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Headline / 블룸버그,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심층” 인터뷰

블룸버그,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심층” 인터뷰

블룸버그,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심층” 인터뷰

– 정부의 진상조사 기피와 은폐 때문에 가족들 진실 규명에 나서

– 끝까지 진실 밝히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것

미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는 6일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는 비단 학생들뿐만은 아니나,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면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는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은 4.16 참사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으며, 이 때문에 그들의 평범한 엄마, 아빠들은 원치 않는 싸움꾼이 됐다고 전했다.

기사는 이러한 이유로 부모들은 정부가 진상조사를 꺼리자 세월호 진실 규명에 직접 나서게 됐고 세월호 문제를 두고 생긴 정치적 파장에 던져질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철저한 진실 규명을 약속했던 박 대통령이 세월호에 대해 무관심으로 돌변하자, 그들은 정부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두려움과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그러나 두려움은 가족들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진상 규명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한층 강화시켰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집회와 시위 장소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함께 행동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큰 위안을 얻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이 생업을 위해 떠나고 세월호가 세간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져간다는 생각이 들 때는 두려움도 느낀다는 그들의 솔직한 심정도 덧붙였다.

기사는 부모들은 여전히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하며, 그것이 이들의 “계속되는 싸움”의 목표이자,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1인 시위를 해서라도 아직 바닷속에 있는 딸의 시신을 찾으려 하는 한 실종자 부모의 애통한 마음과 포기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굳은 의지도 함께 전했다.

블룸버그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잃었으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한 가족의 결심을 전하고, 아이들을 잊고 새 출발을 해야 하는지, 그러한 결정이 진상 규명에 대한 책임을 남은 가족들에게 떠안기는 것은 아닌지, 서두에서 언급한 유가족들의 딜레마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마무리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블룸버그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loom.bg/1ah2R0z

Parents of Children Lost on Sunken Ferry Still Seek Truth

침몰한 세월호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아직 진실을 찾고 있다

www_bloomberg_com_20150410_074906

www_bloomberg_com_20150410_074951

Jang Sun Bok holds a photo of her son, Jun Woo, who died on the Sewol ferry last year for a photograph at her home in Ansan, South Korea, on Friday, March 6, 2015. Photographer: Heesu Lee/Bloomberg

지난해 세월호에서 사망한 아들 준우의 사진을 든 채로 2015년 3월 6일, 금요일 안산시 자택에서 장순복씨.

by Cynthia Kim Heesu Lee, 4:00 PM EDT April 6, 2015

The photo of Jang Sun Bok’s son resembles so many others taken by high school students on the Sewol ferry as it sank last year: A boy wearing a life jacket, smiling and flashing a V-sign in the cabin of the listing ship.

장순복씨 아들의 사진은 지난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찍힌 다른 많은 사진과 흡사하다: 기울어지는 선체의 객실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미소 지으며 V자를 흔들어 보여주는 소년의 모습.

The photos are displayed by the memorial near Danwon High School south of Seoul, and on message boards in the capital. Many of the faces don’t look scared; survivors have said they assumed help was on its way and, told by the captain to wait in their cabins, they captured the moment on their smartphones.

이 사진들은 서울 남쪽에 위치한 단원 고등학교 근처 분향소에 그리고 수도 서울에 있는 메시지 보드에도 진열되어 있다. 거기에 보이는 많은 얼굴들은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다; 이들은 구조대가 도착한다고 믿었고, 선장으로부터 객실에서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고서는 그 순간들을 스마트 폰에 담았다고 생존자들이 말했다.

Jang sees something more in the image of her son Jun Woo, then 17 years old and one of 250 students who died on their school trip to the resort island of Jeju. She’s sure he took it to remind her of what he said before he left: if anything happens, accept it and believe it was supposed to be.

장 씨는, 제주도 수학여행 중 목숨을 잃은 250명 중 하나였던 당시 17세의 아들 준우의 모습에서 그 이상의 것을 본다. 그녀는 아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엄마에게 상기시켜주기 위해 그 사진을 찍었다고 믿는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를 받아들이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믿으라는.

“It’s the first time I’ve ever seen him smile for the camera,” she said in an interview last month at her family’s home in Ansan, not far from Jun Woo’s school. “I think he took this for us as a message. This photo is what keeps me living.”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그녀는 준우의 학교에서 멀지 않은 안산시의 자택에서 인터뷰 중 말했다. “그 아이가 우리를 위해 이 사진을 찍었다고 믿는다. 이 사진이 나를 지탱시켜 준다.”

Nearly a year after the sinking, families of the Sewol victims still face the dilemma that Jun Woo sought to settle for his mother: whether to move on and try to rebuild their lives, a choice many feel means letting go of their children when pain is a link to their memories. It also means leaving to other families the struggle to find out what really happened.

세월호 침몰로부터 거의 1년이 흐른 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준우가 엄마를 위해 해결해 주려 했던 딜레마에 여전히 직면해 있다: 이제 자신들의 인생을 새로이 시작하려 할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하는 것이 많은 이들에겐 떠올리면 가슴 아프기에 아이들을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싸움을 다른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것으로도 이들에게 여겨진다.

That burden is what Jang’s husband Lee Su Ha calls the “secondary damage” inflicted on the Sewol families. It’s most acute for the parents of the lost students, because while it wasn’t just the teenagers who lost their lives that day, the images of them waiting for an evacuation order that never came literally made them the faces of the April 16 disaster.

이 부담이 바로 장 씨의 남편인 이수하씨가 세월호 가족에게 가해진 “2차 손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사망한 학생들의 부모에게 가장 심하다, 왜냐하면 그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십대들만은 아니었지만, 결코 오지 않았던 대피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이 학생들의 모습은 4월 16일 참사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Political Fallout

정치적 파장

Their parents were thrust into the political fallout, with almost every issue divisive; whom to blame for the botched rescue operation; the debate on lifting the ferry and when to do it; compensation and who should pay it; and whether the official investigation panel, which includes some members nominated by the families, should be given power of prosecution.

실패한 구조작업의 책임 소재, 세월호 인양과 시기에 대한 논쟁, 보상금과 보상금의 지불 주체 및 유가족들이 추천한 위원들을 포함한 공식적인 조사위원회에 기소권을 부여할지 등 거의 모든 문제가 논쟁을 일으키며 희생자 부모들은 정치적 파장 속으로 던져졌다.

The struggles have only prolonged the agony.

싸움은 고통을 연장시켰을 뿐이다.

“There are people who are trying to make us into fighters, but that’s asking us to give up the rest of our lives and stay miserable,” Lee said. “The families have already done enough to make the issues known.”

“우리를 싸움꾼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 씨는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나머지 삶을 포기하고 비참하게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 가족들은 이 문제가 알려지도록 충분히 노력했다.”

Lee and Jang felt it even before their son’s body was found on May 3, more than two weeks after the sinking. They kept Jun Woo’s corpse in a temporary morgue, and stayed with the other families at the base for the search effort in Jindo out of a sense of solidarity. Two days later, their own relatives demanded they bring him home for a funeral.

이 씨와 장 씨는 침몰 2주 이상이 지난 5월 3일에 아들의 시신을 찾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유대감에서 이들 부부는 시신 임시 안치소에 준우의 시신을 안치한 채, 진도에서의 수색 노력을 위해 다른 가족들과 함께 머물렀다. 이틀 후에 친척들이 장례식을 위해 집으로 준우를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Looking back, the couple said they don’t find it strange that at the moment their son’s body was found, they were concerned about their duty to the other families. It was a sign of how deeply the families were already feeling let down by the government, first over the inadequacy of the emergency response and later over the stalling of an official investigation.

당시를 회상하며 부부는 아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그 순간에 다른 가족들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생각한 것이 이상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긴급사태에 대한 대응의 부적절함에 대해 그리고 후에는 공식적인 조사의 지체에 대해 가족들이 정부에 대해 이미 얼마나 깊이 실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Nervous’

‘불안해지다’

“It was when people were getting nervous because family members one after another were leaving Jindo as they recovered their kids,” Lee said. “Though it probably wasn’t feasible, all of us should have delayed the funerals until the truth was clear, it could have been a tool to pressure the government.”

“아이를 찾은 유가족들이 하나둘씩 진도를 떠날 때 사람들은 불안해졌다”고 이 씨가 말했다. “실현 가능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진실이 명확해질 때까지 장례식을 미루어야 했다. 그것이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을 수 있다.”

Faced with a lack of information and the perception that political squabbles were preventing a probe, the parents’ mistrust of the government began early and only increased.

정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정치적 싸움이 조사를 방해하고만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며 부모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일찌감치 시작되었고 커져만 갔다.

Many laid the blame for that on the way President Park Geun Hye seemed to move on from Sewol issues once her ruling Saenuri party held its ground in local elections in June. She made no mention of the ferry in her speech at the National Assembly in October, even with politicians still haggling over the conditions for an official probe.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새누리당이 6월 지방 선거에서도 흔들리지 않자 세월호 문제들을 이미 잊어버린 듯 행동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했다. 정치인들이 공식적인 조사를 위한 조건들을 두고 여전히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10월 국회연설에서 세월호에 대한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Heightened Fears

가중된 두려움

Park’s silence heightened fears among the families that a cover-up was under way. In the absence of an official version of events, alternative narratives including conspiracy theories, filled the void. One was that the country’s spy agency was involved in operating the vessel, and another that the ferry was sunk deliberately.

박 대통령의 침묵은, 은폐가 진행되고 있을 거라는 두려움을 가족들 사이에 가중시켰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가 없는 틈새를 음모론 등을 포함한 다른 이야기들이 채웠다. 하나는 국가정보원이 세월호 운영에 관여됐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세월호가 고의적으로 침몰당했다는 것이었다.

To keep up the pressure on the government, the parents formed a support group. Each day, they share information about marches or other protest events. The parents published a book called ‘Please, Come Back on Friday’ that gives their accounts of the sinking and memories of their children.

정부에 대한 압력 행사를 지속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가족 대책 협의회를 결성했다. 그들은 도보 행진이나 다른 집회 행사들에 대한 정보를 매일 공유한다. 부모들은 침몰 사고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와 자식들에 대한 기억을 수록한 ‘제발,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Lee Woo Geun has put his life on hold in memory of his son Jung In. A single parent since losing his wife 15 years ago, Lee told his daughter Yoon Ah she can have his full attention after he’s protested for as long as three years.

이우근씨는 아들 정인을 기리며 그의 삶을 잠시 보류했다. 15년 전 아내와 사별 후 혼자 자식을 키워온 이 씨는 딸 윤아에게, 3년 동안 시위를 하고 그 후에는 자신의 모든 관심을 딸에게 쏟겠다고 말했다.

Picketing is a form of penance as well as protest, he said.
피켓 시위는 저항이자 참회라고 그는 말했다.

“I was at work in a meeting when my son called from the ship, so I told him to follow instructions from his teacher and hung up,” Lee said. “He said ’Dad I love you,’ and that was it. I never knew that that would be the last moment with him.”

“아들이 배에서 전화했을 때 나는 회사에서 회의 중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이 씨는 말했다. “아들은 ‘아빠, 사랑해’ 라고 말했고,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것이 아들과의 마지막 순간이 되리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다”

Avoiding People

사람을 피하기

Lee tries to avoid meeting people he knew before April 16, including his mother, because it reminds him of his son. Only his daughter has prevented him from committing suicide. Protesting also provides a sense of purpose that no longer exists in his old life, he said.

이 씨는 아들의 기억을 떠올려주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4월 16일 이전에 그가 알던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 딸 때문에 스스로의 목숨을 끊지 못했다. 시위하는 것은 또한 그의 지난 삶에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목적의식을 자신에게 주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Being here and spending time with people removes my trauma,” he said. “It’s true that when everything is over, I will have to go back to my normal life. For now, it’s hard to move on.”

“이곳에 있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의 정신적 충격을 없애준다”고 그는 말했다. “모든 것이 끝나면 나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다 잊고 새 출발을 하기는 힘들다.”

Lee Jong Chul tells a similar story at the parents’ tented protest site near the government complex, where he’s been sleeping amid the traffic noise of one of the city’s busiest roads since July and washing every day in the nearby subway station. Despite developing hearing problems and partially losing his eye sight, he said he finds comfort in the protest.

이종철씨는, 지난 7월 이후로 이 도시에서 가장 혼잡한 도로 중 하나로부터 들리는 교통 소음 속에서 잠을 자고, 날마다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씻는 생활을 해오는 곳인 정부 청사 근처 부모들의 천막 농성장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난청이 생기고 시각을 부분적으로 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위 속에서 위안을 찾는다고 말한다.

Seeking the Cause

원인 규명

“We can’t just sit around and wait for the government to work things out for us,” said Lee, 46, whose son Min Woo died along with 31 other classmates and his teacher. Only one student survived from the class. “We need to figure out the cause and to make sure we know who ordered what, and ultimately punish those responsible.”

“가만히 앉아서 정부가 우리를 위해 일을 해결해주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고 아들인 민우가 담임교사와 31명의 반 친구들과 함께 사망한 이 씨(46)는 말했다. 그 반에서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우리는 원인을 밝혀야 하고 누가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책임 있는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The protest site has become a community of sorts, where parents exchange information and the latest newspaper reports. On what would have been Lee’s son’s birthday in December, they celebrated with cake.

시위 장소는 일종의 공동체가 되어 부모들은 그곳에서 정보와 최근 신문 기사를 주고받는다. 12월 이 씨의 아들 민우의 생일이었을 때 그들은 케이크로 축하해 주었다.

But their numbers are dwindling as monotony and pressure to return to jobs and remaining family take their toll. Of about 30 Sewol family members when Lee came in July, only one other parent remains and the site is maintained by volunteers.

그러나 단조로움, 그리고 일터와 남은 가족들에게로 돌아가야 할 압박이 이들을 힘겹게 함에 따라 그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씨가 7월에 왔을 때는 30여 가족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한 부모만이 남아 있고 그 장소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There are fewer hunger strikes and other events, and Lee thinks the issues are slowly being forgotten. What keeps him going is a sense that justice hasn’t been served, and that not enough has been learned to prevent a recurrence of the disaster.

단식 투쟁과 다른 행사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이 씨는 세월호 문제가 서서히 잊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지탱시키는 것은 정의가 아직 구현되지 않았으며, 세월호 참사의 재발방지를 위한 충분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Fighting On

계속되는 투쟁

“As a parent, you want to do everything for your kid and that’s why families are still able to fight for this,” he said. “Our kids have gone and for us parents, we can go with them, but at least we need to know why it happened.”

“부모로서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하기를 원할 것이고, 그것은 가족들이 이를 위해 여전히 싸울 수 있는 이유이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떠났고, 부모로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갈 수 있으나, 적어도 우리는 왜 이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한다.”

For Lee and the other parents maintaining their protest, much will depend on the findings of the official investigation, which began only in March and has the option to run for as long as 18 months.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이 씨와 다른 부모들에 있어, 3월에 막 시작되었고 최장 18개월까지 지속될 수 있는 공식 조사에서 무엇이 발견되는지에 많은 것이 좌우될 것이다.

Trials involving crew and coast guard members have focused only on direct causes of the accident, concluding that the Sewol sank from making a steep turn, which dislodged cargo on an overloaded ship made unstable by expansion work.

선원과 해경이 받은 재판은 단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에만 초점을 두었고, 확장공사로 불안정하게 된 배에 과적했으며 급격한 변침으로 화물이 떨어져 나오며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The government also hasn’t decided whether to salvage the Sewol, an estimated $111 million job demanded by the families for the probe and to complete the search for bodies. Park broke her silence on the issue yesterday, telling secretaries she’ll consider both expert and public opinion on raising the vessel.

정부는 또한 약 1억1,100만 달러가 소요되는 세월호 인양의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으며, 가족들은 조사와 실종자 수색을 끝내기 위해서 이를 요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어제 이 문제에 대한 침묵을 깨고, 세월호 인양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과 여론을 고려할 것이라고 비서관들에게 말했다.

The final death toll of 304 includes nine people still officially classified as missing, among them a father and six-year-old son on their way to Jeju to chase a dream of running a tangerine farm. The mother’s body was recovered; their five-year-old daughter survived.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실종된 9명을 포함하여 최종 사망자 수는 304명이며, 실종자 중에는 감귤농장을 운영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제주로 가던 아버지와 6살된 아들이 포함되어 있다. 어머니의 시신은 발견됐고 5살 된 딸은 살아남았다.

Not Found

실종된 채로

Park Eun Mi’s daughter Da Yun is one of the missing. Despite suffering from a nerve disease that’s taking her hearing, Park stands outside the presidential Blue House to demand the raising of the Sewol. She has no plan to give up.

박은미씨의 딸 다윤은 실종자 중의 한 명이다. 청각을 상실케 한 신경병으로 투병 중이지만 박 씨는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며 청와대 밖에 서 있다. 그녀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I would like to ask the President to keep her promise, to do everything in her power to find them,” she said. “We are somebody’s mother, somebody’s father, we’re the families of those who are missing and there’s absolutely nothing we can do until their bodies are found.”

“아이들을 찾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며,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들이고, 실종자들의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At their home near the school, Jun Woo’s parents made a different choice. Not because they’re any less angry with the government or politicians who delayed the probe, but because they don’t want to give up more of their lives to the tragedy.

학교 근처의 자택에서 준우의 부모는 다른 선택을 했다. 조사를 지연시키는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덜 화났기 때문이 아니고, 그들은 참사로 인해서 자신들의 삶을 더 이상 포기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And because their son told them to move on.

그리고 아들이 그들에게 새 삶을 시작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So Jun Woo’s father started a small business that allows him to work from home, and the couple bought a dog, Kongyi, who’s become the project of their second son, Tae Jun. They decided to give financial support to two children via charities, one overseas and one in South Korea.

그래서 준우의 아버지는 집에서 일 할 수 있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고, 부부는 ‘공이’라는 개를 샀고, 그 개는 둘째 아들 태준의 일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한 명은 해외, 한 명은 한국에 있는 아이 두 명에게 자선단체를 통해서 재정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It’s understandable for those still in grief, they’ve lost a child,” Lee said. “But they have a very difficult life ahead of them if they don’t let go. They will continue to suffer. How miserable is that?”

“여전히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아이를 잃었다”고 이 씨는 말했다. “그러나 떠나보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앞으로 아주 힘든 삶을 살 것이다. 그들은 계속 고통받을 것이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소셜 댓글
뉴스프로 후원하기

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