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론에 임하는 당신의 지식
박수희
나와 상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는 토론은 종종 폭력을 낳기도 한다. 특히, 양쪽의 대립이 명확한 정치적 토론에서 더욱 그렇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닐진대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외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진은, 이탈리아 국회의 한 모습. (출처: ‘사진은 권력이다’ 블로그)
유튜브에 <거꾸로 자전거>라는 동영상이 있다. 자전거 타기를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해 온 사람들에게 이 자전거는 말 그대로 멘붕을 선사한다. 자전거의 간단한 구조 변화 하나로 누구에게나 익숙한 자전거 타기를 낯선 것으로 만드는 이 동영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해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딸 때조차 자동차가 어떤 힘으로 움직이는지, 내부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세세히 배우지는 않는다. “매뉴얼에 따라 자동차 움직이는 법” 정도를 배워 “정해진 커트라인 점수”에 맞춘 운전면허를 따서는, 저마다 차를 몰고 거리로 나간다. 이십 년 이상 운전을 해 온 나 역시, 자동차에 대해 누가 물어온다면 어느 회사의 어느 자동차, 어느 모델 정도로 밖에 할 말이 없다. 배우지 않아서, 또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라고 말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 자동차와 함께 해 왔다.
토론 또는 디베이트 강의를 하는 자리에서, 청중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한다. 김치 담가 보신 분 계세요? 라고. 손든 분들 중에서 비교적 젊어 보이는 여성을 지목해 직접 그 과정을 말해 봐 달라고 주문하면, 대부분 이렇게 말씀하신다. ” 음… 먼저, 배추를 씻어요. 그리고, 무를 썰어요. 아, 참 배추를 먼저 소금에 절이고… 아, 그리고 그 전에… 어? 내가 친정엄마랑 몇 번 담가 봤는데, 왜 헷갈리지? ” 하곤 겸연쩍어하며 자리에 앉는다. 이번엔 주부 경력이 좀 있는 분께 기회를 드려 본다. “제 경우에 고춧가루나 젓갈, 소금은 미리 사 놓아요. 이 세 가지가 김치의 맛을 좌우하거든요. 특히 젓갈이나 소금은 여행 삼아 남편하고 주말마다 산지를 다녀 보면서 직접 맛을 보고 사요. 배추는 묵직하고 속이 통통한 것으로 골라서 상한 잎만 떼어내고 반을 갈라 소금을 뿌려 절이죠. 김치가 절여지는 동안 김치 속을 준비하는데… ”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주부경력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핵심은 바로 “지식”과 “이해” 의 차이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짜 아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라고 하고, 누구는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둘 다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둘 다 틀렸다.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론할 사안에 대한 지식을 말로 재구성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내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는 흔히, 어떤 것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 갖고도 내가 ‘안다’고 착각하는 습관이 있다. 토론할 때조차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검증해 보지도 않고 충분히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고 토론에 임한다. 그러다 보니 반박에는 고성으로, 상대의 주장에는 말꼬리 잡기로 일관한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해”를 위해 사안에 대해 검토하고 공부하는 것은, 구조가 바뀐 자전거를 통해 내가 자전거를 잘 탄다고 착각했구나! 하고 겸손해지는 과정과 같다.
이해가 선행되면, 듣기와 말하기도 자연히 순조로워진다. ‘지식’을 말할 땐, 아는 것을 기억해 내느라 눈도 이리저리 같이 움직이고 목소리도 경직된다. 아예 준비해 온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해’한 것을 말하면, 목소리도 안정되고 부드러워진다. 시선처리도 자연스럽다. 듣기도 마찬가지이다. 사안을 이해하고 나면, 지적 자극이 되어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귀를 연다. 또 충분히 공부한 후라서 다른 사람의 의견도 잘 들릴 수밖에 없다.
토론은 우리가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아무리 잘 알아도 나의 세계 안에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면 한쪽에서는 해만 보고 살고, 한쪽에서는 별만 보고 살 것이다. 이 양극의 사람들이 마주 앉아 세계를 논하면서 서로 별만 있다고, 해만 있다고 우겨대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내가 모르는 다른 관점이 있다는 생각 위에 토론은 존재한다.
토론은 탐구다. 같은 사안에 대해 내가 가진 이해와 다른 이의 이해를 공유하고,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토론은 완성이다. 내가 본 면과 다른 사람들이 본 면면이 만나 비로소 입체적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토론은 해결이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그 이상의 더 나은 방법을 간구하는 힘이다.
싸우지 않으려고 토론을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토론만 하면 싸움이 되는 문화는, 정말 아이러니 아닌가. (지식과 이해를 어떻게 구분 하냐고? “왜 그런가?” 라고 다시 질문해보면 된다. 누구보다도 나에게 먼저.)
Tip. 토론장에 나가기 전 체크리스트
① 먼저 이 사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파트너1로 정한다.
② 파트너1에게 설명한다. 쉽게 설명할수록 좋다.
③ 파트너1의 반응을 묻는다.
④ 파트너가 알아듣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다시.
⑤ 이 사안에 대해 아는 사람을 파트너2로 정한다.
⑥ 파트너2에게 설명한다.
⑦ 파트너2의 반박에 대답하지 못하면 다시.
※ 토론장을 시장판으로 만드는 사람은 위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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