편하겠지만, ‘복종하지 않는 여자는 때려라’, ‘남편은 부인과 강제로 성관계할 수 있다.’ 등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내용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아이얀은 말한다. 워낙 파격적인 영화이기에 후폭풍도 컸고 이란 출신 미국 비디오예술가였던 시린에게 신체에 아랍어 글자를 새긴 작품을 도용했다고 고소당하기도 했다.

그 영화가 방영된 후 테오와 아이얀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살해위협에 시달렸다. 그러나 경찰의 보호 속에 안전한 장소로 숨은 아이얀과 달리 테오는 농담으로 일축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찰의 경호도 거절했다. 2007년 De Schreeuw(비명)이라는 추모조형물이 테오 반 고흐가 암살당한 곳 근처에 세워졌다. 이슬람과 무슬림을 보호하자는 시민단체가 세운 것이다. 평소 정치와 종교에 대한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던 테오는 턱수염을 기른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순교자가 됐지만, 극우, 극좌파 모두에게 아직 큰 논쟁거리로 이어졌다.

사건이 난 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암스테르담 중심가 암살당한 장소엔 “테오가 쓰러졌다”는 안내판과 총알 자국이 남아있다.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공공의 적 1호로 선포되어 끊임없이 살해 협박에 시달리던 아이얀은 결국 미국으로 이주한다. 현재 그녀는 미국에서 살며 여성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며 재단도 설립하고 Infidel(이교도) 등 종교개혁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썼다. 그녀가 5번째 주인공이다.

12540759_924012414314529_5845206796144420299_n

*사진은 좌로부터 테오, 핌, 영화 ‘Submission’의 한 장면, 아이얀 순이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소셜 댓글
뉴스프로 후원하기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