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 (1) 흰 모자 케피블랑 Kepi Blanc
S. Macho CHO
우리가 용병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프랑스 외인부대일것이다. 붉은 어둠에 젖어드는 북아프리카 사막 모래 위, 총을 들고 흰 모자 케피블랑 Kepi Blanc과 갈색 먼지에 바랜 군복에 지친 듯이 서 있는 프랑스외인부대 사나이. 그 상상만으로도 벌써 낭만적이다. 어설프지만 대부분 남자들이 한 번쯤 투영해보는 우상이며, 영화 등에서는 모험을 즐기는 외로운 나쁜 남자로 매력 있게 묘사되었다.
프랑스혁명에 참전했던 골치 아픈 외국인부랑자들을 프랑스 사회에서 쫓아내고 적군과 싸우는 소모품으로 이용하자는 목적으로 1831년 프랑스 왕인 루이 필립 Louis Philippe이 외인부대 La Légion를 창설했다. 지원자들은 대부분 각 지역 성주들이 소유했던 사설군대들의 유럽각국에서 쫓기던 반역자들, 국내외 범죄자, 도망자 등으로 구성됐다. 당시 프랑스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내전을 진압하고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또 내전이 발발해서 다시 알제리로 참전을 거듭하다 알제리에 아주 주둔하게 된다. 외인부대는 프랑스령 식민지들의 독립을 억압하는 역할을 했다. 프랑스정부는 삼촌과 왕권을 다투던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을 돕는다는 핑계로 1835년 외인부대 일부를 스페인정부에 떠넘겨 보낸다. 그러나, 자주 말썽을 피우는 무법자들인 부대원들에게 부담을 느낀 스페인정부는 프랑스정부에 사전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부대를 해체시켜버린다. 그러자, 갈 곳 없던 부대원 중 대다수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외인부대에 재 입대한다.
외인부대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전설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가 있다. 1863년 벌어진 멕시코의 카메론 전투였다. 당시 프랑스는 멕시코 내에 몇 지역을 식민지로 건설 중이었다. 전투 중 왼손을 잃어 나무로 만든 의수를 단 당주대위 Danjou의 부대원 60여명이 프랑스군 금괴 등을 호송하던 중에 멕시코군과 맞닥뜨린다. 외인부대원들은 근처 카메론 농장에서 7시간 동안 정규군 2,000여 명을 상대로 악착같이 버텼으나 결국 패한다. 부대원들은 대부분 다 죽고 총알도 바닥 나 겨우 6명만 살아남았다. 그들은 항복해 포로가 되는 것이 불명예라며 칼로 자결한다. 결국 부상당한 2명만이 포로가 되었다. 멕시코군 사령관은 비록 적이지만 그 용맹에 감동해 포로들이 당주대위의 시신을 가지고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도록 풀어준다. 그 전투로 멕시코군도 수백여 명이 부상당하고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당주대위의 의수는 그 때 잃어버렸으나 나중에 되찾아 부대의 가장 귀중한 유물로 외인부대박물관에 보관되었고, 해마다 4월 30일 카메론의 날Camerone Day 행사에 외부에 공개된다.
1차 세계대전 중엔 많은 부대원들이 프랑스와 타국에서 쓰러져 갔다. 과장되게 포장된 무용담에 도취된 많은 다양한 국적의 남자들이 외인부대로 줄을 잇는다. 그러나, 과거 입대자들처럼 돈을 쫓거나 처벌을 피해 숨어드는 범죄자 용병들과는 달랐다. 비행기조종사, 과학자, 소설가, 시인 등과 같이 낭만과 로망을 찾는 고학력 이상주의자들이 늘어났다. 용맹스럽다는 소문 때문에 2차 대전 때는 북아프리카 전선의 독일군들이 외인부대가 온다는 소리만 듣고도 탱크를 뒤로 돌려 후퇴하기도 했다. 전쟁막바지엔, 히틀러에 염증을 느낀 많은 독일군 탈영병들이 전쟁이 패할 것을 예상해 대규모로 외인부대에 입대해 연합군 편에서 총을 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 갑자기 찾아온 평범한 일상에 적응이 안된 부대원들은 또 다시 프랑스를 위해 인도차이나전쟁에서 싸웠으나 결국 10,000여명이 전사하며 크게 패하고 항복한다. 당시 프랑스정부는 베트남독립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항복할 때 백기를 올리지 않기로 베트남 군과 합의했었다.
알제리독립전쟁이 수 년간 계속되자 결국 드골대통령이 알제리에서 외인부대를 철수시키려 했다. 그러자, 철수에 불만을 품은 외인부대 일부가 프랑스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자진 해산한다. 결국 1962년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며 외인부대는 알제리를 떠나 주둔지를 프랑스본토와 지중해 코르시카섬 등으로 옮긴다. ‘90년대에 들어서며 르완다, 가봉, 자이레, 소말리아, 콩고 등 아프리카 내전지역과 캄보디아, 보스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아프가니스탄, 코트디부아르 등에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했다.
가진 거 없는 외국남자가 프랑스시민권을 딸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외인부대에 복무하는 것이다. 지원은 프랑스 내 여러 곳의 모병안내소에서 할 수 있다. 몇 일간 공짜로 먹고 자고 5년의무복무계약서, 입대지원서 등을 작성하고 신체검사, 체력검사, 면접과 정신감정을 받는다. 불어구사능력, 종교, 교육유무, 결혼유무, 병역경험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인종이 지원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도 쿠바, 시리아, 북한국적은 입대할 수 없다. 18~40세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그 후, ‘농장’이라 불리는 신병훈련소에서 제식훈련, 군사교육, 체력훈련을 포함, 불어, 산악훈련, 자동차교육, 기초전술시험 등 신병교육을 4달간 받는다. 입대시험에서 떨어지면 약간의 여비만 받고 훈련소를 떠나야 한다. 그러나, 합격하면 11곳의 각 예하부대로 배치 받아 최소 5년간 의무복무기간을 마쳐야 한다. 의무복무 후에는 매 6개월씩 복무연장이 가능하다.
2010년 9월부터 법이 바뀌어 여권과 동일한 이름으로만 지원할 수 있다. 입대 시 여권, 운전면허증 등 영어나 불어로 번역 공증된 유효한 증명서와 범죄사실증명서가 필요하다. 예전과는 다르게 범죄기록이 있으면 입대할 수가 없다. 인터폴을 통해 범죄사실을 확실히 조사한다. 지원자중 군복무경험자는 약 30%정도다. 입대하면 새로운 가명과 군번을 부여 받는다. 정신, 육체, 언어 등 근무부적격자로 판명되면 심사를 거쳐 중간에 불명예 제대시킨다. 매 기간 측정, 암기, 불어능력 등 시험에 합격해야 진급할 수 있고 그래야 봉급도 오르며 간부가 될 기회도 얻고 시민권신청 등에도 유리하다. 문신이 있어도 지원할 수 있지만, 나치문양, 인종차별, 비속어 등과 얼굴 문신은 입대가 안 된다. 복무 후 3년이 지나면 프랑스시민권 신청자격이 주어지나 근무상태, 불어능력 등 엄격한 군복무심사를 거쳐야 한다. 전투 중 부상당했으면 피를 흘린 대가로 가산점 혜택도 받는다. 기본적인 의무복무기간 중 반 이상이 지나면 국외휴가가 가능하지만 대다수는 대부분 마르세이유 등 프랑스 내 부대휴양시설 등에서 지낸다. 통계를 보면 하사관의 25%와 장교의 10%는 일반 사병에서 진급한 것으로 나와있다.
현재는 상황에 따라 프랑스시민권자도 외인부대지원과 근무가 가능하며 외인부대의 훈련강도는 일반 프랑스정규군과 유사하다. 외인부대원이라고 다 총 쏘고 전투만 하는 건 아니다. 주특기는 고공강하, 스쿠버, 폭발물취급, 지뢰제거, 컴퓨터기술, 취사, 사진, 행정, 배관, 원예, 정비 등 다양하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알거나 과거 프랑스식민지출신 남자들에게 유리하다. 국적별로 보면 벨기에 등 프랑스어 권이 약 30%로 가장 많다. 독일, 이태리, 스페인 등이 뒤를 따른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진 동독을 탈출했지만 갈 곳 없는 동독남자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1992년 소련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러시아와 그 연방에서 독립한 위성국가들에서 실업자가 된 많은 전 현직 특수부대원들이 외인부대를 삶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다. 요즘은 계속되는 내전으로 조국을 탈출한 아랍계 지원도 계속 증가되고 있단다. 먹고 살기 힘든 아프리카인들은 프랑스까지 오는 것만도 하늘의 별따기다. 동양인은 약 10%로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중국 순이다. 1963년 독일에 광부로 갔다 프랑스로 가 입대한 2명이 한국인 최초의 외인부대원이다. 현재까지 약 150여명의 한국남자들이 거쳐갔단다.
군복무중 이등병 월급이 약 120만원 안팎으로 위험수당이 없는 기본급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군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소모성 군장물품을 자비로 구입해야 하니 목돈모으기도 쉽지않다. 운 좋게 시민권을 받고 전역하고 사회로 나온다고 해도 비싼 물가와 어색함, 외로움에 허덕인다. 불어도 완벽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직업 구하기도 힘들다. 특별한 기술이 없으면 일거리도 없다. 파리외곽 한 한인식당주방에서 일하는 한인외인부대출신자를 본 적이 있다. 성실히 복무한 전역자들은 외인부대소유의 와인농장 등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또 담배공장이나 각 외인부대 휴양시설 등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물론, 봉급은 얼마 안되지만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이다.
요즘 입대자들은 플레이스테이션세대라 불린다. 예전보다 체력이 강하지못하단 말이다. 다양한 국적의 여러 문화와 인종들의 집합체다 보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격한 훈련과 군기로 유명하다. 탈영, 자살기도, 병영사고 및 강력범죄 등은 프랑스군형법에 따라 엄격히 처벌받는다. 또한, 교도소 수감기간만큼 복무기간도 자동 연장되며, 시민권신청에 불리하다. 지루한 의무복무기간과 힘든 훈련, 낮은 봉급, 기대했던 막연한 환상에서 깨어난 많은 사나이들이 외인부대의 담을 넘어 고국 또는 제삼국에서 사냥개 같은 외인부대헌병대의 추적을 피해 조용히 숨죽여 살아가고 있다. 현재 약 140여 개국에서 온 7,600여 명의 사병, 하사관과 프랑스시민권자인 장교 등 진짜 사나이들이 ‘외인부대는 우리 조국이다 Legio Patria Nostra’란 모토아래 근무하고 있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