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용병 – (2) 죽음의 사도들 Novios de Muerte
S. Macho CHO
거의 다 타버린 담배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며 한 손에 든 낡은 사진 한 장과 오가는 남자들의 얼굴을 뱀 같은 실눈으로 두리번거리며 비교하는 우람한 한 사내가 보인다. 그는 카나리아제도Canary Islands의 공항출입국장 구석 기둥에 기대고 서 있다. 쉴 새 없이 나가고 들어오는 화려한 옷의 관광객들 사이로 작별인사도 없이 사라진 동료를 찾고 있는 그는 카나리아 제도에 주둔중인 스페인 외인부대 헌병대 고참수사관 ‘미친 악마Malo loco’다.
미친 악마. 양쪽 팔목과 어깨에 ‘죽음의 사도들Novios de Muerte’와 여자 나체, 부대 마스코트인 염소 문신 등을 어지럽게 한 그는 부대 담을 넘은 탈영병들을 잡는 게 임무다. 탈영병들은 가짜 여권을 만들어 비행기로, 또 어선갑판 밑바닥에, 유람선 관광객들 틈 등에 숨어 지긋지긋하고 고립된 이 지옥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미친 악마는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부동자세로 ‘명예롭게 죽자. 남자는 한번 죽는다. 죽음을 두려워 말자. 겁쟁이로 살지 말자. 우리는 충성스런 죽음을 맹세한다.’ 등등 외인부대 12복무강령을 읊는다. 그는 문신, 반지, 팔찌 등 특이한 외인부대 장신구와 군인 특유의 행동과 말투, 검게 그을린 얼굴의 흰 베레모자국 등으로 작별인사 한마디 없이 도망간 동료를 관광객들 틈에서 용하게 구별해 내는 특별한 육감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외인부대Tercio de Extranjeros’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유럽에서 악명을 떨치던 그들은 1970년대 초까지 스페인령 서부사하라사막에서 주둔했었다. 그 곳은 미친 악마 같은 추적자들에겐 솔직히 근무하기 편한 곳이었다. 탈영한 도망자들은 대부분 찌는듯한 무더위와 탈수, 열사병 등으로 사막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눈을 감기에 힘들게 땀 흘리며 잡으러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로코의 왕 하산 2세Hassan II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스페인 군대는 북아프리카에서 떠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 결과 스페인 외인부대는 모로코와 전쟁을 끝으로 북아프리카해안 사하라의 두 주요도시 쎄우따Ceuta와 멜리야Melilla에서 떠나 카나리아제도를 새 주둔지로 선택하게 된다. 사막의 전투에서 승리도 거머쥐었으나 이유 없이 쫓겨가듯 카나리아제도로 주둔하게 된 부대원들은 심한 굴욕감마저 느꼈다.
스페인 외인부대는 1920년 초 독재자 프랑코 Francisco Franco와 애쉬트라이Jose Millan Astray가 모로코전쟁과 스페인시민혁명 때 정부군을 도울 목적으로 프랑스 외인부대를 본떠 창설했다. 프랑코과 애쉬트라이는 세 번의 시민혁명 후 많은 군부대를 해체시켜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스페인 내 감옥에서 외국인죄수들을 뽑아 프랑스식 외인부대를 조직한다. 입대한 죄수들은 바로 사면된다. 기록에 의하면 초창기 유럽계가 거의 인 부대원들 중 일본인 세 명에 중국인, 러시아인, 미국계 흑인도 각 한 명씩 있었단다. 광적인 정신병환자 애쉬트라이 주도로 그렇게 짧은 기간 내, 외인부대는 만들어졌다. 쎄우따에 있는 외인부대박물관에는 전투 중 심한 부상에 빠진 애쉬트라이의 눈알을 알코올이 담긴 조그만 병에 담아 유물로 보관하고 있다.
쎄우따에는 또 하나의 외인부대유물이 신성한 우상으로 남아있다. ‘La Peque꼬마숙녀’는 외인부대와 반평생을 함께한 늙은 매춘부로 행사나 퍼레이드 때 항상 초대받는 손님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녀가 사는 조그만 집도 관광지도에도 표시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모로코인들이 무섭다는 핑계로 인생의 대부분을 외인부대막사 안에서 보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기력이 떨어지며 더 이상 부대원들에게 봉사는 못한다. 매주 일요일 부대원들은 10,000명의 무명전사자들과 40,000명의 부상자들을 위한 기념식을 거행할 때 그녀를 초청해 식사를 함께한다.
훼르테벤투라Fuerteventura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섬의 남쪽에선 대서양의 태양아래 고급스런 요트들이 그림처럼 떠 있고, 청춘 남녀 관광객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로 반라의 몸뚱어리를 탐닉해 경쟁하듯 여기저기서 정열의 폭죽을 터뜨린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40도가 넘는 태양의 열기 속에 외인부대원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다. 남쪽과 달리 갈색바닷물, 갈색모래, 갈색흙 등 온통 황갈색인 척박한 환경에서 부대원들의 몸도 진한 갈색으로 익어간다. 군복을 적신 땀은 곧 흰 소금으로 변해 갈색 흙먼지바람과 섞여 날린다. 훈련 중에도 실제 총알을 쏴대고, 동료 바로 옆에다 수류탄을 터트려 거친 욕을 먹으면서도 낄낄거리는 모습이 흡사 ‘지옥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 그 형상이다.
‘사연 없는 눈물 없고,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외인부대원들에겐 각각의 사연이 그들 등에 젖은 낙엽마냥 달라붙어 있다. 실연, 범죄, 따분함, 구직, 도피, 모험, 목돈마련 등등 다양한 이유들이다. 그리스에서 온 스피로는 ‘네가 카나리아 섬에서 전쟁 놀이할 때 고향에 있는 네 부모 목에 칼을 겨누고 네가 쓴 사채원금과 이자까지 다 받아내겠다’는 사채업자의 협박편지를 받았다며 크게 웃는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배타고 나가 실종됐고 그의 어머니 역시 오래 전 병으로 죽었다. 생각 같아선 당장 고향으로 달려가 닭 잡듯 칼로 사채업자의 목을 자르고 싶지만 현재 스페인시민권을 신청 중이라 참고 있다. ‘부대로 찾아오면 이자까지 갚겠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연락이 없다며 틈나는 대로 대검의 날을 날카롭게 갈고 있다.
30대 후반 아일랜드 계 마틴은 분위기가 딱 전쟁영화 주인공이다. 동료들이 낮잠 자거나 음담패설로 욕구를 달래는 동안에도 그는 혼자서 사격연습을 한다. 총을 개조해 명중률을 높여 부대 내 가장 유명한 저격수가 되었다. 영국군 4년, 프랑스외인부대 5년, 그리고 현재 스페인외인부대에서 4년째 복무 중이다. 덕분에 거친 욕이 대부분이지만 불어, 스페인어에 능숙하다. 전쟁이란 그에게만은 삶의 수단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계약기간이 끝나면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남미나 중동 쪽으로 새로운 전쟁터를 찾아 떠날 거란다. 남미 페루출신 카를로스는 여자친구와 유럽여행 중 한바탕 말다툼하고 헤어져 술 취해 홧김에 입대했다. 술이 깨며 곧바로 후회했지만 앞으로 3년을 더 근무해야 스페인시민권 신청을 하거나 또는 자유롭게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다.
러시아인 블라디미르가 씨익 웃을 때마다 보이는 앞니는 모두 의치다. 점호시간에 어설픈 스페인어로 외인부대 12강령을 외우는 그를 비웃는 교관에게 대들다가 얼굴을 철모로 맞아 입술이 찢어지고 앞니가 다 빠졌다. 훈련병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던 교관이다. 몇 일간 야전병원에서 대강 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오자마자 그 교관의 얼굴을 대검으로 난자했다. 덕분에, 군 교도소에서 4년 가까이 세월을 보내고 군법에 따라 그만큼 더 복무한다. 교도소 수감 동안 동료들과 떠든 덕에 스페인어를 이젠 제법 잘한다. 마피아조직을 탈출해 입대한 이태리 청년, 고향인 알칸사스에서 죄짓고 도망 온 미국촌놈 등 다양한 인종들의 용병생활은 마약처럼 점점 그들에게 중독되어 진다.
다양한 국적의 남자들로 구성된 스페인외인부대는 전세계의 범법자들이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그나마 마지막 정거장이었다. 지원자들 중 외국인은 스페인어가 국어인 남미인들이 가장 많았으며, 그나마 프랑스와는 다르게 외국인비율이 25%를 넘지 못했다. 그리고, 1986년부터 점차적으로 스페인국적만 입대를 허용했고 부대원도 5,000여명으로 감축했었다. 한때 이들의 앞날은 불투명했었다. 곧 부대를 해체한다는 소문도 종종 나돌았었다.
스페인남부 론다Ronda에 주둔중인 외인부대산하 특공대는 나토NATO 정규군과 정기적인 연합훈련을 한다. ‘90년 중반부터는 나토의 규정을 따라 문신, 턱수염 등을 금지하고 훈련과 인성교육에 힘쓰자 고질적이던 마약중독과 군무이탈도 거의 사라지고 정규 특수부대원으로 변해갔다. 그 전까진 론다 주민들에겐 악명 떨치던 골칫거리들이었다.
1920년에 만들어졌으니 올해로 벌써 창설 94주년이 된다. 2000년 초부터 새로운 징병 법에 의해 외국국적도 입대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합법적 스페인거류허가증이 있는 스페인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중남미국적자남녀들이다. 또한, 정신, 신체검사에 합격한 18~28세 사이의 내전에 참전하지 않고 범죄기록이 없는 스페인령 국민들도 가능하다.
현재, 스페인외인부대는 북부아프리카 스페인령 서부사하라, 스페인본토 남부 론다와 안달루시아 등에 주둔하고 있다. 병력도 4개 연대, 8,000여명으로 증원되어 스페인국방부 지휘하에 48시간 내 전세계 어디나 파병이 가능한 나토소속 국제치안유지군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특수기동대로 아프간을 비롯 세계 여러 곳에서 작전하고 있다. 범죄자집단으로 불렸던 부정적 이미지의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여군들도 근무하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유럽 최고의 기동부대로 거듭난다.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포르노 남자배우인 나초 비달Nacho Vidal이 이 부대 출신이다. 시간 있으면 무슨 영화를 누구랑 뭐하며 어떻게 찍었는지 7시간 정도 감상해 보자.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한 소도시에서 도로에 매설한 사제폭탄이 터져 정찰 중이던 스페인외인부대원 세 명이 전사했고 수 명이 부상당했다고 스페인국방부가 발표했다. 전사자명단엔 의치를 낀 러시아출신 블라디미르가 있었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