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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타임스, 베트남참전 한국군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 드러나

LA 타임스, 베트남참전 한국군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 드러나
–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당시의 기록을 공개해야
– 한국 정부에게 베트남전은 지우고 싶은 추악한 역사일 것

지난 4월 초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알리기 위해 베트남 희생자 유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LA 타임스는 16일 이들의 방문을 전하며 그동안 은폐됐던 베트남전쟁 중 일어난 한국군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을 보도했다.

LA 타임스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한국이 일본 정부에 현재까지도 그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무엇을 남겼는지, 논쟁에 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방대한 군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도 전쟁 중에 한국군의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국교정상화를 했으며 그 이후 양국 간의 무역량은 꾸준히 늘어나 FTA까지 체결한 상태이다. 양국 간의 경제협력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베트남전 참가국과 피해국의 정치적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앙금으로 남아있다.

LA 타임스는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미국의 막대한 경제지원과 박정희 독재체제의 공고화라고 전하며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에 대한 역사를 지우고 싶을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LA 타임스의 전문이다.

번역 감수 : Terry

기사 바로가기 ☞ http://lat.ms/1FpZG34

 

Allegations of S. Korean atrocities arising 40 years after Vietnam War

베트남전 종결 40년 후 한국군의 잔혹 행위 혐의 떠오르다

By STEVEN BOROWIEC

May 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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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72, South Korean soldiers in Vietnam advance during an assault on an
enemy position near Nha Trang. (David Hume Kennerly / Getty Images)
1972년, 나트랑 근처 적 진지 공격 중 진격하고 있는 베트남 주둔 한국 병사들

Since he returned home to South Korea more than four decades ago, Kim Sung-wook’s service in the Vietnam War has been a source of pride.

김 성욱은, 40여 년 전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베트남전에 복무한 것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The former soldier says he and the 300,000 other troops South Korea sent to the conflict sacrificed their youth and health to try to protect democracy.

한국이 베트남전에 보낸 그와 삼십만 명의 다른 군인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그들의 청춘과 몸을 바쳤다고 전직 용사는 말한다.

But, he says, that legacy is under attack.

하지만, 그 유산이 공격받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In early April, some Vietnamese who say relatives were killed by South Korean troops visited Seoul, the capital, to speak publicly about the issue. They accused South Korean soldiers of civilian massacres along the lines of what U.S. troops did in My Lai.

4월 초, 자신의 일가족이 한국군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베트남인들이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알리려 수도 서울을 방문했다. 그들은 미라이에서 미군이 했던 것과 유사하게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한국 군인을 비난했다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owever, has not acknowledged that any civilian massacres took place at the hands of its troops. Kim and his comrades protested outside the Seoul venues where the Vietnamese speakers appeared.

그러나 한국 정부는 자국 군대에 의해서 어떤 민간인 학살도 자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김 씨와 그의 동료들은 그 베트남인들 연설이 있는 서울 소재 건물 밖에서 시위를 했다.

“Our service in the war was to protect the security of Vietnam,” Kim, secretary-general of a group called Korean Victims of Agent Orange Veterans’ Assn., said in an interview. “To claim otherwise is an affront to our honor.”

고엽제전우회라고 불리는 단체의 사무총장인 김 씨는 “베트남전에서 우리의 임무는 베트남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었다”며 “그 외의 다른 주장은 우리의 명예를 모욕하는 것이다” 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Kim , who served in Vietnam from 1967 to ’69, said he knows of no South Korean soldiers who knowingly harmed civilians. He says that even though the North Vietnamese won the war, he and his fellow veterans should be remembered as heroes who fought for their country.

1967년부터 69년까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김 씨는 고의로 시민들을 해친 한국 군인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베트남이 전쟁에 이겼다 해도 자신과 동료 전우들은 베트남을 위해 싸운 영웅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We were being shot at from all directions and couldn’t always distinguish between Viet Cong and civilians when we returned fire,” the 67-year-old said.

67세의 그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있었으며 우리가 반격할 때 베트콩과 시민들을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This year is the 4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the war, which is providing an occasion for a sometimes-difficult and contentious reflection on the war despite strong economic ties between the two countries.

올해로 베트남전 종결 40주년이다. 양국의 돈독한 경제협력 관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은 이 전쟁에 대해 때론 어렵고 논쟁적인 반향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

Seoul and Hanoi established full diplomatic relations in 1992, and bilateral trade reached $27.3 billion in 2013. The two governments last week signed a free trade agreement, which the Vietnamese government says will boost bilateral trade to $70 billion by 2020.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국교정상화되었으며 2013년 양국의 무역량은 273억 달러에 이르렀다. 지난주 양국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고, 이는 2020년까지 양국 무역 거래량을 700억 달러까지 높일 것이라고 베트남 정부는 말한다.

A large war memorial and museum in Seoul is mostly dedicated to the Korean War and has only brief mention of the Vietnam War. The capital has no memorials dedicated to the conflict in Vietnam. No major state events were planned to mark the anniversary of the war’s end. A state-sanctioned celebration for veterans was held last year — the 50th anniversary of the deployment of the first South Korean troops to Vietnam — despite a request from the Vietnamese government that it be canceled.

서울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주로 한국전쟁에 관련된 것이고 베트남전쟁에 관한 것은 아주 짤막한 언급뿐이다. 한국은 베트남전에 관한 어떤 기념식도 없다. 종전을 기념하기 위한 그 어떤 주요 국가 행사도 계획되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의 취소 요구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 참전 재향군인에 대한 정부 승인 축하 행사가 베트남 첫 한국군 파견 50주년인 작년에 개최되었다.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visited Vietnam in 2013 and placed flowers at the mausoleum where late leader Ho Chi Minh lies in state, but made no mention of South Korea’s role in the war.

박근혜 한국 대통령은 2013년에 베트남을 방문했으며 타계한 지도자 호찌민이 안치된 묘에 헌화했으나 전쟁 중에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Among the reasons the Vietnam War legacy is being debated is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insistence that Japan has yet to adequately apologize for its actions as colonial occupier of Korea from 1910 to ’45. The Japanese government issued official statements of guilt in 1993 and 1995 for World War II-era actions.

베트남 전쟁이 남긴 것이 논쟁이 되는 이유 가운데에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국으로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 일본이 아직 충분히 사과하지 않았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포함된다. 일본 정부는 1993년과 1995년에 세계 제2차 대전 시대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는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The topic of atrocities in Vietnam by South Korean soldiers was brought to broad public attention in the late 1990s in articles in left-leaning weekly newsmagazine Hankyoreh 21 by writer Koo Soo-jung, who was a graduate student in Vietnam during the war. After hearing murmurs about killings by South Korean forces, Koo researched government documents and interviewed villagers. In a series of articles, Koo told of villagers rounded up and slaughtered by South Korean troops and estimated as many as 8,000 civilian deaths.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가한 잔혹 행위에 관한 주제는 전쟁 당시 베트남에서 대학원생이던 고수정 기자가 1990년대 후반, 좌익 성향의 뉴스잡지 한겨레 21에 쓴 기사에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한국군이 학살을 자행했다는 소문을 들은 후, 고 씨는 정부 문서를 연구했고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연이은 기사에서 고 씨는 한국군에 의해 모인 후 학살당한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으며 8천 명에 이르는 양민이 죽었다고 추산했다.

Kim and others say that about 5,000 South Korean soldiers died in the Vietnam War and some returned with injuries and ailments caused by exposure to defoliants such as Agent Orange, which were employed by U.S. forces to kill the dense jungle that provided cover to the Viet Cong. Kim says that in combat he suffered only minor injuries, but since returning has battled mood swings and depression.

김 씨와 다른 이들은 베트남전에서 약 5천 명의 한국군이 사망했으며 일부 군인은 다치거나 미군이 베트콩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빽빽한 정글을 없애기 위해 동원한 에이전트 오렌지와 같은 고엽제에 노출됨으로써 생긴 질병과 함께 돌아왔다고 말한다. 김 씨는 자신은 전투에서 단지 가벼운 상처만 입었으나, 귀국한 이후로 심한 기분의 변화와 우울증과 싸워오고 있다고 말한다.

He says he understands why South Korea, a U.S. ally, joined the fight in Vietnam. South Korea’s president at the time, military dictator Park Chung-hee, argued that South Korea owed it to the U.S. to assist in the fight against communism in Vietnam to repay Americans for coming to South Korea’s aid in the 1950-53 Korean War.

그는 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는지 이해한다고 말한다. 당시 한국 대통령이었던 군부 독재자 박정희는 1950-53년에 걸친 한국전에서 자신들을 도우러 온 미국인들에게 빚을 졌고 한국은 베트남의 공산주의와 맞서 싸우는 전쟁에서 미국을 도와 이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Along with Park’s claims of wanting to be a good ally, scholars have pointed out that South Korean officials also saw the conflict in Vietnam as a pretext for developing South Korea’s military and economy.

좋은 동맹이 되기를 원했다는 박정희의 주장과 함께, 학자들은 남한 정부가 또한 베트남에서의 분쟁을 남한의 군사와 경제 발전의 구실로 보았다고 지적한다.

South Korea’s large commitment of troops led to billions of dollars in grants, loans and subsidies from the United States, as well as American support for Park’s authoritarian government.

한국군의 큰 희생은 미국으로부터의 수십억 달러 지원금과 차관 그리고 보조금으로, 또한 박정희 독재 정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으로 이어졌다.

“Park Chung-hee recognized that Korean participation in American military activities in Southeast Asia was the key to reversing the course of Korean weakness and setting the nation on a path of strength and assertiveness,” said Tae Yang Kwak, an assistant professor at Ramapo College in New Jersey who wrote his doctoral dissertation on South Korea’s role in the Vietnam War.

“박정희는 동남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한국의 약함을 뒤바꾸고 강하고 주체적인 나라로 가는 열쇠라고 인식했다”고 베트남전에서 한국의 역할이라는 박사 논문을 쓴 뉴저지의 라마포 컬리지 조교수, 곽 태양씨가 말했다.

South Korean scholars say the government has kept much of the military’s records off limits and hasn’t investigated accusations of massacres by South Korean soldiers.

한국의 학자들은 정부가 많은 양의 군사 기록에 접근을 금지해왔고 한국 군사들의 대학살 혐의를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There aren’t many ways to look into that ugly history,” said Choi Ho-rim, a professor at Dongguk University in Seoul and specialist on South Korea’s relations with Southeast Asia. “I think the government would prefer that Koreans have no memory of the war.”

“이 추잡한 역사를 조사할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최호림 서울 동국대학교 교수이자 동남아와 한국 관계 전문가는 말했다. “한국정부는 그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하고 싶을겁니다”

Borowiec is a special correspondent.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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