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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남북이산가족 상봉 소식 생생 보도

뉴욕타임스, 남북이산가족 상봉 소식 생생 보도
– 평생 한번일지도 모를 상봉…버스와 구급차 타고 북한행

–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봉장…서로 껴안고, 흐느끼고, 웃음 울려퍼져
– 남북한, 60년간 서신, 전화, 이메일 등 일절 금지
– 남측 이산가족 66,000명 상봉 차례 오기 기다려..절반이 80대 이상

뉴욕타임스는 20일 북한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생생히 보도했다.

기사는 어쩌면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를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남측 노인들이 버스와 구급차를 타고 북으로 향했으며 이들의 상봉은 분단과 전쟁이 가족들에게 안겨준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낸 심금을 울리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또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를 생각하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이젠 눈물이 다 말랐다”는 65년 만에 재회한 한 노부부의 사연을 전하고 이들에게 허락된 12시간은 고통스러울만치 짧은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한반도의 정치적 긴장 때문에 첫 상봉이 열린 1985년 이후 고작 18,800명 만이 이산가족상봉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며 아직도 절반이 80대 이상인 66,000명의 한국인이 가족 상봉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기사는 형제자매들이 서로를 껴안고, 백발이 다된 아들은 휠체어를 타고 온 알아보기조차 어려운 부모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으며 흐느낌과 웃음이 울려 퍼졌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남북한 간에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남은 물론 서신, 전화, 이메일 등이 일절 금지되어 있으며 상봉 또한 수백 명으로 인원이 제한됐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1M69DBR

South and North Koreans, Separated by War 65 Years Ago, Reunite Briefly

전쟁으로 65년 전 헤어진 남북이산가족의 짧은 재회

By CHOE SANG-HUN
OCT.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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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ock-rack, right, of South Korea, with his North Korean sister, Kim Jeon-soon, on Tuesday, when some of the thousands of families separated by the Korean War were briefly reunited. CreditPool photo by Yonhap
한국전쟁으로 흩어져 살게 된 수천 가족들 중 일부가 짧은 만남을 가졌던 지난 화요일 남쪽 김복락(오른쪽) 할아버지와 북쪽 누나 김점순 씨.

SEOUL, South Korea — As the husband she last saw 65 years ago hugged her on Tuesday, Lee Soon-kyu, an 85-year-old grandmother from South Korea, smiled shyly, like the young bride she once was.

한국 서울 – 화요일 65년 전 마지막 본 남편이 자신을 포옹하자 남쪽의 할머니인 이순규(85세) 씨는 과거의 어린 신부로 돌아간 양 수줍게 웃었다.

Ms. Lee had been married to Oh In-se for only seven months and was five months pregnant when the Korean War erupted in 1950. Mr. Oh disappeared into the conflict, ending up in the North when the war was halted three years later by a truce that left the Korean Peninsula divided.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이 씨는 오 씨와 결혼한 지 겨우 7달, 그리고 임신 5개월이었다. 남편 오 씨는 전쟁 통에 사라졌고 3년 후 한반도를 둘로 나눈 휴전협정의 체결로 전쟁이 끝났을 때 북한에 남게 됐다.

The spouses did not see each other again until Mr. Oh, now a deeply wrinkled 83-year-old, showed up wearing a black fedora as part of the first reunions of war-separated relatives the rival Koreas have arranged in nearly two years.

이 부부는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패인 83세의 오 씨가 검은 중절모를 쓰고 남북 정부가 거의 2년 만에 마련한 첫 이산가족 상봉의 자리에 나타날 때까지 서로를 다시 보지 못했다.

“I can’t tell how much I missed you,” said Ms. Lee, who never remarried and raised her son alone. “I have wept so much thinking of us that there are no tears left in me.”
Mr. Oh, holding her hand, said, “My dear, I didn’t know that the war would do this to us.”

재혼하지 않고 홀로 아들을 키운 이 씨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며 “우리를 생각하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이젠 눈물이 다 말랐다”고 말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오 씨는 “전쟁이 우리를 이렇게 갈라놓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Ms. Lee and the couple’s son, Oh Jang-gyun, 64, were among 389 South Koreans who crossed the heavily armed border into the North in buses and ambulances on Tuesday to meet with 96 elderly North Koreans who wanted to reunite with long-lost relatives for perhaps the only time. Ms. Lee said that after her husband appeared to her in a dream in 1978, she gave him up for dead and began holding an annual ritual for a deceased relative.

이 씨와 이 씨 부부의 아들인 오장균(64세) 씨는 지난 화요일 96명의 북한 노인들을 만나러 버스와 구급차를 타고 중무장된 국경을 건너 북측으로 간 389명 중에 속해 있었으며, 이들은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척들과의 어쩌면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를 재회를 원했다. 이 씨는 1978년 남편이 꿈에 나타난 후, 남편이 죽은 것으로 단념했으며 해마다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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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n families, separated from relatives living in North Korea, get their health checked before reunions with family members they have not seen since the Korean War. By REUTERS on Publish Date October 20, 2015. Photo by Ed Jones/Agence France-Presse — Getty Images.
북한에 사는 친척들과 헤어져 살아온 남쪽 가족들이 한국전쟁 이후로 본 적이 없는 가족들과 상봉하기 전에 건강 검진을 받고 있다.

The biggest surprise in her life came after the Koreas agreed in September to hold a new round of family reunions and she heard from the South Korean Red Cross that her husband was alive in the North, looking for her. Since then, she had been busy preparing for their meeting, digging up an old wedding photograph and buying a wristwatch as a gift. The couple’s names are inscribed on the back.

이 씨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이 일은 남북한이 9월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열기로 합의하고, 이 씨가 대한적십자로부터 남편이 북쪽에 살아 있으며 그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찾아왔다. 그때 이후로 이 씨는 오랜 결혼사진을 찾고 선물로 줄 손목시계를 장만하며 만남을 위한 준비로 바빴다. 시계 뒷면에 이 씨 부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Their time was to be painfully brief. They were granted permission to be together for only 12 hours, in group and private sessions, until Thursday, when they will have to part again. On Thursday, an additional 90 elderly South Koreans will cross the border for another round of three-day reunions with 188 relatives in the North.

이 씨 부부가 함께 한 시간은 고통스러울 만큼 짧았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다시 헤어져야 하는 목요일까지 단체와 개인 만남을 포함해 고작 12시간에 불과하다. 목요일, 90명의 남쪽 노인들이 북측의 188명의 친척들과 3일 동안 제2차 상봉을 가지기 위해 추가로 국경을 건널 것이다.

The reunions, at the Diamond Mountain resort in southeastern North Korea, are a rare but highly emotional glimpse at the pain the long political divide on the peninsula has inflicted on families separated by the war. For more than six decades, they have been forbidden to exchange letters, phone calls or emails, much less to meet. While their governments have arranged occasional reunions, they have been limited to a couple hundred people. The most recent reunions took place in February of last year.

북한의 남동부에 위치한 금강산 리조트에서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은 오랫동안 한반도의 정치적 분단이 전쟁으로 흩어진 가족들에게 안겨준 고통을 엿볼 수 있는, 드물지만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신, 전화, 이메일을 통한 왕래가 일절 금지되어 있었다. 양측 정부에 의해서 가끔 상봉의 자리가 마련됐지만 그것도 수백 명으로 인원이 제한되곤 했다. 가장 최근의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해 2월에 있었다.

Lee Ok-yeon, 88, declined to hold the hands of her North Korean husband, Chae Hoon-shik, 88, calling that “pointless” after such a long separation, according to reports by South Korean journalists from Diamond Mountain. But her 65-year-old South Korean son, Hee-yang, hugged his father in tears. “Father, I am your son,” he said.

금강산 상봉 장소에 있던 한국 측 기자에 따르면, 이옥연(88세) 씨는 그렇게 오랜 시간 헤어져 산 뒤 “의미 없다”며 북에서 온 남편 채훈식(88세) 씨의 손을 잡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이옥연 씨 아들 희양(65세) 씨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안았다. 그는 “아버지, 제가 아들입니다”고 말했다.

The hall where the reunions took place echoed with weeping and laughter as siblings hugged one another and graying children buried their tearful faces in the laps of parents who had shown up in wheelchairs, barely recognizing them. A 65-year-old South Korean, Shin Yeon-ja, told her North Korean father, Jong Se-hwan, 87, that his wife was still alive in the South but too weak to make the cross-border journey.

상봉이 이루어진 행사장에는 형제자매들이 서로를 껴안고, 백발이 다된 아들은 휠체어를 타고 온 알아보기조차 어려운 부모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흐느낌과 웃음이 울려 퍼졌다. 남쪽의 신연자(65세) 씨는 북쪽의 아버지 정세환(87세) 씨에게 남쪽에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시지만 너무 쇠약하셔서 국경을 넘는 긴 여행에 동행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On Tuesday, two elderly South Korean women had to be taken across the border in ambulances so they could reunite with brothers from the North.

화요일, 남쪽의 두 누이들이 북쪽의 남동생들을 만나기 위해 구급차를 탄 채로 국경을 건너야 했다.

South Korea has repeatedly called for more reunions, which are widely viewed as a barometer of relations. But given the fluctuating political tensions on the peninsula, only 18,800 Koreans have been allowed to participate in 19 rounds of face-to-face reunions since 1985, when the first gatherings were held.

한국은 양국 관계의 지표라고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이러한 재회의 자리를 더 자주 마련할 것을 수차례 요구해왔다. 그러나 요동치는 한반도의 정치적 긴장감 때문에, 첫 재회가 열린 1985년 이후 18,800명 만이 19회에 걸친 상봉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다.

More than half of the 66,000 South Koreans waiting for reunions are in their 80s or older. South Korea selects the candidates for reunions by lottery, while the North is believed to give priority to people deemed loyal to the government.

가족상봉을 기다리고 있는 66,000명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80대 이상이다. 한국은 추첨으로 상봉 후보자들을 선택하는 반면 북한은 당에 충성한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알려졌다.

On Tuesday, some visitors from the South carried prewar photographs to help their siblings recognize them. They had also packed photographs of their hometowns and of the grave sites of dead relatives, as well as underwear, medicine, cash and other gifts.

화요일 한국에서 출발한 몇몇 방문자들은 형제자매들이 자신들을 알아볼 수 있도록 전쟁 전의 사진들을 소지했다. 그들은 또한 고향 사진과 돌아가신 친척들의 묘지 사진, 그리고 속옷, 의약품, 현금 및 기타 선물도 챙겨 넣었다.

The South Korean delegation’s crossing was delayed briefly when North Korean border guards demanded to hold the laptop computers of South Korean reporters overnight for inspection. The reporters resisted the demand but let the officials search through their computers while they watched.

한국 파견단의 입국은 북한 측 국경경비대가 한국 기자들의 노트북을 검열을 위해 하룻밤 맡아두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잠시 지체됐다. 기자들은 그 요구를 거부했으나 자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 국경 경비병들이 컴퓨터를 조사하도록 허용했다.

Foreign reporters were not allowed to cover the event.

외신 기자들에게는 이산가족 상봉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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