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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ign Policy, ‘침몰하는 박근혜 정권’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부를 비판

Foreign Policy, ‘침몰하는 박근혜 정권’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부를 비판
-한국인들이 세월호 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세월호 침몰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신뢰의 침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세월호 침몰에 대해선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으면서도 이 정권에 대한 책임의 화살을 피해가는 데에는 민첩했다. 처음엔 유병언을, 그리고 세월호에서 탈출한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희생양 삼았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선 경찰병력을 동원해 감시를 집중시켰다.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는 박근혜 정권이 보여주는 난맥상을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포린 폴리시의 비판 논조는 무척 예리하다. “이 비극 이후 대중과 정부의 행동들은 이 나라의 가장 기본적 기관들의 실패를 무마하려는 시도들”이라거나 “정부의 행동들은 세월호 사건이 불러운 근본적 불안감을 강화시켰다”고 꼬집은 대목이 특히 그렇다.

“비극 이후 반년이 지났음에도 한국 국민들은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포린 폴리시의 지적, 이 정권과 정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언론들이 한사코 듣기 싫어하는 지적이기도 하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Foreign Policy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Eliz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atfp.co/1vSDwmw

 

A Government, Sinking
Why South Koreans can’t get over the Sewol ferry disaster.

침몰하는 정부
왜 한국인들은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지 못하는가

• BY S. NATHAN PARK
• NOVEMBE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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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pril 16, the Sewol ferry sank off the southern coast of South Korea, killing more than 300 people, most of them teenagers. Nearly seven months later, the court convicted the ship’s captain, Lee Joon-seok, of gross negligence, and sentenced him 36 years in prison. Prosecutors initially charged Lee with homicide and demanded the death penalty for the man they said was responsible for one of the worst maritime catastrophes in South Korean history. Yet the lesser charge was itself harsh: The 69-year-old Lee will almost certainly spend the rest of his life behind bars. As the ferry began taking on water, Lee fled the ship while many passengers and junior crew members remained inside to perish.

4월 16일, 한국 서해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며 대부분이 10대인 300여 명이 사망했다. 거의 7개월이 지난 후, 법원은 이 배의 선장인 이준석씨를 유기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애초 검찰은 한국 역사상 최악의 해양 참사 중 하나에 책임이 있다며 이 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사형을 구형한 바 있다. 하지만 적어진 형량 자체도 가혹하다: 69세의 이 씨는 여생을 감옥 안에서 보낼 것이 거의 확실하다.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을 때, 많은 승객들과 후배 승무원들이 안에서 죽어가는 동안 이씨는 배에서 탈출했다.

As horrific as the disaster was, the judgment seems severe for a man whose crime was negligence, not murderous intent. But the severity of the punishment echoes a national trend: South Koreans are still desperately searching for ways to ameliorate the trauma of Sewol. To Koreans, the disaster represented a breach of trust; authorities at all levels, from the ferry operators to the central government, failed in their duties to safeguard citizens. For a country that is now comfortably ensconced in the developed world — its GDP per capita is nearly $26,000, considerably higher than that of Portugal — the sinking called into question the very building blocks of Korea’s progress. And in the wake of the tragedy, the actions of both the public and the government — the late-April resignation of Prime Minister Chung Hong-won, ongoing demonstrations in the capital of Seoul, the shuttering and reorganization of the country’s Coast Guard, and, finally, the severe punishment of the perpetrators — are attempts to reconcile the failures of the country’s most basic institutions.

참사 만큼이나 끔찍하게도, 고의적 살인이 아닌 유기치사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내려진 판결은 가혹해 보인다. 하지만 이 형벌의 가혹성은 국가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회복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이 참사는 신뢰의 파기를 상징했다; 여객선 운영자들부터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의 당국자들은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 일인당 국민소득(국내총생산)이 포르투갈보다 훨씬 높은 2만6000달러로, 이제 선진국에 여유 있게 진입해 있는 나라에게, 이번 침몰은 한국발전을 쌓아 올린 요소야말로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비극 이후에, 대중과 정부의 행동들–4월말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임, 수도 서울에서 계속되는 시위, 해경의 해체와 재조직,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이 나라의 가장 기본적 기관들의 실패를 무마하려는 시도들이다.

These failures began almost immediately. Approximately 30 minutes after the ferry began to sink, a Vessel Traffic Service (VTS) center, which provides monitoring and advice to vessels, ordered the captain to put life vests on the passengers, deploy all emergency floats, and evacuate the ship. The crew, however, did none of this. The captain told the VTS that the ship’s public address (PA) system did not work, which was not true. All the while, the PA system was functional, and it was being used to convey the worst possible message to passengers: stay put. When rescue boats arrived, Lee, wearing only his underwear, and the senior crew escaped first, leaving behind the junior crew and hundreds of passengers.

이러한 실패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시작됐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지 약 30분 후에, 선박을 감시하고 조언해주는 해상교통관제(VTS) 센터는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모든 비상용 부낭을 배치하고, 여객선에서 탈출시키라고 선장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이 중 하나도 행하지 않았다. 선장은 선내 방송설비가 고장이라고 VTS에 말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항해하는 동안 내내, 방송설비는 정상작동 중이었으며, 가만히 있으라는 승객들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방송설비는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구조정이 도착하자, 하급직 승무원들과 수백 명의 승객들을 뒤에 남긴 채, 속옷만 입고 있던 이 선장과 상급 승무원들이 먼저 탈출했다.

The rescue effort itself was perilously disorganized. The VTS had done little to inform South Korea’s Coast Guard about the scene — as a result, the first responders only included two helicopters and two boats, with no rescue divers. In an interview following the disaster, the first responders said they were confused about why there were no people in the water — because they had assumed that the ship was already evacuated. Unaware that nearly all the passengers were still inside the ship, the rescue team never attempted to enter to save those who were trapped inside.

구조작업 자체도 위험할 정도로 체계가 없었다. VTS는 한국 해경에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최초로 도착한 것은 구조 다이버들도 없이 두 대의 헬기와 두 대의 보트가 전부였다. 참사 이후 인터뷰에서 최초 출동한 대원들은 물 위에 왜 사람이 하나도 없는지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들은 승객들이 배에서 이미 탈출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승객들이 아직도 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구조대원들은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 진입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Following the accident, the media was equally inept. The Internet age came to South Korea earlier than almost any other country, and domestic outlets there have mastered the art of click-bait sensationalism. Newsis, an online newspaper, infiltrated Danwon, a high school in the outskirts of Seoul where the teenage victims had attended school, and took a staged photo of a dead student just hours after the ship sank. Respected TV stations like SBS and JTBC harassed the just-rescued survivors for interviews. (A reporter from SBS attempted to interview a 5-year-old girl whose family perished in the ship.) On a live television broadcast from the port where the surviving passengers gathered immediately after the rescue, a reporter from JTBC asked a surviving student, “Are you aware that your friends died?” The teenager started crying.

사고 이후 언론 역시 부적절했다. 한국에서 인터넷 시대는 거의 모든 다른 나라보다도 일찍 시작되었고, 국내 언론들은 인터넷상에서 낚시성 기사로 클릭을 유도하는 선정주의 기술에 능통해있다. 온라인 신문인 뉴시스는, 희생된 10대 청소년들이 다녔던 서울 외곽에 있는 단원고등학교에 잠입해 선박이 침몰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한 희생자 학생의 연출사진을 찍었다. 막 구출된 생존자들이 SBS와 JTBC같은 공신력 있는 TV방송국의 인터뷰 시도에 시달렸다. (SBS 의 한 리포터는 가족이 배 안에서 사망한 5살 여자아이를 인터뷰하려 시도했다.) 생존자들이 구조 직후 모여있던 항구에서 진행된 TV생방송에서, JTBC의 한 리포터는 생존학생에게 “친구들이 죽었다는 걸 아느냐?”고 물었고 그 학생은 울기 시작했다.

In the months following the disaster, the administration of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attempted to allay the public indignation. Park made a public apology, accepted the resignation of the prime minister, and vowed to reform the Coast Guard. Yet the administration also tried to deflect blame away from the government. After the sinking, Park placed responsibility for the casualty numbers squarely at the feet of the ferry operators, saying the actions of the captain and crew were “akin to murder.” (Government prosecutors also charged the chief executive officer of the company, Kim Han-sik, with manslaughter; they are seeking 15 years in prison.)

참사 이후 수개월에 걸쳐, 한국 박근혜정부는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시도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국무총리의 사임을 받아들였으며 해경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또한 정부가 받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 시도했다. 침몰사고 이후, 박근혜는, 선장과 선원들의 행위를 “살인과 다름없는” 것이라 말하며, 참사의 책임을 단호하게 선박운영자들에게 돌렸다. (검찰 또한 회사 최고 경영자인 김한식을 살인혐의로 기소했고;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More troublingly, the government responded defensively to public frustration, planting plainclothes police around the victims’ families to monitor any signs of agitation. It ordered the state-owned network television station KBS to avoid criticizing the Coast Guard and the rescue effort. The administration also announced that it would actively monitor the Internet and mobile chat apps to apprehend those spreading “false rumors”: So far, the administration has indicted 174 people for spreading erroneous rumors online. School boards instructed teachers and students to stay mum on the tragedy — even though the loss of hundreds of high school students resonated with many Korean teenagers. A public school teacher in the large city of Daegu was censured when he disobeyed the directive and criticized the president on his Facebook page.

더욱더 지독하게도 정부는 동요의 징후를 감시하기 위해 희생자 가족들 주변에 사복경찰을 배치함으로써 대중의 불만에 방어적으로 대응했다. 정부는 국영TV방송 KBS 에 해양경찰과 구조노력에 대한 비판을 삼가라고 지시했다. 또한 정부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과 모바일 채팅 앱들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허위사실을 온라인상에 퍼트린 혐의로 174명을 기소하였다. 비록 수백 명의 고등학생의 죽음이 많은 십대 청소년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이 비극에 대하여 침묵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대구 광역시 내의 한 공립교사는 그 지시에 불복종하고 페이스북에 대통령을 비판하자 조사를 받았다.

In the Park administration’s response, the public sensed echoes of the same message that the Sewol crew imparted to its passengers: stay put. Don’t cause trouble, the administration seemed to be saying, so that we may be the first to escape from this mess.

박근혜정부의 대응에 대해, 대중은 세월호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전했던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와 같은 뜻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정부는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말라고 말하면서, 이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이 제일 먼저 탈출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To be sure, South Korean democracy is not about to slip into the dark days of authoritarian rule — when dictators like Park’s father, Park Chung-hee, who ruled from 1961 to 1979, arrested, tortured, and murdered those perceived to oppose the government. Korean democracy remains vibrant –elections are free and fair and the right to free speech remains a hallmark of the country’s political culture. But the government’s actions reinforced the fundamental anxiety that the ferry accident engendered: Having enjoyed decades of vibrant democracy, the Korean public thought the country was beyond this.

확실히 한국의 민주주의는, 1961년부터 1979년까지 통치하며 정부에 반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살해한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같은 독재자가 다스리는 독재통치의 암흑시대로 당장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그 국가의 정치적 문화의 특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정부의 행동들은 세월호 사건이 불러온 근본적인 불안감을 강화시켰다: 수십년간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향유해온 한국 대중들은 한국이 이정도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Three months after the sinking, families of the Sewol victims set up a protest site in Gwanghwamun Square in central Seoul, and began demanding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into the numerous governmental failures that led to the disaster. By the end of the summer, thousands had joined demonstrations in Seoul, with some two dozen other protest sites set up across the rest of South Korea.

침몰 3개월 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서울의 중심에 있는 광화문광장에 시위 장소를 설치했고 참사를 유발한 정부의 수많은 실패에 대해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수천 명이 서울에서 시위에 합세했고 약20여 개의 다른 시위장소들이 한국의 전역에 설치되었다.

More than half a year after the tragedy, Korean citizens remain aggrieved. Support for the Park administration, which stood at over 60 percent shortly before the accident, dipped to 45 percent, where it remains. In mid-November, lawmakers finally passed legislation appointing a special prosecutor to investigate the tragedy, yet public discontent is still strong, and protests in Gwanghwamun Square continue. In many of the demonstrations, the protesters marched silently, holding up signs with a simple message: stay put.

비극 이후 반 년 이상이 지났는데, 한국 국민들은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다.
사고 직전에 60%를 넘었던 박근혜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45%로 떨어져 그대로 남아있다. 11월 중순 국회의원들은 드디어 참사를 조사할 특별검사를 지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대중의 불만은 아직도 강하고, 광화문광장에서의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시위들에서, 시위자들은 ‘가만이 있으라’는 간단한 메시지의 사인을 들고 침묵행진을 했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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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귀하고 소중한 뉴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 한국의 민주적인 언론상황이 회복되도록 노력하는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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