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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인도의 눈물방울? 인종 간의 눈물방울?

(30) 인도의 눈물방울? 인종 간의 눈물방울?

S. Macho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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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이상해 호텔로 돌아와 다시 보니 개수랑 잔돈이 안 맞았다. 상점에서 실론 티 10갑을 샀고 영수증도 있는데 잔돈이 부족했다. 호텔로 오는 도중 비도 만나 시간을 지체했는데. 돈이야 얼마 안 되지만 제대로 안 보고 눈 뜨고 당한 내가 짜증 났다. 영수증과 10갑을 들고 다시 상점으로 갔다. 주인 남자와 내 이야길 듣는 그 계산대 청년은 어색한 미소로 고개만 살랑살랑 옆으로 흔든다. 이런 경우가 꽤 있는지 별 말없이 잔돈을 준다. 나오는데 한 영국억양 남자도 계산이 잘못됐다고 주인에게 따진다. 또 그 놈이다.

약 2,500년 전부터 실론, 타프로바네 등으로 불린 조그만 섬이 인도 아래에 있다. 기원전 세기 이 섬에 살던 신할리(Sinhalese) 왕국은 인도 아소카(Ashoka) 대왕의 아들 마한디스님의 포교로 불교국가가 된다. 고대 중국의 수도승은 실(Ceylon)을 보고 ‘사람들이 불교 성지에서 풍요롭게 사는 곳’이라고 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들은 ‘타프로바네(Taprobane)는 인간들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그 천국’이라 찬양했다.

그리스어 타프로바네, 신할리즈어로 실론이 지금의 스리랑카(Sri Lanka)다. 당시에 그리스,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등의 무역상인들은 무역 길목에 있는 이 섬을 알고 있었다. 기독교도와 무슬림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이 살았던 천국이라 믿었다. 2,243m 높이 성스러운 스리 파다(Sri Pada), 즉 아담스 피크(Adam’s Peak)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산엔 인간의 발자국 형태의 지형이 있어 아담 발자국이라 믿는 기독교도와 무슬림, 시바(Shiva) 것이라는 힌두교도들이 해마다 성지순례를 한다.

유럽인들이 스리랑카를 알기 전부터 아랍상인들은 이곳에 왔었다. 9세기 스리랑카에 도착한 아랍상인들은 서남부 해안의 베루왈라(Beruwala)에 모여 살아 무슬림의 발상지로 만들었다. 이곳은 루비, 보석 등의 주요 무역 수출항으로 번창했고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 모험가 신밧드(Sinbad)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페르시아 왕과 결혼하러 가던 쿠카친(Kukhachin) 공주를 호위해 이곳에 상륙한다.

그녀는 중국을 정복해 원(元) 나라를 세운 몽골 5대 카불라이 칸(Kabulai Khan)의 손녀다. 마르코 폴로는 여행기에 ‘여기는 인류 조상인 아담의 무덤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루비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고 했다. 또 스리랑카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케치말라이 모스크(Kechimalai Mosque)’가 있어 스리랑카 무슬림들에게 가장 신성한 장소로 라마단 등에는 많은 무슬림들이 모여든다.

14세기 스리랑카를 방문했던 이탈리아 수도사는 유럽으로 돌아가 동쪽으로 멀리 항해하면 사자, 코끼리 등 많은 동물이 있는 실란(Sillan)이란 아름다운 섬이 있다고 했다. 유럽 열강의 침략이 시작돼 1505년 서해안을 차지한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이곳에 살던 검은 피부 무슬림을 ‘스리랑칸 무어(Sri Lankan Moors)’라 불렀다. 그리스어 마우로스(Mauros)에서 유래한 무어(Moor)는 검다, 어둡다 뜻으로 스페인 남부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아랍, 베르베르 무슬림을 아랍권 백인과 구분해 불렀던 말이다. 이들은 당시 인도양의 무역권을 쥐고 있던 이슬람의 영향으로 무슬림이 된 무어족으로, 현재 그 후손은 스리랑카 남동부에 거주한다. 유럽의 침략자들 포르투갈은 선교사를 보내 포교와 정착에 힘썼지만, 네덜란드와 영국의 무역상들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서부해안항구를 차지하고 무역의 거점으로 삼았다.

최초 스리랑카 정착민들은 인도 남단에서 좁은 마나르 만(Gulf of Mannar)의 아담스 브릿지(Adam’s Bridge)를 건너온 수렵 채집인으로 추측된다. 5세기경 인도 북부 인도 유럽 아리안족(Aryans) 혈통의 싱할리즈(Sinhalese)가 정착했다. 스리랑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리즈는 산지파와 해안파로 나뉘었다. 산지파는 내륙 고산지대 칸디에 살며 독립을 원했고, 해안파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아들였다. 1602년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을 몰아냈지만 1795년 영국에 패한다. 1815년 영국의 침략으로 칸디왕국(Kingdom of Kandy)의 346년 역사는 막을 내린다.

인도 동남부 출신의 타밀인(Tamil)들은 스리랑카로 수 세기 동안 이주해왔다. 칸디왕국 북부와 동부 해안의 저지대에 총인구의 9%를 구성하는 타밀인들이 살고 있다. 타밀인들도 스리랑카 원주민 타밀(Sri Lankan Tamils)들과 19세기부터 영국이 차 농장 노동자로 끌고 온 남인도계 타밀(Indian Tamils)후손으로 나뉜다. 영국은 인도 남부의 타밀을 이곳으로 데려와 다수인 싱할리즈를 통치하는 중간관리자로 이용했다. 그러나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싱할리즈는 싱할라를 유일한 공용어로 선포하고 영국식민지 때 자신들을 탄압했던 소수인 타밀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복수를 시작한다. 그렇게 갈등이 이어오다가 1973년 조직된 타밀호랑이해방전선(LTTE)은 배신한 타밀 출신 요인을 암살하며 게릴라전과 테러로 싱할리즈 정부군에 맞선다. 싱할리즈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호랑이해방전선 간의 내전 중 타밀호랑이해방전선은 점령지인 북동부의 약 10만여 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싱할리즈을 지지한다며 마을에서 강제로 내쫓거나 죽였다. 무슬림들은 정부군의 보호도 못 받고 타밀호랑이해방전선에 계속 희생당하자, 결국 총을 들고 대항해 마을을 지켰다. 민족성이 타밀과 유사하고 오랫동안 타밀어를 사용하는 무어인(Sri Lankan Moors)들도 타밀 편에 섰다.

약 4만 명이 안 되는 소수민족 버거인(Burgher)도 있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 등과 원주민 혼혈 후손으로 버거는 유라시아인(Eurasian), 즉 유럽 혈통의 스리랑카인을 뜻하는 말이다. 이들은 유럽식 기독교 문화를 지키며 갈색 또는 흰 피부로 얼굴 윤곽이 뚜렷한 영어만 사용하는 유럽인 같은 사람들이다. 몇 백 년간 축적한 부를 누리며 경제와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부유한 소수 상류층으로 대부분 선조 때부터 재산, 관혼상제, 학교 교육 등을 족보 책에 기록하고 있다. 유럽 여자들과 결혼하는 부유한 버거 남자들도 꽤 있다. 이들은 외국인처럼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 현지인을 하인으로 부리며 살고 있다.

현재 영어는 스리랑카 정부와 관광업체에서 사용하고, 공용어는 싱할라와 타밀어다. 남방계원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비슷한 오래된 정착민인 원시적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베다인(Veddas)과 말레이(Malay)족, 집시도 각자 언어를 사용한다. 힌두교는 15%, 무슬림은 약 8%다. 포르투갈 덕에 천주교인은 6%다. 70%인 싱할리즈는 전통적인 남방 상좌부불교도(소승불교) (Theravada Buddhism)이다. 신라 성덕왕 18년(719) 중국 광둥성에서 바다를 건너 사자국(獅子國)을 방문했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혜초(慧超)스님 덕에 우리랑 오랜 인연도 있다. 싱할리즈는 백수의 왕 사자의 후손 비자야(Vijaya)왕자가 조상이라 믿는다. 불교를 숭상하던 왕자는 여신 쿠베니(Kuveni)와 결혼해 아들과 딸을 낳는다. 산스크리트어로 Sinha는 사자, le은 피(血)다. 그래서 고대엔 사자국이라 불렸고, 국기에도 칼을 든 노란색 사자가 있다. 불교의 자비를 실천하는 싱할리즈는 찾아온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하기로 유명하다.

힌두교 라마야나(Ramayana) 신화에는 원숭이왕 하누만(Hanuman)의 도움으로 라마(Rama)신이 그의 왕국에서 악령 라바나(Ravana)를 죽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힌두교도인 타밀족은 대륙에서 온 우월한 인도인의 후손이란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첫 월경 때 여자는 외딴집에서 보름 동안 혼자 지내야 하는 힌두교 의식도 유지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외국인에겐 모든 가격이 열 배쯤 비싸다는 걸 명심하자. 낯선 사람과 인종, 종교, 정치나 크리켓(cricket)에 관한 대화는 금기다. 왜 스포츠인 크리켓이 들어가느냐 하면, 작년 말 스리랑카 크리켓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섹스 뇌물 추문이 있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여자 선수들은 스포츠 고위관계자에게 몸을 줘야 국가대표로 선발된다고 해서 국내외로 크게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길에서 낯선 남자가 아는 척하면 무조건 무시해라. 경찰, 호텔직원, 고위공무원, 성직자 등 다양한 직업과 가짜 신분증으로 포장해 감언이설을 늘어 놓겠지만, 결국은 다 물건 강매나 돈을 노린다. 어린이를 앞세워 구걸하고, 사찰 등에 기부하라는 등 다양한 내용이지만 다 사기다. 길을 잃었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차라리 여자에게 묻는 게 낫다. 또 화장실 휴지도 챙겨 가자. 특급 호텔을 빼곤 화장실에 휴지가 거의 없고 현지인들은 뒤처리를 물로 한다.

택시나 툭툭(Tuk tuk)은 버스와 다르게 몇 명이 타든 요금은 같으니 확실히 알고 정해서 타자. 기사가 보석가게 등 좋은 곳을 추천해도 거절하고 낯선 이와 합승하지 마라. 스리랑카는 루비 등 보석이 유명하다. 그러나 꼭 정부보석감정기관(Sri Lankan National Gem & Jewellery Authority)의 검증을 받자. 무료다. 비싼 향신료와 오일도 속지 말자. 폐기름과 섞은 가짜 아유르베다 오일을 팔고, 불법 마사지 삽에선 무자격자가 마사지한다. 국립공원 입장권도 가짜가 많고 바가지를 쓸 수 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신용카드는 비상시만 사용하자. 인도와 같이 여성을 상대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빈번하니 여성은 절대 혼자 여행하지 마라. 난폭운전이 많아 다른 나라에 비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은 편이다. 스리랑카도 1976년 이후로 살인, 강간범 등 사형수 1,116명의 집행을 안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형집행인을 새로 뽑고 형 집행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2009년 5월 반군과 협상이 타결되고 내전이 끝나 정치, 경제가 점차 안정을 찾고 있다. 그러나 반군이 장악했던 북부지역엔 아직도 지뢰가 있고 정세는 불안하다.

스리랑카 거리는 어디나 교회, 모스크, 절의 염불과 코란 독경, 찬송가 소리로 소란스럽다. 그러나 국교인 불교가 인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종교의 자유는 보장이 안 된다. 모스크와 교회가 불태워지고 인종분규 폭동이 일어나 불교도가 아니면 살해당한다. 스리랑카는 두 가지 공식 언어가 있다. 싱할라(Sinhala)는 다수를 이룬 싱할리즈 말이고, 소수인 타밀인과 무슬림들은 타밀어(Tamil)로 말한다. 관공서, 관광산업, 콜롬보, 칸디(Kandy), 갈레(Galle) 등 대도시에선 대부분 영어가 잘 통한다. 싱할라로 안녕하세요?는 ‘아유보완(Ayubowan)’, 감사합니다는 ‘보호마 투티(Bohoma sthuthi)’. 타밀어는 ‘바나깜(Vanakkam)’, ‘난드리 (Nandri)’다.

인도의 다즐링(Darjeeling), 중국의 기문(祁門), 스리랑카의 우바(Uva)를 세계 3대 홍차라 평한다. 실론 티는 스리랑카 홍차를 뜻한다. 차 재배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5000평방 마일로 매년 평균 약 2억kg을 수확해 95%를 수출하니, 인도 다음 세계 2위 차 생산지다. 스리랑카 차는 고원 중앙 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은 딤불라(Dimbula), 중앙은 가장 비싼 화이트 티(White Tea)가 생산되는 누와라 엘리야(Nuwara Eliya), 동쪽은 그린 티(Green Tea)가 나오는 우바로 나뉜다. 블랙 티(Black Tea)는 감귤 향이 나며 재배 고도에 따라 향이 다르다.

70% 넘게 러시아, 독립국가연합과 중동으로 수출된다. 1백만 명이 넘는 차 노동자는 대부분 여자로 12살이 되면 가족과 함께 새벽부터 일을 시작한다. 하루 18kg을 따야 한화로 약 5천 원을 번다. 18kg이 안되면 일당은 반으로 깎인다. 그나마 3년 전 생긴 노동조합 덕에 두 배로 인상된 일당이다. 소규모 농장주들도 마음은 편안하지 못하다. 인건비 등은 상승하고 날씨마저 잘 안 도와주니 생산가격은 오른다. 시계추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지만 차 시세는 하락한다. 중동내전으로 수출 길도 막혔고 가장 큰 수입국인 러시아는 대금결제를 미룬다. 거대 자본이 국제시장을 장악해 가격을 조종한다. 차만 바라볼 수 없어 고무, 커피, 후추, 정향 등도 농사짓지만, 수입은 신통치 않다. 푸른 하늘과 녹색 밭 엽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차 농장 풍경에는 이런 회색 그림자가 스며 있다.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딱 인도에서 흘린 눈물방울 같은 모양이다. 수 세기를 식민지로 살아왔고 다양한 민족이 부대끼며 종교문제로 내전을 겪은 나라답게 외국인 상대 사기도 높고 정체성도 흔들리고, 서로를 안 믿는다. 인종 간 종교문제와 상류층과 하층 간의 차별도 크고 여성 대상범죄를 인식하는 개념도 아직 부족하다. 개별 여행보다는 단체관광 프로그램이 안전하다고 본다. 인터넷은 열악하고(Wifi)는 콜롬보 중심지에서만 터진다. 큰 놀이공원이 3곳 있는데 내 느낌으로는 평점 50 정도로 굳이 추천 안 한다.

인도권에서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들면 긍정, 좋다는 뜻이다. 반대의미는 고개를 앞뒤로 끄덕인다. 요즘은 그것도 경계가 불분명해 외국인은 느낌으로 알아채야 안 당한다. 스리랑카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길거리, 상점, 식당 등에서 다가오는 낯선 친절남은 무조건 ‘조심해라’ 였다.

남한의 1/3 크기
인구 : 약 2,000만 명
비행 : 직항 9시간
시차 : 1 PM(스리랑카) = 3:30 PM(서울)
여행 : 건기(12월~3월) 평균 기온 27C
비자 : 인터넷 U$ 30 http://www.eta.gov.lk/ 공항 도착 U$ 50
환율 : 120LKR스리랑카 루피 = 1,000원 = U$ 1 (2015년 9월 기준)
공항 : 환전소에서 환전 가능.

*종교시설, 사원 등에 입장할 때 긴 소매, 긴 바지를 착용하는 건 기본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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