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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IF, 세월호 진실규명 막아선 청와대

FPIF, 세월호 진실규명 막아선 청와대
-신자유주의 국가와 기업 결탁의 결과로 세월호 침몰
-청, 국가기관, 언론 모두 나서 세월호 진실 은폐 나서

세월호 참사 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구조작업 실패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FPIF(Foreign Policy in Focus)는 ‘South Korea: Still Stonewalling About the Sewol – 한국: 세월호를 둘러싼 장벽 여전해’라는 제목으로 존스홉킨스 대학 서재정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되었던 관피아 문제와 구조작업의 실패에서 보여준 박근혜 정부의 무능함, 직무유기에 대해 자세히 짚어주고 있다.

먼저 이 기사는 세월호의 침몰은 단순히 불행한 사고일 뿐이고 승객들의 죽음은 그 비극적 결말로 보일지 모르지만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면, 보다 복잡한 그림이 드러난다고 말하며, 세월호는 안전 규제와 관리감독에 대한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시켰던 신자유주의 국가의 무게에 눌려 가라앉았다고 말한다. 또한 구조 작업마저도 국가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하고 사기업에 그 일을 떠넘긴 것이 승객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꼽았다.

기사는 승객 과다 수용 및 화물 과적이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서, 1)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선박개조와 2) 이 개조를 감사하고 모든 문제점을 보고서도 이를 승인했던 민간기업인 한국선급, 3) 선박의 안전운행을 위한 지침의 실행을 감사하는 책임을 지고서도, 세월호의 화물과적을 눈감아준 해운조합, 4) 이 모든 일에 국민의 안전을 보호에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돈과 권력을 위해 사기업에 맡겨버리고 관리조차 하지 않은 한국 정부가 이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구조실패의 원인으로서, 1) 세월호 승무원들이 승객들에 대해 내린 잘못된 지시 사항들, 2) 해경의 초기 구조작업부재 (상부로부터의 구조 명령이 없었다), 3) 구조 경력도 없는 사설기업인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를 구조작업에 고용계약한 점, 4) 정부의 콘트롤타워의 부재 등이 각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한다.

이 기사는 국가가 구조활동에 필요한 국가자원을 가동시킬 효율적 콘트롤 타워를 구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조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창출해내고, 잘못되고 거짓된 정보를 퍼뜨림으로써 사고의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국가 수장은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에 그 행적이 모호했고, 단 한번의 대면회의도 없었으며 대통령이 구조작업을 위한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없음을 말했다.

따라서 골든 타임 동안 구조 체제가 윗선에서부터 아랫선까지 부재했으며, 강력한 국가 안보를 갖춘 국가가 국민들의 생명을 규제 완화와 민영화로 만들어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구하는 것에는 실패했음을 전한다.

이 기사는 이어서 세월호 참사후 진실을 밝히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과는 반대로, 정부가 진실규명에 전혀 성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말한다. 국회에서 요구한 자료들을 제출하지 않고 감사원은 박근혜 정부의 업무 처리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후,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진술만을 유일한 근거로 삼아 청와대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기사는 말한다.

더 나아가 자식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기 원하는 유족들과 지지자들을 침묵시키려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노력, 언론과 정부에 의한 악성 루머 유포에 대해서도 기사는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기사는 “끝내 진실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심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가족들이 말을 인용하며, 유족들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을 거부하는 박근혜 정부와 집권 새누리당에게 무엇이 두려운가 하고 묻는다.

미국의 600명 이상의 학계, 시민단체, 운동단체로 구성되어 미국을 더 책임있는 지구촌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와 실생활 적용을 연결해 주는 “장벽없는 씽크 탱크”인 FPIF는 미국 워싱턴 소재 정책연구소-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IPS)의 프로젝트이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FPIF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ne7xKu

 

South Korea: Still Stonewalling About the Sewol

한국: 세월호를 둘러싼 장벽 여전해

Six months after a ferry crash killed nearly 300 South Koreans, the Korean government continues to stymie investigations into its behavior and harass the families of victims.

여객선 사고로 거의 300명의 한국인들이 사망한지 6개월이 지난 후 한국 정부는 여전히 정부의 행위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고 희생자 유족들을 괴롭히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By J.J. Suh, September 22, 2014

fpif_Sewol

The sinking of the South Korean Sewol may seem an unfortunate accident. Once the surface is
scratched, however, a more complicated picture emerges. (Photo: Kim Hanwool / Flickr)
한국 세월호의 침몰이 불행한 사고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면, 보다 복잡한 그림이 나타난다.

The Sewol, a South Korean passenger-cargo ferry that was carrying 476 people—including a group of high school students on a field trip to Jeju Island—capsized on April 16, 2014, and sank to the bottom of the sea off Korea’s southern coast.

제주도로의 수학여행 중이었던 일단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476명의 승객들을 태우고 가던 한국의 여객-화물 선박인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전복돼서 한국 남해안의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았다.

The Korean Coast Guard rescued most of the crew, including the captain, and some of the passengers. Before the Coast Guard or the Navy arrived on the scene, fishing boats and commercial vessels saved other passengers who happened to be on the deck or escaped soon after the capsizing. The rest were, unfortunately, trapped inside and sank together with the ferry. 294 were later found dead, and 10 are still “missing” almost 5 months after their disappearance.

한국 해양경찰(이하 해경)은 선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승무원들과 일부 승객들을 구조했다. 해경과 해군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 어선과 상업선박들이, 우연히 갑판에 나와 있었거나 배가 전복된 후에 탈출한 승객들을 구조했다. 불행하게도 나머지는 배 안에 갇혀 배와 함게 가라앉았다. 294명은 후에 시신으로 발견됐고 10명은 사라진지 거의 5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실종” 상태이다.

The ship’s sinking may seem an unfortunate accident, and the passengers’ deaths its tragic ending. Once the surface is scratched, however, a more complicated picture emerges.

그 배의 침몰은 불행한 사고이고 승객들의 죽음은 그 비극적 결말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면, 보다 복잡한 그림이 드러난다.

The Sewol sank under the weight of the neoliberal state that diminished its role in safety regulation and oversight. Its passengers drowned to death because the state relegated the rescue operation to a private salvage firm and prioritized its own interests over those of the passengers. But when victims’ families demanded the truth, the strong state reared its menacing head by deploying its force to silence them and mobilizing its resources to hide its responsibility.

세월호는 안전에 관한 규제와 관리감독에 대한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시켰던 신자유주의 국가의 무게에 눌려 가라앉았다. 승객들이 익사한 이유는 정부가 구조업무를 사설 구난업체에 떠넘겼고 승객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생자 가족들이 진실을 요구하였을 때, 이 강력한 정부는 이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무력을 이용하고 책임을 숨기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자원을 동원해 위협적인 자세를 드러냈다.

The Korean state’s deregulation and dereliction combined to create the perfect storm that sent the Sewol and its passengers to the bottom of the sea. The state’s intimidation has suggested that a cover-up is under way to obscure the state’s responsibility, contrary to President Park Geun-Hye’s public promise to get to the bottom of the accident.

한국정부의 규제완화와 직무유기는 함께 힘을 모아 세월호와 그 승객들을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게 만든 완벽한 폭풍을 만들어 냈다. 사고의 근본 원인을 밝히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과는 반대로, 정부의 으름장은 정부의 책임을 덮기 위한 사건 은폐가 진행 중임을 암시했다.

The Weight of the Diminishing State

축소하는 국가의 무게

The Korean Coast Guard concluded on April 17 that an “unreasonably sudden turn” to starboard, made between 8:48 and 8:49 a.m., was the cause of the boat’s capsizing. The ship’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AIS) data, which kept the ship’s trajectory until its sinking, seems to confirm the sudden turn.

해경은 아침 8시 48분과 49분 사이에 있었던 우현으로의 “비정상적으로 갑작스런 선회”가 배의 전복을 야기했다고 4월 17일에 결론내렸다. 침몰시까지의 선박의 항로를 기록/보관하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는 이러한 급작스런 선회를 확인해주고 있는 듯 하다.

But this raises another question: Why did the Sewol capsize when it changed course?

그러나 이것은 또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왜 세월호는 경로를 변경할 때 전복되었는가?

Because of overcrowding and overloading. Investigations revealed that the ship had been modified to accommodate more passengers than would be safe. Added to the overcrowding of passengers was the overloading of cargo. The ship’s operators loaded twice as much as regulations allowed and apparently did not secure it as per safety guidelines. On top of this, the crew removed water from the ballast so that the ship would float above the safety line. By adding a weight to the top and removing a weight from the bottom, the crew managed to create a perfect condition for capsizing. When the ferry made a quick turn, the weight of the passengers and cargo tipped the ship, and there was not enough weight in the bottom to restore the ship’s balance.

승객 과다 수용 및 화물 과적 때문이다. 안전치보다 더 많은 승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선박이 개조됐다는 것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승객을 과다 수용한 것에 화물 과적이 추가됐다. 배의 운항사측은 허용된 규제의 두 배에 해당하는 무게를 실었으며, 안전 지침을 어기며 화물을 고정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에 더해, 승무원들은 밸러스트(역주 : 선박에서 적당한 복원성을 유지하고 흘수와 경사를 조절하기 위해 배의 하부에 싣는 중량물)로부터 물을 제거해 배가 안전선 위로 뜨도록 했다. 위쪽에는 무게를 더하고 바닥으로부터는 무게를 제거함으로써, 승무원들은 배가 뒤집히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냈다. 여객선이 급회전을 했을 때, 승객들과 화물의 무게는 배를 기울어지게 했고 바닥에는 배의 균형을 복원시킬 수 있는 무게가 충분치 않았다.

The Sewol, originally built and operated in Japan for almost 18 years before it was sold to Chonghaejin Marine Co., Ltd., had in fact been modified to carry more passengers and cargo than would be safe. After Chonghaejin added two floors of passenger space and expanded the Sewol’s cargo space, inspectors from the Korean Register of Shipping (KRS) inspected and approved the modifications. Just two months before the accident, the Sewol passed the KRS’s inspection with over 200 safety features receiving a “satisfactory” rating.

청해진해운에 팔리기 전 일본에서 주조되어 무려 18년 동안 운행된 세월호는 실제로 안전치보다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기 위해 개조됐다. 청해진해운이 2개 층에 해당하는 객실 공간을 추가하고 세월호 과적 공간을 늘린 후 한국선급 조사관들이 개조한 것을 검사했고 이를 승인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두 달 전, 세월호는 200개가 넘는 안전 설비들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한국선급의 검사를 통과했다.

Although the Sewol’s modifications undermined the ship’s stability, and thus endangered passengers’ safety, it was able to pass the inspection thanks to shady collusion between the shipper and inspectors. The government relegated the responsibility to inspect and register ships to the KRS, a private entity, and yet did not adequately oversee its operation, as prosecutors discovered after the accident. Government regulators, responsible for the oversight, in fact frequently find employment at the KRS after their retirement.

세월호의 개조가 배의 안정성을 떨어뜨렸고 이로 인해 승객들의 안전이 위험해졌음에도, 선사와 선급협회 간의 수상한 유착 덕분에 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검찰이 사고 후 알아낸 바와 같이, 정부는 검사하고 등록하는 책임을 민간 기업인 한국선급 측으로 떠넘겼으나 그 운영을 충분히 감독하지 않았다. 관리 책임이 있는 정부 담당자들은 실제로 퇴직 후 흔히 한국선급에 일자리를 얻는다.

Chonghaejin took advantage of another loophole in the government’s safety regulation to routinely overload the Sewol. The Korea Shipping Association, an industry organization that represents the interests of about 2,000 members engaged in the coastal shipping business,monitors and inspects the shippers’ safety practices. In an unadulterated case of self-regulation, its headquarters is responsible for “safety guidance” and “implementation of safety measures,” while its branch offices are tasked to offer “guidance for passenger ferry’s safe operation” and inspect the number of passengers and the amount of cargo aboard a ship. The Marine Transportation Law deputizes vessel safety operators to guide and oversee the shipping businesses’ safety practices, but the safety operators are employed by the industry organization even if the government subsidizes their expenses. Passenger safety is thus trusted with the shipping business, whose priorities probably lie elsewhere

청해진해운은 일상적으로 세월호에 과적하기 위해 정부의 안전규칙 내에 있는 또 다른 틈을 이용했다. 연안해운업에 종사하는 약 2,000회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업기구인 한국해운조합은 선주의 안전관행을 감시하고 조사한다. 온전한 자율규제의 예로서, 해운조합본사는 “안전지침”와 “안전조치의 시행”을 책임지고 해운조합 지사들은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고 선박의 승객수와 선적된 화물의 양을 점검하는 임무를 맡는다. 선박운송법은 선박안전 운영자들을 해운사업의 안전관행을 지도하고 감독할 대리인으로 임명하며, 안전운영자들은 정부가 그 비용을 부담하기는 하지만 해운조합에 의해 고용된다. 따라서 승객의 안전은 아마도 우선권을 다른 곳에 두고 있는 해운사업의 손에 맡겨진다.

The collusion between the state and the Sewol’s owner risked not only the passengers’ safety but also the crew’s. Most of the Sewol’s crew members were temporary contract workers, a common practice among Korea’s domestic maritime transporters. Lee Junsok, for example—the Sewol’s captain—was a 69-year-old temporary hire with a monthly salary of $2,700. Just like the captain, more than half the crew were temporary workers with contracts of six months to a year, and were denied not just fringe benefits but also safety trainings. As if hiring temporary workers was not enough, Chongaejin also minimized its spending on crew training. It allocated a paltry $540 for the crew’s safety education in 2013, whereas it spent $10,000 on “entertainment” and $230,000 on PR, clearly showing its priorities.

국가와 세월호 소유주와의 결탁은 승객들의 안전뿐만 아니라 선원들의 안전까지도 위험에 빠뜨렸다. 세월호 선원들 대부분은 국내해운 운송자들 중의 공통된 관행으로서 임시계약노동자들이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는 69세로 월 급여 2,700 달러에 임시로 고용됐다. 선장과 마찬가지로 절반 이상의 선원들이 6개월에서 1년의 계약으로 채용된 임시직 노동자들이었으며, 이들은 부가혜택 뿐만 아니라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다. 임시직 노동자들을 고용한 것으로 충분치 못한 듯 청해진 해운은 또한 선원훈련을 위한 지출도 최소화했다. 2013년 선원안전교육을 위해 겨우 540달러에 불과한 적은 금액을 책정했고 이에 비해, 명백히 무엇이 우선인지를 보여주듯, 접대비에 10,000 달러 그리고 광고비에 230,000 달러를 지출했다.

The Sewol sank under the weight of the collusion between the neoliberal state that sheds its responsibility to safeguard people’s lives to private entities that trade customers’ safety for profits. The accident serves as a vivid reminder of the tragic consequences of such collusion.

세월호는 국민들의 삶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포기한 신자유주의 국가와 고객들의 안전을 이익과 교환해버린 사기업과의 사이의 결탁이라는 무게에 늘려 침몰했다. 사고는 그러한 결탁의 비극적 결과를 생생하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Rescue Failures by the Disappearing State

사라지는 국가에 의한 구조 실패

One of the greatest mysteries surrounding the Sewol incident is that neither the crew nor the government, including the Coast Guard and the Navy, made serious efforts to rescue the passengers from the sinking ferry.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가장 큰 미스터리 중의 하나는 승무원들도, 그리고 해경과 해군을 포함한 정부도 침몰하는 여객선으부터 승객들을 구조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A Coast Guard patrol boat pulled up to the control room of the Sewol, allowing most of the crew—including the captain—to jump to safety. Most of the surviving passengers were saved because they jumped off the ship before it submerged and were pulled out of water by fishing boats that happened to be nearby. The rest were left to their own devices.

해경 경비정 한 대가 세월호의 기관실 쪽에 배를 대고 선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원들이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했다. 대부분의 살아남은 승객들은 배가 가라앉기 전에 뛰어내렸고 가까이에 마침 와있던 어선들에 의해 물에서 끌어올려졌기 때문에 구조됐다. 나머지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방치됐다.

The next several hours, the “golden time” in which the passengers could have been saved, was characterized by the absence of active rescue operations. The Navy’s Ship Salvage Unit (SSU) and Underwater Demolition Teams (UDT) as well as the Coast Guard’s special units were dispatched, but arrived late and stopped short of active rescue operations.

승객들이 구조될 수 있었던 “골든 타임”인 그 이후 몇 시간은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부재했던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해군의 선박해난구조대와 수중폭파팀 뿐만 아니라 해경의 특공대도 급파됐으나 늦게 도착했고 본격적인 구조작업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중단했다.

This failure was compounded by deadly instructions to the passengers from the crew. They repeatedly broadcast an instruction to the passengers to stay put and not get out of the sinking ship, contrary to common sense. In another illogical instruction, they told the passengers to wear life jackets and stay in their cabin. The instruction proved deadly when the ship capsized and passengers wearing a personal flotation device could not swim underwater to escape from their cabins. A majority of the passengers, high school students, listened and followed the crew’s direction at their peril.

이 구조실패는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내린 치명적인 지시로 인해 더욱 그 사태가 악화됐다. 상식에 어긋나게도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침몰하는 배로부터 탈출하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반복해서 구내방송으로 지시했다. 또 다른, 말도 안되는 지시로서 그들은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선실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했다. 배가 뒤집히자 개인 부양장비를 입은 승객들이 선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물 속에서 수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이 지시는 치명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고등학생들이었던 대부분의 승객들은 승무원들의 지시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따르다가 목숨을 잃었다.

The crew’s failure was repeated by the Coast Guard. The Coast Guard dispatched Patrol Boat 123 to the Sewol, and even though some members of the Coast Guard went aboard the Sewol before it sank, they not only made no effort to rescue the remaining passengers, but they even failed to tell them to abandon the ship. They limited themselves to rescuing only the Sewol’s crew. The captain of the patrol boat testified in court on August 13 that he “panicked so much that he forgot” to instruct his crew to move into the Sewol’s cabins, adding that he was “so busy that he could not tell the passengers to evacuate the ship.”

승무원의 실패는 해경에 의해 되풀이 됐다. 해경은 경비정 123정을 세월호로 출동시켰고 일부 해경들은 침몰 전에 세월호에 승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남아있는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배에서 탈출하라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월호 승무원들을 구조하는 일만 했다. 구명정의 항해팀장은 8월 13일 법정에서 “너무 당황해서” 자신의 승조원들에게 세월호 선실로 들어가라고 지시내리는 것을 “잊었다”고 증언했으며 자신이 “너무 바빠서 승객들에게 배에서 대피하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Coast Guard Commissioner Kim Sok-Kyun did not do much better. He instructed the patrol boat to send its crew to the Sewol and “calm the passengers to prevent them from panicking.” It is clear that no order was issued from the top of the Coast Guard hierarchy to rescue the passengers before the ship sank. Video footage of the Sewol during the golden time shows Coast Guard boats circling around the slowly submerging ferry, effectively keeping away the fishing boats that had come to help save the passengers.

김석균 해양경찰청장도 이보다 나을 게 없었다. 그는 승조원을 세월호로 보내”승객들이 공포에 빠지지않도록 진정시키라”고 경비정에 지시했다. 해양경찰 체계의 상부에서 배가 침몰하기전에 승객들을 구조하라는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세월호 골든타임 동안의 동영상은, 천천히 물에 잠기고 있는 여객선의 주위를 해양경찰의 보트들이 맴돌며 승객들의 구조를 도우러 온 어선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효과적으로 막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It was not just the fishing boats that were kept away. The Navy could not enter the scene of the accident to participate in the rescue operation for the first two days. Instead, Undine Marine Industries, an ocean engineering firm that specialized in offshore construction and marine salvage but had no record of professional passenger rescue, emerged as the central rescue operator. The day after the accident, Chonghaejin contracted Undine at the recommendation of the Coast Guard, sidelining rescuers from both the Coast Guard and the Navy. Undine’s divers seemed more interested in salvaging the ship’s body than pulling out the passengers, as its divers in fact saved no one. Even when all the passengers remaining in the ship were presumed dead, the company delayed retrieving the bodies of the dead passengers for as long as 20 hours.

어선들만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 이틀 동안 해군은 구조작업에 참여하기위해 사고현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신에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라는 해양구조물과 해안구조를 전문으로 하지만 전문적인 승객 구조의 경력이 없는 해양 엔지니어링 회사가 주요 구조 담당자로 나타났다. 사고 다음 날 청해진은, 해경과 해군의 구조원들을 열외시키며, 해경의 추천으로 언딘과 계약을 맺었다. 언딘 잠수부들은 실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승객들을 구하는 것보다 배 선체를 인양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듯 했다. 배에 남아있는 모든 승객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을 때조차도, 이 회사는 사망한 승객들의 시신 인양을 20시간까지 지연시켰다.

The state, whose fundamental mission is to protect people’s lives and provide for their safety, failed throughout the crisis. Not only did it fail to establish an effective control tower that would mobilize national resources necessary for rescue operations, but it instead added to the chaos of the accident by creating obstacles to the rescue and spreading faulty or false information.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 임무인 국가가 위기관리에서 실패했다. 국가는 구조활동에 필요한 국가자원을 가동시킬 효율적 콘트롤 타워를 구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조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창출해내고, 잘못되고 거짓된 정보를 퍼뜨림으로써 사고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Various units of the government created a total of 10 headquarters in response to the Sewol’s sinking, creating confusion as to the line of command and producing problems in communication among government units. The Central Disaster Management Headquarters made what proved a fatal mistake by announcing that 368 passengers were rescued at 1:19p.m., four hours after the ferry’s sinking, when in fact over 300 of them were missing. It took several hours to correct the fateful misinformation and a full day for all the involved government units to establish the Pan-Government Accident Response Headquarters that unified the rescue operations and communication. By then the “golden time” was over, and the remaining passengers were presumably dead.

여러 정부부처들이 세월호 침몰에 대응해 총 10개의 본부를 설치해서 지휘체계에 관한 혼란을 야기시키고 정부부처 간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4시간 후인 오후 1시 19분에 승객 368명을 구조했다고 – 사실상 그 때에는 그 중 300여명이 실종된 때인데 – 발표함으로써 치명적인 실수로 입증된 행위를 했다. 이 치명적인 오보를 바로잡는 데에 여러 시간이 걸렸으며, 모든 해당 정부부처가 함께 구조활동과 의사소통을 통합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구축하는 일에 만 하루가 걸렸다. 이러는 동안 “골든 타임”은 지났으며, 남아있던 승객들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When the parliamentary special committee called on Chief of Staff Kim Ki-Choon, who is commonly viewed as the real power in the presidential office, to testify on the Sewol, he revealed that President Park had had no face-to-face meetings about the crisis until she showed up in the Central Disaster Management Headquarters around 5 p.m. Her appearance there after seven hours of missing in action was nationally televised. So was her ignorant question: “if the passengers are wearing a life vest, why is it so hard to find them?” Apparently she was unaware that they were trapped inside the overturned and submerged ship and thus could not be seen in the open sea.

국회특별청문회가 청와대의 실세라고 여겨지는 김기춘 실장에게 세월호에 관한 증언을 요구했을 때, 박 대통령이 약 오후 5시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날 때까지 세월호참사에 관한 대면회의는 없었다고 그는 폭로했다. 집무 중 사라졌다가 7시간 만에 그녀가 거기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 전국적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됐다. 그녀의 무식한 질문도 또한 방송됐다: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찾는 게 왜 그리 어려운가?” 전복해서 침몰한 배 안에 그들이 갇혀있어 망망대해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The president’s daily log, later released by Representative Cho Won-Jin to quell questions about her whereabouts, only confirmed her absence, for it failed to list a single face-to-face meeting. What did she do for the seven hours? Where was she?

이후 조원진 의원이 그녀의 행적에 대해 묻는 질문을 무마시키기 위해 내놓은 대통령의 일일 일정표는 단 한 건의 대면회의의 기록을 보여주지 않아 오히려 그녀의 부재를 확인시켰을 뿐이다. 그녀는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녀는 어디에 있었는가?

Wherever President Park may have been on April 16th, it is more than clear that the state, from the top to the bottom, was absent from rescue operations during the golden hours. What looked like a strong national security state failed to protect and save people’s lives from the danger it had created with deregulation and privatization.

박 대통령이 4월 16일에 어디에 있었든지 간에 골든 타임 동안 구조 체제가 윗선에서부터 아랫선까지 부재했던 상태는 아주 분명하다. 강력한 국가 안보를 갖춘 것으로 보이는 국가가 국민들의 생명을 규제 완화와 민영화로 만들어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구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The Families Demand Truth, and the State Evades

유가족들은 진실을 요구하고, 국가는 회피한다

The Sewol tragedy resulted from the collusion of Korea’s sea mafia, neoliberal deregulations gone wild, and a government absent from the rescue operation.

세월호 참사는 한국의 해양 범죄조직과의 결탁, 무분별한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 그리고 구조 체제에서의 정부 부재로부터 기인했다.

Many details still remain to be filled in. No one seems to know, for example, why all 64 closed-circuit television cameras aboard the Sewol were turned off at 8:30:59 on April 16, just a little before the ship’s sinking, or why 18 minutes later, the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AIS) was turned off and did not record the ship’s trajectory at the critical moment.

많은 세부사항들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로 있다. 예를 들어, 왜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기 직전이었던 8:30:59에 모든 64개의 CCTV 카메라가 꺼져 있었는지, 혹은 왜 중요한 순간에 자동인식시스템이 꺼져 있어 배의 궤도를 기록하지 않았는지 하는 것들을 아무도 모르는 듯 하다.

And larger questions remain to be answered. Who’s responsible for negligent safety inspections? Why did the government fail to rescue a single life from the sinking vessel? Where did official communications or the chain of command break down to cause confusion, chaos, and misinformation? Will those responsible be held accountable for their failures?

그리고 더 큰 질문에 대한 답변이 주어져야 한다. 안전 점검을 무시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왜 정부는 가라앉는 선박에서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나? 어디에서 공식적인 의사소통 또는 명령의 연결이 끊어져서 혼선과 혼란, 그리고 오보를 야기했는가? 잘못을 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인가?

On May 29, the Korean parliament created a special committee to investigate the Sewol accident, but it proved dysfunctional from the beginning. Its operation was stymied by repeated clashes between the two main political parties, the conservative Saenuri Party and the liberal Democratic Alliance for New Politics. Furthermore, the ministries and agencies called to report to the special committee dragged their feet and revealed little that was new. Two days before it was due to testify, the Park administration made an effective investigation difficult by releasing only 13 materials out of the 269 requested by liberal members of the committee. The committee ended its work without even holding a hearing.

5월 29일에 대한민국 국회는 세월호 참사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 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특별위원회는 시작부터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원회의 운영은 두 주요 정당인 보수 새누리당과 진보 새정치민주연합 사이의 반복된 충돌에 의해 좌절됐다. 게다가 특별 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불려진 장관들과 정부기관들은 꾸물거리며 시간을 지체하더니 새로운 사실은 거의 밝히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증언하기로 되어있는 날 이틀 전에 위원회의 진보 측 위원들이 요청한 269 가지의 자료 중 단 13가지만을 공개해 효과적인 조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위원회는 청문회조차 열지 못하고 일을 끝냈다.

As the special committee failed, so too did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BAI), Korea’s counterpart to the U.S.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After it performed an audit of the Park administration’s conduct, it concluded that the presidential office was not responsible for the Sewol failure. The sole basis of its conclusion seemed to be a government statement that “the Blue House is not the control tower of disaster management.” (The Blue House is Korea’s counterpart to the White House.) It also turned out that the BAI had sent a couple of low-ranking officials to audit the Blue House, and they completed their work even without examining the reports that had been submitted to the president on the day of the accident.

특별위원회가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회계감사원에 대응되는 한국의 감사원도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의 업무 처리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후, 감사원은 청와대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 결론의 유일한 근거는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진술인 것으로 보였다. (청와대는 한국의 백악관에 해당하는 말이다.) 또한 감사원은 청와대 감사를 위해 하급 공무원 몇 명 만을 파견했고, 이들은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에게 제출됐던 보고서들의 검토조차 하지 않고 감사를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This failure to bring out the truth was accompanied by the efforts of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and the police to silence the victims’ families and their supporters.

이 진실을 밝히는 일의 실패에는 피해자 가족들과 그 지지자들을 침묵시키려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노력도 힘을 보탰다.

The police monitored the victims’ families when they held meetings and blocked them when they tried to reach the Blue House to make a direct appeal to the president. The riot police isolated the families and their supporters by surrounding them with a wall of police buses. An unidentified person reportedly snooped around the hometown of a victim’s father in what looked like a fishing expedition. An NIS agent paid a visit to the hospital that employed a doctor who was helping the victims’ families and had a meeting with its director to inquiry about the doctor’s background.

경찰은 회의를 하는 유가족들을 감시했고 유족들이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을 때 그들을 막아섰다. 진압경찰은 경찰버스 벽으로 유가족들과 그 지지자들을 에워싸 그들을 고립시켰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한 희생자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 이것저것 캐묻는 등 정보수집으로 추정되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한 국정원 직원은 유가족을 돕고 있는 의사가 고용된 병원을 찾아가 그 의사의 배경을 조사하기 위해 병원 원장과 면담했다.

Meanwhile, a media offensive spread negative rumors about the families. Representative Min Byung-Du alleged that “the rumors are being spread through specific channels created by an expansion and reorganization of what looks like the ruling group’s psychological warfare unit that operated during the last presidential election campaign.”

한편, 적대적인 언론은 가족들에 대한 악의적인 루머를 확산시켰다. 민병두 국회의원은 “지난 대선 때 움직였던 여권의 심리전 조직 같은 것이 확대개편으로 만들어진 일정한 유통구조를 통해 루머가 유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The Sewol Families Committee sent a letter to President Park on August 22. In it, the families pointed out that “there is a larger issue at stake than specific issues related to a special law” and “that is whether the truth will be revealed or hidden.”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8월 22일 박 대통령에게 서한을 전달했다. 편지에서 가족들은 “법안의 쟁점 하나하나보다 더 큰 쟁점이 있다”며 “그것은 진실을 밝힐 것이냐 숨길 것이냐 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We have come to know that at the center of the efforts to hide the truth stands the Blue House,” the families wrote. ”The president said that the truth must be unearthed lest the families should have any remorse, but has even refused to submit materials to the audit by the parliament.”

“끝내 진실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심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가족들이 썼다. “대통령은 가족의 여한이 없도록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국정조사에 자료 제출조자 거부했다.”

The victims’ families demand that a special law be instituted that would create an independent committee with subpoena and prosecutorial powers in order to find the causes of the wreck that killed their loved ones. They believe that creating an independent committee is critical to finding an answer to questions about the Sewol’s sinking and the government’s failure to rescue. Kim Young-O, father of one of the victims, even staged a hunger strike for 46 days to demand just that.

희생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죽게 한 침몰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이 세월호 침몰과 정부의 구조 실패에 대한 의문점을 밝히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다. 한 희생자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오직 특별법 제정만을 요구하며 무려 46일간 단식 농성을 이어갔다.

The Park administration and the ruling Saenuri Party have thus far refused to listen to their demand for truth. What are they afraid of?

박근혜정부와 집권 새누리당은 지금껏 진실을 원하는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Jae-Jung Suh is the author of Power, Interest and Identity in Military
Alliances (2007) and editor of Truth and Reconciliation in South Korea
(2012), Origins of North Korea’s Juche (2012), and Rethinking Security in
East Asia (2004). He is a contributor to Foreign Policy In Focus.

서재정은 ‘군사동맹과 군사력, 이해관계 그리고 정체성(2007)’의 저자이며, ‘한국 전쟁의 진실과 화해(2012)’, ‘북한 주체의 기원(2012)’ 및 ‘동아시아 안보 문제 재고(2004)’ 편집인이다. Foreign Policy In Focus의 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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