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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북송 희망하는 탈북자 김련희 집중 조명

뉴욕타임스, 북송 희망하는 탈북자 김련희 집중 조명
– 김 씨, 치료비 벌기 위해 남한행 감행
-“자유, 물질적인 것 그리고 그 밖의 어떤 좋은 것도 내 가족과 가정만큼 내게 중요하지 않다”
– 한국 정부가 김 씨의 북송 막아… 현행법상 김 씨를 돌려보낼 방법 없어

지난 8월 15일 뉴욕타임스는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한 탈북자의 이야기를 통해 분단된 한반도에서나 가능한 한 슬픈 이야기를 조명했다.

4년 전 탈북한 김련희씨는 북한 정부로 인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간 질환을 앓고 있던 김 씨가 스스로 의료비를 해결할 요량으로 남한에서 돈을 벌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북한 정부가 무능하지만 않았다면 김 씨가 탈북과 망명을 생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 씨는 이후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바로 잡고자 했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밀수업자에게 이미 여권을 빼앗긴 데다 여권 없이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송환된 탈북자라는 누명을 쓰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그녀에게 탈북을 종용했다.

결국, 한국에 도착한 김 씨는 곧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사정하지만, 그녀의 요구는 무시됐으며, 김 씨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탈북에 동의하는 자필 진술서를 제출하고 북한 체제를 부정한다. 한국 사정에 무척 어두웠던 김 씨는 필사적으로 북한으로 돌아가려 한 만큼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했고 급기야 여권 위조와 간첩 활동이라는 더 큰 문제에 휘말려버렸다.

그 후 김 씨는 체포되어 간첩활동과 여권위조의 혐의로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가석방된다. 또한, 김 씨는 가석방 후 강제 송환되기 위해 간첩인 척했으며, 북한이 그녀에게 간첩활동을 하도록 명령하고, 수집한 자료를 건넨 적이 없다고 자백을 번복했다.

김 씨가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남한의 실상에 대한 무지와 북한 정부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 김 씨는 간첩 활동을 하면 남한 정부가 그녀를 북으로 강제 송환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녀로 인해 북한에 있는 가족이 입을 피해를 매우 걱정했다.

김 씨는 현재 북송을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그녀의 바람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는 김 씨의 사연을 알고도 그녀를 북으로 보낼 마음이 없으며 북한 정부 묵묵부답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이후 탈북자는 약 2만 8천여 명. 남북한 정부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Terry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1VIUsWz

 

A North Korean Defector’s Regret

한 탈북자의 후회

By CHOE SANG-HUNAUG.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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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Ryen-hi, who left North Korea four years ago, says her defection was a mistake. She now works at a recycling plant, operating a machine that chops up wires. Jean Chung for The New York Times
4년 전 북한을 떠났던 김련희는 자신의 탈북이 실수였다고 말한다. 그녀는 현재 재활용 공장에서 철사를 잘게 절단하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SEOUL, South Korea — Since the late 1990s, some 28,000 North Koreans have fled to South Korea.

서울, 한국 –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약 28,000명의 북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도망쳐왔다.

Only one, as far as anyone knows, has ever asked to go back.

지금까지 되돌아가기를 요청했다고 알려진 건 오직 단 한 명뿐이다.

Kim Ryen-hi, a 45-year-old dressmaker from North Korea, says her defection to the South four years ago was a terrible mistake. She says she has been trying since she got here to return to the impoverished, repressive North to be with her husband, daughter and ailing parents. But her efforts have only brought her more trouble, including imprisonment on spying charges.

북한 출신의 45세 양장사인 김련희는 4년 전 한국으로의 망명이 지독한 실수였다고 말한다. 김 씨는 한국에 온 이후로 남편, 딸 그리고 병든 부모와 있기 위해 가난과 압제의 북한으로 돌아가려 시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그녀를 더 곤궁에 빠뜨렸을 뿐이고 간첩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Freedom and material and other lures of any kind, they are not as important to me as my family and home,” a tearful Ms. Kim said at a recent news conference in Seoul. “I want to return to my precious family, even if I die of hunger.”

“자유, 물질적인 것 그리고 그 밖의 어떤 좋은 것도 내 가족과 가정만큼 내게 중요하지 않다”고 서울에서의 최근 기자 회견에서 김 씨는 울먹이며 말했다. “굶어 죽더라도 내 소중한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But in a case full of bizarre twists and blind alleys, now it is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at will not let her leave.

하지만 기이한 우여곡절과 막다른 골목이 가득한 이 사건에서, 이제 김 씨를 막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다.

Government officials, while professing sympathy for her plight, say that as a convict on parole she is not entitled to a passport. Moreover, she became a South Korean citizen when she arrived, and under South Korean law it is illegal to help a citizen flee to the enemy North.

정부 관계자들은 김 씨의 곤경에 동정을 표하면서, 집행유예 중인 범죄자인 김 씨는 여권을 발급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더욱이, 김 씨는 한국에 와서 한국 시민이 되었고, 한국법률상 적국인 북한으로 탈출하려는 시민을 돕는 것은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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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than anything else, I want North Korea to recognize that I am not a traitor and that I have never, ever, not even for a blinking moment, forgotten my fatherland,” she said. Jean Chung for The New York Times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배신자가 아님을, 단연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내 조국을 잊은 적 없음을 북한이 알아주기 바란다”고 김 씨는 말했다.

“She became a South Korean citizen on her own will, and accordingly she is subject to laws applying to all other South Korean citizens,” said Park Soo-jin, a spokeswoman for the Unification Ministry in Seoul.

“김 씨는 자신의 의지로 대한민국 시민이 되었고, 따라서 다른 한국인과 같은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고 박수진, 서울의 통일부 대변인이 말했다.

A ministry official, speaking on the condition of anonymity to discuss the highly unusual case, said, “We know of her sad story, but right now, under the current law, we see nothing we can do for her.”

한 통일부 관계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 매우 이례적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우리는 김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있지만, 현행법상 현재로써는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Ms. Kim’s improbable story began in 2011, when she traveled to China to visit relatives and obtain treatment for a liver ailment. There, she said, she met a broker who said he could smuggle her into South Korea, where she could make a lot of money in a few months and return to China.

김 씨의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는 그녀가 친척들을 방문하고 간 질환 치료 방안을 얻기 위해 중국으로 간 2011년에 시작됐다. 김 씨는 거기에서 한국으로 자신을 밀입국시켜줄 수 있고 몇 달 내에 많은 수입을 얻고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준다는 브로커를 만났다.

Although she was married to a doctor in Pyongyang, the North Korean capital, and well off by North Korean standards, she said she signed on with the smuggler with the aim of helping to pay her medical bills.

김 씨는 북한 평균 생활 수준에 비해 부유한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의사와 결혼생활을 했지만, 의료비에 보태는 것을 목표로 해당 밀수업자와 계약했다.

At some point before arriving in the South, she realized this was a bad idea. But the smugglers had confiscated her passport and said there was no turning back.

한국에 도착하기 전 어느 시점에 김 씨는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밀수업자는 그녀의 여권을 압수하고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I also feared that if I was caught without a passport and deported back to the North, I would be found out and treated as a traitor for trying to flee to South Korea,” she said in an interview. “I thought my best chance was to make it to South Korea, where I hoped that fellow Koreans would understand me and help me find my way home.”

“만약 내가 여권 없이 잡혀 북한으로 추방된다면 한국으로 도망가려고 시도한 배신자로 확인되고 그렇게 취급될까 두려웠다”고 인터뷰에서 그녀는 밝혔다. ”한국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한국에서 한국 동포들이 나를 이해해 주고 내가 집으로 가는 길을 찾게 도와주길 바랬다.”

Passing through Thailand, she submitted a handwritten statement agreeing to defect, a requirement for North Korean refugees to be allowed to enter the South.
Once she arrived in South Korea, however, she began demanding that she be allowed to return to the North. But South Korea, it turns out, has procedures to bring defectors in from the North, but not to send them back.

태국을 거치면서, 김 씨는 한국에 입국허가를 받기 위해 북한 이탈 주민에게 요구되는 탈북에 동의하는 자필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일단 한국에 도착하자 북한에 되돌아가게 허락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은, 밝혀진 바대로, 북에서 온 탈북자를 받아들이면 되돌려 보내는 절차가 없다.

She was allowed to leave the debriefing center only after she signed, as all defectors do, a document disavowing communism and agreeing to become a law-abiding citizen of the South.
Fearing that her prolonged absence from home had already put her family in Pyongyang in jeopardy, she resorted to desperate and often bewildering steps that only got her deeper into trouble.

김 씨는 모든 탈북자가 하던 대로, 공산주의를 부인하고 한국의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되기로 동의하는 서류에 서명하고 난 후에야 합동신문센터를 나올 수 있었다.
자신이 고향을 오래 떠나 있는 것이 평양에 있는 가족을 이미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불안감으로, 김 씨는 필사적이고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방법에 기대었고 이는 더 큰 문제에 휘말리게 할 뿐이었다.

She met a smuggler to discuss stowing away, she said. She repeatedly called a North Korean consulate in China asking for help. Denied a South Korean passport, she tried forging one.

김 씨는 밀항을 논의하기 위해 밀수업자와 만났다고 말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중국에 있는 북한 영사관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한국 여권이 거부되자 그녀는 여권을 위조하려 시도했다.

Then she did something that she now characterizes as a dumb mistake but that appears to have been wildly ill advised. She began to spy for the North, she said, collecting cellphone numbers and other personal data of other defectors in the South.
그러다 김 씨는 지금은 자신도 바보 같은 실수라고 여기는, 몹시 무분별했던 것으로 보이는 행위를 했다. 한국에 있는 다른 탈북자의 개인 정보와 휴대전화 번호를 수집하며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를 시작한 것이다.

“I foolishly thought that once they believed I was spying, they would deport me as a troublemaker,” she said.
She even reported her spying to the police, begging them to “please hurry and stop me,” she would later testify.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간첩 행위를 하고 있다고 그들이 믿으면, 나를 골칫덩어리로 여겨 강제 추방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김 씨는 말했다.
심지어 경찰에 “제발 서둘러 나를 막으라”고 간청하면서 자신의 간첩 행위를 신고했고, 나중에 법정에서 진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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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Ryen-hi, right, with her roommate in their room at the recycling plant where she works in Yeongcheon, South Korea. Jean Chung for The New York Times
김련희(오른쪽)와 한방동료, 한국 영천에 있는 자신이 근무하는 재활용품 처리공장 숙소에서.

Deportation, however, is not what South Korea does with spies. In July of last year, she was arrested and charged with espionage and passport fraud.
At trial, she told the court that the North Korean consulate had instructed her to spy, and said that she had handed over her data to a Communist agent in a stadium in Seoul where she went to watch a women’s soccer match between the two Koreas in 2013.

그러나 강제송환은 한국이 간첩을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난해 7월, 김 씨는 간첩 행위와 여권 사기로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재판에서, 북한 영사관이 자신에게 간첩 행위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고 2013년 남북 여자 축구 경기를 보러 간 서울 한 경기장에서 공산당 기관원에게 자료를 넘겨주었다고 말했다.

She was convicted and sentenced to two years in prison. In April, after she had served nine months, an appeals court suspended her sentence, saying that her confession was a mitigating factor. She was released on parole and kept under surveillance.

김 씨는 유죄판결을 받고 2년의 실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지난 4월, 김 씨가 9개월을 복역한 후, 항소심 법원은 김 씨의 자백을 경감 사유로 들어 형 집행을 정지했다. 김 씨는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며 감시하에 놓여있다.

“There are reasons to believe she was not a typical spy,” the court said in its ruling. The court acknowledged that Ms. Kim had wanted to return to the North from the moment she had arrived. It also determined that she had been coerced into spying by the North because she feared for her family if she did not oblige.

“김 씨가 전형적인 간첩이 아니라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같이 말했다. 법원은 김 씨가 도착한 그 순간부터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김 씨가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 생길 가족의 안위를 두려워한 나머지 북한의 강요로 간첩이 됐다고 판단했다.

Ms. Kim has since reversed herself, denying that the North ordered her to spy or that she turned over her data. She now says she that she was only pretending to spy in order to be deported, and that she falsely confessed to receive a shorter sentence.

그러나 김 씨는 그 후 태도를 바꾸고 북한이 그녀에게 간첩활동을 하도록 명령한 것, 수집한 자료를 건넨 것에 대해 부인했다. 현재 김 씨는 그녀가 추방되기 위해 간첩인 척했으며 짧은 형량을 받기 위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Her conduct is too absurd to be a spy’s,” said Jang Kyung-uk, a human rights lawyer helping Ms. Kim. “It’s time for South Korea to discuss a way for people like her to return home.”

“그녀의 행동은 간첩이라고 보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김 씨를 돕고 있는 인권 변호사 장경욱 씨가 말했다. “이제 한국 정부는 김 씨와 같은 이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을 논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Her case has not drawn much attention in South Korea, where hers is just another sad, if strange, story in a land where thousands of families have been divided since the Korean War.

한국에서 김 씨 사건은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 한국전쟁 이래로 수천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한 한국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이상하지만 그저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일 뿐이다.

North Korea has not commented on the case. Its government calls all defectors “traitors,” sometimes dispatching family members left behind to prison camps.

북한은 김 씨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정부는 모든 탈북자를 “배신자”라고 부르고 때로 남은 가족을 수용소로 보내기도 한다.

Ms. Kim, who now works at a recycling plant in Yeongcheon, operating a machine that chops up old electrical wires, still professes her love for the North, affections that do not endear her in the South but that may be intended to protect her family back in Pyongyang.

현재 영천에 있는 재활용 공장에서 낡은 전선을 잘게 절단하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일을 하는 김 씨는 한국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여전히 북한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평양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려는 애착일지도 모른다.

She said the last four digits of her South Korean cellphone number represented the birthday of Kim Il-sung, the North’s founder and grandfather of the current leader, Kim Jong-un. She said she worshiped Kim Il-sung “like my own biological father.” She said she tearfully sang the North Korean anthem at the stadium during the 2013 soccer match.

김 씨는 자신의 남한 휴대전화의 끝 네 자리 숫자는 현 지도자 김정은의 할아버지이자 북한을 세운 김일성의 생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친아버지처럼” 김일성을 숭배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3년 남북한 축구시합 당시 경기장에서 북한 국가를 눈물 흘리며 불렀다고 말했다.

“More than anything else, I want North Korea to recognize that I am not a traitor and that I have never, ever, not even for a blinking moment, forgotten my fatherland,” she said in the interview. “If I was caught as a spy, I thought it would at least prove that I did not abandon the fatherland.”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배신자가 아님을, 단연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내 조국을 잊은 적이 없음을 북한이 알아주기 바란다”고 김 씨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만일 내가 간첩으로 체포된다면, 그것은 최소한 내가 조국을 버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It is difficult to parse the motivations behind such comments, separating the state-instilled patriotism from state-induced fear.

그러한 언급 뒤에 내재한 동기를 국가에 의해 주입된 애국심과 국가에 의해 유발된 공포심과 분리하여 분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Fear for her family helps explain her desperate and seemingly strange behavior,” said Choi Seung-ho, a veteran TV producer who reported on her story for Newstapa, an investigative news website. “Hers is a humanitarian story, perhaps possible only on the divided Korean Peninsula.”

탐사보도 웹 사이트인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했던 최승호 PD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염려가 김 씨의 필사적이고 표면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씨의 이야기는 분단된 한반도에서나 있을 법한 인도주의적인 이야기다.”

Ms. Kim’s only hope for returning home at this point would be some sort of political deal between the two Korean governments. South Korea has a strict policy against repatriating convicted spies and has only done so twice, in 1993 and 2000, as good-will gestures as part of bilateral negotiations.

이 시점에서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김 씨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남북한 정부 간의 일종의 정치적 협상이다. 한국은 간첩혐의자를 송환하는 데 엄격한 정책을 갖고 있으며 양자 간 협상의 일환으로써 선의의 행위로 1993년과 2000년, 단 두 번 송환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I had never imagined that my initial bad judgment in trusting the broker would lead to so much trouble,” Ms. Kim said. “One thing I learned is how ignorant North Koreans like myself were about how things work in South Korea, just as South Koreans don’t understand North Korea.”

“브로커를 믿은 내 첫 나쁜 판단이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도 못 했다”고 김 씨는 말했다. “내가 배운 한 가지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일이 진행되는 방식에 나처럼 북한 사람들이 몹시 무지하다는 것이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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