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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외교마저 정신 못 차리나?

[논평] 외교마저 정신 못 차리나?
– 윤병세 외교장관의 안이한 인식 유감

Wycliff Luk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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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에서 캡쳐한 윤병세 사진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통해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될 수 없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30일(월) 열린 재외공관 회의 개회사에서 한 발언이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도입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서 신경전을 벌인 일을 염두에 둔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심하다. 사드가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의 주요 변수라면 AIIB는 부상하는 중국의 경제패권을 드러내 주는 상징적인 움직임이다. 묘하게도 미·중 양국의 실무급 책임자가 비슷한 시기 한국을 찾아 각자의 이해를 관철하려 했다. 문제는 미·중 양국의 이해각축에서 한국 정부의 존재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먼저 중국으로선 사드 배치 논의가 불편하기 그지없다. 명분은 북한의 안보위협이지만, 사드가 실제로 배치될 경우 중국마저 사정권에 들어갈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어서다. 이 경우 한-미-일과 북-중-러 3각 동맹 사이의 대결구도가 구축될 가능성도 높다. 이에 지난 3월  15일(일) 방한한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 조리는 드러내놓고 사드 배치에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미국으로선 중국의 경제패권이 여러모로 경계대상이다. 특히 중국이 꺼내 든 AIIB 카드는 미국 중심의 세계 금융질서에 내민 도전장이나 다름없다. 이와 관련, 미국 유력신문인 <뉴욕타임스>는 3월 19일(목) “(AIIB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금융질서,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의 ‘축’을 아시아에 두겠다고 약속한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시각에 따라서는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적극 구애를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존재감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런 시각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낙관적이다.

사드 이슈를 먼저 꺼내 든 장본인은 정부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몇몇 의원들이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의 피습 사태 직후 새누리당 의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사드를 끄집어낸 것이다. 사드 배치가 중국의 심기를 자극할 민감한 주제임을 고려해 본다면, 정부 여당 의원들의 이런 움직임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경솔했다. 백 보 양보해 일부 의원의 일탈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적극 진화에 나서서 중국을 안심시켰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총대는 국방부가 메고 나섰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7일(화) “만일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관해 미국 정부가 결정해서 협의를 요청해올 경우 군사적 효용성, 국가 안보이익을 고려해 우리 주도로 판단하고 결정할 계획”이라며 중국에 불만을 표시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외교 채널을 통해 우려를 표시한 사안에 대해 국방부가 나서서 한국 정부 입장을 대변한 모양새여서 이 같은 입장 표명이 적절한 것인지도 실은 논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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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3월 22일자 만평 – 중간에 끼인 한국

외교마저 해바라기 처신 일관

AIIB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더더욱 의아스럽다. 중국은 AIIB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유했고,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 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중국의 권유를 받아들이자니 미국 눈치를 봐야 했고, 거절하자니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 AIIB 가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가입 결정이 마치 야반도주하듯 이뤄졌고, 이에 대해 미국의 입김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하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러브콜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윤병세 외교장관은 그렇게 보고 있다. 윤 장관은 앞서 언급했던 재외공관장 회의 개회사에서 “최적의 절묘한 시점에 AIIB 가입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익을 극대화한 것은 물론 모든 이해관계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깥의 시선은 다르다.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은 3월 24일(화) “(한국 정부가) AIIB 가입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이 직면한 어려움을 반영한다. 현 박근혜 정권이 유지하고 있는 끈끈한 대중 관계는 미국과의 외교 동맹과 양립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한국의 총수출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근혜 정권은 임기 3년 내내 무능으로 일관했다. 이 와중에 외교부는 비교적 말썽 없이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윤 장관의 이번 발언은 외교부라고 해서 현 정권의 무능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여실히 폭로했다. 더구나 윤 장관의 이번 발언이 박근혜의 의중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제기됐다.

3월 31일(화) <JTBC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가 청와대 특보단·참모들과 첫 합동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언론 등에서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 꼈다고 큰일 났네 하는데 너무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면서 윤 장관과 박근혜 사이에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적 민감성으로 인해 주변 강대국이 벌이는 이해다툼의 희생양이 되기 일쑤였다. 이런 한반도의 운명은 21세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한반도는 자칫 잘못하다간 이 둘의 패권 싸움에 휘말릴 위험이 크다. 그렇기에 외교를 책임지는 수장이 이 같은 흐름을 냉철히 인식하기보다 권력자의 심기를 먼저 헤아린 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국내 정치는 해바라기식 처신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외교 무대에선 어림도 없다. 박근혜 정권 3년 차, 나라 기강이 거의 해체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외교마저 무능을 드러내니 이 나라의 운명이 우려스럽다. 후세 역사가들이 2015년 이 나라의 역사를 복기하면서 고위 공직자들의 권력자 눈치 보기로 인해 국정은 혼란을 거듭했고 결국 국권마저 상실했다고 적을까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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