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Headline / 세월호와 한국사회

세월호와 한국사회

세월호와 한국사회

정사세

 

세월호 참사와 일 년 후,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던 단원고 2학년생들이 탄 배 세월호가 오전 8시경 사고가 생겼다. 이 사고로 인해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단원고 학생이 대부분인 295명이 참사를 했고 9명이 실종한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7,150km 떨어진 곳에서 일 년 전에 들었다.

이 참사의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배가 인천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그 사고를 대처하는 상황과 구조활동상황은 세월호에 승선해 있는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선원은 8시 55분에 배가 넘어간다는 교신을 제주 VTS에 보내었고 9시에는 승객들에게 구명조끼 입고 퇴선을 준비하라는 안내를 하였다. 9시 13분에 주위에 있던 둘라에이스호는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하겠습니다’라고 세월호 선원에게 계속적으로 발신을 하였다. 그러나 세월호 선원은 진도 VTS에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옆에서 구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혹은 ‘구조가 바로 되겠습니까 ?’라는 단순한 질문만 되풀이하는 교신내용뿐이었다. 이 배에는 비상구조선도 장착이 되어있는 배였지만 선원들이 비상구조선을 띄워서 승객들이 퇴선을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이렇게 큰 참사를 불러왔다는 것이 의심되지만 승객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선원뿐만이 아니었다.

승객 선실 내에서 울려 나는 안내스피커에서는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계속 들린 것이 승객 단원고 학생들이 남긴 동영상에서 나온 증거물들이다. 9시 35분에 도착한 해경의 123정이 9시 46분에 탈출한 선장과 선원을 실었다.

승선해 갇혀있는 단원고의 학생들은 가족, 친지들에게 배가 기운다고 구해달라고 계속해서 카톡 메세지를 보냈다.

이때 9시 19분에 청와대와 국정원은 YTN뉴스 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를 최초로 인지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대한민국의 대형 위기사고에 대한 대처 준비의 수준을 말해준다. 10시에 대통령은 국가안보실로부터 서면보고를 받는다. 10시 22분에 대통령은 안보실장에게 전화로 철저히 구조할 것을 지시하고 10시 30분에 청와대 대변인의 관련 첫 브리핑이 있다. 그 후 10시 47분부터 KBS와 MBC, YTN, 채널 A 등에서 전원구조라는 거짓말들이 줄줄이 공중파를 타고, 구조인원 숫자의 혼란된 정보가 터져나왔다.

그사이 해경에서는 오후 4시 33분에 실제로는 6명 잠수부를 투입하고 160명을 투입했다는 발표를 하였다. 대 국민을 향해 부풀리기 정보를 발표한 것이다. 청해진해운과 중대본에서는 탑승한 인원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477명, 462명, 459명, 475명이라는 부정확한 정보만 남발시켰다. 그리고 계속해서 해경은 투입되지 않은 잠수부 숫자를 부풀려 의도적인 거짓 정보를 계속 남발하는 행위를 하였다.

갇혀있는 아이들의 마지막 카톡 내용은 4월 17일 오후 5시 46분이다.

이 사건을 참사로 몰고 간 것은 선박사고에 대한 대처가 미숙 미흡한 것이 선원, 해경, 중대본, 청와대 상황실, 오보를 계속 흘리는 대중 TV 매체 등 사회 전체가 무능의 민낯을 보여주면서 무고한 어린 생명 304명을 진도 팽목항의 4월 16일 찬 바닷물 속에 생매장시켰다.

이 참사를 뒤집어쓴 부모와 가족들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면서 팽목항으로 달려가 밤과 낮으로 비명과 오열로 몸부림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가족 옆에서 같이 고통을 참아야 했다.

물속에 빠진 아이들은 하나도 구조하지 못하고 그 아이들의 시체를 인양하는 과정에서도 오직 밤이 되어서야만 싸늘한 시체들을 하나씩 둘씩 수면으로 올라오게 된다. 세월호 유족들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이 팽목항에서 몸이 바삭바삭 마르는 안타까움으로 오열의 날들을 보내야 했다. 차디찬 시신이 나오면서 깨끗한 신체로 오직 손톱은 다 파손이 된 자식들의 시체를 인양 받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관료들은 이렇게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절대적인 무능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저지르는 부패와 부정은 한국사람들이 세계에 머리가 제일 좋다는 자화자찬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부패와 부정과 무능의 연속이었다.

관과 언론은 이면도피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피해자 유가족들에게는 협박을 하고 피해자 유가족을 마치 범인 취급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박근혜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는 이미 나빠지기를 계속하는데, 경제가 나쁜 것을 세월호 참사가 한 달로 지나지 않고 유가족 탓으로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온갖 악성루머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에게 전가되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피해자와 약자를 보살피는 사회가 아닌 잔인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약자와 피해자를 학대하는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왜 세월호가 침몰하고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9명의 승객은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에 갇혀있기에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통해, 그 배에 남아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족 품에 돌려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아이를 잃은 어느 부모도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주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정치계와 대통령은 이것을 거부하고 있다.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정부와 대통령에게 애걸을 하고 국회에 이 참사를 조사하고 기소하고 책임자를 밝혀서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특별법을 요구하였다. 정부와 대통령과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이것을 거부하고 또 거부하였다.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쪽에서 죽음을 각오한 단식농성을 시작하였다. 이 단식농성을 통해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동조농성이 이어졌다. 유민아빠의 46일간의 단식농성은 부모로서 가슴 아파하고 대한민국사회의 삐뚤어진 현실, 잔인한 경제논리에 쪄든, 생명을 무시하고 행복을 돈으로 매매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는 시민들의 행렬을 이루게 하였다. 자식을 잃은 사람들과 같이 가슴 아파하는 부모들은 광화문광장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내 자식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해 주고 싶어한다.

700만 명이 서명을 해서 요구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을 거부하는 정부는 애절한 유족들의 요구를 위헌이라 겁박하였고, 어렵고 힘들게 조사권만 갖는 특별법을 2014년 11월 말에 입법화시킬 수가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국정운영을 총괄하는 대통령은 악어의 눈물을 보일지언정 유가족을 만나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세월호의 참사를 밝히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고 있다. 아니 성역없는 진상규명을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은 이번 대통령령으로 발표한 시행령이다. 이 시행령은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할 기관과 공무원이 특별조사위원회의 제반업무를 장악하는 것이다. 진상규명이 아닌 진상은폐를 가능하게 하는 시행령을 대통령안으로 내놓았다. 이것이 2015년 4월의 대한민국 민낯이다.

2015년 4월을 서울서 보내면서 대한민국이 약자를 배려하고 희생자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나라가 되는 날이 아직 너무 먼 꿈같은 미래인 것을 목격하는 날들이 되었다. 그러나 기득권자와 그들의 바람잡이들의 잔치놀이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부정부패와 권력자들의 범법행위는 눈감아주는 세상인 것을 목격한 것이다. 이름없는 시민의 보행을 막는 경찰차벽의 위대한 경찰국가의 위력을 목격한 것이다.

정부시행령 폐기하라 ! 세월호를 인양하라 !

소셜 댓글
뉴스프로 후원하기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x

Check Also

사진으로 보는 해외동포들의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사진으로 보는 해외동포들의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편집부 3월 1일과 2일 해외 곳곳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만세삼창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