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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별이 다섯 개~!!

(29) 별이 다섯 개~!!

S. Macho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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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전부터 산과 바다를 건너 여행을 다니는 상인이나 순례자들에겐 맹수와 더위, 추위를 막고 잠시나마 눈을 붙일 휴식할 곳이 필요했다. 초기 숙박시설은 고대 페르시아와 아시아를 잇는 길을 따라 건축된 캐러반서레Caravansary 라 불린 돌과 벽돌로 지어진 곳이었다. 큰 마당이 있는 이곳이 사람들과 가축들에게 휴식을 제공했다. 전쟁, 무역, 학문 등을 위해 학자, 군인, 상인 등 수 많은 사람이 말 등을 정비하고 쉴 수 있는 단순한 마구간 같은 곳이었다. 유럽에서 이 숙박시설은 종교와 순례자들과의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수도원과 종교시설은 순례자들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 휴식공간과 음식을 제공했고 순례자들은 약간의 물품이나 돈의 기부로 대가를 대신했다.

중세 때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중요한 종교적 의무였다. 이탈리아의 숙박업소 주인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주류판매허가를 받아 상업적 영업을 시작해 14세기 초부터는 그림과 상호 등 간판을 문밖에 걸기 시작한다. 가정집에서 맥주를 제조해 파는 에일하우스Alehouse도 늘어났다. 여행자들도 적당한 돈을 내며 더는 부엌 바닥이나 헛간에서 묵지 않았다. 일반 가정집보다 많은 객실과 마구간이 있는 여인숙Inn은 여행자를 위한 숙소 겸 연극, 닭싸움, 마을 행사 등이 열리는 사교의 장이었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여관Tavern은 순례하는 순례자들에게 포도주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당시에 포도주는 맥주보다 꽤 비쌌기에 여유 있는 부자들만 맛볼 수 있었다.

16세기 숙박법이 생기며 숙박허가증, 간판 등에 세금이 부과됐다. 상인들은 숙소에서 사고팔 물건들을 늘어놓고 흥정을 해댔다. 18세기 중엽 주요 도로 주변에 여인숙이 생겨나고, 마을엔 에일하우스를 대신할 규모가 큰 선술집Public House이 들어선다. 시간이 지나며 여관들은 상류층의 사교장인 커피하우스Coffeehouse로 변신해갔다. 1768년 영국 더본Devon의 엑시터Exeter에 최초의 호텔이 문을 열었다. 1810년대 론돈London 등에선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늘어나자 거울과 타일 등으로 벽을 화려하게 장식한 먹고 마시고 잘 수 있는 선술집Pub이 우순 죽순 생겨냈다. 철도가 발달하자 철도 역 가까이에 호텔들이 빠르게 들어섰다. 자동차가 돌아다니는 20세기가 되자 고속도로 주변의 여인숙들은 체계화된 모텔Motel이나 호텔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삼국사기에 서기 487년인 신라 소지왕 9년 관영인우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역郵驛은 국가 문서, 보급품 운송, 관리들의 숙박, 편의를 위한 기관이다. 고려 때 사찰은 세금과 역을 면제받고 술, 국수, 마늘, 소금 등을 팔며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고려 예종 17년 건축된 혜음원惠蔭院은 당시 남경과 개성을 왕래하는 여행자들이 무료로 숙식할 수 있는 최초의 국립숙박시설이다. 당시엔 여진, 아랍 등에서 온 다양한 외국 상인들을 위한 숙박시설도 있었다. 중앙 집권을 위한 행정 편의를 도모하고 군사적으로 국방 강화를 위해 많은 역이 설치되었으며, 관關, 진鎭, 도渡, 관館 등이 역원驛院을 대신하기도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 내포원內浦院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말을 갈아타고 쉬는 역원제驛院制가 활성화되며 전국에 많은 역과 원이 설치되었다. 숙식을 해결하는 곳인 주막酒幕은 큰 고을마다 한 두 곳씩 있었으나 기본적 잠자리와 마구간 등뿐이고 규모도 작아 여행객들이 음식과 이불 등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인조 때부터는 대동법 등 시장경제발달로 화폐 사용이 늘어나니 주모가 술과 안주까지 파는 잠자리와 술집이 합쳐진 형태인 주막이 1960년대까지 경상북도에 있었다. 주막은 문짝에다 ‘주酒’ 자를 붙이거나 창호지 등을 달기도 표시했다. 주막은 객주라고도 하며 한 방에서 여러 명이 합숙했고 숙박비는 식사에 따라 1~3냥이었다. 지금 고속도로 휴게소 중 일부는 예전 길을 따라 장터, 큰 고개 등의 길목, 나루터 등에 분포했던 주막터였다고 한다.

지금 공무원처럼 관직을 가진 관리들이 공무로 지방출장을 가면 지방행정업무를 하던 동헌東軒이나 말을 키우던 역驛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러나 개인 여행은 민가나 주막에서 묵을 수밖에 없는데 여러 명이 합숙하는 방에서 혼자 묵으려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내쫓았다가 임금에게 알려져 파직당한 관리도 있었단다. 구한말까지 보통 양반집엔 사랑방이란 별채가 있어 지나가던 나그네 등 여행자들에게 언제든지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다. 당시 재물이 넉넉했던 양반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받들고,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는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여행자들은 그 대가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서예, 시 등으로 주인에게 보답했다. 무료로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고 여비까지 주는 양반집들이 고을마다 있으니 중국, 일본과 다르게 국내에서는 상업적 숙박시설이 발달할 필요를 못 느꼈던 거 같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자 서구열강들이 조선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선에 온 외국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숙식이었다. 그러자 헝가리인 스타인벡Steinbeck의 꼬레호텔Hotel de Coree, 중국인 이태怡泰의 스튜어드호텔Steward’s Hotel, 일본인 호리 큐타로堀久太郞의 대불大佛호텔Daibutsu Hotel이 제물포항에서 문을 열었다. 대부분 서양인이 인천을 통해 들어왔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들은 한동안 장사가 잘되었다. 그러나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며 서양인들이 바로 한성으로 향하자 운영난에 빠진 호텔들은 다른 용도로 넘어가고 결국 1918년 대불호텔도 중식당 중화루中華樓로 변신했다.

한성에서는, 1897년 경운궁 근처에 서울호텔Seoul Hotel, 대한문 앞에 임페리얼호텔Imperial Hotel, 서대문 전차정거장에 스테이션호텔Station Hotel 등 서양식 호텔이 생겨난다. 1901년부터 10여 년간 운영했던 정동의 팔레호텔Hotel du Palais은 프랑스인 주방장이 직접 요리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말에 능숙해 고종의 밀사였던 독일 여자 앙뜨와넷 손탁이 고종으로부터 덕수궁 근처 1,200평의 황실가옥을 하사받아 외국인들을 위한 구락부Club俱樂部를 운영했다. 1902년 그 자리에 서양인들 사교의 장인 한성 최초의 커피숍이 있던 객실 25개를 갖춘 규모가 큰 2층짜리 손탁호텔Sontag Hotel을 세웠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 동아시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도 이 호텔에 고객이었다. 그러나 손탁이 본국으로 떠나자 호텔은 경영난에 휩싸이며 1917년 이화학당에 팔렸다가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지고, 현재는 표지석만 남아있다.

1936년 5월 개관한 반도호텔Bando Hotel은 만주와 조선에서 군납으로 큰 돈을 번 일본인 노구치野口가 세웠다. 당시 최고였던 조선호텔Honto Hotel에서 출입을 거부당하자 바로 옆 땅을 사들여 조선호텔보다 큰 지상 8층, 객실 111개 호텔을 개업했다. 반도호텔은 광복 후 미국대사관 숙소, 한국전쟁 중엔 미 8군 사령부 등으로 사용되는 등 우리나라 호텔산업의 전환기를 가져왔고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53년 정부는 두 호텔을 인수해 ‘반도조선호텔’로 합쳐 운영하다 1975년 반도호텔이 철거되며 그 자리에 들어선 게 현재의 소공동 롯데호텔이다.

국내의 호텔들은 해방 후 정부수립 전까지 미군정청이, 1948년 정부수립 후엔 교통부가 관리했다.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 관광산업에 눈을 뜨며 해운대관광호텔, 대구호텔, 무등산관광호텔, 온양온천관광호텔, 불국사관광호텔, 서귀포관광호텔, 화진포관광호텔 등이 생겨난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호텔 지배인 자격시험과 등급화 제도가 생겨나며 질적 수준과 서비스가 국제수준으로 향상되기 시작한다. 1980년대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국제 행사를 치르며 정부의 혜택과 지원으로 특급호텔들은 서울 도심의 상징이 된다.

처음 호텔은 부유한 특권층의 사치스러운 사교장이었다. 1898년 스위스인 세자르 리츠César Ritz는 18세기 베르사유 궁의 고급스러운 내부장식과 화려한 분위기의 리츠호텔Hôtel Ritz Paris의 문을 파리에 연다. 그는 최초로 돈 많은 귀족에게 차별화된 봉사를 제공하는 ‘별 5개인 최고급 호텔’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리츠호텔은 1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럽 등 세계 곳곳에 40개의 체인 호텔로 명예와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러 상표의 다양한 체인호텔 등은 과거 특권층만 이용이 가능했던 호텔을 일반인, 여행자,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히 이용할 수 있는 쉼터로 만들었다.

가장 객실이 많은 호텔은 어딜까? 모스크바 이즈마이로보호텔Izmailovo Hotel은 총 객실 수가 7,500개다. 말레이시아 퍼스트 월드호텔First World Hotel이 6,118개로 2006년 Guinness World Records에 등재됐다. 가장 오래된 호텔은 서기 707년에 문을 열어 46대에 걸쳐 영업을 하는 일본 야마니시Yamanashi의 니시야마 온센 계운칸Nisiyama Onsen Keiunkan이라고 한다. 가장 높은 호텔은 홍콩 리츠-칼튼호텔Hong Kong Ritz-Carlton Hotel로 지상 484m에서 시내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다. 가장 비싼 호텔은 2014년 미국 뉴욕의 왈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로 중국 Anbang보험그룹이 약 2조 원(19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경기도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내 게스트하우스 지지향紙之鄕은 ‘종이의 고향’이라는 그 뜻에 맞게 TV가 없고 각 객실과 복도에 다양한 책들이 갖춰져 있어 며칠이고 조용히 쉬며 사색하고 책읽기 좋은 쉼터다.

내가 처음 묵은 상업적 숙박시설이 국민학생 때 온양관광호텔이었다. 성인이 되고 남녀혼숙이 자연스러운 유럽의 게스트하우스, 주인 할머니가 악마 또는 천사인 민박집, 요금에 따라 화장실과 TV가 선택사항인 별 2개 중급호텔, 조식 맛이 뛰어난 별 3~4개 비즈니스호텔, 수영복만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휴양지 리조트, 별 5개 이상인 고급호텔 등 다양한 숙박시설을 경험했다. 호텔 등급을 별 개수로 평가하는 방식은 1900년대 초 미국의 한 자동차 여행 단체가 회원들의 편의를 위해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일된 호텔 등급 체계도 없고, 나라별로 관리 기관과 기준도 제각각이다.

별, 다이아몬드 등 여러 표지를 쓰는데 대부분 5개를 최상위 등급으로 한다.
국내는 ‘관광진흥법 시행규칙’ 제 25조(호텔업의 등급결정) ③ 1. 서비스 상태 2. 객실 및 부대시설의 상태 3. 안전 관리 등에 관한 법령 준수 여부가 있다. 한국관광공사 호텔 등급 사무국의 호텔 등급 심사 기준은; 깨끗한 객실, 욕조, 조식가능, 안전 – 1성급, 1성급+최소한의 식음료 부대시설 – 2성급, 2성급+1개 이상의 식당, 로비, 라운지 – 3성급, 고급시설과 봉사, 품위 있는 로비와 침구 및 가구, 연회장, 국제회의장, 비즈니스 센터, 피트니스 센터, 2개 이상의 식당, 룸서비스 12시간 이상 – 4성급, 4성급+3개 이상의 식당, 룸서비스 24시간 가능. 최상급 시설 및 서비스 – 5성급 등으로 나눈다. 국내에서는 이제껏 무궁화 개수로 등급을 표시하다가 올해부터 ‘호텔 별 등급결정제도’를 시행해 새롭게 디자인한 별로 등급을 표시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공식적으로는 6성급, 7성급 호텔은 없다. 공식 등급은 5성급 호텔, 즉 별 5개가 가장 높다. 그 이상의 ‘별’은 홍보나 마케팅용으로 붙인다. ‘고급 중에서도 최고급 호텔’ ‘기존 5성급 호텔이 따라올 수 없이 우월한 호텔’이라는 선전이다.

6성급이라는 외국 한 고급 리조트에서 날 초청했다. 호텔 측에서는 잘 대접해 준다고 외국 수상, 왕 등이 묵었던 특실을 제공했다. 침실이 5개인 넓은 복층이었는데 위층 마스터 룸에서 쉬다가 음료수라도 마시려면 1층으로 내려가야 했고, 웨이터 등 누가 벨이라도 누르면 1층으로 뛰어 내려가 거실을 가로질러 뛰어가 문을 열던지 대답을 해야 했다. 한번은 슬리퍼 신고 뛰기 불편해 맨발로 뛰어 내려가다가 층계모서리에 발가락을 찧었는데 너무 아파 혼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한 특실이었으나 나는 묵었던 일주일 내내 큰 옷을 입은 거 같이 어색하고 불편했었다. 혼자 묵는 나한텐 그냥 몇 걸음이면 침대, 책상, 욕실, 문이 닿는 간편한 객실이 편하다.

현재 전 세계 호텔 객실 수는 미국 약 5백만, 중국 약 160만, 일본 140만 등을 포함해 약 2,100만 개로 해마다 9억여 명 이상이 숙박하고 있다. ‘순례자의 숙소’를 뜻하는 고대 라틴어 Hospitale에서 딴 고대 프랑스어 Hostel은 ‘숙소, 휴식 장소, 치료 장소’ 등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호텔Hospital, Hotel, Hostel의 어원이다.

*사진 War at oz에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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